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 소설을 세 번이나 읽어야 했다. 이사카 코타로가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다니..
아무리 '자기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치더라도 전작에서의 밝은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
결말이 밝은 분위기라고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았다. 동생의 어두운 면을 발견했으니..
 
처음엔 선동적인 정치가 이누카이가 나쁘다고만 생각했다. 이름에 개(犬)가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두 번째로 읽었을 땐 이 너무 치우쳐서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두체 지배인의 말대로 파시즘하면
제국주의나 군국주의에만 연결시키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 그리고 동생이 불안했다.
그래서 세 번째로 읽게 되었다. 역시나 이누카이보다 더 조심해야 할 사람은 동생이었다.
 
여기 이 소설엔 완벽하지 않은 초능력을 지닌 두 형제가 나온다.
그들의 초능력은 엑스맨의 주인공들처럼 무적에 가까운 능력이 아니다.
30보 안에서만 자신의 생각을 타인의 입을 통해 말할 수 있게 하는 형 안도와
고작 10분의 1의 확률을 맞출 수 있는 동생 준야. 그들의 초능력은 한계가 있다.
그들의 힘으론 이누카이를 막을 수 없다. 그래서 동생이 선택한 힘이 바로 돈.
 
"돈은 힘이야."
 
준야의 눈이 유달리 크게 열리는 것만 같다. 나는 얼어붙어서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힘에 압도 되었다. 비명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참는다.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준야가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크나큰 자신감과 탁월한 힘을 갖춘 독선적인 인간으로 느껴져서 나는 오들오들 떨었다.

 
형과 동생에게 생긴 초능력이 애초에 초능력이 아니라 마왕의 능력이었다면?
형의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형은 마치 두 가지 인격으로 대화하는 듯이 보인다.
두체 지배인은 조준만 하고 있을 뿐, 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진 않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이누카이에게 다가가려는 형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마왕의 대화가 아닐까.
마왕은 언제나 다른 존재에 기생해야 하는데, 이누카이에게 다가가면 형이 죽을 것을 알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나타난다면? (갑자기 해리포터의 볼드모트가 생각나는군;;)
 
형이 죽자(이 부분은 스포일러 글이 되고 싶지 않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글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쓴다. 물론 <사신 치바>를 읽은 사람이라면 치바의 등장에서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암시들이 있었다.), 그 마왕은 동생에게 붙어버렸다.
형이 죽음으로써 동생에게 준 선물은 운이 아니라 마왕이라는 것이다. 형의 이야기 초반에
형은 동생이 다른 사람보다 운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생부부만 모르고 있었던 것.
 
형과 동생이 초능력을 발휘하는 방법에도 차이를 보인다.
형은 상대방에게 정신을 집중해서 자신의 의도대로 말하게 하는 것에 비해,
동생은 무의식 세계의 직감으로 선택하여 확률을 지배한다.

형은 이누카이를 선동자로 여겨 그를 저지하려 하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형과 이누카이는 국민들에게, 그리고 이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생각해, 생각해"를 강조한 반면,
동생 준야는 "생각하지 마, 생각하지 마"를 외친다. 동생 이야기의 소제목이 <호흡>인 점도
기가 막히다. 호흡은 무의식적인 거니까. 지금쯤 들이마시고, 지금쯤 내쉬고 이런다면 곤란하겠지?

"내 생각에는 이누카이 같은 천재 정치인보다 훨씬 더 골치 아픈  건 대중이야.
그것도 대중으로서 제 할 일을 망각한 대중이지. 말하자면 대중의 재능이 없는 대중이야.
머리가 좋고 제 잘난 맛에 사는 그런 사람들이 가장 골치 아파."

 
'대중의 재능이 없는 대중'이라.. 그렇다면 '대중의 재능'이란 무엇일까?
'대중의 재능'은 '자각(생각)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한다면 '자각 없는 것이 없는 대중'이라면
'생각하는 대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지배자의 저항세력이리라.
'머리가 좋고 제 잘난 맛에 사는 그런 사람들' 또한 자각없는 대중을 유혹하는 세력이리라.
 
내 머리에는 안도 오빠가 예전에 말하곤 하던 대사가 되살아난다.
"실실거리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날카로워. 무언가를 해낸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준야야."
오빠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재발리 머리에서 내친다. 생각하지 마,  생각하지 마,
그렇게 머릿속으로 외워보지만 웬일인지 이번에는 귓전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울린다.
"이 녀석이야말로 마왕일지도 몰라"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나는 등의 솜털들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난 동생 준야가 두렵다. 우리가 막아야 할 <마왕>은 동생이었을지도.
무서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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