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일요일

<문재인의 운명>(문재인, 북팔, 특별판 2017>을 읽었다.
읽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무현)의 서거 내용만 나오면 어찌나 눈물이 차오르는지. ‘운명이다’와 ‘운명하다’는 겨우 두 획 차이로 의미가 갈린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이렇게 엇갈리는 뜻이라니. 문재인 대통령(이하 문재인)이 같은 운명을 겪지 않게 우리가 조금 더 애정을 쏟아야 하는 지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책은 정확히는 문재인의 자서전이라 보기 힘들다. 노무현이 공저자나 마찬가지다. 물론 사람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을 만든 장본인이 노무현이니 어쩔 수 없이 당신들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 문재인은 노무현 서거 8주기에 남은 대통령 임기 기간 동안은 묘소에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다시 앞에 서겠다는 의지다. 사실 성공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미움 말고 사랑을 많이 받는 문재인이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노무현의 이야기만큼 문재인의 이야기가 더 펼쳐지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사람은 친구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고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대통령은 “계산하지 않는 우직한 정치가, 길게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길”이라고 늘 강조했다.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굴곡이 많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돌아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한가운데에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더 어렵게 자랐고 대학도 갈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나보다 훨씬 뜨거웠고, 돕는 것도 훨씬 치열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5월 29일 월요일
일주일 만에 복싱장에 들렀다. 저저번 주에 막 시작했을 때는 하루 빼고 복싱장에 들렀다. 재미를 슬슬 들이던 참이었는데 그만 오후 근무 시작…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출근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건만 게으른 내가 그걸 지킬 리가 있나.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기는커녕
2시
출근인데도 지각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퍼질러 잤다. 이전 부서에서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업무 강도가 천지차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8시간 동안 일이 휘몰아쳐 정신이 쏙 빠져 집에 오면 괜스레 인터넷과 유투브만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늦은 시간에 자는 건 당연지사.
그런 지옥 같던 오후근무주를 보내고 다시 오피스 근무. 오늘도 역시 3시간 OT를 하고 느지막이 복싱장에 도착했다. 일주일 만에 뛰는 런닝머신도, 30초도 못 버티는 줄넘기도, 제자리 뛰기를 멈추지 말라며 계속 나를 몰아치는 관장님까지, 3분 한 라운드를 끝내면 숨이 가쁘고 어깨가 아프고 종아리 아랫부분이 아파온다. 중심 발인 왼발 발바닥에 물집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덤. 원래 자세가 제대로 안 나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고 자꾸 갸우뚱하면서 혼자 멈출 때가 많다. 역시 체력이 더 중요한 것인가. 체력이 있어야 발을 움직이고 팔을 뻗지. 열심히 달리고 줄넘기를 넘어야겠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오랜만에 f(x) 노래를 들었다. f(x) 노래 중에 ‘첫 사랑니’를 가장 좋아한다. 가사가 정말 예술이다. 사랑니가 나는 과정, 나는 장소, 숨겨져서 모르다가 슬슬 머리를 내밀면서 겪는 고통. 곧게 뻗지 않고 누운 사랑니, 남들이 사랑니 뽑아서 아프다고 하지만 아직 발치의 고통을 모르는 상황, 사랑니를 뽑은 후 텅 빈 그 자리까지, 진짜 이건 아이돌 노래 가사의 혁명이라 생각한다. 어디 시에서 따온 걸까?


