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일요일에 떠나는 제주도 힐링 여행에 어떤 책을 가져가야할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어제는 문학, 과학, 철학, 사회, 인문... 분야를 나눠서 골랐는데, 막상 어떤 책을 주문할지 고민하니 이 고민이 무한루프에 빠진다.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어. 사놓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인터넷 서점에는 왜 이리 재밌어 보이는 책이 많은지. 이 책을 사면 뭔가 문학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지식인인 척 하려면 저 책 정도는 사야 하지 않을까. 들고다니면서 자랑하고 인스타그램에 나 이런 책 읽는 멋지고 똑똑한 사람이오, 라고 자랑해야지, 하는 허세만 가득한 독서. 이런 태도가 벌써 7년째다. 겸손이 아니라, 이건 진심이다.


책읽기 방법을 조금 바꾸면 어떨까 고민해본다. 다독이 아니라 정독으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싫어했던 이유가, 세상에는 수많은 읽기 방법이 있는데 그의 방법만이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온전한 방법이라고 설파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한권을 읽더라도 끊임없이 사색하면서 읽어라. 진짜 의미를 알기 위해 끝없이 파고들어라. 초등학교 때부터 즐기는 독서로 해온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독서법이다. 이 세상에 재미난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포기하고 책 한권에만 머무른단 말인가?


그런데 남는 게 없네. 그저 읽기만 하는 지금의 독서로는 몸과 마음과 머리에 체득되는 지식이 없다. 지금은 그저 읽어내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가끔 멋들어져보이는 글귀에 포스트잇을 붙히지만 그걸로 끝이다. 책을 덮고 표시해둔 부분을 다시 펼치면 그것끼리 아무 공통점이 없다. 그 문장들이 한데 모여 서로 상응하고 영감을 줘야 하는데,  애초에 읽는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으니 도리가 없다. 내게 책은 단순히 시간을 떼우는 도구에 불과하다. 불과했다, 가 아닌 이유는 일기를 쓰기 직전까지 손에 들었던 책마저도 위와 똑같은 생각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독을 통해서도 충분히 책이 주는 감정에 감응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 속독가들은 다들 의미가 없어진다. 허나 속독은 그들의 능력이고 무기인 것 같다. 빠르게 읽는다 해도 책이 주는 반짝이는 지점을 잘 캐치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훌륭한 능력을 지닌 것이다.

텍스트를 빠르게 소화시지 못하는 능력도 없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꾸역꾸역 뒤로 넘어가기만 바빠, 책 읽기가 과제인 마냥 마지막 장을 얼른 닿고 싶어 조바심만 내,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다. 주변 사람에게 책을 많이 읽는다, 1년에 몇 권씩 읽는다,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까지 내 독서는 아무 효용가치가 없었으니까. 독서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고 무가치한 독서를 지향하는 게 목표였는데 나름 지식의 틀을 갖춰야 소용이 있는가도 싶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에서 소개한 문사철 독서법을 읽고 다독이 무서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읽으면 배경이 되는 역사(또는 작가의 연대기나 평전), 그 시절의 철학을 같이 읽는 게 문사철 독서법의 요지다. 내가 여태까지 읽은 대부분의 책은 앞뒤로 읽은 그것과 관련이 없었다. 지금의 사회를 비판하는 사회학 서적을 읽다가 뜬금없이 25세기의 우주활극을 읽고, 19세기 프랑스로 갔다가 고대 아테네의 광장으로 향했다. 앞뒤로 전혀 맥락없는 독서를 하니 책을 아무리 읽어봐야 세상이 세상이 전혀 넓어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문사철 독서법이란 개념을 접했으니 글자를 읽기 시작한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나는 과연 진짜 읽기를 한 것인가 의심이 들었다. 이런 것이 진짜 다독이라면 나는 다독을 할 짬이 되지 않는다. 진실을 깨닫고 나니 드는 생각은 하나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천천히 깊게 읽으면 되잖아?


오늘부터는 책 읽기 속도를 조금 줄여보려 한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다. 이해하지 못하고 글씨를 훑는 읽기에서 글씨 한 자 한 자를 탐독하는 읽기로 바꿔야겠다. 300권 가까이 쌓인 책의 탑을, 헤쳐나가야 할 숙제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지낼 친구로 생각하면서.



