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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박영덕 / IVP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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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전부터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다들 좋다고 하는 걸까라는 호기심. 드디어 읽게 되었고, 체계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독교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오산임을 알았다. 왜곡해서 알고 있는 부분도 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기독교에 대한 변증을 원하시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반박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다음의 질문에 답할 정도의 실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본에는 적혀 있으나 생략~ 궁금한 사람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람!)

또, 기독교인이 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증거는, 객관적 증거인 예수님의 부활과, 주관적 증거인 기도응답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내가 기도응답 받은 것만 해도 몇 개인가..

희은이, 고은이, 박기용 교수님, 열쇠, 캠프, 학점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기도응답 받은 건 생각 안 하고 하나님이 안 느껴진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기도하고 있는 것도 이루어지겠지..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믿고 싶은데 안 되면 그냥 믿으라고. 그 말이 명답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이렇게 갈등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예수님을 못 믿겠다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경우에는 이 책을 읽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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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 연습 (반양장)
로렌스 형제 지음 / 두란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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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는 사람 홈피 메인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연습". 어디서 많이 본 글이라는 생각을 했다. 알고 보니 책 제목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깨끗해짐을 느꼈다. 비록 내 행동은 깨끗해지지 않을지라도. 그러고 보니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표현도 웃기군.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라고 해야 옳을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하심에 따라 자신의 영혼을 지키고자 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원할 때마다 자유롭게 그분과 사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섬기는 일로부터 벗어나게 하거나 우리의 구원을 천한 것으로 손상시키려는 생각들이라면 어떤 것이든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복종이야말로 자기가 좇아야 할 유일하게 안전한 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따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려면 그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태도를 길러가야 한다.

기도할 때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하루 온종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거룩하신 임재 안에 자신들을 신실하게 지키고 또 그분이 우리 앞에 계시다는 것을 늘 기억한다면, 적어도 의도적으로 그분을 거스르게 되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 아무런 자격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도 말도 행동도 모두 다 그분에게 마땅히 되돌려 드려야만 한다.

 

이외에도 내 생각을 바꾸어야겠다고 느끼게 한 말들은 많이 있었다.

이대로 살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도 예배 시간에 화를 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담즙질인가.. 하나님의 임재를 매순간 연습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로렌스 형제도 기도는 쉬지 않았지만 10년 동안 방황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로렌스 형제처럼 절대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사실이 그나마 소망을 갖게 해주는 것 같다.

하나님께 오늘도 도움을 구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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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의 안경 - 쉽게 풀어 쓴 신국원의 기독교 세계관 이야기
신국원 지음 / IVP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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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계관.. 나는 기독교 세계관을 소유한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완벽한(?) 기독교 세계관이 아님을 볼 수 있었다. 왜곡된 가치관도 조금 있었던 탓이다. 창조-타락-구속으로 이어지는 삼박자의 하나님 계획. 창조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 몰랐다. 창세기 공부를 하며, 일대일을 몇 번이나 했지만 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인본주의에 물들어있던 내가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 섭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해 있었던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행하는 것은 바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요즘 안 그래도 사람은 정말 작은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우주와 지구 속의 인간을 비교해 볼 때, 느껴진다. 그리고 나의 인간관 역시 얼마나 인본주의에 물들어 있었나를 볼 수 있었다.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가치관이었다. "인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교만했던 내 모습이 다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타락은 방향의 문제이다."

구속의 문제가 중요하긴 한데.. 잘은 모르겠다. 구속에 대해서만큼은 그래도 좀 바르게 알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언급을 하고 책 이야기를 끝낼까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에게 너무나 내세적이었다.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현세적으로 될 필요는 없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으며,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나라라고.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 완성될 나라라고. 천국은 우주 한 구석에 있는 곳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나라를 내세적으로 느끼게 될 때 신앙은 소극적이 된다." 이 말에 공감했다. 내 신앙은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의 나라는 내세적인 것뿐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미 임해 있다는 사실을 왜 자꾸 까먹는 걸까.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해달라고 하면서 말이다.

세계관에 대한 책이라 처음에는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읽다보니 나의 세계관과 비교하게 되었고, 점점 재미를 느꼈다. 내가 잘못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창조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깨닫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니고데모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어차피 어느 누구도 객관적일 수는 없다. 객관적이라는 사실조차 인간이 만든 기준일 뿐이다. 그것도 또 하나의 틀이고 안경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의견을 수용하는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이 옳긴 하다. 기독교인으로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니고데모의 안경으로 보아야 함을 느낀다. 맹목적인 수용은 자신을 잃게 만드는 것 같다. 맹목적인 수용조차 또 하나의 안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세상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 보이는 것에 치중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으로, 저자는 샬롬이란 단어를 중요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것 같다. 그래.. 평안이라는 것은 중요한 거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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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선생님
린다 A. 앤더슨 지음 / 가치창조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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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후 느낌을 묻는다면, 한 마디로 깨는(?!) 책이었다. 아이들의 생각은 그만큼 튀었고 하나님에 대해 순수했다. 어른들이 잘 볼 수 없는 것을 아이들은 볼 수 있었다. 마치 영희 언니, 선지 언니랑 일대일 할 때 가끔씩 느끼는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 올 때 아이가 했던 말. "봤어? 봤어? 하나님이 온 세상을 하얗게 칠하셨어." 그리고 교회 문을 잘 열 수 없자 아이가 했던 말. "하나님, 우리가 여기 왔어요! 빨리 나와서 문 열어주세요."

이런 대목들을 읽을 때마다 실무실습 때가 계속 떠올랐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말해보라니까 "아무 데나 가서 쉰다."고 답했던 아이. 이런 아이들이 있기에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부분을 아이들은 보고 있다. 그게 좋아서 나는 교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눈높이로 낮아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시 고민했다. 나는 이때까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충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생각하려고 하기보다 일방적으로 내 의견을 말하고 이렇게 해야된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의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제 예배 시간에 장난 치는 아이들을 보며 나무란 적이 있었다. 예배의 대상이 누군데 계속 그러냐고. 아이들도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알기에 말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내가 어릴 때를 기억하지 못했다. 나도 6학년 2월 27일까지는 예배 드리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음을 잊고 있었다.

"왜?"라는 질문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아이들의 눈에서 생각한다는 것 또한 정말 중요하다. 어른들의 또다른 선생님 아이들. 가르칠 아이들이 기대된다. 어떤 생각으로 나의 생각을 깨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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