5월 30일 화요일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봤다.
영화는 노무현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를 비춘다. 부산시장 낙선 후 종로에서 당선되지만 정치 1번가 종로를 박차고 나와 총선은 부산에서 치렀다가 다시 낙선. 그 이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선다. 2% 지지율의 전혀 기대받지 못한 군소후보에서 김근태, 한화갑, 이인제(!!!)를 제치고 대통령 후보까지 오르는 과정을 그린다.
주로 경선에서 그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상대 후보가 그에게 어떤 비난의 화살을 뱉었는지 보여준다. 당시 다소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던 그에게 다른 후보, 특히 이인제 후보는 막말에 준하는 비난을 한다. 심지어 같은 당 후보에게 빨갱이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노무현은 굴하지 않는다. 빨갱이의 사위라는 말을 듣고 그 유명한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 를 내뱉으며 많은 환호를 받는다. 그가 상대 후보에게 일침을 가하면 그 후보는 당황한듯한 표정을 짓거나 딴청을 피운다. 물론 교묘한 편집이겠지만 나름 유우머 포인트다. 몇 장면에서는 관객이 모두 웃었다.
노무현의 힘찬 주장을 듣는 도중에 시점은 현대로 돌아온다. 그와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이광재, 유시민, 명계남, 안희정 등 반가운 얼굴이 몇 보인다. 노사모로 활동하면서 경선장에서 신나게 춤추고, 얼마 받았길래 그리 열심히 하느냐는 질문을 웃어넘기던 이들의 인터뷰도 있다. 그들은 다들 아무 힘이 안될 것 같은 위치에서 노무현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노무현은 어떤 사람인지, 그는 무엇을 했는지, 주변 사람과는 어떻게 지냈는지, 그와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말하면서 이야기가 흐른다.
중간중간 노무현의 운명을 언급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인터뷰이의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노무현이 경선에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만을 그릴 줄 알았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돼 광화문 광장을 차로 이동하면서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이, 그의 운명 후 영구차가 같은 장소인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 사이로 천천히 지나가는 것을 오버랩시켰다. 중간에 안희정이 노무현의 운명을 언급하다가 울컥하면서 인터뷰를 그만하자고 말했을 때 울음이 터졌는데, 온통 노란 물결 사이에 있는 혼자 검은색인 영구차를 보는 순간 다시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문재인이 노무현의 유서를 읽으며 마지막 문장, ‘운명이다’를 되뇔 때 정말 서글펐다. 조용히 따라 읽었는데 재밌게도 - 아니 슬프게도라고 해야 할까 - 같이 영화를 보던 몇 분이 함께 ‘운명이다’를 속삭였다. 정말 운명이다.
어쨌든 이 다큐 영화는 정치인 노무현의 비상과 인간 노무현의 슬픈 퇴장을 담았다. 우리가 농으로 던지던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시대는 <운명이다>와 <문재인의 운명>
을 읽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노무현이 정말 사람을 좋아하고 탈권위를 향하면서 존경할만한 위인인 건 분명하다. 그를 다각도로 조명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다. 지지자에게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계기가 되겠지만 혹자는 단순한 감정적 프로파간다로 해석할 경향이 있다. 그래도 나는 노무현과 노무현 출신 사람들을 지지하니까, 아무리 대연정을 말하면서 욕을 많이 먹은 안희정을 몇 번 더 생각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런데 이 대연정은… 과거 노무현이 말했던 그것과는 조금 궤가 다른 것 같다. 국정농단 때문에 한바탕 헤집어진 판국에 대연정이라니, 많이 아쉬운 스탠스다)


5월 31일 수요일
어젯밤에 배탈이 나서 연차까지 쓰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했다. 잠깐 이마트에 들러서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 오고는 초저녁부터 퍼질러 잤다. 늦은 오후에 밥 한 끼로 식사는 끝냈다. 한두 달에 이렇게 한번씩 아픈데 약인지 독인지 모르겠다. 덕분에 독서와 일기 쓰기, 필사를 향한 불씨는 사그라들고 말았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연필로 줄을 그으면서 읽으니 예상했던 대로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 손이 쉬이 가지 않는다.
쉬는 날에 벼르고 벼르던 욕실 청소를 했다. 가장 큰 공사(?)는 막힌 세면기였다. 두 달 전, 이사올 때부터 물이 잘 안 내려갔지만 그러려니 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띄게 물이 빠지지 않자 다이소에서 2천 원짜리 배관 청소기구를 하나 사 왔다. 기구를 마개 사이에 넣어 쓱싹쓱싹 했는데 이런, 기구가 안쪽 어딘가에 걸려서 안 빠지길래 힘줘서 빼려다가… 그만 손잡이가 뎅겅 부러지고 말았다.
관리실에 말하자니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 미안하고 업자를 부르자니 출장비가 걸렸다. 결국 죄송스러움과 쪽팔림을 무릅쓰고 관리실에 여쭤봤다. 결과는? 아주 쉽게 청소를 해주셨다. 내가 벌인 일 때문에 손에 더러운 거 다 묻히신 관리사무소 직원분께 정말 감사하고 죄송했다.
다음에 또 막히면 제가 해볼게요, 라는 내 말에 직원분은 이런 건 해본 사람이 잘 한다고, 굳이 손대지 말고 관리실로 연락 달라고 하셨다. 아, 내 안에 꽉 막힌 일들도 전문가가 뿅 하고 나타나 뻥 하고 손쉽게 뚫어졌으면 좋겠다. 혼자 고치려다가 더 망가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6월 1일 목요일
화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스켑틱을 필두로 같은 과학 소재의 책인 <호모 사피엔스 씨의 위험한 고민>(이필렬 외, 메디치미디어, 2015)을 읽기 시작했다. 프롤로그부터 보자면,

