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머랭 파이 살인사건 한나 스웬슨 시리즈 4
조앤 플루크 지음, 박영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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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유난히 발달한 공감 능력으로 다른 이가 느끼지 못하는 아픔까지 느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김언수의『캐비닛』에서 고문 기술자가 주인공의 손가락과 발가락에 부분 마취를 하고 절단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주인공은 마취 덕분에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보기만 했다. 그런데 그걸 읽는 동안 나는 혼자서 고통에 몸부림을 쳐야만 했다.

 이런 나는 특이하게도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그런데 추리소설은 대체로 사건이 있는 법. 그러한 사건 대다수는 단순 절도나 갈취 같은 경범죄가 아니라, 살인이나 납치, 감금, 폭행 같은 중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잔인한 살해 장면이나 간악한 시체 유기 장면을 담은 소설을 어찌 볼 수 있겠는가? '피'라는 단어만 봐도 온몸의 땀구멍에서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 들어, '하드hard'라는 강한 어감이 붙은 장르는 고의적으로 피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고민을 '코지cozy 미스터리'가 해결해주었다.

 조앤 플루크의「한나 스웬슨」시리즈는 '코지 미스터리'의 전형이다. '코지 미스터리'란 작은 마을이나 소도시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내용으로,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상황이 등장하지 않고 고도의 두뇌 게임도 요하지 않아, 가볍고 편히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인 만큼, 나와 가까운 인물이 범인일 수도 있다는 섬뜩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는 '레이크 에덴'이란 작은 마을에서 '쿠키 단지'를 운영하며, 마을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수사한다. 탐정이나 형사도 아닌 그녀가 처음 수사를 하기 시작한 계기는 1권에서 자신의 가게에 납품하는 배달원이 살해당하고, 그녀가 그의 시체를 처음 발견하고부터다. 첫 발견자라는 '주도권'으로 인해 수사에 뛰어들게 된 그녀는 뛰어난 수완으로 4권으로 이어지는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해결했다.

 시리즈의 4권을 접하면서 이제는 등장인물의 이름만 보고도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목격자인지 대충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의 수사도 그녀의 신분이 형사나 경찰이 아닌 일반인이기 때문에, 수사의 범위가 매우 좁아서 제약이 크다. 그래서 범인의 윤곽이 보일 때쯤 그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범인과 맞닥뜨리게 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것이 나름의 재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두 남자를 둘러싼 '한나의 로맨스'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서다. 나는 한나가 그녀에게 '생체 시계'를 운운하며 압박을 주는 어머니와 먼저 결혼한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두 남자를 모두 '삼촌'이라고 부르는 조카 트레시까지 합동으로 부추겨서, 어쩔 수 없이 두 남자 사이에 사랑의 줄다리기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녀도 은근히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한나는 노먼이 자신에게 청혼을 하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그가 다른 여자에게 청혼하거나, 자신이 너무 뚱뚱해서 청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막상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두 남자와의 데이트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한다. 이것은 노먼과 마이크도 마찬가지인지, 그들은 경쟁자라기 보다는 동료같고, 간혹 주부들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친구같이 편안하고 다정한 치과 의사 노먼과 섹시하고 매력적인 경찰 마이크를 사이에 둔 그녀의 줄다리기는 노먼이 한나와 함께 설계한 '꿈의 집' 건설하면서 노먼 쪽으로 약간 기운 듯싶다. 다음 편에는 마이크와의 로맨스를 조금 더 보강해서 한나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줄다리기가 다시 팽팽하게 당겨졌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말부에 등장하는 '비밀 인물'의 약혼 소식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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