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을 쓰려다가 잡담로 선회


2015-058.


  온갖 문구류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단순한 역사의 나열임에도 한참 핫했던 이유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러 문구도 좋아하기 때문이렸다. 적어도 난 그렇다. 책을 읽다가 괜찮은 구절이 나오면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고, 간단한 소감은 컴퓨터보다 노트에 볼펜으로 적는다. 때로는 어떤 필기도구가 맘에 드나 바꿔가며 시험한 적도 있다. 심지어 잉크 색이 마음에 안 들어 엊그제 채운 잉크를 싹 비우고 다른 색의 잉크를 넣기도 했다.


  미국의 문구 덕후가 이 쓴 책은, 사실 감상을 쓸 것이 없다. 나는 전문 서평인이 아니니까 책이 주는 중심 메시지를 잘 못 읽어낸다. 이런 류의 책은 감상이 사변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런고로 형식이고 뭐고 내 이야기나 주구장창 하면 되지 뭐.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난 순간 독자의 것이고, 책을 읽은 이들은 자신만의 책을 기억한다. 부제도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니까, 내가 사랑하는 문구에 대해 털어놓으면 된다.


  가장 먼저 접한, 글씨를 쓰는 도구는 아무래도 연필이 아닐까 싶다. 크레파스나 색연필은 글씨를 쓴다기보다는 그리기에 바빴으니까, 적어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게다가 난 그림 그리기를 싫어한다.


  한 자루에 백 원. 싸디 싼 필기구의 기초. 솔직히 고백하자. 한뼘 정도 되는 연필 한자루를 끝까지 써본 적이 거의 없다. 부모님 세대에는 없어서 못 쓰던 연필을 계속 깎아서 쓰다 나중엔 볼펜 깍지에 꽂아서 썼다고 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썼지만, 연필 아까운줄 모르고 한 손에 안 들어온다 싶으면 버리고 새 연필을 꺼냈다. 아니, 사실은 다 쓰기도 전에 잃어버린 적이 훨씬 많을 것이다.


  작년 1월에, 올해에는 열심히 일기와 독서 기록을 쓰자며 필기구를 골랐다. 기존에 즐겨 쓰던 만년필과 볼펜이 있었지만 뭔가 다짐을 굳게 먹고 싶었다. 그러면서 멋까지 챙긴다면 금상첨화. 허세가 가득 차 세계에서 유명한 주황색 연필, 파버카스텔 보난자 연필 한 더즌을 샀다. 당시 한 자루에 오백 원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 원 가량 돈을 들여 산 연필은... 아직 책상에 고이 모셔두었다. 한 자루만 절반 정도 사용했는데, 이만큼 사용한 것도 용하단 생각이 든다.


이제 한 자루를 반 정도 썼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쓸 때 가장 편한 건 연필이다. 스치는대로 휙휙 적히는 볼펜도, 특유의 필기감이 느껴지는 만년필도 좋지만, 역시 연필만큼 마음 가는대로 글을 쓰게 해주는 건 없다. 연필심 특유의 종이에 걸리는 느낌이 글 쓰는 중간 중간 잠시 생각에 틈을 준다. 연필과 같은 허세의 느낌으로 스테들러 연필깎이도 샀는데, 어느정도 쓰고 뭉뚝해진 연필을 깎을 때마다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벼...변태란 말은 아니고 줄어든 연필만큼 종이에 생각의 흔적을 남겼다는 게 눈에 보이기 떄문이다.(이게 또 잉크 양이 줄어드는 거랑 다르게 느껴진다)


이렇게 깜찍한 물건도 있더랬다. 열필깍지라고 해서 급하게 샀는데... 속았다. 2년간 오레오만 썼는데 잋마에 좀 바꿔볼까.


진짜 허세의 상징, 스테들러 연필깎이


  연필 얘기를 했으니 곁다리로 샤프도 살짝 말해본다. 사실 샤프는 뭐라 할 말이 없다. 학창 시절에는 굴러다니는 아무 샤프나 썼기 때문이다. 학생 샤프의 가장 기본인 검정색 샤프(브랜드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가격도 싸서 웬만하면 바꿀 일이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까지 비슷한 종류를 썼으니 말 다했다.


