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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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


  페이스북 책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였죠. 한 회원분이 '책을 동시에 여러권 읽는다'고 하시면서 초병렬 독서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더군요. 저는 집중력이 그리 좋지 않아 책을 이것저것 갈아타면서 읽는다는 게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독서에 관한 여러 책을 읽다 보니 의외로 이 독서법에 대한 말이 많더군요. 그래서 저도 한번 이 책, 펼쳐봤습니다.

  초병렬 독서란 말그대로 병렬적인 독서입니다.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는 게 아니라, 전혀 상관 없는 책들을 예서제서 짬짬이 읽는 거지요. 정말 재미있는 책이 아니고서야 읽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지지요. 그 짧은 집중력을 매번 다른 책에 쏟아붓는 거라는군요. 아무련 관련 없는 지식들이 조금씩 뒤섞이면서 조금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고 한층 격이 높은 사유도 할 수 있다네요.

  그러니까, 책 산 돈이 아까워서 처음부터 끝까지 텍스트를 씹어 먹을 정도로 열심인 저와는 정 반대인 독서법이지요. 바로 전에 읽는 박경철의 <자기혁명>에서도 독서법에 대해 잠깐 말했는데요, 눈에 띄는 게 바로 간독과 발췌독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무슨 속독처럼 휙휙휙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속독과는 조금 다른 방법이지요. 간독과 발췌독은 책을 장난으로 읽나 하며, 처음엔 정말 싫어했던 독서법이었는데 한번 실행하고 나니 꽤나 유용한 방법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이 방법을 처음 실행했던 책이 아이러니하게도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였지만요.

  문학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서, 실용서인 경우에야 정독이 정말 필요하지 않은 분야의 책이란 건 인정합니다. 예시는 거의 필요 없고 저자의 주장과 책의 큰 줄기만 파악하면 되지요. (물론 그 뒤엔 실행 단계가 필요할 겁니다) 읽을 책도 많은 요즘, 숙독과 발췌독은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다른 일에
선 빨리빨리를 외치며 효율을 중시하는데 독서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잖아요? 


  다만, 이 방법은 비문학 책에나 써야 할 테고, 문학에 들어오면 조금 얘기가 달라지겠지요. 이건 제 의견일 뿐인데요, 문학에도 단어 단위로 봐야 할 책이 있고 문장, 문단 단위로 봐야 할 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그냥 제 경험이기 때문에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네요.


  이상은 책 읽기에 대한 제 생각이었고,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라는 책을 평해보자면 사기에는 정말 아까운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정말 도움이 되지 않을 책 아니면 사지 않는다'고 했는데 적어도 이 말에는 전격적으로 위배되는 책이었죠. 우선 이 책의 주요 줄기는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고요, 책 앞 부분만 조금 봐도 초병렬 독서법이 왜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그냥 독서에 대한 저자의 잡담입니다. 독서에 관한 책에서 말한 대부분의 내용인데다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무언가'가 보이지도 않은 책이었습니다. (뭔가 보였던 책으로는 김열규의 <독서>가 있겠네요) 문학은 책 읽기에서 아예 배제하는 모습도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하여간 메시지는 단 몇 장인 이 책 자체엔 별 영양가가 없었습니다.

  어찌됐든, 초병렬 독서와 간독, 발췌독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실행해보세요. 개인에 맞는 독서법이 분명 존재하지만 나와 다르고 이상해 보이는 방법이라고 무조건 밀어내는 건 새로운 가능성을 죽여버리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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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13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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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

  저는 보통 서점이 아니라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고르곤 합니다. 추천받는 책을 사기도 하지만 때론 직접 책을 볼 때가 있지요. 소설은 절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사지 않습니다. 원하지도 않는 대중소설의 틀에 끼워맞춰지는 느낌이 들곤 하거든요. 반면  인문서나 교양서는 베스트셀러를 신뢰하곤 합니다. 이쪽 책을 고르는 눈도 그리 좋지 않거니와 수준은 엄청 낮아서 남들이 즐겨 보는 책이나 봐야 겨우 이해가 가는 정도니까요.

