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5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내게 있어서 제프리 디버와는 첫 만남이었다. 그의 명성이 자자함에도 분권 되어 나오는 그의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반갑게도 이 작품은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한 권으로 나와주었다. 본 작은 그의 대표작 '링컨 라임' 시리즈가 출간되기 이전의 작품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수많은 찬사를 받았고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는 밑바탕을 확실히 다졌다. 그래서 그런지 팬들 사시에선 이 작품의 출간 소식이 큰 화제가 되었고, 그런 그들을 오매불망 기다리게 했던 대작이다.

 강렬하고 인상적인 표지와 더불어 원제의 매력을 그대로 가져온 본 작은, 아시다시피 인질범과 협상가의 12시간에 걸친 두뇌 게임을 다루고 있다. 본격적인 줄거리에 앞서 제목에 대한 재밌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원제인 <A Maiden's Grave>는 내용과 구체적인 연관은 없다. 그것은 농아인 멜로니가 콘서트 장에서 들은 영가 <Amazing Grace>의 제목을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그러나 후에 되새겨보면 '놀라운 은총'을 '소녀의 무덤'으로 잘못 들은 것은, 인질 사태를 예견(?)한 작가의 복선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필자는 자꾸만 <소녀의 무덤>을 <소녀의 침묵>이라 잘못 읽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이유를 들어본즉 역자가 원제를 대신한 제목으로 <죽음보다 깊은 침묵>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왠지 나쁘지 않은 느낌 탓에 무의식적으로 입에 잘 붙는 '침묵'이라는 단어를 선호했다. 우연에 의한 것이지만 엽기적인 연쇄 살인마를 다룬 <양들의 침묵>도 떠오르고. 물론 한니발 렉터에 비하면 포스가 떨어지지만 인질범 루 핸디의 잔혹함도 그에 못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도살장이 위치한 황량한 밀밭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찾아보니 원서의 표지도 밀밭을 차용했다. 번역작의 표지는 갈색 머리 소녀의 이미지를 상하 반전했는데, 그로 인해 소녀의 휘날리는 머릿결이 밀밭같아 보이기도 하고. 사실 인질극을 다룬 작품은 처음이라(영화로는 많이 봤지만 내게는 저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외면했던 것 같다) 많이 생소했고 읽기가 수월하진 않았다. 인질 교환을 협상하고 마감 시간을 연기하는 등 나로썬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인질범 루 핸디와 FBI 인질협상가 아더 포터가 벌이는 장시간의 협상은 손에 땀을 쥐게 했지만, 그만큼 지지부진하고 지루하게도 느껴졌다. 간간이 터져주는 각자간의 갈등과 문제가 작품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액션 서스펜스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가는 유달리 신체적 장애를 이겨낸 인물들을 잘 그려낸다. 대표작인 '링컨 라임' 시리즈는 전신마비 법의학자가 주인공이고, 청각장애를 지닌 인질들의 농아 공동체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작품이 종반부로 이어지며 독자는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반전과 마주하게 된다. 이 반전 덕분에 그간의 협상 과정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닌 모양이었다.]란 문장이 나오기 전까지 달리고 또 달려라. 협상가 아더 포터의 절망감 만큼이나 허망함을 느꼈던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에 다시금 손에 땀을 쥐고 숨이 멎을 만큼의 극도의 긴장감을 끌어 모을 수 있다. 반전에 이은 무리한 전개가 약간 아쉽지만, 그에 못지않게 반전의 귀재로 불리는 거장의 숨결을 만났다는 기쁨이 더욱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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