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의 전설 외전 이지은 전설 그림책
이지은 지음 / 쿵프레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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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의 전설 외전](이지은, 쿵프레스)
-스포일러 주의

맨 앞에 호랑이가 [태양 왕 수바]를 읽고 오면 좋다고 말한다. 이 호랑이는 [친구의 전설]부터 쭉 등장하던 호랑이다. 팥 할멈이 수바를 만나기 전에 호랑이를 먼저 만났다고 한다. 이 호랑이는 [친구의 전설] 때도 귀차니즘의 끝판왕이었는데, 여기서도 귀차니즘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수바를 도와주면 귀찮은 일 생길까봐 팥 할멈한테 넘긴다. 그리고 먹을 걸 엄청 밝힌다. 심지어 맛 없는 건 안 먹는다.
이후 팥 할멈이 수바를 도와주는 내용은 [태양 왕 수바]에 있고, 그 대가로 받은 수박 밭을 호랑이가 먼저 발견한다. 그 뒤로 벌어진 일은? 낄낄낄. 어부지리다. 일은 팥 할멈이 하고, 대가는 호랑이가 차지했다.ㅋㅋㅋㅋㅋ 팥 할멈 입장에서는 엄청 분통 터지는 일이었겠지만..
맨 뒤에 ‘눈 호랑이 길 찾기‘라는 제목으로 미로찾기가 있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우리 딸도 좋아했다. 빌려온 책이라 그릴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내가 읽은 이지은 작가님 책
✔️친구의 전설
✔️이파라파 냐무냐무
✔️팥빙수의 전설
✔️태양 왕 수바
✔️츠츠츠츠
✔️수박의 전설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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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츠츠 사계절 그림책
이지은 지음 / 사계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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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츠츠](이지은, 사계절)
-스포일러 주의

🔑키워드: 가족, 오해

이지은 작가님 책이라서 집어든 책이다.
이 책은 [이파라파 냐무냐무]를 읽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 거기서 마시멜롱들이랑 털숭숭이가 친해지기 때문이다. 안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분명, 마시멜롱들이 털숭숭이를 배웅했는데, 마시멜롱 몇이 털숭숭이 입 안에 들어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안 듣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일을 했을 때가 생각난다. 마시멜롱들은 집에 가고 싶은데, 털숭숭이는 자기가 사는 섬에 도착해버렸고, 기절했다. 그때 츠츠츠츠~ 하면서 나타난 커다란 애벌레(?)가 있었다. 이 애벌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듬이 한쪽이 찢겨져 있다. 마시멜롱들은 털숭숭이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이 애벌레가 내는 소리만 듣고 오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털숭숭이를 만날 때의 경험이 떠올랐는지 조금 지켜본다. 그러다 대형 애벌레가 털숭숭이를 잡아먹으려는 것 같자, 마시멜롱들은 털숭숭이를 지키기 위해 대형 애벌레와 싸운다. 애벌레가 조그만 마시멜롱들을 이길 수 없었을까? 애벌레는 두더지처럼 여기 저기 땅굴에서 솟아올랐다 숨었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도망간다. 마시멜롱들도 싸우느라 지쳐서 자는데 갑자기 오이 폭탄이 날아온다. 마시멜롱들과 털숭숭이가 동시에 깼다. 털숭숭이와 애벌레는 무슨 관계일까?(힌트. 키워드)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대형 애벌레는 뭐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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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 -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 수업
조혜진 그림, 신현주 글, 김선욱 감수, 마이클 샌델 원작 / 미래엔아이세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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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신현주/신현주 옮김, 미래엔아이세움)
-[10대를 위한 행복한 독서토론]15

마이클 샌델 책은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처음 접했다. 그 책 읽고 많은 부분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10대를 위한‘이라는 말이 붙어서인지 매우 쉽게 기술되어 있다. 책의 편집 방향을 보니, 옮긴이의 역할이 엄청 컸을 거로 예상한다.

단순하게 ‘정의‘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성적인 부분을 떠올렸는데, 그렇게 쉽게 딱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정의‘를 정의하는 변천사가 잘 나타나 있는데, 처음 시작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양적 공리주의다. 이걸 보고 처음에 의아했다. 정의에 행복이 개입되다니.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이 행복을 우상으로 삼는 게 최근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정의에는 이성만 개입하는 것이 아님도.
그 다음으로 질적 공리주의(🏷가치가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할 수 있고 행복의 질을 따질 수 있다.(52쪽))가 등장한다. 이어 자유지상주의(🏷개인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서 존중받을 가치를 지니고 있다.(60쪽)), 칸트의 정언명령(🏷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이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가려 주는 원칙(119쪽)), 정의론, 평등론, 아리스토텔레스와 공동체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의론을 보여준다.

결국은 공동체에서의 행복 추구 방법이 ‘정의‘의 정의의 셈인데, 여기서 평등과 계약이 파생되어 나온다. 일단은 이렇게 정리하는 데 의의를 둔다.