  샤프를 바꾼 건 딱 한번이다. 막 전역을 하고서 막 허세를 부리기 시작하면서. 역시 필기는 펜보다 샤프지! 하며 일본제 샤프를 샀다. 여태껏 쓰던 샤프는 심이 0.5mm였는데, 이놈은 0.7이었다. 한참 필기구를 다루는 블로그를 들락거렸는데, 거기서 소개한 굵은 샤프심은 되게 달라보이고 멋있어보였...다기보다 그냥 허세를 채우기 위한 도구였 듯싶다. 오래 쓰고자 샤프심도 세 통이나 샀다. 겉에 가격이 200이라고 써 있길래 보통 샤프심과 다르진 않네, 했지만 단위가 원이 아니라 엔이었다. 샤프심 세 통을 7천 원 넘게 주고 속은 듯한 느낌을 받으며 문구점을 나왔다. 물론 샤프와 샤프심은 1년이 채 가지 않아 잃어버렸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새로 관심을 둔 필기구는 만년필이었다. 모나미펜 같은 잉크펜이나 부드럽게 써지는 젤펜을 쓰는 건 뭔가 대학생답지 않아 보였다. 흰 종이에 사각거림과 함께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잉크- 그렇다. 이 역시 허세였다. 허나 얇은 펜만을 써오던 나에게 두꺼운 닙을 가진 만년필들은 불편했다. 결국 세필로 유명한 일본의 세일러 에이스를 샀다. 사고서 한동안은 신나게 썼다. 일기나 생각없이 쓰는 글에 사용하기 딱 좋았다. 가끔 닙 방향이 잘못돼 글이 멈추면 생각할 여유가 생겨 좋았다. 그것도 잠시뿐, 대학생이 되어서 오히려 많아진 필기량에 만년필은 조금 쓰기 어려웠다. 결국 고등학생 때와 같이 하이테크를 썼다.


  그렇게 잊혀졌던 에이스를, 남자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 있는 시간이자 가장 잉여였던 기간인 군인 시절에 다시 손에 잡았다. 입대 전에는 사나흘 간격으로 기록을 남겼는데 입대 후에는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별 의미없는 일도 쓰고, 책을 읽고 간단한 감상도 끄적였다.(그때부터였을까요, 의미없고 허세넘치는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게) 부모님이 넣어주신 택배에 고이 담겨온 에이스를 1년 가까이 잘 썼건만, 상병 휴가를 나가서 망가뜨리고 말았다. 잉크가 잘 나오지 않아 만년필을 털다가 닙이 책상에 부딪혔다. 닙 앞쪽은 독수리 부리처럼 아래로 휘어버렸다.


  남은 군생활은 모나미와 함께 했고, 전역 후에는 세필이 아닌 두꺼운 만년필을 써보고자 싸구려 파카 벡터를 샀다. 두꺼운 닙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에이스로 돌아왔다. 이번엔 에이스를 잃어버리고,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라미 사파리를 들였다. 사파리도 벡터만큼 두꺼워 적응하지 못했지만 투박한 벡터보다 훨씬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이라 그럭저럭 쓸 만했다. 그럭저럭 1년을 버티다가 결국 다시 세필로 돌아왔다. 만년필의 맛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런 것에 둔감할 게 뻔하기 때문에 싸고 가성비 좋은 입문용으로 버티기로 했다. 파일롯뜨 에르고그립. 투명한 색이어서 조금 지저분해 보이지만 막 쓰기에는 정말 좋은 놈이다. 그러고보니 여태까지 쓴 만년필들은 5만원이 넘지 않는다. 정말 좋은 만년필을 시필이라도 해보고 싶다. 워터맨에서 죽이는 게 하나 나왔다고 하던데, 검색해보니 70만원이다. 만년필에 이만큼을 낼 용기는 없다.


  에르고그립을 아무리 막 쓴다지만 불편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게 볼펜이다. 학창시절에는 좀 비싸더라도 하이테크를 썼다.(하이테크인지 하이텤-씨인지 아직도 알 길이 없다) 당시에는 하이테크만큼 가는 심도 없었거니와 한 자루에 2천 원의 가격은, 비싼 펜을 쓰면 공부를 더 잘할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주었다. 연필과 마찬가지로 하이테크도 끝까지 쓰지 못했다. 연필은 뒤에 볼펜 깍지라도 씌워 닳도록 썼는데 하이테크는 결코 그러지 못했다. 첫째는 잉크가 꽤나 많아서였고, 둘째는 심이 워낙 얇아 살짝 떨어뜨리기만 해도 고장나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좋아하며 새 펜을 샀다.


