히가시노 게이고의 호텔시리즈 중에 내가 읽은 책은 매스커레이드 호텔매스커레이드 나이트두 권이다. 이 소설은 호텔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호텔리어인 야마기시 나오미와 형사 닛타 고스케가 주인공으로 볼 수 있다. 호텔내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질 것이라는 제보로 형사들이 호텔리어로 변장하여 잠입수사를 하면서 이야기가 벌어진다. 일본 최고 일류 호텔 코르테시아도쿄가 이야기의 배경이다.

    

 

-<매스커레이드...>시리즈는 모두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리해가는 이야기이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 게이고는 이런 말을 한다.

 

호텔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손님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그걸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호텔리어는 손님의 맨 얼굴이 훤히 보여도 그 가면을 존중해드려야 해요. 결코 그걸 벗기려고 해서는 안되죠. 어떤 의미에서 손님들은 가면무도회를 즐기기 위해 호텔을 찾으시는 거니까요.”(394p)

 

이 사람이라면 비밀을 털어놓아도 괜찮겠다라는 믿음 역시 호텔리어에게는 소중한 것이다.”(491p)

 

 

매스커레이드란 말이 가장무도회’, ‘가면무도회란 뜻이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 호텔을 출입하는 모든 손님들이 그 호텔에서는 가면을 쓰고 생활하고 싶어한다는 인간의 심리를 이야기해준다.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에서 이야기가 가면무도회를 소재로 하여 살인범을 쫓는 이야기이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게이고의 작가생활 25주년 특별기념작품이기도 하다.

 

 

어떤 일로 인간이 상처를 입는지 타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50p)

 

 

보통 상처란 것은 주는 사람은 잘 인지하지 못하고 받는 사람은 강렬하게 인지하여 가슴에 남는 셈이다.

 

 

누군가 사소한 일로 원한을 품는 일이 있어도 그 원한을 받는 쪽에서는 별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있더구나. 기록해두는 일 따위는 없다는 점을 냉정하게 계산했더라면 이번 사건처럼 번거롭기 짝이 없는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을 거야.’(493p)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는 연쇄살인사건이 3건 발생했고, 4번째 살인사건예정지가 바로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이었다.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에서는 본격적인 가면무도회를 소재로 하는데, 범인은 이 가면무도회, 매스커레이드 나이트의 축제 가운데 살인사건을 계획하고 제보한다.

 

 

만일 나카네 님 일행의 관계가 닛타 씨가 처음에 말했던 대로 러브어페어(불륜행위)라면, 즉 상대 남자분이 유부남이라서 나카네 미도리 씨가 낮시간에는 호텔에서 혼자 지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도 이번 작전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혼자서 부부인 척 연기하고 있는 거라면 일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어요. 왜냐면 디너를 매번 2인분씩 주문했잖아요. 어떻게든 남편이 함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져요.”

 

남편과의 여행을 즐기는 행복한 아내, 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거네요.”

 

그렇죠. 게다가 그 가면을 결코 벗으려 하지 않을 거예요.”(280p)

 

 

히가사노 게이고는 살인범이 닛타에게 하는 말을 통해 살인범을 추적하는 이들의 심리를 이야기해준다.

 

 

어떤 일을 의심하고 또 의심한 끝에 마침내 의문이 풀려버리면 인간이란 더 이상 그 일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게 돼. 마키무라 미도라가 체크아웃한 뒤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더라도 아무도 그녀에 대해서는 깊이 조사해보려고 하지 않았을 거야. 왜냐하면 그녀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사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조사해볼 필요도 없다, 라고 말이지.”(533p)

 

 

또한 성폭행사건을 조사하는 경찰들에게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을 통해 한 마디 하고 있다. 여성들이 자신이 당한 그 끔찍한 사건에 대한 진술을 번복하고 번복하는 과정을 통해 얼마나 더 큰 모욕감과 모멸감을 느끼겠는가! 하지만, 아직도 경찰과 형사들은 그런 여성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그래, 내 여동생은 비열한 성폭행범 때문에 지옥 같은 상황에 굴러 떨어졌어. 하지만 그 지옥에서 그 아이를 더욱더 유린한 것이 너희 경찰들이야. 취조실에서 여동생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너희가 알기나 해? 성폭행을 당했던 때의 일을 여러 명의 형사 앞에서 수없이 되풀이해서 얘기하고 해서 세세한 것을 꼬치꼬치 캐묻고, 게다가 인형을 상대로 어떤 자세로 성폭행을 당했는지 연기까지 하라고 했어. 그래도 그 아이는 경찰이 범인을 잡아 줄 거라고 믿고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뎠어. 필사적으로 견뎌냈다고. 그런데 어떻게 됐지? 결과가 어떻게 나왔어? 경찰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어. 담당 형사가 흐릿하게 웃으면서 여동생에게 뭐라고 했는지 알아? 아가씨, 개한테 물린 셈 치고 얼른 잊어버려요....그렇게 말했어. 개한테 물렸다고? 영혼을 잃을 정도의 일이었는데?”(540-541p)

 

 

작가는 살인범의 여동생의 죽음에 1차는 성폭행범이지만, 2차는 경찰들에게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은의가 쓴 예민해도 괜찮아삼성을 살다의 저자인 그녀가 변호사가 되면서 여성성폭력 피해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이 사회가 가진 욕망의 메카니즘과 기형아적인 구조에 대해 비판한다.