결국 오늘의 일기도 끝은 허망하게 끝난다. 고민은 많고 자책도 많다. 그리고 그것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항상, 진리는 단순한 법이다.


그리고 결론은? 알라딘 장바구니에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담았다. 2013년 1월에 읽었으니 정확히 4년만이다. 그러고보니 공부한다고 해놓고 신나게 자기계발서를 사고, 독후감 쓰기 연습한다고 독서와 서평에 관한 책을 사고, 이제 독서 방법을 바꾼다고 그에 관한 책을 산다. 실제로 하지도 않으면서 하는 척하려고 티내는 이런 모습부터 버려야 하는데 잘 안된다. 천성이 게으름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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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의 흐름으로 썼습니다. 일기를 쓰다가 푸념을 쓰다가 대충 책 이야기로 끝이 났습니다. 내 안의 잉여력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여태껏 책을 읽고 어떤 형태로든 감상을 적어왔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발췌문으로 가득해 겉으로는 참 멋있어 보이지만 - 작가의 문장이기 때문에 정제되고 깊은 의미가 담길 수밖에 없다 -  실제로 내 생각은 거의 없거나, 아니면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읽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재작년에 한참 허세 가득찬 글쓰기에 취한 동안, 그 허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알라딘에서 몇번의 이달의 마이리뷰나 마이페이퍼로 선정해주기도 했다. 그저, 멋있어 보이는 글을 길게만 썼다. 그러면 있어 보이고, 진짜 같으니까.

똑같은 발췌문을 옮겨적더라도 단순히 멋있는 장식으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발판삼아 더 넓고 깊은 사유의 세계로 뻗어나갈 것인가. 나는 항상 전자였다. 그러면서도 나를 담은 글쓰기를 진득히 바랐다. 바라기만 했고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바라면서도 바뀌려고 노력조차 안했다는 말이냐, 하는 말에 나는, 지금도 잘나보이는데 뭐하러 칙칙하고 끈적거리는 속마음을 내비춰 못나보이는 것도 싫다, 고 답했다.

마음 안이 고통으로 범벅된 지금, 이렇게 힘든 지금이야말로 나를 바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전부터 고민이었던 단순한 감상에 그치던 독후 활동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1월부터 서평 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서평에 관한 책을 읽고서도 독후감과 서평은 별 다를 게 없고 비평을 해봐야 뭐가 바뀌겠냐는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이왕에 마음먹은 거 대차게 해보자. 끝에 쪽박을 차더라도 이때만큼은 열심히 해보는 거야. 다짐했다.

새해를 맞이해 모두들 신년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3일을 가지 못하고 무너진다. 작심삼일.

나도 다른 사람과 별 다를 건 없었다. 공들여 노력하겠다던 글쓰기 연습은, 일기를 40일 넘게 짤막하게나마 쓰고 있다지만 시간이 갈수록 양과 정성이 점점 줄어간다. 1월이 7할 정도 지난 지금, 어느 때보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독후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 줄 평도 남기지 않고 단순한 감상에 별점만 주고 땡. 심지어 서평 수업의 첫 과제는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기한을 넘겨버렸다.

아아, 이 구제불능을 어찌 할꼬. 올해부터는 새로운 내가 된다고 온라인에 그렇게 홍보해대고 실상은 밀린 책을 보며 빨리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저 ‘읽기’에만 정신이 팔렸다. 책을 다 읽었으면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런 행동 없이 그저 다음 책 다음 책, 다독에 정신이 팔린 것처럼 헬렐레 거린다. 다독도 나름이지, 남은 게 하나 없는, 무의미한 행동들. 몇 년 전에는 책을 많이 읽으면 무의식에 암묵지가 생기리라 믿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은 할 수도 없다.

독서는 독후 활동을 위한 단순한 수단일 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후 활동은 독후감 쓰기로 계속 해왔는데 심화된 과정으로서 서평을 연습하려고 했다. 하지만 독후감과 서평은 단어에서 풍기는 냄새부터 뭔가 다르다. 전자가 주관적 감상 위주라면 후자는 객관적인 비평이 중심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실질적으로 서평 쓰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찾아봤다.