대학생 때는 예쁜고 보기 좋은 필기보다 빠르면서도 정확한 필기가 필요했다. 이런 필기에는 젤펜보다 잉크펜이 어울리리란 판단에 괜찮은 펜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녔다. 그렇게 발견한 놈이 BIC의 주황색 볼펜이다. 잉크펜의 대명사는 모나미다. 모나미는 싸고 편하지만 잉크똥이 어마어마하게 생겨 노트필기를 망치는 때가 더러 있다. 그에 반해 BIC 볼펜은 똥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필기감은 모나미보다 좋고 잉크 흐름도 나쁘지 않다. BIC 볼펜은 한번 살 때마다 세 자루씩 사왔고 가격도 싸 잃어버려도 부담이 적었다. 덕분에 그 많던 주황색 볼펜이 필통에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한동안 만년필을 쓰다 색다른 볼펜이 눈에 들어왔다. 알라딘에서 문학동네 이벤트를 열었는데 문학동세 세계문학을 사면서 추가금을 내면 헤밍웨이 글씨가 프린트된 모나미 153 NEO를 주었다. 이벤트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다 볼펜이라니! 모나미에서 이런 볼펜을 발매한지도 몰랐다. 볼펜에 혹해 분명 사놓고 책장에 계속 꽂아둘 책 하나를 골랐다. 펜은 묵직하고 모양도 마음에 들었다. 젤펜에 가까울 정도로 매끈한 필기감에 깜짝 놀랐지만 곧 노트 전체에 퍼진 악성종양 같은 볼펜 똥에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실망했다. 결국 장식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좋다던 파카 조터도 함께 들였으나 기대보다 필기감이 좋지 않아 잘 쓰지 않는다.


넌 나에게 똥을 줬어


알라딘 이벤트는 정말 매력적이어서 쓰잘데기 없는 물건도 사게 만든다. 위는 문학동네 필립 로스 펜홀더.



  양이 적지만 필기구를 이만큼 썼으니 예의상 노트를 쓸 때가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트는 대학교 들어와서 쓴 첫 일기장이다. 대학 입학부터 군입대 전까지 천천히 쓰던 노트다. 커버가 잘 휘어지는 플라스틱이었고, 종이 질도 좋아 어떤 필기구로 쓰나 만족스러웠다. 만년필 잉크를 잘 받지 못하는 종이가 많은데 이 노트는 쓰는대로 쪽쪽 잘 받아먹었다. 군 시절에 두번째 노트로 하드커버를 선택했으나 딱딱한 촉감에 머리가 굳고 부담감이 밀려와서 실패. 그뒤로 서너권의 노트를 사봤지만 허사였다.


  좋은 노트를 알아보던 중 허세 부리기의 끝판왕, 몰스킨을 알게 되었다. 몰스킨이 허세라는 말이 아니다. 이 노트를 잘 쓰는 사람은 일정 관리, 글쓰기, 그림 그리기 같은 여러 일을 잘 한다. 분명 몰스킨이 아니라 싸구려 노트로도 잘 해낼 것이다. 나는 몰스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으니 결국 허세에 취해 산 것이 된다. 첫 몰스킨은 대학교 졸업반 때 산 소프트커버 포켓 사이즈 데일리다. 학교생활을 하며 매일 해야 할 과제를 적었다. 첫 몰스킨은 그나마 잘 사용했지만 두번째 구입은 거기에 더 허세를 더해 하드커버 라지사이즈 룰드를 산다. 일기장 목적으로 샀는데 결국 3개월을 못 채우고 때려치웠다. 하드커버란 하찮은 이유로.


  지금은 소프트커버 라지사이즈 플레인을 쓴다. 줄이 없는 백지인데 생각없이 쓰는데는 빈 종이도 괜찮다. 허나 다음에 살 땐 반드시 하드커버를 살 것이다. 몰스킨이 아닌 일반 스프링노트도 괜찮을 것 같다. 글씨를 못 쓰기 때문이다. 가운데가 찝힌 노트에 글을 쓰면 아무래도 글씨 쓰기가 불편하다. 그리고 사실, 몰스킨 종이질도 그닥 좋은 것 같진 않다. 파카 퀑크 잉크를 사용하는데 상당히 연함에도 종이 뒤에 너무 비치는 느낌이다.


