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프리모 레비


  리뷰글은 아니고, 책을 읽고 생각나는 것과 생각해야 할 것들을 몇 자 적는다.


  책의 중반부는 거의 졸면서 봐서인지 기억에 남은 건 크게 없다. 아우슈비츠에서 가해자의 행동과 피해자의 아픔은 이미 다른 책들에서 많이 봐왔기에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적은 편이다. 또한 수용소 안의 사람들끼리 서로 밀쳐내고 편을 가르는 것 또한 심리학이나 사회학 서적에서 많이 다뤄온 문제이기에 그다지 새로울 건 없다. (1986년에 쓰인 책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슬슬 역사나 정치, 사회학에 관심을 갖다보니 가장 눈에 띄는 건 1장, 상처의 기억이다. 뭐, 이것도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없다. 기억을 피하기 위해 가해자는 ‘나는 위에서 시킨대로 했을 뿐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몰랐다’, 심지어는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라고 뻥을 친다. 반대로 피해자는 아픈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어 기억을 지우고 무의식 아래로 묻어버린다. 외려 피해자들은 (학살 사실을 알았으면서) 왜 미리 피하지 않았냐고 의뭉스러운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것은 기억이 변하면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줄기차게 인용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살면서 타인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머릿속 메모리는 휘발성이 강하고 보존력이 약하기에 불완전한 것들이 모이면 더욱 탁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어떤 의도’마저 섞인다면 ‘사실’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져 본모습을 잃어버린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캐논은 줄기차게 광고했다. 문자화되고 형상화된 기록은 불안정하고 말랑말랑한 기억을 끝내 이기고 그 위에 선다. 영화 ‘메멘토’는 맥락이 없는 기록이 어떤 비참한 결과를 빚는지 처절하게 그린다. 항상 메모장을 들고다니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는 행동은, 언젠가 잊혀질 기억을 끝없이 기록함으로써 조금 더 완벽에 가깝게 가려는 시도이다.


  기록이나 기억은 완전성의 차이가 있을 뿐 무언가를 보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공통점에 ‘의도적인 압력’을 가하는 순간 보존의 의미는 퇴색된다. 단순히 ‘있음’을 의미하지 않고 자신(또는 집단)의 의도를 견지하게 되며 곧 이기적인 싸움으로 변한다. 불완전한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기 마련이고 종래에는 결국 기록이 곧 기억이고 진실이 되고만다. 역사는 결국 역사가들이 쓴 승리자의 기록일 뿐이라는 씁쓸한 사실만이 한번 더 떠오른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고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편 날, 페이스북에서 한 링크를 보았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학살은 없었고(유대인종 차별은 있었되 몇천만을 이유 없이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각 라거에서의 일은 그저 노동력 확보를 위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과거에 그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사과했지만 근래 들어 고갤 치켜드는 네오나치의 주장이다.


  가까이 보면 일본의 망언도 마찬가지다. 군국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배상을 했다는 이유로 외려 군대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일본뿐 아니라 자칭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는 미국도 눈앞의 이익에만 돌아서 기억을 망각하기는 매한가지다. 위안부 할머님들도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기억을 해줄 이들이 점점 줄어드어 아우슈비츠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잊혀져가고 남들에 의해 왜곡되고 만다. 그분들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상스러운 소리를 하는 이들이 많다.


  아우슈비츠는 없었어. 위안부는 사실 돈 때문에 우리를 따라다닌 거지. 친일은 무슨, 너희가 종북이야. 광주사태(부득이하게 이렇게 쓴다)는 북괴의 소행이라니까. 이 헛소리를 듣고도 반박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논리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종전에 읽었던 <바른 마음>에서 언급했듯이 사람은 감성이 먼저고 이성이 나중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정해지고 그럴 듯한 이유를 붙인다. 논리로는 웬만해서 이 틀을 깨기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둘째는, 다소 시답잖다. 논리로 그들의 생각을 깰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무지, 이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아는 것 없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팩트’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일이고, 팩트를 기반으로 한 논리가 없다는 것을 단번에 증명해준다. 이러면 할 말이 없어진다. 무언가를 주장하는 사람이 지식과 논리가 없다면 어린애의 땡깡이나 마찬가지다. (다소 비약인가?)


