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최민자 지음 / 연암서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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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


  저에게 수필은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참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쓰이기에 접근하기 쉬워보이지만 쉽게쉽게 쓴다고 글을 내려적다 보면 결국 쓰레기가 되곤 하지요. 아아, 좌절. 물론 방법론 이전에 의식이 문제지만요. 예전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면, 이제 꿈은 '내 이야기를 온전히 쓰고 싶다'로 바뀌었습니다. 절대 파이가 작아진 게 아니어요. 오히려 더욱 깊어진 거지요.


  수필과 일기, 낙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항상 고민하지만 항상 난항에 빠지고 좌절하고 말지요. 소설은 신변잡기적인 글을 쓰면 안 된답니다. 그렇다면 수필은? 수필 역시, 형식은 매우 자유롭지만 잡담을 쓴다면 그저 그런 낙서에 지나지 않겠지요.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세심한 관찰력이 없다면 글은 그저 허세 가득한 글자모음밖에 되지 못할 겁니다. 그런 면에서 수필은 세상에서 가장 쓰기 어려운 글인 것 같습니다.


  제 글쓰기의 마지막 꿈이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였는데, 과연 이 꿈을 제대로 세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있어 보이고 싶어서 저런 문장을 앞세운 건 아닌지. 때론 자만에 잔뜩 취해 고개를 한껏 쳐들다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하며 머리를 쥐어싸매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요. 하긴, 글쓰기는 자신감과 자만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라고, 누군가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사실을 잊고 기뻤다가 슬펐다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하루에 몇 번이고 타고 말지요.


  저는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참 바보처럼요. 아니, 노력이 아니라 시간 낭비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소설을 쓰려면 소설을, 수필을 쓰려면 수필을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전 작법서만 신나게 쳐다보고 있었지요. 이렇게 쓰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어, 저렇게 써야 제대로 된 묘사야, 이게 바로 공감각적 표현이지. 방법을 알면 글 쓰는 게 쉬워질 줄 알았지요. 하지만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었더군요. 제길.


  그런 면에서 <손바닥 수필>을 접한 나흘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폭신한 양장본 표지에 앙증맞은 크기, 하늘을 향해 마음의 창을 활짝 여는 듯한 표지그림까지, 정말 너무 멋진 책이더군요. 물론 단순히 모양 때문에 책이 사랑스러웠던 건 아닙니다. 수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지요? 일상의 작은 편린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감정이 과잉되지 않게 담담히 써내려가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귀해지기 시작한 것은 시계가 흔해지고 나서부터다. 시계는 시간 도둑, 시간의 천적이다. 시간을 계량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훔치고 잡아먹는다. 시계들이 기하급수족으로 새끼를 쳐서 부엌에도 책상에도 손목 위에도 크고 작은 변종들이 범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이 귀해지기 시작한 거다. 먹잇감은 일정한데 개체수가 증가하니 모자라 아우성을 지를 수밖에. (49쪽, '시간도둑'에서)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일상들을, 배배 꼬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지나쳤던 것들을 조금 다르게 봄으로써 그것들은 생각한 이에게 의미를 가진 것이 되겠지요. 그럼으로써 조금씩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다들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고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글쓴 이 최민자 씨의 이름은 처음 듣습니다. 하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시선과 마음에서, 저자의 푸근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왠지 여기저기 주름도 패어 있지만 그 주름이 단순한 세월의 흔적은 아닐 듯싶습니다. 엽편 또는 장편이라 불리는 분량의 짧은 글로 구성된 책입니다. 어느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아무 페이지나 쫙 펴서 읽어도 너무나 좋을 책이란 걸 직감합니다. 책을 덮고나니 푹신한 표지가 손바닥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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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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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한동안 '독서'라는 주제를 가진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론, 독서인생, 독서방법, 독서에세이 등등. 독서가 좋아 이런 부류의 책을 읽었지만 오히려 독서에 질릴 정도로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의 종지부를 찍는 책이 바로 <혼자 책 읽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엄청 기대를 하고 샀지만 책값 13,800원의 값어치를 해주지 못한, 너무나도 아쉬운 책이 되겠습니다.


  저자는 하루 한 권 책읽기와 인터넷 서평으로 유명한 분이라고 합니다. 나이도 꽤나 있으신 여성분이시네요. 애들 키우는 데에 신경쓰느라 시간도 많이 부족할 텐데 하루 한 권이라니, 엄청난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열정이 저에게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지만.