지금 가진 몰스킨 노트. 좌측부터 독서기록장, 안 쓰는 하드커버, 소프트커버



  너무 연관성 없이 소재가 바뀌는데, 그런 건 차치하고 마지막은 포스트잇이다. 공부를 잘하던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포스트잇을 활용했는데 나는 대학을 마칠 때까지 그러지 않았다. 중요한 내용은 미리 요약본을 만드는 습관이 있어서 페이지를 골라 책을 펼 일이 많지 않았다. 포스트잇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부터다. 책을 읽고 독후감에 그럴듯한 문구는 남기고픈데 책을 접거나 종이에 낙서하기는 마음이 편치 않아 포스트잇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노랑 파랑 빨강 등의 보통의 포스트잇이었는데, 요즘엔 끝에만 색이 들어간 투명 포스트잇(포스트잇 플래그)을 쓴다. 이걸 살 때도 문제가 있었다. 2년 전에 문구점에서 5색 플래그 10세트 든 두툼한 플래그 통을 발견했다. 포스트잇이 얼마나 하겠어, 하고 계산대에 가져갔다가 8만원이라는 말에 기겁했다. 결국엔 이걸 다 쓸 거니까, 하며 사왔는데 이제 두 세트를 썼다. (사실 한 세트는 쓰다가 잃어버림) 한 10년은 쓸 기세다.



재앙의 시작



  문구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손글씨를 쓰는 건 특별한 일이다. 사랑하고 고마운 이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손편지를 쓰거나, 힐링을 한다고 좋은 글귀를 필사한다. 간단한 메모는 이미 스마트폰이 가져갔다. 자판을 두드려 입력할 수도, 목소리를 남길 수도 있다. 문구는 이렇게 사멸해가는가?


  절대 아니다. 문구의 디지털화는 전자책과 비슷하다. 미래학자들은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잡아먹으리라 점쳤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들이 사라졌는가? 비중이 줄었어도 여전히 남아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구의 디지털화는 아날로그의 완벽한 대체가 아닌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에버노트를 못 쓴다고, 메모앱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 현대의 흐름을 지나치게 따라가려는 강박은 버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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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2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믿었던 헤밍웨이 펜이... (부들부들) 펜에 대한 한줄평에서 양손잡이님의 심정을 느꼈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저는 처음에 연필깎지가 츄잉껌 통인 줄 알았어요. ^^;;

양손잡이 2016-01-07 20:30   좋아요 0 | URL
미니쓰레기통인줄 아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문학동네X모나미X알라딘 작가펜(헤밍웨이)

평점 :
절판


글씨는 거침없이 잘 써지나 똥이 많이 생겨 장식용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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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ㄱㅂ 2015-12-29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재밌는 평이네요.
 

  난 뭐든지 갖고 싶다. 그게 고가의 물건인든 뛰어난 재능이든, 그 어떤 것이든 동경하는, 어쩌면 썩 좋지 않은 습관이다.


  특히 책상에 앉아 문자와 공부하는 인문학, 철학, 과학보다 예체능이 더 탐난다. 체보다는 예에 욕심을 내는데, 운도이야 어차피 몸 쓰는 것. 그저 행동하는 근육만 조금 단련이 되면 큰 무리 없이 남들과 즐기기 어렵지 않다. 운동을 못하는 편이 아니었으니 이리 느낀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 대표 골키퍼로 다른 학교와 축구시합에 나간 적이 있다. 농구를 시작하고선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꾸준히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런데 예술 쪽은, 당최 뭐가 되지 않는다. 음악은 어릴 적에 피아노를 쳐서 '듣는 법'은 알지만 느끼고 소리를 내는 법을 전혀 모른다. 바이올린, 피아노를 배웠어도 기계적으로 음만 내는 법을 배웠지, 진짜 음악을 연주한 적이 있었던가.


  대학 동창 중 피아노를 제법 잘 다루는 친구가 있다. 한번은 페이스북에 자신이 친 피아노 곡이라며 동영상을 올렸다. 깜짝 놀랐다. 화질은 안 좋지만 들리는 음악은 수준급이었다. 상상을 뛰어넘어 적어도 내 귀에는 원곡만큼 멋있었다. 덧글로 네가 친 거 아니지, 라고 쓰려다가, 내 몰지각함과 질투심니 너무 드러나는 것 같아 관뒀다.


  마침 여자친구도 피아노를 즐겨 치고 그걸 듣다보면 즐겁고 신나기에 나도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말했다. 운동과 피아노 강습을 겸하기 힘들어 시작은 못했...던 게 아니다. 시간은 핑계다. 기숙사 지하에 피아노 한 대가 있어 언제든 가면 연습할 수 있다.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발걸음을 떼지 않는 것뿐이다.



  여자친구에게 전자키보드를 잔뜩 물었다. 회사 기숙사에서 나와 따로 나만의 공간에 살면 키보드를 하나 사서 피아노 연습도 하고 음악 작업도 할 거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캬, 음악작업이라니, 정말 그럴 듯해보이지 않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올해 초에 한 친구는 통기타 연습을 해서 멋진 노래와 함께 공연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결국 나와 비슷한 헛소리일 뿐이라는 게 며칠전 밝혀졌다.