저자들은 생명, 평등, 자유, 인권 등 과학과 기술이 낳은 가치와 관련한 논란을 각자의 시작으로 쉽게 풀어갔다. 생물 멸종 속도가 1000배나 빨라진 제6의 대멸종 시기가 도래한 지금,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유전자가 조작된 아기가 태어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CCTV를 비롯한 각종 첨단장비로 우리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빅브라더는 누구인가? 정보권력의 탄생과 인권침해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으며,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과거 자본을 중심으로 양극화가 진행이 되었다면, 이제는 과학기술도 양극화되고 있다. 이런 양극화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로솝과 인곤지능이 널리 보급되어 인간과 공존하는 사회가 된다면 이들과 인관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 한때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에 점령당했던 한국은 미래 인류를 습격할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 최대한 대답하려는 노력이 이 책이다.
과학 발전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8인의 저자가 서술한다.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이 실렸다. 부제터 미래 과학이 답하는 8가지 윤리적 질문, 이다. 프롤로그에서 언급된 질문은 이전에는 없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고 불필요하다고 여겼던 - 아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막상 대답하기가 힘든 것들이다.
가령, 로봇에는 인권(로권이라고 해야 하나)이 있는가에 대한 답은 지금으로서는 없다, 말도 안 된다고 답하기 쉽다. 재밌는 일례가 하나 있다. 4족 보행 로봇이 있는데,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기능이 로봇을 발로 힘껏 미는 동영상이 유행한 적이 있다. 다들 유쾌하다고, 푸다닥거리면서 로봇이 넘어질 듯하면서도 중심을 잡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반응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아무리 로봇이라도 너무 심한 행동이 아니냐는 비난이 있었다고 한다. 미래에 로봇이 정말로 감정과 사고를 가진다면 자연스레 자신의 인권을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로봇에게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더 재밌는 것은, 다가오는 미래를 대비해 로봇의 인권을 진지하게 토론하는 학회가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유명한 과학자도 있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는 단순히 과학의 시야로만 보면 안 된다. 세상에서 객관적인 분야는 과학밖에 없다는 근시안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여태까지 전혀 없었고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미래 세계는 과학과 인문학이 힘을 합쳐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6월 2일 금요일
작년 말에는 출퇴근이나 이동할 때 팟캐스트를 즐겨 들었다. 올해는 사이버대 입학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매일 수업을 들으면서 움직인다. 조금 지루해져서 거의 세 달만에 팟캐스트를 들었다. 마이 페이보릿, 지대넓얕! 무려 박근혜 탄핵 전에 발행된 에피소드다.
주제는 우주 경쟁의 역사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시대적 이야기이다. 영화가 각종 차별을 주제로 흘러갔다면 이번 우주 경쟁 편은 그 바탕이 되는 우주 개척의 배경과 역사를 설명한다. 역사가 얼마나 우연적인지, 순수하다고 믿는 과학이 알고 보면 얼마나 정치적인지, 우주로켓의 이름의 의미와 그에 숨겨진 비화 등등. 오랜만에 들은 독실이(이번 팟캐스트에서는 덕깨비… 라고 자칭한다. 으으 오글거려!)의 내용인데, 가장 좋아하는 주제를 다루는 패널이기도 해서 반가웠다. ‘히든 피겨스’를 보면서 배경이 궁금했던 이라면 한번쯤 들으면 좋을 편이었다.


6월 3일 토요일
냉면 중의 냉면 평양냉면! 처음 먹었을 땐 밍숭맹숭한 맛에 이게 뭐야라는 표정을 짓지만 세 번 먹어보면 그 맛에서 헤어 나올 수 없어! 조미료 없이 심심하지만 그 맛에 먹는 깔끔한 평양냉면! 평양냉면의 멋짐을 모르는 너희들이 불쌍해…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는데, 웃기지 말라고 해. 평양냉면 권유는 좋다. 그런데 음식으로 급을 나누고 강요하는 작태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조미료 가득한 분식집 냉면을 선호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마치 책 읽기는 정말 재밌고 즐겁고 유익한데 왜 책 안 읽어요? 책도 안 읽으면서… 라는 고압적이고 훈육적인 태도와 흡사하다. 책, 까짓것 안 읽을 수도 있지.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세상에 널린 정보는 책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아, 그래도 책은 읽으면 좋겠어요. 한번을 읽어보고 싫다고 말해주세요. 그렇게 비난하는 베스트셀러라도 읽어달라고요.

자전거 타고 이동하면서 어제는 팟캐스트를, 오늘은 리디북스에서 <스켑틱>을 TTS로 들었다. 우주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독서 의지를 불태우며. 스켑틱 창간호부터 샀는데 10권이 나온 이제야 읽는다. 그것도 전자책으로, 그것도 TTS로. 종이잡지로 읽을 때는 정말 지루해서 읽다가 금세 팔았다. TTS로 들으니 예상외로 집중이 쉽다. <문재인의 운명>보다 훨씬 귀에 잘 들어온다. 물론 과학 교양 잡지라서 나 같은 무식자에게도 재밌게 들리는 거지만.
창간호의 주제는 시간여행이다. 스켑틱이 회의주의를 표방하는 잡지여서 시간여행을 회의적으로 보는 이들의 글이 다수다.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아니 듣다 보면 시간 여행은 정말 말도 안 되는구나, 하면서도 회의적 비판을 다시 비판하는 글을 보니 이것도 수긍이 간다. 근데 이 비판을 다시 비판한다. 어쩌라고… 어떻게 보면 말꼬리 잡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학을 넘어 철학의 수준까지 들어가는 느낌이다. 역시 과학이 최고다.