  아, 그닥 좋은 느낌을 받은 책은 아니어서 길게도 쓰지 못하겠네요. 그렇다고 소설처럼 깔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제 입장에서 좋은 에세이는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콕콕 박히거나, 일상의 작은 편린을 너무나도 멋있게 보여주거나, 제 영혼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죽음과 슬픔이라는 상처를 독서로써 메꾸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은, 그 어느 부류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도 중구난방이고. 그냥 개인의 취향일 뿐이지요. 뭐, 그런 겁니다. 차라리 딱딱한 서평을 보는 게 재밌다고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무정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상타? 아직 고독함이 부족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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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사 2012-06-0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다행이네요. 저랑 느낌이 비슷해서요.
전 제가 이상한 사람인가 했거든요. 뭐, 이상한 사람일수도 있겠지만서도,ㅋㅋㅋ
적어도 동지가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네요. 에휴~~~
 
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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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언제나와 같이 짤막한 감상 전에 작가에 대해 말해보고 갈까요. 미미여사로도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책입니다. 상당히 다작하는 작가인데 전 아직 세 작품(<용은 잠들다>, <크로스 파이어>, <브레이브 스토리>)밖에 안 읽어봤네요. 작가 이름만 봐도 믿음이 간다는 분들도 많다네요. 다작만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어느 정도 평작은 쳐주는 보증수표 같은 존재인가 봅니다. 단순히 미스터리만 쓰는 작가인줄 알았건만 판타지나 SF, 시대극까지 손을 댈 줄 아는, 능력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이 부러워. 그런 분이 쓰신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화차> 역시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굳.

  얼마 전에 개봉한 한국 영화 '화차'의 원작소설인데 무려 1992년 작품입니다. 이 작품으로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받았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역대 20년 총결산에서 1위를 했다는군요. 개인적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나오키나 아쿠타가와 상보다 좋아하는 타이틀입니다. 역시 꾸준히 많은 책을 봐야겠어요. 진짜 작품은 의외의 곳에서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책은, 무릎이 총알에 다쳐 휴직한 형사 혼마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내의 사촌오빠의 아들(사실 이 책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이 사람이 육촌인가 아니면 다른 호칭인가!) 이 갑작스레 혼마를 찾아옵니다. 결혼하려는 여자에게 신용카드를 만들어주려 했더니 파산한 여자라고 카드 발급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런 소식을 알릴 새도 없이 여자는 잠적해버렸답니다. 의아한 마음으로 친척의 부탁을 받은 혼마는 여자의 파산을 맡았던 변호사를 찾았고, 변호사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혼마가 알고 있던 여자와 변호사가 알고 있는 여자는, 이름만 같지 생김새가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요. 그러니까, 이 여자는 다른 여자의 신분을 사칭해 살고 있던 거지요.

  혼마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는 게 이 시점입니다. 책을 나흘에 걸쳐 천천히 봤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흐름이 늦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에게 들은 충격적인 말, '당신은 나에게 다른 사람 얘기를 했어요' 부분이 겨우 80쪽밖에 안 되는 거 있죠. 남은 400쪽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두꺼운 책을 만지며 한숨을 쉬었는데 웬걸, 몰입도가 엄청납니다. 한번 책을 펼칠 때마다 적어도 100쪽씩은 읽고 덮었습니다. 행방불명된 한 여자를 찾는 데서 시작한 사건은 스케일이 점점 커지고 심각해져갑니다. 자잘한 증거를 모으고 여러 인물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실체를 파악하는 혼마. 여타 미스터리 소설이 그렇듯 증거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던 증거들은 하나씩 꿰어맞추다 보면 그럴 듯하게 들어맞지요. 조금 구식인 듯하면서도 오히려 직설적인 이 장치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페이지는 정말 슈슈슉.

  물-론 모든 작품은 약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중간에 변호사가 신용카드와 카드돌려막기와 신용불량자에 대해 말하는 긴 부분은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면서 무척이나 지루했습니다. 아니, 스토리진행은 하나도 없고 무려 30쪽에 걸쳐 사회현상과 짜잘한 이론에 대해 말한다면 어느 누가 지루해하지 않고 버팅기겠습니까. 중요한 부분이긴 합니다만.