  올해 초였던가,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두었다. 회사 게시판에 동호회를 만든다는 글이 올라왔다. 워낙 악필이다보니 책이나 인터넷으로 독학하긴 힘들 것 같아 가입신청서를 들이밀었다. 인원이 부족해 결국 동호회는 시작하지 못했다. 내친김에 글씨 교정이라도 해보고자 결심했다. (가끔 두 여동생과 글을 쓰면서 놀다보면 소녀소녀한 글씨체 가운데 요즘 초등학생도 안 쓸법한 글씨체에 좌절하곤 했다)


  글씨를 교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올바른 글씨체로 쓰기를 꾸준히 하면 된다. 교보문고에서 많은 교정 관련 책 중 하나를 골랐다. 굳은 마음으로 첫 획을 그었다. 이틀 연습하고는 다신 책을 펴는 일이 없었다. 나에게 반듯하고 예쁜 글씨체는 이미 쓰기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건 미술의 범주였다.


  모든 학창시절을 통틀어서 가장 싫어한 과목은 미술이었다. 음악이야 어릴 때부터 꾸준히 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가정은 나의 화려하고 따뜻한(?) 손놀림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술은 아니었다. 필기야 암기하면 된다지만 실기는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아니, 똥이었다. 똥...


  국민학교 1학년 때였던가, 사실 나도 미술학원에 다녔더랬다.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 한가지 사건은 잊을 수 없다. 찰흙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겉에 니스를 발라 말려야 했다. 얼른 끝내고 쉬고 싶었던 나는 격정적으로 니스를 발랐다. 빳빳한 니스붓이 나의 스피드를 만나... 왼눈에 니스가 들어가고 말았다. 황급히 물로 씻어냈으나 그게 독이 되었을까,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안경을 썼다. 물론 니스가 들어가지 않은 오른눈도 같이 나빠졌으니 시력 저하의 주범이 니스는 아니다. 니스가 눈에 영향을 주었든 안 주었든, 아픈 기억이 마음 깊숙히 박혔으니 미술을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뭐, 트라우마 따위는 단순한 핑계일 뿐이고, 나는 단순히 미술 감각이 심히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색감이 정말 부족한 편이다. 미술시간에 사과를 연필, 볼펜, 목탄으로 데셍했다. 아무리 봐도 빨간 볼펜 한 자루만으로 눈앞에 보이는 사과의 명암을 표현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엉망인 그림을 제출했다. 아직도 집에 이 그림이 있는데, 다시 꺼내보려니 침대 밑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


  이과여서 그럴까 싶다가도, 미술을 즐기는 다른 공대생을 보면 그건 아닌 듯싶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지 않을까. 운동이 꾸준한 연습과 반복이 필요하듯이 미술도 마찬가지려나. 잘 그리려 하기 전에 많이 보고 느껴야 할까. 부족함을 안다면 꾸준히 보면 된다. 기초연습부터 하면 되고 죽어라 그려보면 된다. 그런데 나는 그걸 못한다. 애초에 책상에 앉아 당장 성과가 없어보이는 일을 하면 스스로 참을 수 없다. 이 기초연습이 언제 어떤 결과물로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수학을 좋아했던 이유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논리적인 식에 근거하여 풀어가면 결국 답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미술은 그게 없다. 게다가 예술은 절대적인 정답이 없는 분야기에 계속적인 발전을 꿈꿔야 한다. 나는 그런 기약없는 일을 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들고온 타블렛을 보고 순간 탐이 났다. 단순히 처음 만져보는 물건이 마음에 든 건지, 이 도구로 그릴 그림을 꿈꾼 건지는 알 수 없다. 요즘 웹툰을 보며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림으로 돈을 벌자는 게 아니다. 그냥 내가 있던 장소에서 함께 만난 사람과 나누어 먹은 음식, 주변의 분위기를 단순히 사진으로만 남기기 아쉬워서이다. 사진은 어떤 것보다도 장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허나 그림은 삐뚤뺴뚤할 수밖에 없다. 그림은 내 마음이 가는대로 그리기에, 사실과 다른 표현이라해도 그 대상에게 내 마음이 투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그때의 나를 알 수 있다.