영화 ‘원더우먼’을 봤다. 간단한 평.
초반 데미스키라 전투신은 가히 최고. 여전사 짱짱맨이다. 중반에 전쟁터와 한 마을에서의 전투도 아주 일품이다. 진짜 박수치며 환호하고 싶었다.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런데 후반부는… 특히 마지막 전투는 흡사 ‘맨 오브 스틸‘을 보는 것 같았다. 마블의 아기자기한 전투의 합과 달리 힘의 스케일이 다른 DC의 극명한 차이랄까.
왜 여전사는 항상 헐벗고 있을까. 왜 노출이 심할수록 방어력이 올라가는 것일까… 라는 조금 불편한 생각이 들었는데 영화에 몰입할수록 노출? 의상?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실과 영화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갤 가돗이 어떤 인물이든 영화를 보는 데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영화 안에서는 갤 가돗은 없고 원더우먼이자 다이애나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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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일요일

5월은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 굳건히 다짐했건만 역시는 역시다. 되는 거, 하는 거 하나도 없이 시간은 흐른다. 지나가는 시간을 하염없이 눈으로 좇으면서도 몸은 영 앞으로 가기를 거부한다.

노트북으로 쓰던 일기를 다시 펜으로!를 외친 후 귀찮다는 이유로 또 쓰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오늘도 2주만에 쓰는 기록이다. 요새 회사 일에 치여 아무 여유가 없어 쓸 말이 없다는 이유로 책과 일기를 멀리했다. 매일 반성은 하는데 글쎄, 되는 게 아무것도 없구만.

읽는 책이라고는 가볍고 얇은 책뿐이다. 어려운 책은 거부감이 든다. 너무 두꺼워, 다 못 읽겠지, 다 읽어도 이해는 반도 못할 거야. 시작하기도 전에 변명부터 한다. 책이 많아서 고르기 힘들다는 말은 변명이다. 그냥 어렵고 힘드니까 애써 외면하려는 느낌이다.


5월 22일 월요일

필사의 기초(조경국, 유유, 2016)을 읽었다.

숭례문학당에서 ‘신영복처럼 쓰기’ 수업을 들으면서 필사에 관심이 생겼다. 처음 해보는 필사이기에 필사 선배인 저자는 어떤 방식으로 필사를 하는지 궁금했다.

사실 필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글쓰기 실력을 늘리려고 필사를 하기도 하는데, 사실 필사는 글쓰기 실력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필사를 단순히 베껴쓰기라고 생각했다. 문장을 처음부터 단어 하나하나를 미련하게 옮기는 작업. 사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필사한다고 깝쳤던 적이 있다. 그것도 손글씨가 아니라 노트북으로 말이다. 글을 읽지도 않고 그저 글씨만 옮기려니 재미도 없고 아무 쓰잘대기도 없어 보였다. 네댓 쪽 옮기다가 그만 뒀다.

내가 간과한 점은 글자를 그대로 옮기기였다. 글은 읽지도 않고 무작정 베껴쓰려고 했으니 얻는 게 있을리가 있나. “필사의 재미를 느끼려면 책 읽는 재미부터 느껴야 한다”는 말처럼 먼저 글을 읽고 이해한 뒤 필사하면서 천천히 생각하는 방식으로 글을 옮겨야 한다. 나처럼 단순한 베끼기는 의미가 거의 없다. 단어를 옮기다보면 행간과 구조를 체득하게 되고, 거기에 자신의 견해(긍정이든 부정이든)를 밝히면 생각을 넓힐 수 있다. 필사는 독서보다 저자와 조금 더 적극적인 대화를 하게 만든다.

글씨체가 예쁘면 좋겠지만… “끌씨를 꾸미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은 금물이다”. 물론 노력하면 좋지. 그러나 굳이 단정한 글씨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니까.


5월 24일 수요일

매년 이맘때쯤에 찾아오는 독서불감증이 같은 변명 아닌 변명에서 해맸다. 지루하고 부담스럽고. 3월까지는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마치 식곤증이라도 찾아오듯 무기력해졌다. 가벼운 독자인 내가 직전에 다소 두꺼운 책(사피엔스, 롤리타)을 읽었기 때문이리라. 드디어 그걸 깨뜨릴 책을 찾았다. 3년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해온 장강명의 <표백>이다.

전체 사건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현대는 완성된 사회라는 주장을 편다. 그럴듯하고 멋진 선언이나 운동은 이미 과거에서 다 해먹어서 지금은 끝났거나 뒤처리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환경운동 따위의, 과거에 비하면 작은 것들 뿐이다. 현대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무리 자신의 색을 발하고 칠해도 세상이라는 벽은 티도 나지 않고 하얀색을 유지한다. 그는 이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월드’라고 칭한다.