  흔히들 우리나라와 일본은 10년의 시대차가 난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카드대란이 있었지만 일본은 조금 더 이른 때에 이런 심각한 일이 대두됐나봅니다. 카드 때문에 부채가 생긴 많은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긴 이유는 사람 자체보다 부(한자로 부)라는 허상의 이미지를 덧씌워 이익만을 좇는 사회, 그리고 그런 것을 제대로 인지시키지 않았는데도 열심히 권하는 사회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뱀이 탈피하는 이유는, 껍질을 벗다 보면 언젠가 다리가 생길 거라는 믿음을 갖기 때문이라고, 작중 인물이 말합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많은 뱀들은 생기지도 않을 발을 위해 빚을 내서라도 거울을 사고 싶어합니다. (346, 347쪽) 보통 신용불량자를 보는 시각은, 그거지요. 네가 못났고 돈을 그리 헤프게 쓰니 신용불량자가 되지, 쯧쯧쯧.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 뿐 아닌가요. 남보다는 아니어도 남만큼은 살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욕구를 가지면서요. 그런데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마치 마술쇼의 거울처럼 우리 모습을 왜곡시켜 착각하게 만듭니다. 네가 바라는 행복은 다른 게 아냐, 바로 무언가를 갖는 거야. 다들 착각에 빠져 살게 말입니다.

  큰 줄기의 이야기 외에 아주 작은 이야기로 혼마의 아들, 사토루가 잠깐 등장합니다. 사토루와 친구 갓짱이 귀여워하던 강아지가 있는데, 다른 또래 친구가 이 강아지를 때려 죽입니다. 사토루는 그 사실에 대해 화를 냈지만 가사도우미의 말을 듣고 화를 삭힙니다. 가사도우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한테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왜 그러는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이지요. (413쪽) 아주 짧은 대목인데요, 이 책이 그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전체적으로 꿰뚫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캬, 역시 일류 작가는 달라도 뭐가 다르단 말예요. 하지만 이렇게 안 좋은 모습만 보이던 범인도 뒤지다보니 인간적인 면도 있더이다. 그래서 혼마는 범인을 잡아 실상을 밝히겠다는 마음보다, 안다 네 마음 다 안다 그러니까 얘기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거겠지요. 범인이나 자기나, 세상이 주는 헛된 상상에서 영원히 맴도는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하여간, 간만에 만난 수작입니다. 한동안 사회파 미스터리보다 본격이나 정통을 많이 봤는데, 역시 일본 장르문학 하면 사회파 미스터리 네가 최고야 하고 엄지손가락 척 올립니다. 읽을거리뿐 아니라 생각할거리까지 함께 제공한 이 책에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너무 긴 장편이라 중간중간 솎아내야 할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지요. 영화는 원작을 따라가지 못했고 결말과 세세한 설정이 조금 다르다 하니, 책 한번 펴보시라우 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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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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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

  심각한 주제를 가진 인문서인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심리학을 다룬 책이었습니다. 내용 자체는 거진 교양수업 때 배운 수준이어서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재밌었습니다. 기억을 복기한 것 외에 제 자신을 어떻게 리프레임(re-frame)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레임이란 말 그대로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고를 규정하는 틀이지요. 사고는 곧 마음가짐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프레임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프레임이 있는 반면 너무나도 당연히 부정적인 프레임도 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프레임을 타파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게 이 책의 모토입니다. 사실 이 책의 뼈대는 20쪽 정도의 7장 「지혜로운 사람의 10가지 프레임」뿐이어서 간단히 발췌독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긴 합니다. 프레임을 바꾸기 전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위해 앞의 장들을 봤습니다. 각종 예시로 꾸며진 각 장은 프레임이 미치는 영향을 재밌는 예시들입니다. 사실 경험이 풍부하고 독서기술이 좋다면 예시들을 대충 훑으며 나도 이런 경우가 있었지, 하고 생각해도 괜찮을 듯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기에 열심히 읽어 보았습니다.

  아마 책을 읽다 보면 어, 나도 이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하며 놀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랬거든요. 특히 3장 「자기 프레임」 부분이 그랬는데요, 자기중심 편파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시에서 그린 놀이를 그대로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오로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려 노래 제목을 맞추는 놀이었어요. 민요 아리랑을 손가락으로 표현했는데, 음의 높낮이나 바이브레이션 같은 것을 완벽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쉽게 맞추지 못하지요. 이 쉬운 걸 왜 못 맞춰 이 바보야, 하고는 순서를 바꿉니다. 이젠 제가 바보가 될 차례지요. 사람은 항상 자기 중심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개떡 같이 말하면 개떡 같이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학원에서 보조선생으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전 아주아주아-주 쉽게 집합을 알려주었지만 어린 친구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더군요. 이런 멍청이들! 나는 예전에 이 정도 개념은 쉽게 알아들었다고! 하며 가슴을 쳤습니다. 기억 속의 전 어릴 때 정말 똑똑했거든요. 초3 때, 수학 문제집을 처음 접했는데 문제를 손쉽게 풀었다든가, 중1 때 처음 접한 영어 독해집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든가, 고3 때 한눈 팔지 않고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만 했다든가. 과거 열심이었던 기억만 남기고 싸그리 날려버린 왜곡된 기억. 내가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하는 현재 프레임을 디미는 순간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은 변하고 행동과 태도도 따라 변하겠지요.