  지하철 문 주변에 서서 노트에 지하철 풍경을 그림으로 끼적이는 사람을 보았다. 캬,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모습인가! 고1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자신을 캐릭터화 시킨 만화를 종종 그리셨다. 심지어 국어선생님이셔서 좋은 글과 귀여운 그림으로 보기도 좋았더랬다. 이리 보니 그림을 그리고픈 열망과 감정이 멋있어 보이고자 결심한 것으로 보일기도 한다. 흠, 충분히 그렇다. 나란 사람은 허세와 멋부림으로 사니까. 그래도 아직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게 어떤 이유에서건 좋은 태도라고 생각(이라 쓰고 합리화라 읽는다)한다.


  그림 생각을 하다가 책을 주문했다. 재작년에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제공받은 김충원의 <이지 드로잉 노트>다. 정해진 날짜까지 서평을 써야 하니 그림을 싫어해도 어쩔 수 없이 폈다. 절반도 못 마치고 재능이 없다고 한탄하며 덮어버리고 말았다. 선 몇십 번 그어보고 재능을 운운하니 이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다. 네이버 포스트에서 인기가 많은(그렇다고 하는) 블로거가 낸 <데일리 드로잉>도 함께다.


  역도 선수들은 첫 1년은 무게를 달지 않고 빈 바로 자세를 바로 잡는단다. 바는 쇳덩어리지만 역도동작을 하기에는 가벼운 편이다. 바만 쥐고 운동을 하면 힘을 주체 못하고 하늘로 휙휙 날려버리고 자세도 망가져버린다. 이렇게 1년 동안 자세 교정만 한다니 대단한 일이다. 그렇게 힘들게 습관을 만드는데, 나는 뭐라고 그렇게 포기했던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글씨 교정 책도 다시 펴본다. 겨우 하루치 연습하고 말았다. 아, 이런 의지박약... 스스로 생각해도 소름끼칠 정도다. 표지 왼편에 먼지가 쌓여서 물티슈로 정성스레 닦아주었고 책장 가장 위에 두었다.


 그놈의 허세 때문에, 연필로 필기해보고자 주황이 파버카스텔 연필을 한 다스나 사뒀다. 벌써 2년 전이다. 열두 자루 중 이제 한 자루를 절반 정도 썼을 뿐이다. 연필은 충분하다. 지우개도, 연필깎이도, 노트도 충분해. 이제 직접 쓸 차례다. 자자, 올해의 9할이 거의 지나간 시점에서 올해의 늦은 다짐을 해본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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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 


1. 난 원래 셜록 홈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시절, 제대로 된 장르문학을 괴도 뤼팽과 함께 해서 이런 모양이다. 뤼팽에 비하면 홈즈는 신사도 못돼고, 멋지지 못했으며 전혀 쿨하지 못했다. 제일 처음 읽은 홈즈 시리즈는 단편을 만화로 꾸린 책이었다. 그림체고 뭐고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뤼팽의 <기암성>에 비해 스케일이 너무도 작은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15년도 더 된 기억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2. 이런 내가 홈즈 시리즈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홈즈의 데뷔라고 할 수 있는 <주홍색 연구>(나로서는 정말 적응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절반은 지금, 절반은 과거의 전기를 말하는 추리 소설이라니...)를 읽고 어릴적 만화로 본 단편집을 독파한 후, 드디어 홈즈 시리즈 중 가장 이름이 알려진 <배스커빌 가의 개>로 넘어왔다. 뭐, 솔직히 말하건대 내가 <주홍색 연구>를 읽은 이유는 시리즈를 차례대로 읽기 위해서였고(<배스커빌>은 3번쨰에 위치한다), <배스커빌>을 읽은 이유는 피에르 바야르의 <셜록 홈즈가 틀렸다>를 읽기 위해서였다. 팬심에서 발로된 독서가 아니어서 셜로키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3.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말하는 법>에 이어 두번째 책이다. 사실 도서 정가제 전에 피에르 바야르 책을 잔뜩 사뒀지만 잘 읽진 않았다. 어느날 책장 정리를 하는 중에 제목이 참 마음에 드는 이 책이 눈에 띄었다.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제목부터가 매우 도발적이다. 읽지 않은 책을 어떻게 말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지 않나. 가장 유명한 탐정인 셜록 홈즈의 수사가 틀렸다고 말하고 말하지 않나. 제목부터 뭔가 구미를 팍팍 당긴다. 이 한순간의 유혹 때문에 3일 간의 부산여행길에 기차에서, 버스에서, 거리에서 세 권의 홈즈를 겨우 마쳤다.