  당연한 걸 가지고 왜 따지려드냐. 일일히 대응한다는 건 오히려 불씨를 지피는 일이니까 아예 무시해라. 이런 생각을 가지다가 독도는 다케시마가, 동해는 일본해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이기고 싶다면 감정적인 대처보다 우선 무엇이든 알고 대응해야 한다. 이건 대승적인 차원에서도 필요하지만 개개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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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1 - 시즌 1
민 지음, 백승훈 그림 / 네오카툰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티스토리 웹툰 '통'의 원작 소설 <통>을 읽은 후, 엄청 실망했더랬다.
대체 이 웹툰은 왜 인기가 있는 거지?
스토리도, 캐릭터도, 어느 하나 큰 매력이 없던 원작소설...
낮은 평을 주고 덮어버렸던 책이었다.
소설 자체로는 크게 재미가 없었지만 웹툰의 원안으로서는 글쎄, 한번 봐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출간되어 인터넷 상에선 유료화되어 볼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웹툰 통 단행본이 손에 들어왔다.



그것도 네 권 모두... 말이다.
이 많은 걸 한번에 주기도 힘들었을텐데 네오픽션(자음과 모음 자회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현재 티스토리 웹툰에서 시즌 2가 연재 중이다.
통의 팬이 아니었던고로 시즌1이 아닌 시즌2부터 접했는데 생각보다 그림체가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워낙 네이버 웹툰의 깔끔한 그림체만 봐서인지 몰라도, 연필로 거칠게 그려진 톤과 뭔가 연습 같아 보이는 이 그림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 그런데 그 그림체가 통의 묘미였다.
삐까뻔쩍한 그림체보다 투박하고 거친 선이 통의 매력이다.




소설로만 접했던 캐릭터가 그림으로 그려지니 이야기가 더욱 잘 들어온다.
정우는 물론이거니와, 소설에선 조금 찌질해보였던(-_-) 인범이 초절정 간지남으로 그려진다.
정현은 생각보다 덩치가 컸고, 그냥 미친 놈인줄 알았던 진우는 쌩또라이로 그려지는데 생각보다 캐릭터가 잘 그려졌다.
소설보다는 덜 잔혹하지만 웹툰은 나름대로 형상화가 good!








소설을 읽고 별거 아니겠지, 했던 웹툰 통.
간만에 한 자리에 앉아 슈슈슉 읽었던, 오랜만에 읽은 만화책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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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14년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완벽한 삶을 살아가던 삼십대 여성 린다가 위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코엘료는 일상의 권태와 사랑의 불안정성 앞에 위태로운 여성의 마음을 청진하듯 짚어내며,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의미와 사랑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린다와 그녀의 옛 애인 사이의 정사 장면이 에로틱하게 묘사되기도 하지만, 작품은 단순한 성적 스캔들을 넘어 삶의 권태와 우울 등 인간 감정의 영역을 파고든다. 여성의 복잡한 심리가 잘 드러난 소설로, 전작 <브리다>, <11분> 등과 맥을 같이한다. 

좋은 집과 멋진 두 아이에 전문직 직업까지… 겉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아가던 삼십대 여성 린다. 스위스 제네바의 유명 신문사에서 일하며 십 년째 순탄한 결혼생활을 유지해오던 그녀의 잔잔한 일상에 위기가 찾아든다. 모든 것이 변할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 불현듯 찾아온 우울증과 공허함에 죄의식마저 느끼고, 매일 감정기복에 시달리는 그녀의 삶은 타인의 눈에 비치는 것과 달리 너무도 위태롭다. 

그러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이자, 이제는 재선을 노리는 유명 정치가가 된 야코프를 취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재회한 순간 다시 열여섯 소녀로 되돌아간 기분이 되어, 취재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충동적 행동을 저지른다. 죄의식과 흥분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린다는 뜻밖의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심하는데…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민음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장편소설. 2000년, <향수>가 스페인에서 출간된 이후 14년 만의 소설이다. 첫 소설 <농담>에서 시작되어, <참을 수 없는 존재>에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그의 문학 세계는 <무의미의 축제>에서 그 정점을 이루며("쿤데라 문학의 정점." -「퍼블리셔스 위클리」) '쿤데라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네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촘촘히 엮여 진행되는 이 소설은, 새로이 에로티시즘의 상징이 된 여자의 배꼽에서부터 배꼽에서 태어나지 않아 성(性)이 없는 천사, 가볍고 의미 없이 떠도는 그 천사의 깃털, 그리고 스탈린과 스탈린의 농담, 그에서 파생된 인형극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사유를 이어 가며 인간과 인간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고은 외, 실천문학사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국가 안전 시스템뿐만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엄마저 냉혹한 자본의 권력 앞에 무참히 파괴되었음을 보여주었다. 2014년 6월 2일 문학인들은 시국 선언을 통해 정부의 자격을 묻고 권력의 폭력을 고발했다. 그리고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를 출간하였다.

