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기차를 기다리는 소년 양철북 청소년문학 2
다니엘 에르난데스 참베르 지음, 오승민 그림, 김정하 옮김 / 양철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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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기다리는 소년](다니엘 에르난데스 참베르/김정하 옮김, 양철북)
-믿고 보는 권일한선생님 픽
-스포일러 주의

짧은 동화이다. 표지의 소년이 플랫폼에서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기다린다. 소년 옆에 앉은 소녀는 우체부인 아빠를 따라 기차역에 왔다가 그 소년을 만난다. 소녀는 그 소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어서였는지, 편견 없이 그 소년을 대한다. 그 소년이 어떤 아이인지 알았을 때는 이미 소년과 소녀가 친밀해진 후였다.
아마도, 초등 선생님들 중에서 재소자 가정을 접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담임을 하면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재소자 가정을 본 적이 있는데(많은 사람들이 보는 글이므로 상황 설명은 생략한다.), 편견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십여 년 전에 봤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그만큼 상황이 특수했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6년 전까지만 해도, 사법부를 신뢰했다. 잘못한 사람이 가는 곳이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6년 전 사건을 만난 후에는, 판사가 판단을 잘못할 수 있음을 알았다. 경찰이 수사를 치우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까지 관심 없었던 수사의 흐름과 법원의 판결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에 주목했던 사건이 곰탕 성추행, 수학여행 휴게소 사건이었다. 곰탕 성추행 사건은 여자의 일관적인 진술과 남자의 일관적이지 않은 진술로 여자의 손을 들어주었고(CCTV는 정확한 상황을 보여주지 않았다.), 수학여행 휴게소 사건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운이 좋지 않은 일이었다. 나만 해도 지금도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있는데, 그 선생님은 괜찮으신지 모르겠다. 그 사건을 아동학대로 볼 수 있나?
증거주의 원칙을 따르는 우리나라에서, 진술이 일관되기만 하면 된다는 논리는 정말 이상하다. 피해자의 눈물이 그 증거라고 했던 한 방송사도 있었지. 거짓말이라도 진술이 일관되면 그 편을 든다. 울면 증거가 되나?-그러니 ‘선즙필승‘이라는 말까지 생겼지. 한창 읽었던 웹소설에는 여론을 만들어서 사법부를 압박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소설 속 내용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소설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니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다. 여론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뉴스에서 여러 번 보았다. 사람이라 잘못 판결할 수 있고, 그 잘못된 판결로 피해를 받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있다.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뉴스에서 심심찮게 잘못된 판결을 받고 억울하게 갇혔던 사람들이 나오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동화에 나오는 아이의 아버지는 어떤 까닭으로 갇혔는지 알 수 없다. 죄를 지어서 갇혔든, 억울하게 갇혔든, 죄 짓지 않은 자녀에게는 손가락질을 거두어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범죄했으니 자식도 범죄할 거라는 편견, 있을 수 있다. 부모의 양육방식, 성향이 자녀에게 대물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부는 부모와 다르게 살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겠지만. 또, 부모와 다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회복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기차를 기다리는 소년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계속 재소자에 대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재소자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정리 없이, 소년을 편견 없이 바라볼 용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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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공식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안에 사람을 담아내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평소에 자주 하는 말, 주변에 잔소리하듯 되풀이하는 말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대화할 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 참지 못하고 자꾸 끼어들게 되는 말, 예민하게 반응하고 발끈하게 되는 말, 잦은 의견 차이를 만드는 말은 무엇인가? 그 사이 어딘가에 당신의 공식이 숨어 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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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보여 주는 어떤 참된 영광도 볼 수가 없다.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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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바보 온달 힘찬문고 34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김호민 그림 / 우리교육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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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온달](이현주, 우리교육)

이번달 성서교육회 독서모임 책이다. 어릴 적 읽었던 [바보 온달]을 떠올리며 읽었다. 양념(?)처럼 들어가 있는 앞 얘기, 뒷 얘기(어린 영혼과 꼬마 별 이야기)와 고승 장군이 [바보 온달]을 생각하게 하는 동화가 되게 했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고승 장군이 어린 시절 온달을 만나 제일 처음 했던 말은˝창피한 일이다. 창피한 일이야......˝(41쪽)였다. 토끼 사냥을 했는데 화살이 빗맞아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했던 일을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고승 장군이 다시 온달을 만났을 때, 온달이 자신 앞에서 조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질을 했고, 온달은 매질을 견뎌내고 일어섰다. ‘이 천하의 고승 장군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창피한 일이다, 창피한 일이야. 이놈 온달, 두고 보자!˝‘(58쪽) 평강공주는 온달의 집으로 찾아갔고, 고승 장군도 복수를 위해 온달을 찾았다. 곰과 싸우다 상처를 입은 고승 장군이 공주의 마음을 돌리지도 못하고, 온달에게 복수도 하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산을 내려‘(108쪽)오며 ‘수없이 중얼거‘(108쪽)린 말도 ˝창피한 일이다. 으음, 창피한 일이야......˝(108쪽)였다. ‘창피함‘이라는 감정은 혼자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고승 장군은 평생을(?) 창피하지 않기 위해 살았다.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아야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 양 생각했던 거 같다. 수치심을 견디지 못했다. 고승 장군을 움직이는 힘은 수치심과 인정이었던 거 같다. 행동의 동기가 외부에 있었으므로, 책임도 외부로 돌렸다. 수치심에 못 이겨 애꿎은 말 궁둥이를 채찍으로 때리고, 온달을 원망했다. 감정이 그를 집어삼켰다.
고승 장군에게서 나를 보았다. ‘목사님 딸‘, ‘선생님‘, ‘엄마‘라는 이름 속에 살았다. ‘나‘로 사는 순간을 흘려보냈다. 고승도, ‘사냥꾼‘, ‘장군‘의 이름으로서만 자신이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사냥꾼‘, ‘장군‘으로서는 창피한 일이었겠지만, ‘고승‘으로서는 창피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혹은, 창피한 일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을 거다.
평강공주는 온달을 고승 장군처럼 만들려고 했다. 온달이 장군이 되었을 때는, 별에게 돌멩이를 던진 자신을 ‘창피하게‘ 여겼다. 고승 장군이 창피하게 여겼던 것을 온달도 창피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제 온달이 두려워하는 것은 공주를 비롯한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뿐이었다.‘(149쪽) 그리고 그 ‘창피함‘ 때문에, 온달은 죽음에 이른다.
무엇을 창피하게 생각해야 할까? 하나님을 믿는 자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루에도 수천 번씩,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자신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게 마땅하다. 허울뿐인 이름이 창피한 일을 겪는 것에 집착하면, 진짜 창피해야 하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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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당신의 몸 안에 흐르고 있지만 당신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듯이, 창조성도 당신의 정신 속에 존재하지만 당신이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P24

우리의 삶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창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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