  그래서 베스트셀러 1위에 줄기차게 뿌리박혀 있던 이 책을 골랐습니다. 베스트셀러 교양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로 처음이네요. 개인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는 초심자인 저에게 어려웠지만 그쪽 분야를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한 책으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요 책도 꽤나 기대했습니다. 협상에 관한 책이라는, 기대와는 다소 다른 분야의 책이었지만 조금의 망설임 없이 구입했습니다. 중고책으로요.

  그러니까, 중고로 산 게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건 왜일까요. 요새 하버드나 와튼 같은 미국의 유수 대학 강의를 모아 책으로 많이 발간하더군요. 거진 대박이지만 때론 무지한 대중들에게 팔아먹겠다 나에게 돈을 달라 호갱님들이여- 하는 책도 있단 말이죠. 아쉽게도 이 책은 후자에 약간 치우친 놈이라고 느꼈습니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협상주제에 대한 배경지식도, 긴박한 상황도 아니다. 결국 사람이다. 이런 짤막한 한 줄을 말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소비했습니다. 아아, 삼림의 종이여, 불타올라라. 이런 책의 대부분은 메시지를 강조하기 때문에 책은 예시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 보는 독서가 필요하지요. 출판사도 그걸 알았는지 책 제일 뒤에 요약본을 넣었습니다. 물론 협상이란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요약본에 나온 내용으로만은 제대로 된 협상을 펼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요약본 제목인 ESSENCE처럼, 필요한 내용은 다 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베스트셀러 목록에 속은 느낌, 와튼의 전설적 명강의란 광고에 속은 느낌.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책 가득히 생각할 화두리도 던져줬으면 말을 안해요. 어휴. 요약본을 보시되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본문을 보시길 바랄게요. 사실 이런 기술을 키우기 위해서는 실패도 중요하기에 본문에 있는 실패담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될 겁니다' 입니다. 며칠 전에 면세점에서 "전에 예외는 없었습니까?" 스킬을 발동했다가 정신병자 보듯이 절 쳐다본 아주머니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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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시대의 지성, 청춘의 멘토 박경철의 독설충고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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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안철수와 더불어 20대의 새로운 멘토로 급부상한 박경철의 책입니다.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 주식 관련 글을 몇 편 쓰시길래 그쪽으로나 좀 명석하신 줄 알았는데 엄청난 독서광이시기도 하더군요. 이 책은 <자기혁명>이라는 자기계발서 비스무리한 제목을 달았지만 다른 책들과 확연히 다르더군요.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책이 몇 권 있는데 이 책도 그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86쪽)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내용에 고취되면서 박경철이란 사람에 존경심 비스무리한 것까지 품게 되더군요. 단순히 경제학을 공부한 의사 수준에서 벗어나 그 많은 독서경력이라니. 수많은 철학 인문학적 사유를 펼치고 장황하게 말을 건냅니다. 강연과 대담에서 했던 말들을 모아서 편집한 책이라 내용이 약간 이리저리 튀어다니긴 하지만,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통찰에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문장들을 쌓다보면 단 한 문장으로도 수많은 생각과 의문을 품습니다. 일기도 1천 자를 겨우 쓰는 저에게 '가치관이란 무엇인가'라는 저 질문은 무려 3천 자가 넘는 잡문을 만들게 합니다. 아무리 앞뒤 논리가 하나도 맞지 않더라도, 모두 어디서 들어본 문장 같더라도 말예요.