4. 책은 말 그대로 셜록 홈즈가 틀렸다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이 분야를 추리 비평이라고 칭한다. 문학 작품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시 곱씹어보며 생각한다. 이 책의 전작인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나>, <햄릿을 수사하다>와 비슷한 궤의 책이다. <셜록 홈즈가 틀렸다>가 추리비평 시리즈(?) 중 마지막이어서인지, 이 책 중간 중간에 이전 책(애크로이드, 햄릿)에 대해 말한다. 솔직히 이 점이 매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책을 읽기도 전에 다른 책에서 스포를 당한 느낌이랄까.


5.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는 <배스커빌가의 개>의 범인이 스태플턴이 아니라 그의 아내인 베릴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말한 근거를 여기 쓰고 싶은데... 그러려면 책의 절반을 여기다 옮겨써야 하므로 패스한다. 읽다보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반박이다. 흥미가 돋는다면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요약할 능력이 안돼서 죄송합니다.


6. 책을 모두 읽으니 홈즈는 이 작품에서 형편없는 탐정으로 보인다. 범인의 의도대로 추리하고 행동한다. 의뢰자(헨리 배스커빌)를 위험에 빠트리고, 엄한 사람의 사망 사건을 오독한다. 으스스한 배스커빌의 자연 경관에 빠져 사건의 디테일을 신화적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사고조차 사건으로 착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진범(베릴)을 찾지 못했다.


7. 피에르 바야르는 이 빗나간 추리가 사실 셜록 홈즈의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의 의도된 행동이라고 말한다. 많이 알려진 사실로, 코난 도일은 일반문학쪽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했다. 그런 그에게 홈즈는 매우 모순적인 존재였다. 상업적 성공을 줌과 동시에 '코난 도일=셜록 홈즈'라는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난 도일은 일반문학을 쓰기도 했고 작품도 썩 괜찮았다고 한다) 그리하야 코난 도일은 큰 마음을 먹고 셜록 홈즈와 모리아티 교수를 싸움 중에 계곡 아래로 떨어뜨려 죽였다.


8. 허나 홈즈는 코난 도일의 생각보다 엄청난 인물이었나보다. 많은 독자들이 홈즈를 살려내라고 수많은 청원을 냈다고 한다. 작가에게 강력한 항의를 넘어 협박한 독자도 있다고 하니 홈즈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코난 도일의 어머니조차 홈즈를 살리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단다. 그는 장고 끝에 결국 <배스커빌 가의 개>로 홈즈를 컴백시켰다. 죽었던 홈즈가 살아돌아온 것은 아니고, 왓슨이 쓴 이전 사건의 회고록 정도라고 한다. 도일은 홈즈를 완전히 살리지는 않았지만 우선 컴백은 시켜놨으니 독자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하지만 피에르 바야르에 따르면, 그 이면에는 엇나간 추리를 통해 홈즈에게 빅엿을 선사함으로써 사소한 복수를 선사했다.


9. 도일과 홈즈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 안의 세계가 온전히 소설만의 것은 아니다. 가상 인물인 홈즈를 없앤 코난 도일이, 현실의 독자에게 뭇매를 맞아 홈즈를 되살렸다. 그런데 홈즈가 잘못된 추리를 하면서 코난 도일이 홈즈을 엿먹인다. 이는 독자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동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10.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실존 인물인 조르바를 만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다. 그리고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독자 중 몇은 조르바에게 감명받아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을 것이다. 조르바에게 영향을 받은 감정은 소설뿐만 아니라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반영됐을 것이고, 반영된 감정은 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 것이다.


11. 쓰고보니 이 글을 보면 책이 뭘 말하려고 한 건지 전혀 모르겠다. 사실 중간에 현실과 소설세계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냥 뛰어넘었다. 애초에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셜록 홈즈가 정말 틀렸는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잇,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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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6. 


1. 한 달간의 황금방울새. 두 달간의 그리스인 조르바. 조르바는 후반부에 재밌기라도 했지, 양 많은 황금방울새는 뒤로 가면 갈수록 엄청나게 흥미가 떨어졌다. 중간중간 잡지와 셜록 홈즈를 보았으나 길게 읽는 책이 두 권이나 되니 이쯤되면 머리가 터질 모양이었다. 여차저치 책들을 모두 끝내놓고 머리를 식힐, 재미만을 위한 책이 필요했다.


2. 전부터 읽으려던 마션을 꺼내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터치했다가 맞으려나. 이런 흥미 위주 소설은 전자책으로 가볍게 샤샤샥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를 보니 종이책이 16만에 육박하고 전자책은 무려 6만이다. 뜬금없지만 전자책이 점점 활성화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국내에 새 기기도 두 개나 나오고.