이런 사회에서 단순하고 소극적으로 살지 않고 세상에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대단한, 대담한 일을 하려면? 그는 자살로서 자신의 선언을 이어가려 한다. 단, 사는 게 힘들어서 하는 자살이 아니다. 진짜 선언을 위해 어떤 성공을 앞둔 자살이어야 한다. 아무런 업적도 남기지 못하고 그냥저냥 살아내는, 궁지에 몰린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자살선언은 매력적이다. 소설 속 많은 이가 그의 자살선언에 동조하고 실제로 자살하기도 한다.

이에 작가는 다른 인물의 입을 통해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자살선언은 위대해지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그저 남의 관심을 받기 위해 벌이는 어린 행동이다. 위대하고 성공한 삶도 좋지만 소소하고 작은 것에 기뻐하는 삶도 필요하지 않냐고.

작가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위대함 vs 소소함)을 제시하지만 어느쪽에도 수긍하기 힘들다. 일면을 들여다보면 둘 다 그럴듯하고 맞는 말이다. 작가는 답을 내리는 대신 묻는다. 넌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어려운 선택이다.

내가 소심하게 내놓은 답은, 살아가면서 작지만 위대한 것이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하는 것, 이다.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되지.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5월 25일 목요일

마음에 드는 필기구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대학시절부터 쓰던 세일러 에이스가 참 좋았는데 오랜만에 써보니 생각보다 세필이 아니다. 반년 정도 쓴 싸구려 에르고그립에 비해서 이다지도 두꺼울 줄이야. 에르고그립을 몇번이나 땅에 떨어뜨려 닙이 흔들리지만 않았어도 다른 만년필로 눈을 안 돌릴텐데. 게다가 망할 몰스킨 노트는 만년필을 사용하면 글씨가 조금만 두꺼워져도 뒤에 다 비쳐서 쓰기 정말 안 좋다. 연필이나 볼펜을 써야 제격인 듯하다(그래서 독서노트는 연필로 쓰는 중이다). 만년필을 쓰기에는 미도리 노트도 좋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가격이… 하아, 참 사악하구만.


5월 27일 토요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문학동네, 2015)를 읽기 시작했다.

책읽기로 잘난척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이 책을 이제야 읽은 이유는 무엇인가 자문해봤다. 전쟁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군대에서 한국전쟁을 접하면서 세계사 속 전쟁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미 많은 전쟁 관련 책이 출간되었는데 굳이 이걸 읽어야 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산 지 1년이 조금 넘어 드디어 책을 펼쳤다.

이제 막 책을 펼쳤기에 많은 내용을 알지는 못했지만, 위에서 말한 의구심과 위화감에 대해 저자의 답변이 있다. 여태껏 수많은 전쟁 이야기는 남자들이 남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여자도 전쟁에서 싸웠는데 여자들은 침묵한다. 여태까지 알려진 전쟁 이야기는 남성 중심의 폭력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전에 들었던 이야기로는, 이 폭력이 적군을 향하기도 했지만 아군의 여성을 향하기도 했고 적군의 여성만을 노리거나 여성만이 겪을 수밖에 없는 경험도 있다. 많은 이야기에 숨겨진 참혹한 진실. 저자는 인터뷰에서 여자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서술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 내가 과거로 돌아가도 성별 때문에 겪지 ‘않을’ 이야기. 사실 읽기가 조금 두렵다. 이전에 생각했던 ‘나만의 상식’이 무너질까 겁이 나서이다.

그러고보니 이 책도 조금 두껍다. 이것도 겁나네.

덧. 책에 연필로 밑줄을 치고 생각을 쓰면서 읽기 시작했다. 5년 전에 읽었던 <정치의 발견> 이후로 처음이다. 처음에는 무서웠으나 금세 편해졌다.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지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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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30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의 상식‘이 한 번 무너지면, 정신이 혼란스럽긴 해요. 정말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상대방의 상식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마음이 편해져요. 묵혀둔 낡은 상식이 깨끗이 제거된 기분이 들어요. ^^

 


글쓰기의 최전선 - 은유 (메멘토, 2015)


밀린 독후감이 많아서 기록의 의미로 짧게 쓴다.


1. 작년 말에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이다. 한참 책읽기와 글쓰기 ‘기술’에 몰두하던 때라 실질적인 글쓰기 팁을 전수하는 책인줄 알았건만 웬걸, 글쓰기를 주제로 한 에세이집이었다. 찾던 주제의 글이 아닌지라 글의 첫 장을 읽자마자 바로 덮었다. 그때는 뭔가 삘이 오지 않았다.


2주 전에 도서관을 찾았을 때, 사실 이 책은 관심목록에 없었다. 다른 책을 한참 찾다가 우연히 서가에 꽂힌 빨간 표지의 책을 봤다. 그때 느꼈지, 아, 이놈은 지금 읽어야 하는구나. 그길로 뽑아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찬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었다.