    

더 큰 문제는 정작 자신들이 가해자인 줄도 모르게 된다는 것에 있다. ‘나아가 그 과정이 사회구성들원들에게 잘못된 학습을 남긴다는 것이다’(37p)

 

 

사건조사를 담당하는 경찰들 뿐만 아니라 여성피해자의 주변인들과 사회 전체의 잘못된 학습이 여성피해자를 더 깊은 심정적인 상처의 골을 패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은의 작가는 대기업 삼성에서 직장내 여성의 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면서 삼성과 싸워 이겼고 그 후에 그는 30대 말에 만학도로 로스쿨에 입학해 변호사가 된다. 그녀는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성적폭력의 메커니즘에는 갑을관계의 스트레스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 갑을관계는 사회 전체 구조에 이상한 프레임으로 전이된다. ‘피해자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고약한 프레임이 문제’(51p)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데이트 폭력이란 말 자체가 우스운 것이고 그것은 단지 폭력일 뿐이다.

 

 

내가 존중받아야 하고 나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 을()들은 결국엔 존중할 줄 모르는 갑()이 된다.”(181p)

 

 

작가 이은의는 대기업 삼성에서도, 그리고 변호사가 되는 과정과 되고난 후에도 여전히 이런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의 메커니즘은 모든 여성에게, 심지어 자신에게도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직장 내에서 회식을 했고 술자리를 가졌다. 다들 좀 취했고 술에 취한 여직원을 상사가 데려다주면서 성폭행이 이뤄졌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여직원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가해자인 상사에게서 온 문자는

 

어제 일은 없었던 걸로...’

 

! 그래놓고 술만 마시면 여직원에게 다가가 집적대고 만지는 상사...‘내거 인 듯, 내거 아닌, 내거 같은 너라고?(71p)라는 말로 잘못된 남녀관계의 프레임을 작가는 지적한다.

 

 

한국의 청년들은 사회적으로 겸손과 순응을 주입받으며 자란다. 특히 여성에게는 그것이 보다 더 강하게 요구된다. 겸손과 부드러움 자체가 문제일 리 없다. 문제는 <겸손>이 자기다움을 포기하고, 다수의 입장에 서는 것으로 학습되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 <순응>인양 포장된다는 것이다.’(237p)

 

 

마녀는 모순된 구조 속에서 그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함으로써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마녀의 존재로 을()들의 처우는 표면적으로나마 개선된다. 마녀로 인한 혜택을 이미 함께 누리고 있거나 앞으로 누릴 것이지만, 스스로 마녀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마녀가 다수가 되면 마녀들이 아니다. 그냥 여성이 된다.’(205p)

 

 

어찌하다 보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이야기를 하다가 이은의의 에세이까지 들먹이게 되었다. 근데, 같은 맥락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태도가 성폭력으로 드러나 결국 본인은 자살을 하고 말았다.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깊은 분노가 결국 또 다른 살인사건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었다. 이은의가 여성의 고통과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사로서 지적하는 모든 대목들이 참 공감이 된다. 이 사람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미처 준비되거나 생각해보지 않은 일들에 맞닥뜨리게 된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정작 힘을 실어야 하는 건 무엇이 최선인지를 판단하는 일이 아니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마음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그렇게 내린 선택이 최선이 되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일이라고.’(31p)

 

 

진실의 편린은 약자나 소수의 편에서 쥐고 있을 확률이 높지. 자네는 그런 입장에서 싸워봤으니 알지 않을까 싶네. 다수의 입장에 서면 사는게 쉬워지지. 다수나 강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유리해지는 거니까 말일세. 하지만 법을 사랑하는 사람은, 특히나 아직은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나마, 유리하지 않더라도 진실의 편린을 바라봐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260p)

 

 

*참고로,매스커레이드 나이트읽는데 절대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스포일러만 노출했음을 밝힙니다.

근데, 너무 아쉬운 점은 왜 나오미와 닛타의 썸이 발생할 것 같은데, 연인으로 발전시키지 않고 마지막은 늘 밥만 먹고 마느냐는 것이 독자로서 불만이다. 둘이 직업전선의 최고의 프로라서 연결되지 않는다기 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매스커레이드...>시리즈 추리소설을 계속 쓰려면 두 캐릭터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그게 제일 아쉽다. 나오미와 닛타, 둘이 잘 되면 좋겠구만!...ㅋㅋ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이야기만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이은의 책까지 언급을 했다. 그렇게 글이 쓰여지는 것도 예상치 못한 루트이지만, 생각치도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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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0-23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하고 <브루투스의 심장> 읽었는데 역시나 재밌더군요.

다른 건 몰라도 재미 하나는 최고인 것 같습니다 -

장르소설 리뷰 쓰면서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구요.

카알벨루치 2018-10-23 20:11   좋아요 0 | URL
시간가는줄 모르고 빠져드는데 읽고난후 헛헛함 때문에 리뷰 적고 게이고랑 굿바이할까 생각중입니다 독서의 불씨를 당기게한 브릿지같은 인물로 기억의 저편에 모셔둘까 생각중입니다~게이고가 가끔 마지막에 추리의 보따리를 다 풀어버릴때 약간 “요건 몰랐지???”이런 식 인 듯해 조금 식상한 감도 있고 ...인제 헤어질 건데 미련을 갖지 말아야죠 ㅋ 근데 제 스포 노출 괜챦습니까 ㅎㅎ

페크pek0501 2018-10-25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페이퍼를 안 봤다면 억울한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글 꼼꼼히 읽은 1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