강은교, 고운기, 고은, 공광규, 곽재구, 구중서, 김기택, 김사이, 김사인, 김선우, 김오, 김은경, 김주대, 김준태, 김중일, 김해자, 나희덕, 도종환, 문동만, 문인수, 박성우, 박찬세, 박철, 박형준, 백무산, 손택수, 송경동, 송찬호, 신용목, 신철규, 신현림, 안상학, 안주철, 유병록, 유순예, 유용주, 유현아, 윤석정, 이민호, 이상국, 이선식, 이시영, 이안, 이영주 등 총 69인의 시인이 참여했다.



이미지 인문학 2, 진중권, 천년의상상


섬뜩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언캐니’라는 표제 아래 파타피지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갖게 되는 세계감정을 탐구한다. 디지털 가상에는 어딘가 섬뜩한 특성이 있다. 실재도 아니고 가상도 아닌 이 유령 같은 존재가 발산하는 으스스한 느낌. 그것이 디지털 이미지 특유의 ‘푼크툼’이다. 18세기에 ‘숭고’의 감정이 그랬던 것처럼, 디지털의 세계감정을 특징짓는 미적 범주는 ‘언캐니’라 할 수 있다. 

이미지 인문학자 진중권이 말하는 ‘디지털 이미지’는 디지털 합성 이미지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비록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하더라도 디지털의 미적 전략을 따르는 회화와 사진은 모두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이다. 사진이 등장한 이후에 회화는 더 이상 과거의 회화일 수 없듯이, 디지털 이미지가 등장한 이후에 회화나 사진도 더 이상 과거의 회화나 사진일 수 없다. 뉴미디어가 자의식을 획득하면, 올드미디어는 조만간 뉴미디어의 전략을 수용하게 된다. 그 결과 아날로그 이미지들 역시 디지털 사진의 특징인 언캐니의 분위기를 갖게 된다.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강신주, 오월의봄


철학자 강신주의 본령인 장자와 노자를 본격 탐구한 철학책이다. 현재 학계에서 벗어나 대중과 만나면서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강신주를 서양철학 전공자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는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학위를 받은 동양철학 전공자였다. 그 뒤 동양철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서양 철학을 횡단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사랑과 자유의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는 노자, 장자라는 텍스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다양하게 끌어들여 노자, 장자 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각이 상당히 독특하다. 기존 동양철학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아주 딴판이며 그래서 상당히 논쟁적이다. 거침이 없이 발언하는 그의 기질이 잘 반영되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질서의 효용, 리처드 세넷, 다시봄


용도에 따라 구획된 도시, 같은 처지끼리 이웃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사회학과 교수인 리처드 세넷은 지나치게 질서를 강요하는 사회가 어떻게 어른들의 사고를 경직시키고,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는지를 보여준다. 세넷은 도시의 중산층이 비슷한 여건의 사람들과만 어울려 살면서 질서를 추구한 결과, 배타적이고 협소하며 폭력적인 행동에 쉽게 빠져든다고 주장한다. 

이는 낯선 상황과 맞닥뜨리며 성장해야 할 청소년이 모험을 기피한 결과 미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과 같다. 세넷은 다양성과 창조적인 무질서를 구성원 스스로가 통합해 나가는 생동하는 도시,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시련과 도전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진짜 어른들을 만들어내는 도시를 건설하자고 제안한다.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조형근, 김종배, 반비