  이름 프레임이라는 재밌는 장도 있습니다. 경제학적인 관점으로 눈에 보이는 돈 5만원은 가치가 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길에서 주운 공돈 5만원과 내가 힘들게 일해 번 일당 5만원은 느낌이 확 달라지죠. 돈을 함부러 쓰지 않으려면 돈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나봐요.

  우리는 절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말이죠.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겠죠. 이렇게 프레임을 던져버리지 못한다면 프레임을 바꾸는 게 차선책이 아닐까요. 지금 여기를 중시하며 과거나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모습을 가지면서 말이지요. 후회하기 전에 해 보고 말하는 태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면서 기뻐하고 이름 프레임을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고요.

  지혜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한계는 알면 알수록 넓혀갈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결국 한계는 없다는 말과 같군요. 인생을 조금 더 밝게 살고픈 사람들, 여기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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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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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


  페이스북 책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였죠. 한 회원분이 '책을 동시에 여러권 읽는다'고 하시면서 초병렬 독서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더군요. 저는 집중력이 그리 좋지 않아 책을 이것저것 갈아타면서 읽는다는 게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독서에 관한 여러 책을 읽다 보니 의외로 이 독서법에 대한 말이 많더군요. 그래서 저도 한번 이 책, 펼쳐봤습니다.

  초병렬 독서란 말그대로 병렬적인 독서입니다.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게 아니라, 전혀 상관 없는 책들을 예서제서 짬짬이 읽는 거지요. 정말 재미있는 책이 아니고서야 읽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지지요. 그 짧은 집중력을 매번 다른 책에 쏟아붓는 거라는군요. 아무련 관련 없는 지식들이 조금씩 뒤섞이면서 조금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고 한층 격이 높은 사유도 할 수 있다네요.

  그러니까, 책 산 돈이 아까워서 처음부터 끝까지 텍스트를 씹어 먹을 정도로 열심인 저와는 정 반대인 독서법이지요. 바로 전에 읽는 박경철의 <자기혁명>에서도 독서법에 대해 잠깐 말했는데요, 눈에 띄는 게 바로 간독과 발췌독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무슨 속독처럼 휙휙휙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속독과는 조금 다른 방법이지요. 간독과 발췌독은 책을 장난으로 읽나 하며, 처음엔 정말 싫어했던 독서법이었는데 한번 실행하고 나니 꽤나 유용한 방법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이 방법을 처음 실행했던 책이 아이러니하게도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였지만요.

  문학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서, 실용서인 경우에야 정독이 정말 필요하지 않은 분야의 책이란 건 인정합니다. 예시는 거의 필요 없고 저자의 주장과 책의 큰 줄기만 파악하면 되지요. (물론 그 뒤엔 실행 단계가 필요할 겁니다) 읽을 책도 많은 요즘, 숙독과 발췌독은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다른 일에
선 빨리빨리를 외치며 효율을 중시하는데 독서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다만, 이 방법은 비문학 책에나 써야 할 테고, 문학에 들어오면 조금 얘기가 달라지겠지요. 이건 제 의견일 뿐인데요, 문학에도 단어 단위로 봐야 할 책이 있고 문장, 문단 단위로 봐야 할 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그냥 제 경험이기 때문에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네요.


  이상은 책 읽기에 대한 제 생각이었고,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책을 평해보자면 사기에는 정말 아까운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정말 도움이 되지 않을 책 아니면 사지 않는다'고 했는데 적어도 이 말에는 전격적으로 위배되는 책이었죠. 우선 이 책의 주요 줄기는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고요, 책 앞 부분만 조금 봐도 초병렬 독서법이 왜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그냥 독서에 대한 저자의 잡담입니다. 독서에 관한 책에서 말한 대부분의 내용인데다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무언가'가 보이지도 않은 책이었습니다. (뭔가 보였던 책으로는 김열규의 <독서>가 있겠네요) 문학은 책 읽기에서 아예 배제하는 모습도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하여간 메시지는 단 몇 장인 이 책 자체엔 별 영양가가 없었습니다.

  어찌됐든, 초병렬 독서와 간독, 발췌독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실행해보세요. 개인에 맞는 독서법이 분명 존재하지만 나와 다르고 이상해 보이는 방법이라고 무조건 밀어내는 건 새로운 가능성을 죽여버리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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