2. 은유는 필명으로 여성 작가이다. 문단에 등단해서 전문적인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심지어 대학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 소속해 공부하며 글쓰기를 가르친다. 소설이나 시보다는 실증적인 글을 주로 쓰는 듯하다. 최근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출간하며 여성으로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실제의 언어를 통해 말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수유너머R에서 진행됐던 글쓰기 수업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수업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주부, 직장인, 학생, 취업준비생, 사회단체 활동가, 성폭력 피해 여성과 서로의 삶을 이야기했다. 그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할 것을 권하는데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공감능력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확장시키는 데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관계가 부족하면 인생에서 오직 ‘내’ 이야기만 있으니, 소통도 힘들고 결국 존재의 빈곤으로 자신을 표현할 글감마저 떨어지는 셈이다.


3. 책 읽기에 대해 말하면서 카프카의 ‘도끼’를 언급한다. 김웅현이 <책은 도끼다>로 많이 퍼트린 그 구절! 거기에 발터 벤야민의 말도 덧붙인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행간에 머무르고 거주하는 것이다.’ 쉬운 책, 재밌는 책만 읽지 말고 어렵고 자신을 멍하게 만들 책을 읽으라는 다소 상투적인 이야기도 한다.


저자는 특히 문학을 강조한다. 특히 문학의 ‘쓸모-없음’을 말하면서 김현 선생의 글을 소개한다. 남은 일생 내내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답하며 김현 선생이 쓴 글이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 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나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_김현. 95쪽.


간혹 무의미한 책 읽기를 권하는 글을 본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김열규 교수의 <독서>에서 본 것 같다. 문학을 뭐하러 읽느냐, 돈도 안되고 명예도 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나 경영서처럼 독자를 바꾸고 돈을 벌어다주지 못한다. 이런 비아냥 속에서도 우리가 문학을 읽고 ‘하는’ 이유는 따로 없다. 문학은 그 자체, 그냥 문학이기 때문이다.


4. 작가가 르포르타주를 주로 쓰는 걸로 아는데, 재밌게도 시도 좋아한다고 한다. 시를 읽으면 평소에 쓰지 않는 단어를 접하고 색다른 느낌을 갖는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천석꾼  부럽지 않게 든든하다고 한다. 이 느낌에 관한 짤막한 에피소드가 있다. 김수영의 시를 읽는 수업에서, 한 학인이 시 읽기가 너무 어려워 유명한 철학자가 진행한 김수영 시 강연을 들었다고 한다.(아마 강신주일테지) 내가 보기에는 아주 기특한 일이었는데, 저자 입장에서는 아니었나보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안 읽히는’ 김수영의 시-삶이지, 김수영이ㅡ 시-삶을 이론의 형틀로 찍어낸 ‘잘 읽히는’ 지식인의 해석이 아니다. 소박하고 거칠더라도 자기 느낌과 생각으로 시를 읽어내고 해설하느라 낑낑대는 것이 공부다. 독서의 참맛이다. (학자의) 권위에 복종하지 말고 (나만의) 느낌에 집중하기. 시의 본령은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삶의 결을 무한히 펼치는 데 있다. 시가 아무리 어려워도 처음 읽을 때는 참고도서를 들춰보지 말자고 당부했다. _100,101쪽.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에서 소개한 문사철 독서법과 반대되는 입장이다. 시와 소설은 그렇게 다른가보다. 소설은 서사에 힘이 있다. 서사를 완벽히 알려면 그것이 어떻게 나왔는지 시대 흐름이나 작가가 추구하는 바를 같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 온전하게 소화된다. 그러나 시는 다른 걸까. 물론 시대상도 중요하다. 시인이 자신의 시대를 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면 시가 더 잘보인다. 허나 문학은 오독도 그 맛이다. 저자가 이런 의미로 썼다 해도 우리가 이런 의미가 아닌 저런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다. 짧은 구절에 소설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시이기에 이런 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5. 글쓰기, 문학 읽기를 대하는 태도를 다룬 2장까지는 아주 마음에 들었으나 글쓰기 기술을 조금씩 설명하는 3장부터 흥미가 떨어진다. 어라, 처음에는 글쓰기 기술을 바라고 읽었던 책인데 어느새 입장이 정반대가 됐다. 아마도 이 책에서 읽은 글이 실제의 팁이나 기술이 아니기 때문일테다. 은유라는 작가에게 기술적인 말을 듣다니, 뭔가 내 기대에 반하는 걸, 이라고 혼자 속상해하는 기분이랄까.


6. 6장 부록에 딸린 르포와 인터뷰는 읽기를 추천한다. 저자의 글이 아니라 저자와 함께 공부한 학인들의 글이다. 별 내용이 아닌 듯싶으면서도 가슴에 조그만 멍울 하나를 만든다. 인터뷰가 이렇게 울림을 주는지는 몰랐다. 나도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을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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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 걸작선 1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화재 감시원 - 코니 윌리스 (아작, 2015)


밀린 독후감이 많아서 기록의 의미로 짧게 쓰고 간다.