2013년7월부터 9월까지 방송된 팟캐스트 ‘김종배의 사사로운 토크(사사톡)’의 ‘꼬투리 경제학’ 코너를 수정 보완해 묶은 책. 방송에서 공개된 짧은 강연과 대담에, 방송 후에 여러 애청자들의 반응을 참고해 집필한 방송 후기와 참고문헌(더 읽을 거리)를 덧붙였다. 방송의 생생하고 친근한 분위기는 살리면서도 좀더 알차게 활자화하였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케인스, 슘페터, 폴라니, 베블런, 그리고 마르셀 모스까지, 경제학자들의 삶을 살펴보고, 이들이 시대와 호흡하며 진짜로 고민했던 문제들이 무엇인지 그 시대의 배경 속에서 살펴본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학자들의 아이디어를 빌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금융위기, 임금할증률, 비정규직, 식민지 근대화론, 개신교 문제, 사회적 경제, 장기 불황, 복지국가, 창조경제, 협동조합 등등의 한국 사회와 연관된 주제들이 이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새롭게 해석된다. 저자인 조형근은 ‘경제사회학’을 전공한 사회학자로서 왜 경제가 곧 정치이자 사회인지, 왜 경제가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지를 줄곧 설득력 있게 강조한다.



극해, 임성순, 은행나무


2010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컨설턴트>로 1억 원 고료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뒤, 장편소설 <문근영은 위험해>,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를 출간해 '회사 3부작'을 완성시키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줬던 작가 임성순의 장편소설. 

누구도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전시 상황을 배경으로 태평양 위를 표류하는 포경선 유키마루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 사건과 흥미진진한 서사를 바탕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존을 갈구하며 모멸을 견디는지, 살아남은 약자가 어떻게 사악한 존재로 변하는지를 보여주며 나약한 존재로서의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신자유주의의 위기, 제라드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후마니타스


2008년 미국과 유럽의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19세기 후반 이후 발생한, 자본주의 역사의 네 번째 구조적 위기다. 이번 위기는 구조적 위기이며, 몇 달 또는 몇 년 만에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예상하기 힘들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책 『신자유주의의 위기』의 주제다.

먼저 책 전반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동역학과 이번 위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금융 및 세계화 과정을 분석한다. 미국 경제의 국제적 지위의 위기 과정의 연관 관계를 파악한다. 2부에서는 ‘제2차 금융 헤게모니’라고 저자들이 일컫는 상위 계급으로의 소득 집중에 대해서 탐구한다. 

저자들은 현대자본주의를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 저자들의 틀은 20세기 들어 나타난 소유와 관리의 분리와 그로 인한 새로운 계급, 관리자 계급의 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회학이나 경영학에 소개된 관리 자본주의론의 새로운 평가와 그에 따른 마르크스주의적 계급 이론의 수정이 핵심이다. 

새로운 금융 상품 또는 금융 도구들은 이번 위기의 진폭을 확대시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게다가 이런 과정의 세계화는 무역과 자본 이동의 확대를 야기했으며, 캐리트레이드, 조세 천국, 자산 관리와 같은 상위 계층의 국제적 차원의 고소득 추구를 가능케 했다. 그것이 세계경제를 얼마나 취약하게 하고 불안정화했는지가 핵심이다. 

이번 위기는 단순한 금융 위기로 불리기 힘들다. 이런 금융적 과정은 미국 경제에 특징적인 거시적 궤도의 구성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경제는 취약하지만 자신의 국제적 지위를 충분히 향유하면서, 신자유주의적인 상위 계층의 고소득 추구라는 형세를 뒷받침했다.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 개번 매코맥, 창비


호주국립대학 명예교수 개번 매코맥과 평화운동가 노리마쯔 사또꼬가 오끼나와 저항운동 70년사를 집대성한 저서다. 개번 매코맥은 <종속국가 일본>,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 <일본, 허울뿐인 풍요> 등을 저술한 바 있으며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사회문제를 역사적 지평에서 고찰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책은 15세기부터 번성하는 해상왕국이었던 류우뀨우왕국의 역사에서 시작해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군사점령을 겪고 일본에 '반환'되었지만 여전히 일본과 미국의 전략적 군사기지로 사용되고 있는 현재까지의 오끼나와 역사를 총정리한다.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본 현대사 교양서인 셈이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운동과도 비견하여 주목할 만한 오끼나와 기지 건설 반대운동은 지역주민의 자치와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전세계적 패권국가에 맞서 동아시아 평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미일동맹의 패권주의적 팽창과 오끼나와 저항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책이다.



괜찮아, 잘될 거야!, 마나 네예스타니, 돋을새김


UN 선정 ‘국제 언론삽화상’ 수상, 이란 혁명의 상징 시사풍자 만화가 마나 네예스타의 신작. 마나 네예스티니는 망명 생활을 하면서 인터넷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이란과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억압과 검열, 종교 갈등, 여성 인권침해, 사회 불평등 그리고 반체제 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정치범들을 옹호하는 그림을 게시해 전 세계에 그 실상을 알리고 있다.

