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1 - 투사편, 인간의 운명을 가를 무섭고도 아름다운 괴수 판타 빌리지
우에하시 나호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판타지와 일본 시대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썬 '최고의 선택'이자 '운명적 만남'이었던 <야수>를 속속들이 파헤쳐 보자! 우선 소설 속의 소녀 에린은 우리가 여타의 소설 속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천진하고 순수한 소녀가 아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아료의 딸'이라는 차별을 받고, '투사지기'인 엄마를 잃은 슬픔을 지닌 조숙하고 이성적인 소녀이다. 엄마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에린을 벌치기 사내 조운이 거둬들이면서, 에린의 인생에서 '가장 황홀했던 경험'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 때까지의 이야기 템포를 '강'이라고 나타낸다면, 다음으로 이어지는 템포는 '약'이다. '강약'의 템포가 어우러져 '약'에 속한 이야기를 잔잔하고 아름답게 들려준다. 조운에게 양봉 기술과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면서 소녀는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에린은 '경이롭고 황홀한 아름다움'을 지닌 야생 왕수에 매료되어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그녀는 '카자룸 왕수 보호소'에 입학하고 평생 스승과 친구들을 사귀면서, 부상당한 새끼 왕수 리란과 '또 한 번의 운명적인 만남'을 맞게 된다.

 에린은 수금을 퉁기며 리란과 '정신적인 소통'을 하고, 리란은 에린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부상에서 회복한다. 리란의 전담 보호자가 된 에린은 자신이 '열어선 안 될 문'을 열었다는 것을 모르고, 왕수를 옭아매던 규범인 '무성피리와 특자수'에서 리란을 풀어준다. 그렇게 에린은 '국가의 운명'과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다. '강약'의 템포를 유지하면서 점차적으로 세계관이 넓어지는 이러한 구도는 소녀의 성장과 맞물려, 이 소설의 '성장소설로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효과를 준다.

 에린과의 첫 만남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리란의 태도는 <야수>라는 제목과 달리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결코 길들지 않는 왕수와 수금을 퉁기며 대화를 건네는 소녀 에린. 그 둘의 우정은 '결코 길들지 않는'다는 말의 '길들이다'나 원제 <야수를 조종하는 아이>의 '조종하다'란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소통하다'와 가장 어울릴 법한 '고차원적인 대화'다. 그들의 대화는 언어를 초월한, 마음으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화음'이며, 넓은 평원에 울려 퍼지는 '미지의 가락'과 다름없다.

 그들이 들려주는 연주를 듣다 보니 판타지엔 동·서양의 구분이 없고, '전 세계의 보편적인 감성'이란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지만, 딱히 일본만의 색채라기 보다는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잘 보여준다. 오히려 이런 보편성에 그들의 고유성을 살짝 덧입힐 수 있는 그들의 문화가 조금 부럽기도 하다. 우리의 판타지도 고유의 전설이나 민담을 덧입히면 우리의 색깔을 잘 드러낸 세계적인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우리 판타지의 미래'를 고민해보게 해준 에린과 왕수 리란은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천천히 활강해서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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