그러던 중 선호하는 출판사인 ‘유유’에서 작년 12월에 막 <서평 쓰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을 보았다. 서평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 이런 책이 나오다니 참으로 행운이었다. 굿즈(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책을 잔뜩 사면서 이 책도 함께 주문했다.

제목이 서평 쓰는 법이라고 해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나 팁을 전수해주는줄 알았건만, 그런 면에서는 말짱 꽝이다. 책을 읽고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김민영, 황선애 공저의 <서평 글쓰기 특강>이 실용서적에 가깝다면 <서평 쓰는 법>은 ‘서평 쓰기’에 대한 전체적인 안내서다. 서평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목적, 전개, 요소, 방법 등 서평 자체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는 무엇을 읽느냐보다 어떻게 읽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천천히 읽기를 강조한다. 직전에 읽은 윤성근의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에서는 저자의 속독법에 대한 꼭지와는 정반대다. 그런 면에서 김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평하는 상반된 의견을 접할 수 있다. 한 권을 읽어도 깊게 읽어야 한다는 주장과, 많이 읽다보면 그 가운데서 나름의 사유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베스트셀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과도 상반된 의견이 있다. 지대넓얕은 제목 그대로 얕더라도 넓은 지식을 갖추자고 말하지만 <서평 쓰는 법>은 폭보다는 깊이의 독서를 권한다.

다만, 이 세 권의 책과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까지 모두 맥락에 의한 독서를 권한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는 문사철 독서를 통해 문학 작품이 쓰인 시대의 역사와 당시의 철학까지 공부하라고 말한다. <지대넓얕>은 수없이 넓은 지식의 세계를 몇 가닥의 맥락으로 구분해 세계를 조금은 단순히 파악하는 연습을 말한다.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맥락을 읽어내는 일종의 교양을 위한 독서와 공부에 대한 책이다. <서평 쓰는 법>도 책의 맥락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훌륭한 저작은 성실한 독자의 머릿속에 느낌표와 물음표를 남긴다.(146쪽) 이 문구 그대로 <서평 쓰는 법>에 적용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서평이란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배운 느낌표와, 그렇다면 대체 서평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물음표가 머리에 마구 맴돈다. 좋은 서평을 쓰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실용적인 팁은 부족하지만 뒷표지에 쓰인 말대로 본질부터 기술까지, 서평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양이 적어 실질적인 예시가 적지만 충분히 꺠우침을 주는 책이었다.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부분을 다시 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부분이 많다. 다시 읽어야겠다.

다음 주 제주도로 힐링 여행을 떠난다. 며칠은 책을 읽을 예정이어서 어떤 책을 가져갈까 생각했는데 <서평 쓰는 법>이 추천해준 서평집이나 몇 권 들고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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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0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고, 한 번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양손잡이님 덕분에 이 책의 주요 내용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었어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마음에 들면 구입할 생각입니다. 유유출판사를 위해서.. ㅎㅎㅎ


양손잡이 2017-01-20 12:07   좋아요 1 | URL
사실 독후감을 쓰려고 시작한 글이었는데 이상한 짬뽕이 되었네요. 책 소개는 5%도 못한 것 같습니다. 중요한 줄기는 천천히 읽기와 맥락으로 쓰기였지만요. 어제 책을 다시 읽으니 내용이 정말 좋았습니다. 계속 소장하면서 몇번이고 다시 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유 출판사 사랑해주세요. ㅎㅎㅎㅎ
 
미라클 모닝 미라클 모닝
할 엘로드 지음, 김현수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미라클 모닝, 할 엘로드, 한빛비즈, 2016

0. 허허. 이런 책을 빌릴 줄이야. 새벽 두 시가 돼야 잠에 드는 철저히 야생형 인간인 내가, 아침형 인간에 대한 책을 보다니 개과천선을 뛰어넘어 천지개벽 수준이다.