나는 도대체 정의를 뭐라고 생각한 걸까?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라 생각했는데, 행복이 정의의 근본이 된다면, 행복이 무엇인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변할 수 있으므로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요즘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 옳고 그름의 기준 또한 사라지고 있으니...

🏷사회적인 논쟁에서 즉, 정의와 권리에 대한 논의에서 도덕적, 종교적 가치를 배제하고 판단하기는 힘들어요. 나아가 정의를 논의할 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할 수 없고,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정의를 생각할 때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요?(203쪽)

어쨌거나, 저자의 결론은 다음 내용으로 확실해지겠다. 서로 존중.

🏷정치와 법이 도덕적, 종교적 으로
중립을 지키는 건 불가능하기에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는 정치를 해야 해요.
공동체의 삶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가야 해요.
도덕과 가치를 고민하는 정치는 도덕을 회피하는 정치보다
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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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40
존 클라센 그림, 맥 버넷 글, 서남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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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맥 바넷/존 클라센 그림/서남 옮김, 시공주니어)
-크공 1-5기 3rd.
-2015 칼데콧 상

📌줌 모임 전&중 생각
🖍그림 살피기
1️⃣처음 그림과 끝 그림이 다르다.
📍풍향계(닭, 오리)의 방향
📍화분의 꽃 종류(빨간 튤립, 파란 꽃)
📍고양이 목걸이 색(빨강, 파랑)
📍뜰에 심긴 나무(사과, 배)
📍깨끗한 샘과 데이브, 더러운 샘과 데이브(삽과 개조차도)
👉붉은 색 계열과 푸른 색 계열
2️⃣개는 보석의 위치를 알고 있다. 그림마다 개의 눈이 보석을 향해 있다.

🏷˝언제까지 파야 해?˝ 샘이 물었어요.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아낼 때까지 파야 해.
그게 우리의 사명이야.˝
데이브가 대답했어요.

🤔내 사명은 무엇일까?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아내지 못해서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함께 팠다는 것.
혼자 파지 않았기에 긴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겠다.

목사님이, 다니카와 슌타로의 [구덩이]에는 땅을 파고 메꾸는 행위가 의미 있었다고 하시면서, 땅을 계속 파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물으셨다. 샘과 데이브에게 사명의 의미는, 같은 것을 같이 하는 것,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이 아니었나 싶다.
사명에 관한 질문, ‘누구와 하고 있지?‘, ‘누가 하라고 했지?‘도 생각해보아야겠고, ‘사명은 목표가 아니다‘는 말씀도 하셨던 것 같은데, 이건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나는 땅속 깊숙한 곳까지 팠을까?
깊이 파지도 않았으면서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계속 밑으로만 파서 보석을 발견했다면?
보석을 비껴 갈 때마다 안타깝기도 했는데, 보석을 발견한 후의 삶을 상상하니 보석을 발견하는 것이 꼭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질문은 모임 중 목사님이 던지신 질문 중에도 있었다. 원래 기획의도는 다이아몬드 자리에 해골이 있었다고 한다. 해골이 있었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엄청 깜짝 놀랐을 것 같고, 땅을 더 파려는 시도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함께 있는 사람이 더 파자고 한다면 팠을 것 같기도 하다.

🤔아래로 떨어진 후 한다는 말이,

🏷부드러운 흙 위에 털썩 내려앉았지요.
˝음,˝ 샘이 말했어요.
˝음.˝ 데이브가 말했어요.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둘은 동시에 말했어요.

🤔가치관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축복.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이 같은 두 사람.

🤔마지막의 집은 누구의 집일까?
베이스캠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과 끝의 집이 다르지만, 결국 샘과 데이브가 나오고, 들어가는 집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쉼터, 쉴 만한 물가의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처음 나올 때는 붉은색 계열의 열정, 쉬러 들어갈 때는 푸른색 계열의 차분함, 평안함.

📌줌 모임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사명이 달라진다.

📚내 은사는 무엇일까? 사랑과 관계없이 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을 터다. 결국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

📚나의 존재 가치는?
다른 사람의 평가와 나의 업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와 그리스도의 업적에 있는 것이라고 답했던 것 같은데, 여기에도 내가 하는 일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건지 질문을 던지셨다. 뭐라고 답했더라..? 아직 생각 정리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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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지음, 서제인 옮김, 정희진 해설 / 엘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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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Horn, Dara/서제인 옮김, 엘리)

이 책은 굉장히 읽기 힘들고, 진도가 안 나가는 책이었다.-서평도 진도가 안 나간다. 말이 어려웠나 하면 그건 아니고, 번역상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평소에 에세이를 읽기 힘들어하고, 이 책이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져서 힘들게 느껴진 건지도 모르겠다.