2012년에 카프카의 《변신》을 모티브로 자신의 모습을 바퀴벌레로 등장시켜 이란에서 투옥되었을 당시의 상황을 담아낸 그래픽노블 《이란판 변신》을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이는 그림이 ‘카프카적(부조리하고 암울한)’이라며 자신을 탄압한 세력을 정면으로 풍자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에는 그간 그려온 정치풍자 삽화들 중 200컷을 선별해 이 책《괜찮아, 잘될 거야!》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의 제목 ‘괜찮아, 잘될 거야!’는 무척이나 역설적이다. 작가가 담아낸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에서 이 말은 공허한 울림으로 들릴 뿐이다. 그림에는 언론을 방패로 삼은 정부,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시인과 가수,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는 정치가, 짓밟힌 동심, 부정 선거, 핵무기 위협, 타인의 희생 위에 쌓아올린 행복 등 억압과 검열, 잃어버린 자유, 사회적 불평등, 공포심과 좌절감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이 그림들을 통해 중동의 실상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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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1997 - 상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용감한자매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줄리아나 1997

부제부터 불안했다.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란다. 띠지는 더욱 놀랄 노자다. '좀 놀아본 다섯 언니들의 온몸 뜨거워지는 고백'이란다. 작가 이름은 필명이다. '용감한자매'... 소설은 필명만큼 용감했다. 필명 뒤에 숨어 쓸 만큼 솔직했고, 낯뜨거웠다.

제목에 있는 낯선 단어인 '줄리아나'는 20년 전 유명한 클럽이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클럽죽순이였던 줄리아나 오자매가 주인공이다. 다섯 명은 모두 이대생이지만 인물은 성격이 모두 제각각이다. 순진한 국문학도 은영, 외모에다 두뇌까지 완벽한 법대생 정아, 비서학과라는 간판에 걸맞게 섹시한 진희, 얌전했던 영문학도 세화, 마지막으로 소설의 화자인 국문학도 지연까지...

이게 과거의 이야기 축이라면, 20년 후 40대가 된 그녀들이 현재를 이끌어간다. 소설가가 된 지연은 과거에 클럽에서 놀던 이야기를 <줄리아나 1997>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출간하였다.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 된 <줄리아나>로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고 폐지 쫑파팅에서 유명 남성 패션 잡지의 편집장인 수현을 만난다. 아무리 과거에 엄청나게 잘나가던 그녀였지만 현재는 40대의 주부일 뿐이다. 아내와 엄마로서 열심히 살았지만 삶의 무미건조함을 느꼈던 지연은 새로운 만남을 가지며 두근대는 시간을 가진다.

지연 외의 다른 인물들도 삶이 난항하긴 마찬가지다. 화려한 과거와는 반대로 구차한(?) 삶을 지내는 그녀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삶의 활력을 찾는다. <줄리아나>에서 불륜과 바람은 기본이고,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인 성적묘사는 살짝 눈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이전에 한참 유행하였던 <그레이의~> 시리즈가 강하게 떠오르는 책이기도 하다. 40대라는 시간을 지나서 점점 여자로서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 과거를 떠오르게 해주고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지만, 단지 그뿐이라는 것이 매우 아쉽다. 썸의 시대, 이혼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가벼워진 시대에 불륜과 썽을 가벼이 다루는 게 요즘의 트렌드라 할지라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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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라서 그런가, 7월에는 소설이 눈에 많이 띈다.
그래, 푹푹 찌는 밖에 돌아다니는 것보다 선풍기 바람 쐬면서 시원-하게 소설이나 읽는 게 낫지!
절대 내가 못 놀러가서 샘내는 게 아니다.
흥, 흥!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열린책들


근래 베스트셀러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요나스 요나손의 새 작품이다. <100세 노인>가 그저 웃기고 재밌는 소설로만 인식되는 게 꽤나 아쉬운데... 이번 소설은 과연 어떤 독법으로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빈민촌에서 시작된다. 다섯 살 때부터 분뇨통을 나르며 생계를 이어 가야 했던 소녀 놈베코. 빈민촌의 여느 주민들처럼 그녀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숫자에 대해서만큼은 천재성을 타고났다.