3. 베스트셀러 탐독자인 나로서는 조금 늦게 읽은 편이다. 책이 발간되자마자 눈도장을 찍어놨지만 한참 책 읽기에 난항을 겪던 때라(조르바를 만나고 있을 때였다...) 새 책을 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실 '마션'이라는 제목만 듣고 무슨 이런 어감의 단어가 있나, 싶기도 했다. 무심코 넘겼던 책인데 슬슬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쪽에서 입김이 생각보다 셌다. 자주가는 전자책 카페에서 슬슬 마션이 재밌다는 소문이 돌고, 리X북스 사람들이 지금 많이 읽고 있는 책 1위에서 쉬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유행을 좇는 제가 이 책에 조금씩 눈길을 보낸 건...


4. 잠깐 구매내역을 살펴보니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마션을 황금방울새와 같이 산 것이다. 두둥. 뭐부터 읽을까, 하다가 남들이 많이 읽는 책이 아닌 조금 더 있어 보이는 책(황금방울새는 2014년 퓰리쳐상 수상작이다)을 골랐는데, 지금 보니 이런 낭패가 있나.


5. 마션은 화성 탐사를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의 행성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우주복만 남은 건 아니고, 임시 거주용 막사와 그 안의 환경을 조절해주는 기계, 화성상승선(MAV), 약간의 식량, 식물 씨앗(마크는 생물학자라고 한다) 등등이 있다. 자, 이제 마크는 남은 것들을 가지고 화성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다음 탐사대를 위해 NASA가 떨궈놓은, 아-주 멀리 떨어진 MAV를 향해 갈 계획을 세운다.


6.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숨쉴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산소가 포함된)공기, 마실 수 있는 물,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식량,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공간. 헌데 마크가 남겨진 화성이란 공간은 척박할 따름이다. 산소가 있을리는 만무하고, 식량은 커녕 물도 없다.(아쉽게도 얼마 전 나사가 화성에서 소금물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실 중대발표라고 하길래 소설 마션이 논픽션이라는 발표를 할 줄 알았다) 화성의 차가운 대기는 마크의 체온을 마구 뺴앗아간다. 이런 와중에 저 멀고 먼 곳까지 여행을 해야 한다니, 이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다.


7. 하지만 소설에서 주인공이란 어떤 존재인가.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와도, 죽을 고비를 앞두고도 뭐든 이겨내고 긍정적인 인물 아니던가! 그는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무려 2년의 생존 계획을 세운다. 뭐, 물을 전기분해해 산소와 수소를 분리한 후 태워서 어쩌고 저쩌고 한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중간중간 그의 해박한 과학 지식이 드러나지만(사실 고등학교 과학만 배웠어도 알 만한 수준이다) 그것들을 대충 넘겨도 읽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8. 화성에 남은 마크를 구하기 위해 전세계가 구원의 기도를 올린다. 여기저기서 힘내라고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고 뉴스에도 온통 그의 이야기가 넘친다. 후반부에는 우주개발에 힘쓰던 중국조차 그의 안녕을 위해 나사와 힘을 합친다. 좀 말이 안되는 설정이긴 하다만, 미국식 소설로는 당연한 전개일 것이란 생각도 든다. 게다가 이제 G2 중 하나인 중국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 둘이 뭉쳐 미국인 마크 와트니를 구한다, 작가는 위 아더 월드를 부르며 글을 썼음에 틀림없다. 물론 여기에 큰 의미는 없다. 미국은, 과거에는 전장에 홀로 남겨진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미래에는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우주선을 보낸다. 뭔가 의미심장하다. 물론, 농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마션의 주인공은 모두 맷 데이먼이다)


9. 식량인 감자는 물론이거니와 물과 산소까지 자급자족해야 하니, 인터넷에서 말하는 화성판 삼시세끼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화성에 홀로 남겨졌으니 21세기(22세기인가?)판 로빈슨 크루소라고도 할 수 있겠네. 그나마 윌슨 대용으로 동료들이 가져온 드라마와 음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10. 나는 과학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아닌, 어떻게 표현하냐를 중점에 둔 SF를 좋아한다. 단순히 과학을 이야기에 써먹는 게 아닌, 인간의 번뇌(나는 누구인가, 나는 진짜 나인가, 우리의 미래는 어떤 것인가)를 다룬 작품을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마션은 조금 부족한 편이다. 내 기준에는 SF라 불리기에는 조금 애매한 작품이다. 과학을 끼얹은 페이지 터너에 가깝다고 할까. 전형적인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고 위기는 예상 가능하다. 첫 문장, '아무래도 좆됐다'가 주는 기대치를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재밌게는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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