죽은 유태인은 관심이 많지만, 살아 있는 유태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누군가가 고통을 받고 죽어야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그토록 신경 쓰는 게 무슨 소용인가요? (21쪽)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죽은 유대인에 대한 대중의 집착이 겉으로는 가장 상냥하고 시민 정신이 투철해 보이는 형태를 띠고 있을 때조차 인간 존엄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많은 방식을 풀어내고, 기록하고, 묘사하고, 똑똑히 말할 것이다.(24쪽)

이건 비단 유태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인에 대해서도 누군가 글을 쓴다면, 비슷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흑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유태인의 죽음만큼이나 관심이 없는 걸까. 하긴, 유태인 학살 현장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중국에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저자는 유태인이다. 유태교의 전통에 매우 익숙하다. 그런 그녀가 유태인의 학살 현장을 보존한 곳마다 찾아다니며 관람하고, 탐탁치 않게 여긴다. 유태인들도, 스스로를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타협과 순응이라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게임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면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라는 가장 큰 상을 타내기 위해 아주 조금씩 자신을 포기했다.
스포일러 주의: 그들은 그 게임에서 졌다.(107쪽)

유태인들은 더 나은 곳을 향해 도망치지만, 그곳에서도 유태인들은 오래지 않아 고통받는 신세로 전락한다.

🏷당신이나 당신의 부모님은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비용을 들여가며, 자신과 자녀들을 바로 그런 모욕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른 장소들에서 도망쳐 왔다. 그런데 이제 이 새로운 장소 또한 중요한 방식들에 있어, 그리고 삶을 제한하는 방식들에 있어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몸에 스며들어 영혼이 뒤흔들리는 방식으로 고통스럽게 발견해가는 것이다. 당신은 이런 새롭고 충격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게 될 뿐 아니라, 그 현실에 굴복하고자 하는 동기에 대해 법정에서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혹은 더 나쁘게도, 당신은 당신 자신의 거짓말을 믿기까지 하는데, 현실을 인정하는 일이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16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이는 그 장소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과거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고. 어떻게 보면 정신승리인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과거의 의미를 바꿀 수는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창조적인 행동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용기와 사랑에서 나오는 행동이기도 하다. 엘리스섬에서 변경된 이름들에 관한 그 불멸의 전설을 우리에게 선사한 사람들에게 내가 할 말은 딱 하나뿐이다. 감사합니다.(170쪽)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기 직전에 저명한 유태인 예술가들을 빼돌렸던 미국인에 대한 기록도 있다. 그런데, 유태인들은 구조된 후 그 미국인을 만나기 꺼려한다. 작가는 구조된 자의 수치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빚지는 마음이 싫었던 걸까.

시오니즘으로 이스라엘에 돌아가게 된 이야기도 있다. 여기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그 시절, 이스라엘에서 다시 나온 사람도 많다고 했다.

작가는 유태인 학살 보존 현장이 ‘인체의 신비‘ 전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후술되어 있지만, 산 자도 모욕을 당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마치 일본에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현장이 재현된 곳이 있다면 작가와 비슷한 생각을 했으려나.

🏷˝이 여성은 가정주부였을 수도, 공장 노동자였을 수도, 음악가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 말들이 주는 인상은 파악하기 어렵지 않다. 이 여성은 당신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여성을 당신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그 여성이 실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해야 한다. 이런 사색의 말들은 사람을 은유로 바꿔버리는데, 이것이 목표라는 사실이 내게는 서서히 분명해진다. 모든 것을 완전히 제대로 해냄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회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 사업에 밀어 넣어진 익명의 죽은 사람들로 가득했던 <인체의 신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291쪽)

🏷같은 시민으로서 살아 있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나 차별, 고정관념을 사회정의의 의제로 삼는 대신, 죽은 유대인을 찬양함으로써 ‘우리는 안전해진다‘. 이것이 사회적 약자의 죽음을 숭배함으로써, 죽은 자와 산 자를 모두 매장하는 방식이다.(355쪽-해설)

그럼에도 유태인들은 틈을 찾아 나간다. 회복을 위한 길을 제시한다. 삶의 사소한 부분을 쌓아 올림으로써, 상처를 싸맨다.

🏷언제, 어떻게 어떤 기도를 암송할 것인지를 두고 몹시 흥분해 논쟁을 하는 현자들은 생존자들과 생존자의 후예들이며, 파괴된 세계의 자취다. 그들은 마치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장 조그만 기억에까지 집착하는 애도자들처럼 하느님과의 그 잃어버린 관계의 모든 마지막 세부사항까지 기억하기 위해 속을 태운다. 누군가는 이런 기억은 결국에는 사라질 거라고, 사람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거라고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반대되는 일이 일어난다. 기억의 과정이 일단 중요해지면, 그것의 세부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적된다. 왜냐하면 기억 자체가 살아 있는 것이 되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는 다음 세대 사람들 모두에 의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340쪽)

기억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사회의 고통과 아픔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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