예전에 ‘리알토에서’를 읽다가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대로 덮었던 책이다.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고 엉망이었다. 아작 출판사가 막 책을 낼 때, 출판사의 느낌과 책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어서 책을 폈지만 그 난잡함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번에는 마음 다잡고 읽어보고자 꾹 참고 페이지를 넘겼다. 전에 재미없게 읽었던 ‘리알토에서’도 중반을 넘어가니 속도가 붙었다. 흠, 괜찮네, 하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니 그뒤부터는 일사천리. 아주 만족스런 소설집이다.


코니 윌리스는 미국 작가로 역대 최다 휴고상을 수상한(11번) 아주 화려한 이력을 가졌다. 네뷸러상, 로커스상도 여러번 받았다. 데몬 나이트 기념 그랜드 마스터 상을 받은 그랜드 마스터이기도 하다.


작가의 대표 장르가 SF라고 하는데 코니 윌리스 작품집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이 책은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SF는 아니다. 흔히 SF 하면 떠올리는 로봇, 시간여행, 우주활극, 우주비행선은 이야기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스터리, 스릴러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내부 소행’은 강령술 이야기다.


단편이기 때문에 전체를 통과하는 메세지나 요약은 넘어가고, 각 이야기마다 느낀 감상을 한두 줄로 써보면,


리알토에서 - 미시세계에서 설명되는 양자역학이 거시세계인 우리의 현실에 나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소 난잡하고 시끄럽지만 양자역학의 불가해성을 잘 표현해낸 이야기다.


나일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의 동명의 작품을 오마쥬한 작품이라고 한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해 오마쥬 어쩌구는 패스. 한 인물의 죽음에 대한 완벽한 미스터리이자 스릴러다. 주인공은 정말 죽은 것일까? 언제부터 망자의 이야기인가? 그녀는(혹은 그들은) 왜 죽었을까? 저승으로 가는 주인공은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증을 마구 일으킨다.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 - 세기말의 절망적인 상황. 어딘가에 이유모를 폭탄이 떨어지고, 가족이라는 한 공동체가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할수밖에 없는 서글픈 상황을 그린다. 인간성을 상실한 미래, 인물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화재 감시원 - 코니 윌리스에게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 책의 표제작인 동시에 코니 윌리스의 대표 중편이라고 한다. 역사를 어떤 식으로 봐야 하냐는 질문에 답하는 코니 윌리스의 멋지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단순히 몇 줄의 글에 표현된 역사 사건을 넓게 넓게 펼치면 순간은 정말 찬란하고 아름다우며, 비극적이고 희극적인 온갖 감정의 집합체다. 우리가 역사를 볼 때, 단순히 문자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당시를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코니 윌리스의 강력한 설득.


내부 소행 - 특이하게도 강령술에 대한 이야기다. 흠, 작가가 이 소설을 어떤 의도로 썼는지는 잘 모르겠으나(두 명의 회의주의자를 보여줌으로써 합리적 의심과 이성적인 판단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적어도 나는 회의주의자가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읽었다. 회의주의자의 두 번째 규칙 - ‘너무 훌륭해서 진짜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면, 진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 을 계속 되뇌게 만드는 작품.


이렇게 재밌게 읽을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봤어야 했는데. SF라는 이름에 피하지 말고 놀라운 이야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본다는 생각으로 책을 봤으면 한다. 읽는 재미에 생각하는 재미까지 여러모로 좋은 작품집이다. 미국에서 열 편의 중단편을 모아 책을 냈는데 <화재 감시원>은 이중 다섯 편을 추렸고 나머지는 <여왕마저도>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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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3-20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엔가 사서 읽다가 무슨 일에선지 다 못
읽은 책인 것 같습니다.

아마 <나일 강의 죽음>까지 읽은 듯 하네요.

리뷰 보고 나서 다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손잡이 2017-03-20 17:54   좋아요 0 | URL
제대로 된 리뷰는 아니지만, 예상 밖의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여왕마저도> 평이 더 좋던데 기대 중입니다.
 

두 달만인가, 회사 독서 동호회 모임을 가졌다. 회장님이 요새 일이 너무 바빠 동호회 일에 신경쓰기 힘들었다고 한다. 요새 회사 돌아가는 걸 보니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회사를 다니면서 동호회 활동하기도 힘든데, 동호회마저 독서가 주제니, 이해할 수밖에 없다.


몇 개월만에 신입 회원이 들어왔다. 교육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라서 교육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하셨다. 그외에는 책을 그닥 읽지 않는다. 30명 남짓한 회원 대부분이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동호회에 가입했다고 한다. 동호회 창립 멤버로서 같이 즐기고 싶지만 객관적으로 레벨 차이가 나니 모임이 쉽지 않다. 물론 나도 책을 그저 읽어내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모임 후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동호회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간단히 토의했다. 바쁜 와중에도 회장님이 몇가지 생각을 해오셨다. 아직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가볍게 만화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같이 만화 카페에 가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동호회 활동도 할겸 회원끼리 친해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거기에 각자 만화를 선택한 이유(아무런 의미 없이 진짜 그냥 이유)와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런 말 하기 정말 부끄럽지만 동호회에서 그나마 책과 친한 내가 몇 의견을 냈다. 계획을 세워서 장기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회장님은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시작하잔다. 사실 잘난척하려고 뱉은 말이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긍정적이어서 내심 놀랐다. 졸지에 동호회 컨텐츠 담당자가 될 기세다.