1. 저자는 스무 살에 대형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해서 걷지 못하는 수준, 아니 생명을 겨우 이어갈 정도로 큰 상해를 입었다.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선고에도 꾸준히 노력해서 재기한다. 그뒤 영업직으로 일하며 개인 최고 실적, 팀 판매 실적 1위를 달성하며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이어간다. 성공적인 삶은 2007년 세계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무너진다. 명성도 돈도 모두 잃는다. 친구에게 자신의 좋지 않은 상황을 털어놓았다가 이런 말을 듣는다.

>친구 : 운동은 하고 있니?
>나 : 아침에 침대에서도 겨우 일어나. 근데 운동을 하겠니?

3. 달리기를 시작하라는 친구의 조언에 한걸음씩 내딛는 날이 이어지면서 저자는 깨달음을 얻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때 고안한 게 ‘미라클 모닝’이다. 이름을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저자가 아침에 실행했던 간단한 일이 마치 기적같이 자신의 삶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4. 보통 아침에 느끼는 감정은 ‘귀찮음’, ‘바쁜’, ‘정신없는’, ‘게으른’, ‘늦은’ 등등이 있다. 허둥지둥대는 아침을 보내고 서둘러 집을 나서면서 머릿속은 그날 해야 할 일로 잔뜩 헝크러져 부산해진다. 아침과 하루가 망가지는 소리가 들린다.
5. <원칙있는 삶>의 저자 스티브 파브리나는 잠에서 깨어나 맞는 첫 한 시간은 하루의 방향키라고 말한다. 저자도 이에 동의하며 아침을 최대한 충만하게 보내면 하루가 차분해지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한다. 아침에 자기계발을 하면 하루 종일 쌓이는 피곤함과 시간 부족 같은 핑계를 대기도 힘들기에 낮이나 저녁의 자기계발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6.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행동으로 저자가 권하는 것은 크게 여섯 가지. 천천히 호흡하며 명상하기, 큰 소리로 스스로에게 다짐하기, 자신의 꿈을 상상하기, 운동하기, 책 읽기, 그리고 기록하기이다. 단 1분씩이라도 여섯 가지 일을 하면 아침의 단 6분만으로 하루가 바뀐다고 한다. 또한 미라클 모닝은 철저히 개인 맞춤형이기 때문에 독자가 하고 싶은 행동을 원하는 때에 하면 된다.
7. 아침형 인간을 다룬 여타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른 면모는 없는 책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찾는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기 때문이리라. 아침 6분이면 당신의 하루가 바뀌고 일주일이 바뀌고 결국 삶이 바뀐다니. 저자가 소개한 것들도 어려운 일이 없다. 알람이 울려도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만 누워 있고 싶고 적극적으로 하루를 준비하겠다는 건 말뿐이라는, 의식 저편 부정의 메시지를 지워버리자. 하루 6분만 투자해 아주 간단하고 혁명적인 여섯 개의 작은 습관을 준비해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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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큰 다짐을 하고 자기계발서를 잔뜩 사는 바람에 집에 읽을 게 넘쳤다. 갈 때마다 다섯 권씩 빌렸던 도서관 나들이였지만 저번주에는 서평 수업에 필요한 책과 꾸준히 읽는 시리즈물, 단 두 권만 손에 들고 나왔다. 불과 며칠 전에 집에 쌓인 책과 앞으로 살 책을 주로 읽겠다 했지만 알라딘에서 배달온 다섯 권 중 눈에 눈에 들어온 건 두 권밖에 없다. 게다가 연말에 다섯 권을 사기 전에 이미 강남 교보문고에서 네 권을 들고 왔다.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벌써 열 권 가까이 쌓인 셈이다. 물론, 예전에 사둔 책까지 합하면 200권이 훌쩍 넘어가지만.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서평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시리즈물은 읽기에 탄력이 떨어졌다. 즐길 책이 집에 많음에도 불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번뜩, 퇴근하고 도서관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읽을 책도 한 권 더 꺼내들었다. 폭이 좁은 크로스백이 책 세 권으로 빵빵해졌다. 그러던 중 예약도서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오늘은 운명의 날이야. 도서관에 가기로 마음을 먹자 예약도서가 오다니. 오오.