  "당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93쪽)


  이런 간단한 문장에도 가슴 깊숙히 아려오는 패배감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난 그동안 저리도 어려운 질문을 너무 쉽게 넘긴 것은 아닌가, 인생을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고는 남들과 다르다는 헛된 생각에 너무 자만한 건 아닌가, 깊은 후회가 들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우리 20대, 그러기에 자만심과 자신감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게 정말 중요한 이 시기의 사람들에게, 박경철은 자신의 성공담을 들려주진 않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후회하고 실패했던 것을 말하면서 저에게 너무나 큰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래요, 질문이요. 답이나 교훈이 아닌, 죽을 때까지 고심해야 할 질문. 그래서 참 뜻깊었던 책입니다.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은 공익재단을 만들고 사회사업을 하고 문화사업을 지원하며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사회적 기여가 없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이유는 그것이 sympathy이기 때문이다. 모 방송사의 사장과 아나운서, PD와 기자가 달동네에서 연탄배달 봉사를 하며 얼굴이 온통 시커매졌지만, 그 장면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sympathy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면서 단식까지 불사하지만, 그것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 역시 sympathy이기 때문이다. (empahty여야 한다) (347, 348쪽)


  책 제목처럼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고 발전시키려 한다면 그저 그런 책들과 다를 바 없겠지요.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생각하자고 합니다. 덕분에 정의론이라든가 자유시장주의 비판 등 다양한 주제를 풀어나가면서 폭넓은 사고를 제시합니다. 독서가답게 참 여러 책을 말하는데요, 다양한 책 읽기를 지향하는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된 다른 책들을 찾아볼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잊고 있엇던 <프레임>이라든가 존 롤스의 <정의론> 같은 책들이요. 이외에도 전혀 관심이 없던 책들도 마구 읽고 싶어지게 한, 마술 같은 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많은 질문에 성실히, 또 야물차게 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렵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 쉽게 쓸 수 없지만 제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을 때까지 치열하게 사고하고 노력하겠습니다. (200쪽) 방황하는 그대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오 지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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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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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기욤 뮈소를 처음 만난 곳은 군대입니다. 군대. 예압 군대. 매번 군대를 말할 때마다 슬프긴 합니다만, 거기 들어가 있으면 매일 하는 일이 똑같기 때문에 창의성이 사라집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되면 사고도, 보는 책도 참 단순해집니다. 복잡한 책은 뒤로 하고 다소 단순하고 말초적인 감정을 다룬 책이 정말 재밌어지지요. 군인이 아니었다면 라이트노벨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연애소설도 그랬을 거고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고 거기서 포근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모든 이야기의 원천 사랑. 기욤 뮈소의 책은 거의- 아니 모두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다소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판타지성이 짙은 내용이지요. 시간을 뛰어넘는다거나 공간을 제멋대로 휘저어버리거나. 갑부아들과 결혼하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 하지만 사람은 항상 현실에 만족하지 않기에 기욤 뮈소가 그리도 인기가 많나 봅니다. 물론 소재뿐 아니라 서사나 장면 전환, 이야기 구성도 인기에 한몫 했지요.

  기욤 뮈소의 책은 전까지 4권 봤습니다. 이번이 5번째 보는 책이네요. 하지만 보고 싶어서 본 책은 아닙니다. 만약 연수원에 쳐박혀 있지 않고 집에 있었다면 절대 보지 않았을 책이지요. 아쉽게도 전 기욤 뮈소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매번 사랑 사랑 사랑타령이고 전개나 구성이 거의 뻔하거든요. 상상력이나 흐름은 흥미롭고 재밌으나 뭔가 전체적인 스타일이 비슷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지루해진달까요?

  하여튼, 이 <종이여자>는 기대이하였습니다. 책을 펴자마자 사랑을 잃고 폐인이 돼가는 톰이 그려지는데 어우, 지루해서 정말 몇번이고 책을 덮고 싶었다니까요. 처음부터 독자를 휘어잡는 게 전보다 확 줄어든 모습입니다. 그나마 책에서 나온 여자, 빌리가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가 그나마 자리를 잡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약빨이 얼마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더, 더 강한 흥분제가 필요해! 그래서 작가는 무던히도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미 내 역치는 커지고 커져 산을 넘고 노스페이스를 입어버렸는 걸 어떡해. 파워보온모드.