내 의견은 대부분 다른 독서, 작문 수업에서 따왔다. 지금 하는 토론 수업이나 관심 있는 수업을 적용해봤다.


책 선정

우리 동호회는 격주로 만난다. 한번은 자유 도서, 다른 주는 지정 도서로 활동한다. 자유 도서 주에는 평소에 읽고 싶거나 전에 읽었던 책을 가져와 얘기를 한다. 허나 지정 도서는 강제성과 귀차니즘이 발동해 참여 회원 수가 비교적 적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지정도서 선정이다. 어떤 책을 골라야 회원 두루두루를 만족시킬까. 초창기에 <총균쇠>를 골랐다가 한 달 동안 아무도 읽지 못해서 애먹었던 이력이 있어 민감한 부분이다.

베스트셀러 중 눈에 띄는 책을 고르자고 말했는데 베스트셀러를 믿기 힘들다는 의견을 들었다. 잘 고르면 된다는, 다소 두루뭉술한 의견을 내니 ‘누가 잘 고를 수 있냐’는 반론이 나왔다. 예스24 블로그나 알라딘 서재를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독서 토론처럼 일정 기간의 책을 미리 선정해보자고도 했지만 이 역시 누가, 어떻게 흐름에 맞는 책 선정을 할 것이냐는 현실적인 벽에 막혔다. 어려운 부분이다.


매일 읽기

여러 독서 커뮤니티나 교육원에서 진행하는 활동이다(거의 베껴오기급). 아무래도 회원 대부분이 책을 읽고 싶어서 왔기에 조금이라도 책을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반강제로라도 매일 읽기를 습관화하면 책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카톡방을 만들어 자정이 지나기 전까지 그날 읽었던 책과 쪽수, 가장 눈이 갔던 문장이나 단락을 소개한다. 일주일에 한번 참가자가 잘하고 있나 통계를 낸다. 단, 이 통계를 게시할지 말지는 조율해야 할 부분이다. 단순히 목표를 위해 책을 펴는 게 나쁘다는 의견도 있어 고심해볼 문제다.


독후활동

독서는 독후활동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에 반대하지만 독서만큼 독후활동도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허나 우리 동호회원들이 누군가. 나를 비롯해 아직 책을 읽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 초보자이다. 책 읽기도 어려운데 독후활동 - 대부분 독후감과 서평, 독서토론으로 알고 있는, 어렵고 머리를 쓰는 일을 해야 한다니 부담감에 목이 매어온다.

하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독서 메타북에서 항상 언급하는 한 줄 감상 쓰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책을 읽고 평점을 매긴다. 재밌다, 감동적이다, 지루하다라는 평을 하고 그런 생각이 든 부분이 어디었는지만 간단히 말하면 된다. 단, 처음에는 서로 무한 긍정만 해야겠다. 우린 아직 초보자니까 말이다. 항상 글로만 간단한 독후감을 써오던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자유연상 글쓰기

동호회 이름은 ‘독서’를 걸었지만 독서와 글쓰기는 한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는 독후감이나 서평을 떠올리고 난이도의 장벽 때문에 글쓰기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이에 나는 자유연상 글쓰기를 말했다. 동호회 모임 한 시간 동안 어떤 주제를 두고 무작정 글을 쓴다. 문법, 형식은 신경쓰지 않고 그저 마음가는대로 써내려가면 된다. 미리 써오는 글은 안 된다. 잘 쓰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자유연상 글쓰기의 목표는 잘 쓰기보다는 ‘그냥 써내려가기’이다. 자기 이야기를 쓰다가 울음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글.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차차 나아지리라 생각한다. 다 쓴 글은 그대로 집에 가져가지 말고 동호회원과 함께 낭독해보자고 했는데 이건 조금 거부감이 드나보다.


회의에서 잘난척 하려다가 말이 길어지고 어느새 동호회 에이스(나 따위가… -_-) 가 돼버린 나로서는 퍽 난감한 일이다. 그저 유유자적 재밌는 책 읽기만 해와서 더 그렇다. 같은 독서 초보로서 동호회원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까. 스마트폰, TV, 게임보다 책이 더 재밌다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글쎼, 잘 모르겠다. 좋은 말은 실컷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같이 즐기는 건 결국 실천의 영역이다. 딱딱하고 어려운 책이 아니라 재밌는 놀이 수단으로 느낄 때까지, 열심히뿐 아니라 재밌게 해나가야지. <이젠, 함께 읽기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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