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와 세탁부 프리가 - 아흔아홉 번의 세탁계약과 거울의 세 가지 수수께끼 판타 빌리지
조선희 지음 / 노블마인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판타지 세계와 8년 간 조우하면서 '국내 판타지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그런데 요즘 심상치 않은 행보가 눈에 띈다. 우선 그 첫 번째로 '국내 장르문학의 기반을 다지려는 출판사의 시도'이다. 그 예로 로크미디어의 '노블레스 클럽'을 들 수 있다. 경계문학을 지향하며 대중문학의 새로운 주류로 발돋움하겠다는 기치도 마음에 들고, 최근 출간한 두 작품도 기존의 양상과는 전혀 다른 탄탄한 텍스트와 흥미진진한 전개, 충격적인 결말로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작년 한 해 장르시장 전반에 나타난 '라이트 노블의 약진'으로 재야에서 무공을 연마한 고수다운 국내 필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로 '기성 장르문학 작가의 출판사 설립'이다. 그 예로 판타지 작가 홍정훈 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넥스비전 미디어웍스'를 들 수 있다. 대여점에서 유통되는 국내 장르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취약한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메이저 출판사의 장르시장 진출'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노블마인의 신인작가 공모'이다. 재능있는 국내 신인작가 발굴에 힘쓰는 출판사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번에 노블마인에서 처음 선을 보이는 국내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조선희 작가가 이미 '제2회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몇몇 작품을 통해 검증받은 작가이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공모 형식으로 출간한 작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처음 물꼬를 튼 의미있는 작품이기에 필자 또한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기존의 강한 영웅이 등장하는 '검과 마법'의 판타지적 설정에서 벗어나, '세탁부'인 여주인공과 '아흔 아홉 번의 세탁 계약'을 주된 설정으로 삼고, 생동감 넘치고 통통 튀는 캐릭터들과 다양한 동화 속 모티브를 차용하여,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 넣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인명'에 관한 부분이다. 주인공인 '프리가(Frigga)'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이자 오딘의 아내이며 결혼과 출산의 수호신이지만,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이름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말 어감을 살린 '미남 제빵사 꿀빈'이나 '팔랑 부인'같은 이름과 비교했을 때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저자가 보여준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물간의 투닥대는 대화를 통해 재미를 한층 가미하고, '아이작 올드턴(Isaac Oldton)'같은 패러디를 이용해서 간간히 웃음을 준다.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악역의 본격적인 활동으로 인해 긴장감이 더해지고, 결말에 이르러서도 무언가 '또 다른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든다. 판타지 세상을 이렇게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6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두께지만 인물들의 재치있는 대화와 재기발랄한 행동으로 시종일관 웃음과 재미를 놓치지 않아 어느 순간 줄어드는 페이지를 아쉬워하게 된다. '프리가'가 과연 '마법사와의 계약'을 무사히 완수하고 '야즈다 99번지'를 빠져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신 분은 읽어보시길 바란다. '프리가'가 한 방에 '졸도'시키고 싶다는 '불법 마법사 졸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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