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쉬 스토리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Fish Story
 
이 책은 2001년부터 최근작까지, 그가 쓴 네 편의 단편을 모은 '첫 단편집'이다.
'첫 단편집'이란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기존의 '연작 스타일'과 다르기 때문이다.
 
<칠드런>에선 '진나이'가, <사신 치바>에선 '치바'가 구심점 역할을 한데 비해,
여기선 각자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 그러나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작에 등장하는 인물은 물론, 팬들이 좋아하는 '구로사와'가 두 편에 등장한다.
 
처음엔 300페이지 두께에 적잖이 실망했다. 예전만큼 확- 와닿는 작품도 없었다.
그는 장편보다 단편이 좋아요,라고 공공연하게 밝힌 나이기에 실망이 더더욱 컸다.
인터뷰를 보아하니 작가 스스로도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서 씁쓸하고 슬펐다.
 
[동물원의 엔진]은 <러시 라이프>보다 이전에 쓴 진짜 첫 번째 단편이란 사실에서
그의 초기작 형태를 볼 수 있다. 편집자가 단어 선택의 기발함을 칭찬해 주었다더니,
확실히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강한 단어'이자, '결코 사라지지 않을 단어'이다.
 
여기선 반가운 인물이라 하면, <오듀본의 기도>에 등장하는 '이토'를 들 수 있는데,
그가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어주기도 한다. 또, 인터뷰를 통해서 여기 나온 선배가
<러시 라이프>에 등장한 젊은이의 아버지란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잘 기억은 안 난다.
 
[새크리파이스]는 부업은 탐정인 '구로사와'가 사람을 찾으러 온 고구레 마을에서
마을의 풍습과 그에 얽힌 미스터리를 밝힌다는 내용이다. <마왕>과 비슷한 시기에
쓰인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정치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간혹 들린다.
 
그리고 '풍습'이란 공포나 죄책감, 욕망을 숨기려는 것이라며, '죄책감'을 느끼지만,
거의 매년 자행하는 그러한 풍습(죄)을 보고 '가학적인 사디즘'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여기서도 <마왕>에서 나온 '전체가 함께 죄를 지으면, 개인의 죄책감이 줄어든다'는
나치즘처럼 악용될 여지가 큰 전체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난 <마왕>을 높이 평가하지만, <마왕>에서 실망한 팬들이 많으므로, 단편이니만큼
정치적인 색채를 거두고 봐도 좋을 듯 싶다. 가령, '겉멋만 든 싸가지'처럼 어중간한
'나쁜 남자'가 아닌, 자신은 '진짜 나쁜 남자'라 말하는 '구로사와'의 멋진 매력같은.
마지막 [포테이토칩]에서 '구로사와'가 다시 등장하므로 약간 겹치는 이야기가 있다.
 
[피쉬 스토리]는 시기적으로 별반 차이가 나지 않지만, <마왕>과는 달리 정치를 쏙
빼냈다. 느낌이나 분위기는 <칠드런>이나 <종말의 바보>과 비슷하고, 과거와 미래,
현재를 오가는 문단의 구성과 스타일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와 비슷하다.
 
가장 마음에 들고,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장면은 [피쉬 스토리]의 '30년 전'에 나오는
해체한 밴드의 마지막 앨범 녹음 장면이다. "이 노래가 누구에게 가서 닿을까"라고
물으며, 매니저에게 "즐거웠지만 여기까지였어. 누구에게든 닿게 해"라고 부탁한다.
 
녹음이 끝나고 술자리에서 "실패했냐?"고 묻는 밴드 멤버들에게 매니저가 한 말이
일품이다. "실패했지. 하지만 별 수 없잖아. 너희 밴드, 나, 미치게 좋아했으니까"
실패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즐거웠었고, 좋았다고, 후회는 없다고, 말이다.
 
[포테이토칩]은 최근작답게 지금 자신의 감각에 가장 가까워 마음에 든다고 한다.
나 역시 느낌은 좋았다. 야구가 주는 감동도 좋았고, [새크리파이스]에서와는 다른
'구로사와'의 매력도 좋았다. 여기서 반가운 인물이라 하면, <중력 삐에로>에 나오는
DNA회사에 근무하는 형을 들 수 있다. 자칫하면 지나치고 넘어갔을 법한 부분에서.
 
'짭쪼름한 맛'이 나는 [포테이토칩]에서 '약간 밋밋한 맛'이 나는 게 조금 흠이지만,
인터뷰에서 말한 새로 준비하는 장편소설인 <골든 슬럼버즈(Golden Slumbers)>가
<다이하드>처럼 단순하게 '마냥 도망치고 마냥 싸우는' 이야기라고 해서 끌린다.
올해 안에 나온다고 했으니,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내 고독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맹렬함 앞에 고래마저도 달아날 것이 틀림없다.
 
내 용기가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젊음으로 햇빛을 반사하는 수면을 한층 빛나게 할 것이다.
 
내 좌절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비통과 우스꽝스러움에 강에도 바다에도 살 곳이 없어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