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 Shakespeare's Complete Works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이다희 옮김 / 달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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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o and Juliet
 
내가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 진정 <로미오와 줄리엣>을 아느냐.
누구나 알고 있는, 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희곡이라는 장르가 소설과는 달리, 공연을 위한 무대장치의 일종이라,
(이것도 약간의 편견이지만) 재미가 없다고 느꼈다. 특히 내가 처음
접한 희곡이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렇게 희곡과는 가까워질 수 없는, 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껏 셰익스피어의 명성만을 들었을 뿐,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고전은 지루할 거란, 희곡은 지겨울 거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번역가 이윤기님의 번역을 통해 만난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그 편견을 사라지게 해줬다.
 
… · … · … · …
 
로미오의 아버지인 몬타규가 아들이 '한숨을 내쉬어 구름에 구름을 더한다'고 걱정하는
장면이나, 로미오가 눈물을 많이 흘렸지만 '그 눈물에 익사하지 않았던 자신의 두 눈'을
원망하는 모습은 대사를 통해 이미지가 떠오를 정도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로미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대도 알다시피 내가 의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내 볼은 소녀의 수줍음으로 붉게 물들었을 거예요'라고 줄리엣이 수줍게 말한 부분은,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한허리를 버혀내어'처럼 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물론 황진이의 시조에선 '시간의 흐름'을, 줄리엣의 대사에선 '어둠'을 차용했지만.
 
로미오와 헤어지기 싫어, 줄리엣이 '밤의 여신이여, 꼭꼭 드리워진 어둠의 휘장을 걷어
태양신의 눈을 가려 주세요'라고 아침이 오는 순간을 늦춰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티볼트의 죽음과 로미오의 추방에 상심한 줄리엣을 보고, 파리스 백작에게 캐퓰럿이
'오늘 밤 딸애는 슬픔과 함께 새장 속에 갇혀 있다시피 하고 있다' 고 말하는 장면이나,
줄리엣의 죽음을 두고, 캐퓰럿이 '들판에 때 아닌 서리가 가장 아름다운 꽃에 내리듯,
죽음이 이 아이 위로 내리고 말았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묘사의 절정을 이룬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고전과 희곡의 편견에서 벗어난 것 외에 얻은 게 있다면,
위대한 작가인 셰익스피어의 명성을 확인한 것과 묘사의 절정을 이룬 주옥같은 대사들이다.
 
… · … · … · …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탁월한 묘사와 뛰어난 비유로 이뤄진,
아름답고 황홀한 대사 중에서도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부분이 자주 눈에 띈다는 점이다.
 
다음은 로미오가 캐퓰럿 가의 파티에 들어서기 전에 한 대사이다.

         로미오  너무 이르지 않을까 두렵군. 별들이 미처 계시하지 못한 어떤 운명이, 흥겨운
               이 밤의 잔치를 그 쓰디쓴 시작으로 삼아 무시무시한 일들을 벌이지나 않을까,
                     그리고 그 운명이 내 안에 갇혀 있던 생의 기한을 만료시켜 때 이른 죽음이라는
                     비열한 벌금을 지불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염려되네.

다음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가 원수의 집안임을 알게 되고 한 대사이다.

         로미오  캐퓰럿이었단 말인가? 이 무슨 운명의 장난 같은 거래란 말인가.
               나는 원수에게 목숨을 빚지게 되었구나.

         줄리엣  나의 유일한 사랑이 유일한 원수의 집안으로부터 나오다니,
               누구인지 알고 보니 때늦은 다음이구나. 증오해야 할 원수를 사랑해야 하다니.
               조짐이 불길한 사랑의 탄생이구나.

또한 로렌스 신부는 불같이 쉽게 타오르고, 빛처럼 빠르게 진행하는 그들의 사랑을 걱정하며,
'천천히 가는 것이 지혜로우니, 서둘다가는 넘어진다네'(p110)나 '너무 서두르면 천천히 가는
것만 못해'(p129)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이 결코 축복받을 수 없음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들의 행복한 결혼식 장면이
등장했다면 이야기는 더 비극적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이쯤에서 줄리엣의 명대사를 하나 소개하고 마무리하겠다^^;;

                  줄리엣  아, 로미오, 로미오, 그대는 왜 하필 로미오인가요?
                        아버지를 버리고 가문의 이름을 거부하세요.
                        그대가 그럴 수 없다면, 다만 날 사랑한다고 맹세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캐퓰럿이라는 이름을 버리겠어요.
                        그대의 이름만이 나의 원수 일뿐.
                        그대가 몬타규든 아니든, 그대는 변함없이 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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