숫자뿐만 아니라 세상 이치에도 밝았던 놈베코는, 호색한이지만 문학애호가인 옆집 아저씨에게서 글을 배운다. 또 매일같이 라디오를 들으며 '똑똑하게' 말하는 방법도 터득한다. 아주 우연히 다이아몬드 28개를 손에 넣게 된 놈베코는 용기를 내 평생 갇혀 살던 빈민촌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낡은 재킷 안감에 바느질해 넣은 다이아몬드와 함께였다.

복잡한 사정 끝에 핵폭탄을 개발하는 비밀 연구소 '펠린다바'에 갇힌 놈베코는 명목으로는 청소부이나, 실상은 수학적 재능을 발휘해 핵폭탄 개발에 관여하게 된다. 연구소장인 엔지니어는 수학이라고는 하나도 모르지만, 오로지 아버지의 권력과 부유함으로 남아공 최고 핵 전문가가 됐다. 어느 날, 엔지니어의 실수로 핵폭탄이 주문량을 초과해 생산되는데…





내 누나, 마스마 미리, 이봄

잠깐 저기까지만,, 마스마 미리, 이봄


근래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 국내에 엄청나게 많이 소개됐다. 마스다 미리 철인가... 한때 지그문트 바우만이 한참 소개된 것처럼 붐인가...


그동안 마스다 미리는 여자들의 마음을 대변해왔다. 여자들의 고민과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함으로써 삶을 마냥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통찰하게 했다. 하지만 여자들의 일상이 언제나 일과 고민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삶에도 틈새가 있다. 그렇다면 여자들 일상의 틈새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 틈새를 바라보는 사람은 누가 좋을까? 

여자가 마음놓고 자신의 틈을 노출해도 될 것 같은 사람. 가족이다. 조건이 하나 더 필요하다. 그 틈새를 최대한 꾸밈없이 기술해줄 수 있는 사람. 가족 중 다른 성별을 가졌으며 애정도가 아버지보다 높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남동생이다. 남매는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웃음과 함께 공감하게 된다. 유머는 틈새만이 갖고 있는 강력한 매력이다. 남동생은 아버지보다 ‘여자형제’에 대한 애정도가 높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이다. 그래서 누나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들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이 만화책은 마스다 미리도 이렇게 웃길 수 있었단 말인가? 하고 깔깔거리며 웃게 하다가도, 역시 ‘마스다 미리답다’하는 시선과 만나게 된다. 적어도 남동생은, 그러니까 이 삶에서 ‘신입’인 남자는, ‘경력자 누나’인 여자를 통해 삶에 대해 무언가 알게 된다.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프란치스코 교황, 에우제니오 스칼파리, 바다출판사


새책 목록을 보니 몇 주에 이어 교황에 관련한 책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이것도 붐인가; 탈권위주의에 이어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교황이어서 그런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진다.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서 교황에게 던진 도발적인 질문에서 시작했다. 이 책은 교황의 편지로 인해 벌어진 이 모든 논쟁을 담은 책이다. 1부에는 스칼파리가 무신론자로서 교황에게 던진 질문과 교황의 답장, 두 사람의 대화가 담겨 있고, 2부에는 <라 레푸블리카> 지면 위에서 펼쳐진 세계 지성인들의 토론이 실려 있다.

<라 레푸블리카>에서는 두 사람의 논의를 더 이어 나가기 위해 지성인들의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이 토론에는 세계적인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파문당한 매튜 폭스, 종교사상 사학자 아드리아노 프로스페리 등이 참여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조를 지키기 위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교회가 당면한 쟁점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들을 풀어 가야 하는지, 종교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어야 하는지, 종교인과 비종교인,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각자의 논리를 펼쳤다.





닥터 슬립 1,2, 스티븐 킹, 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신작이다. 그냥 신작이 아니다. 무려 <샤이닝>의 후속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나 사실 <샤이닝>에서 아들인 대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할 뿐, 크게 연관은 없다고 본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잭 니콜슨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샤이닝>의 후속작으로서, 36년 만에 출간된 속편이다.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브람 스토커 상 최고 작품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다.