도서관에 도착해 먼저 예약도서를 빌렸다. 요새 공부에 관한 책을 읽어 머리가 조금 복잡해서 미리 생각해둔 가벼운 소설도 한 권 꺼내들었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두 시간 남짓 남았다. 그럼 짤막하게 읽을 책이나 찾아볼까- 하고 서가를 둘러본 게 실수였다.


가장 좋아하는 서가인 책, 독서에 관한 책이 잔뜩 꽂힌 곳에 서서 한참을 둘러봤다. 딱히 끌리는 책이 없어 이번에는 글쓰기를 다룬 책은 어디인지 찾았다. 줄리아 카메론의 책을 발견해 잠시 펴서 모닝 페이지에 대한 글 꼭지를 읽었다. 딱히 매혹적이지 않아 서가에 다시 꼽아두고 건너편으로 갔더니 거기는 만화 서가. 소년만화 종류는 아니고 일반서적 형태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이었다. 일상을 세 컷으로 그린 <사금일기>라는 제목이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웹툰 ‘도자기’의 호연 작가의 책이다. 반 정도 읽다가 바로 뒷서가를 보니 이번에는 사진 책이 잔뜩 있다. 이론서부터 작품집, 사진에세이까지 책 종류가 다양하다. 유명한 사진집 <윤미네집>을 한참 들여다봤다.


열 시가 10분이 채 남지 않았을 때, 네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사진에서 가운데 네 권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이젠, 함께 읽기다>는 한 달 전에 빌린 책인데 읽지 못해 다시 빌렸다. 혼자 하는 독서가 시야를 좁게 만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미라클 모닝>가 예약도서이다. 자기계발을 다짐하며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실천은 전혀 하지 않고 관련된 책만 계속 읽는다.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느낌. <반지의 제왕 2>는 이전에 읽은 1권에 이어 오랜만에 모신 책. 조승연 작가가 <반지의 제왕>을 언어학적으로 찬양해서 다시 바람이 들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드디어 손에 들어온 책이다. 매번 대출 중이어서 읽지 못했는데 오늘은 무슨 운이 틔였는지 서가에 있었다. 전자책으로도 산 책인데 역시 책은 종이책이지.


왼편 두 권은 지금 손에 든 책이다. <위대한 멈춤>은 하루에 3, 40쪽씩 읽는다. 처음 읽을 때보다 울림이 덜하지만 끝까지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편의점 인간>은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침대에 내팽긴 채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독서 기록을 보니 문학이 하나도 없어서 얇고 말랑말랑한 책을 고르다보니 이 책을 꺼내들게 되었다.


오른편 두 권은 어제 내게 온 책이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를 읽다가 느낌이 와서 샀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의 저자 윤성근 씨는 헌책방(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한다. 자신이 읽은 책만 팔기 때문에 많은 책을 빠르게 읽어야 했고 자신만의 속독법을 개발해 사용한다. 그러면서 슬로리딩을 말하는 책인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도 추천했다. 대학교 때 읽을까 고민했던 책인데 묘한 인연이다. <서평 쓰는 법>은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루고 유유 출판사의 신간이어서 샀다. 유유의 최신간 <소설의 첫 문장>은 이미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 출판사는 초기작 <열린 인문학 강의>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성장했다. 참 뿌듯(?)하다.


장 지글러의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방에 두고 나왔다. 읽고 다음 주 토요일까지 서평을 써야 한다. 첫 서평 첨삭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에는 이 악물고 읽고 써야 하는데, 읽을 책을 이렇게 마련해두고 시간이 없다고 징징대니, 큰일이다. 내일부터 당장 읽기 시작해야겠다.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을 정리하니 제대로 된 책이 없다. 나쁜 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읽자던 고전문학도, 인문학 서적도, 역사서도, 과학서도, 한 권도 없다. 시간 때우기용 소설,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다루는 책,  공부는 안하면서 뻔질나게 읽는 자기계발서, 크게 건질 것 없었던 에세이. 짧은 기간이지만 연초에 했던 다짐과 그새 멀어졌다. 앞에 수북이 쌓인 책을 보고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겨우 내린 결정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게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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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새해가 일주일이 지나갔다. 2017이라는 숫자가 꽤나 어색했는데 지금은 익숙하다. 짧게나마 매일 뭔가를 기록해서인지 하루하루를 잊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말과 이번달 초에 생각했던 책 읽기, 일기 쓰기는 꾸준히 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 물론 서너번은 그날 하지 못해 다음 날 기록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지만, 어쨌든.