  톰의 정신상태를 고치겠다는 빌리와의, 좌충우돌 여행기도 목적이 불분명해 영 재밌지 않았어요. 그나마 중간에 가장 큰 갈등요소인 빌리의 어이쿠 아파야 사건이 진행을 좀 재밌게 하려나 싶으면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잔뜩 끌어들여 다시 시궁창 속으로 빠뜨립니다. 이 책을 펼치고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는 친구가 있었지만 이건 확실히 내 취향이 아니야. 그래도 "끝까지 읽으면 뭔가 나올 거야"라는 친구의 말에 끝까지 읽긴 했습니다만, 150쪽이 남았는데 이야기 진행이 이 정도라면 분명 엔딩은 이렇게 저렇게 되겠지 했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했고 작가와 친구에게 실망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봐,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작가가 가지고 있던 강점이던 이야기의 힘이 확 줄었고, 긴장감을 주려고 여러 에피소드를 여기저기 배치했지만 뭐 어쩌라고 식이 돼버렸고, 그렇다고 심리묘사가 뛰어난 것도 아닌, 여튼 그저그런 대중소설의 틀에도 못 끼는 책이 됐습니다. 초두효과 때문에 뒤에서도 영 재미를 못 느낀 건가. 물론 나보고 이런 책을 쓰라면 못 쓰겠지만, 흠흠, 그렇다 이겁니다,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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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송곳니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노나미 아사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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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115회 나오키 상 수상작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아쿠타카와 상과 함께 문학상의 양대산맥이라는군요. (정확히는 모르고 그냥 인터넷 서핑하다가 줏어들은 이야그입니다) 그런데 어떤 상 수상작이라고 모든 독자들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문학상 중 이상 문학상을 가장 집중적으로 보는데 요새 이 상도 영 탐탁치 않더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놈도,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이거지요. 대충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요새 개봉한 영화 '하울링'의 원작 소설입니다. 이미 하울링에 대해 몇번이나 들었고 책 뒷표지에서도 범인은 바로 잿빛 야수야! 라고 말했기 때문에 누가, 아니 무엇이 살인을 했는지 명백한 상황입니다. 좌절. 처음에 범인과 동기, 방식이 나오고 그걸 어떻게 풀어나가는가 보여주는 소설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전통적인 수사물의 형식을 띄고 있는데 누가 사람을 죽인지 알다니. 다시 좌절. 그래도 늑대개는 동물이니까 누군가 뒤에서 조종하겠지요? 그 사람을 찾는 게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겠군요. 하지만… 네, 그러합니다.

  3주 동안 연수원에서 열심히 교육을 받는 바람에 이 작은 책을 3주 동안 끊어 봤습니다. 덕분에 점심시간 10분 읽고 휴식을 위해 잠들고, 저녁시간 10분 읽고 다시 잠들고, 이런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자연히 머릿속에 들어오는 이야기 흐름은 엉망이 되고 말았지요. 이렇게 중간중간 읽더라도 읽는 맛이 있으니까, 그 긴 시간 동안 짬짬이 읽었겠죠. 90년대 작품이라 문체가 조금 옛날틱했지만 묘사도 좋았고 흐름도 괜찮았습니다. 가장 묘미는 다카코와 질풍의 달리기 시합.

  느낀 가장 큰 단점은 구성이었습니다. 책의 반에서 3/5 정도 지나면 이야기의 대략적인 윤곽이 잡히게 됩니다. 범인이 누군지, 범인은 왜 질풍을 이용해 살인을 저질렀는지 말이죠. 순간적으로 추리에서 삐끗하고 벗어나는 순간.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다키자와와 다카코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도 사실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물론 두 캐릭터의 매력, 넘칩니다. 다만 중간이 이상해서 그렇지.

  띠지에서 유하 감독은 말하지요. 이 시대를 살고 잇는 가족에 대한 의미와 그들의 고독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 그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인 것 같습니다. 책을 보는 눈이 낮은 저로서는 무언가를 딱히 깨달은 점이 없었거든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이용해먹은 놈이나, 순수하고 늠름한 늑대개 질풍을 이용해 복수하려는 놈이나, 결국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인갑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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