<샤이닝>에서 살아남은 소년 대니가 중년이 된 후를 그리는 <닥터 슬립>은 기존의 '공포'에서 탈피하여 초능력을 가진 소녀와 그녀를 죽여 영생의 기운을 받으려는 괴집단과의 쫓고 쫓기는 스릴을 담는 한편, 알코올 중독자로 인생의 끝에 섰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 재미와 감동을 함께 준다.

<시녀 이야기>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닥터 슬립>에 대해 "스티븐 킹의 여러 걸작에서 드러난 장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극찬하면서,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는 너대니얼 호손과 에드거 앨런 포에서부터 이어진 미국 호러 문학의 본질이라고 평했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 07 - 무한의 경계 / 08 - 전장의 형제들,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씨앗을뿌리는사람


보르코시건 시리즈가 드디어... 드디어 1부가 끝났다 ㅠㅠ 출판사가 망하는 바람에 몇 권 안 나오던 보르코시건 시리즈...출판사 갈아타고 꾸준히 나오는 중이다. 참 다행이다. 아직 8권의 책이 남아서... 끝까지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제2의 로버트 하인라인으로 불리는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는 비평가, 언론, 독자에게 SF 시리즈물 중 최고의 대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장르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 네뷸러상을 수상했고, 로커스상, 미서포익상, 사파이어상 등도 여러 차례 수상했다. 미국 외에도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등 21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86년 출간을 시작하여 2012년에 마무리된 이 시리즈는 총 16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일즈의 인생 시기를 기준으로 크게 2부로 나누어진다. 1부는 주인공 마일즈의 탄생 이전부터 25세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Young Miles' 시기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귀족 집안의 주인공이 엉겁결에 용병대 제독이 되어 공을 세우면서 꿈에 그리던 군인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한의 경계>와 <전장의 형제들>은 1부의 마지막 두 권으로, 앞의 여섯 권에서 펼쳐지는 마일즈의 파란만장한 여정에 이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리더로서의 능력을 갖춰나가고 관계 속에서의 갈등으로 인해 내적 성숙을 이루는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담아냄으로써 마일즈의 1차 성장기가 완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유괴, 다카기 아키미쓰, 엘릭시르


엘릭시르 미스터리 시리즈인데, 사실 이 시리즈는 표지가 구려서(-_-) 별로 관심은 없었던 시리즈이다. 헌데 알라딘 서재에 자주 오르내리는 거 보니 재밌긴 재밌나보다. 이참에 <유괴>로 입문해볼까... 생각만 해본다. 기대도서를 다 샀다가는 돈은 둘째 치고 집에 책이 넘쳐날 것 같다.


본격 미스터리의 거장 다카기 아키미쓰의 법정 추리극. 1960년 실제 일어난 유괴 사건을 집요할 정도로 취재해 그린 법정 미스터리에 본격 미스터리 요소를 적절하게 가미한 범죄 소설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건을 중립적인 시선으로 다뤄 사회파적인 색채는 물론, 논픽션 소설의 리얼리티, 본격 미스터리의 반전까지, 작가 다카기 아키미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아동 유괴 살인 사건 공판이 한창인 법정 방청석 한구석, 한 남자가 피고인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범인을 비웃으며 냉소적으로 재판의 추이를 살피는 그는 한편으로 자신이 곧 저지를 범죄 계획을 가다듬기 바쁘다. 이윽고 이 사건과 놀랄 정도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고, 예측할 수 없는 범인의 치밀함에 수사진들은 혀를 내두른다.

자신이 꾸미고 있는 범죄와 비슷한 사건의 재판을 방청하고 범인이 사건에서 저지른 실책을 교훈 삼아 가장 완벽에 가까운 범죄를 구상한다는 파격적이고 독특한 이야기이다.




구형의 황야  - 상, 하, 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북스피어에게 참 고마운 건 마쓰모토 세이초와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꾸준히 내준다는 점이다. 뭐, 그덕에 인기도 많아지고 돈도 많이 버니 독자와 출판사에 일석이조??? 그나저나 세이초 할아버지의 책이 다 출간되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겠지?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의 미스터리 소설로, 한 차례 영화화, 그리고 무려 여덟 차례나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일본의 패배를 바랐던 남자의 이야기이다. 

일본의 오래된 사찰을 둘러보는 취미가 있는 세쓰코는 돌아가신 외삼촌이 좋아했던 사찰, 나라의 도쇼다이지를 구경하러 간다. 외교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중립국에서 일했던 외삼촌 노가미 겐이치로는 현지에서 과로로 죽었다. 사찰을 둘러보며 외삼촌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던 세쓰코는 사찰의 방명록에서 외삼촌과 똑같은 글씨체의 서명을 발견한다. 