여행 도중 혼자 지내면서 책 읽기를 즐겼지만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놀라운 인연이 어디선가 나타나곤 했다. 당시 나의 내면에는 타인의 접근을 쉽게 만드는 개방적인 측면과 어딘지 모르게 연약한 구석이 있었고, 이 때문에 과거 경험하지 못한 방식과 차원으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이는 믿은과 인내심을 가지고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에 나를 맡겨보는 실험이기도 했다. 서두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호기가 오면 붙잡는 그런 실험이었다.
- 위대한 멈춤 158, 159쪽. 2부 3장. 여행. 조지프 자보르스키의 책에서.

올해 겨울 휴가로 설연휴를 택했다. 4일의 연차 사용과 대체휴일까지 겹쳐 환상적인 9일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다(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길게 쉬면 다른 친구들은 해외를 다녀오던데, 이번에는 작년 추석에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설에는 자중하려고 한다.
설 연휴 앞 5일(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을 내리 쉬면 어디를 갈까 응당 고민해야 하지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리가 베베 꼬이던 시기였다. 설비 업무를 한 달 정도 하면서 이제 좀 적응한다 싶으니 바로 다음 달에 공정 근무를 하라고 하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가 극한까지 치달았다. 부서를 옮기고 설비 근무를 볼 때도 회사를 떠나고 싶었지만 12월 말은 말 그대로 죽고 싶었다. 아무 의미없이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때에 휴가를 생각하니 오히려 막막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어디 쳐박혀서 며칠 동안 마음대로 지내는 건 어떻냐고 자문했다.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지내며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잔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읽고 싶을 때 읽는다. 아무 계획 없이, 아무 일행 없이, 오롯이 나만 방에 앉아 스스로 침잠하기.
생각만 해도 좋았다. 앞으로의 시간에서 아무런 돌파구도 실마리도 찾지 못할 때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지내는 시간은 얼마나 기쁠지 상상했다. 전국의 북스테이를 찾다가 결국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종일 책에 파묻힐 수 있는 파주 지혜의숲 위의 지지향을 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정신도 조금은 말짱해졌다. 완전히 혼자 지내자고 했던 휴가도 여자친구와 다녀올 예정이다. 같이 가는 대신, 절반은 함께 절반은 혼자 지낸다고 선언했다. 처음 침잠을 선택한 것을 긍정해준 그이기에 이번에도 흔쾌히 승락했다.
조지프 자보르스키의 구절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 혼자 지내면 무슨 의미일까.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생활이 반복된다면, 아니,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 밖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 공간에 나와 책만 있다. 서로 얘기하고 놀고 때로는 윽박지르며, 그냥 있는다. 내 안으로 파고들어 다른 나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허나 밖을 걸어다니며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분명이 큰 의미이다. 구글맵에 의존하지 않고 되는대로 걷는다. 때론 길을 잃고 해매다가 멀리 걸어오는 타지인에게 물어물어 다시 아는 곳으로 돌아온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길, 모르는 광경.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상황들이 덮쳐오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여행의 맛이다. 그대로 우리 인생의 예견이기도 하다. 30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나의 시간‘이지만 당장 1분 앞만 봐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발걸음이 향하는대로 다니면서 공기와 바람과 풍경과 사람과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긴다. 나를 조금씩 깨닫고, 그렇기에 다른 이가 궁금해지고 그들에게 한발짝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시간. 멀찌감치 떨어져 타인을 바라보는 시간. 남을 보면서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더 걷고 싶다. 멋있고 예쁜 광경을 찾으려 애쓰며 주위를 둘러보며 걷지 않고, 그냥 발바닥이 땅에 닿는 그 느낌을 느끼며, 조금 더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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