죽은 이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일까? 마치 망령에 홀린 것처럼, 세쓰코는 예전에 삼촌이 좋아했던 다른 절들도 뒤져본다. 그곳의 방명록에도 삼촌의 특이한 글씨체와 똑같은 서명이 발견된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노가미 겐이치로의 유족들, 아내 다카코와 딸 구미코는 대수롭지 않은 우연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세쓰코와 그녀의 남편 료이치, 그리고 구미코의 연인 소에다는 유족들의 주변을 떠도는 노가미 겐이치로의 존재를 느낀다. 문득 노가미가 죽었을 당시의 상황이 궁금해진 소에다는 당시 노가미와 함께 중립국에 파견되어 있었던 동료들을 수소문한다. 그러던 중 행방이 알 수 없었던 육군 무관이 어느 날, 연고도 없는 외딴 곳에서 교살당한 시체로 발견되면서 상황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데…




플로팅 시티, 수디르 벤카테시, 어크로스


로쟈님이시던가, 장하준의 신작과 함께 소개해주신 책이다. 잘은 모른다.


<괴짜 사회학>으로 세계가 주목한 사회학자, 수디르 벤카테시의 신작. 시카고 빈민가에 뛰어들어 10년간 갱단과 생활하며 연구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뉴욕의 지하경제 종사자들과 함께하며 기존의 사회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사회 현상을 목격한다. 

과거에는 계층과 지역의 경계 안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이제는 제자리를 떠나 경계를 뛰어넘으며 전에 없던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부유하고(float) 있었다. 저자는 뉴욕에서 새롭게 맞닥뜨린 변화의 비밀을 풀 열쇠를 도시 전체를 연결하는 지하경제에서 찾는다. 그리고 복잡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골목길과 빌딩 숲을 부유하며 이민자와 매춘부, 사교계 명사와 거리의 마약상들에게서 이야기를 채집한다.

저자의 연구회고록 방식으로 기술된 이 책에서 우리는 삶의 비루함과 숭고함이 공존하는 현장을, 변화에 맞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몸부림을, 부글부글 뒤끓고 있는 자본의 수도 뉴욕의 지하 세계의 현장과 그 미래의 편린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익명소설, 익명소설 작가모임, 은행나무


이름은 그 사람을 항상 같은 이미지로 판박아버린다. 그건 때때로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그 독을 피하기 위해 조앤 롤링도 필명으로 쿠쿠스 콜링을 썼을 것이다. 익명으로 글을 씀으로써 기존에 쓰지 못했던 스타일의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소설집이다. 오늘날 우리 문학의 최전방에서 맹활약 중인 젊은 작가들의 창작자로서의 고민과 열정, 패기를 엿볼 수 있기에 더욱더 출간의 의미가 크다. <익명소설>은 문학적 실험을 만류하는 문단과 출판계의 분위기 속에서 쓰고 싶은 글을 못 쓰고 있다는 작가들의 토로에서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정형화된 문장에 대한 강요, 장르적 요소에 대한 거부, 정치적 풍자를 걷어내라는 압박, 개연성에 입각한 사실주의에 대한 강박, 에로티시즘을 저급하게 취급하는 가부장적인 분위기 등 이른바 '점잖은 문학'을 요구하는 출판계와 독자의 제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욕구의 산물인 셈이다.

여느 소설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가의 얼굴 사진과 출신 학교, 등단 매체, 문학상 수상 이력 등이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다. 대신 '익명소설 작가모임'이라는 큰 이름하에 M, V, H, W, S, R, A, Q, L, Z 등 영문 이니셜이 작가의 존재를 알리고 있을 뿐이다. 모두 10명의 작가가 본명을 지우고 익명을 택하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비밀에 붙인 것은 이름뿐만이 아니다. 나이, 출신 학교, 등단 매체, 발표작, 심지어 성별까지, 작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새 옷의 태그를 떼어내듯 숨겨버렸다. 기획자들이 비밀리에 접선했기 때문에 누가 어떤 소설을 썼는지 참여 작가끼리도 서로 모른다. 그 결과,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 도발적인 내용 때문에 망설여져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하지만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장이 마련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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