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찾은 딥스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손정수 옮김 / 산수야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우리 학교에 딥스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사람 행동이 이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교수님이 잘랐다는(?) 말이 있다. 왜 딥스일까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기인된 모양이다.

이 책은 인간주의 상담하고 흡사했다. 인간주의 상담에서는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에 가치 판단 하지 않고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게 하고 긍정적 감정을 표출하게 한다. 엑슬린이 사용하는 놀이치료도 마찬가지 방법인 것 같았다. 상징적 놀이를 통해서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게 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표출했다. 딥스는 자폐아였다. 그러나 놀이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딥스는 자아를 찾아갔다. 엑슬린은 감정을 표현하게 했다.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 간에. 또한, 딥스의 감정을 말로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책임감과 자율성, 표현력을 길러 주었다. 딥스 스스로 할 수 있음을 계속 강조했다. 그래서 처음에 딥스가 자신을 가리켜 "너" 혹은 "딥스"라고 하던 데에서 점차 "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사랑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 사랑하기가 어려운가 보다. 그 말이 실제적으로 와닿지는 않지만, 성경에서도 이르기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사랑해야 자신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놀이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딥스의 풍부한 어휘력이 정말 놀라웠다. 딥스가 하는 놀이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엑슬린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나도 이런 거(상담이나 정신치료) 잘 하고 싶은데.. 갈 길이 멀다. 얼른 배워야겠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도와줘야만 하는 아이들을.

책에서 생각해야 할 구절이 있어서 뽑았다.

사람들과 사귀는 일에는 두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는데 하나는 이 세상에는 누구든지 자기 자신만큼 자신의 내적 세계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 또 하나는 책임감 있는 자유의식은 그 사람의 마음 속으로부터 자라고 발달한다는 것.

이건 딥스뿐만 아니라 나도 기억해야 할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다음의 말은 나를 조금 아프게 했다. 나도 거부와 의심과 시험에 당한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린이가 능력의 과시를 강요당하면 그 결과는 참담할 수 있다. 어린이는 사랑과 수용과 이해를 필요로 하므로 끊임없는 거부와 의심과 시험에 직면하면 황폐해 버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책 두 권이 있다.

".. 나는 아직 하나님을 본 적이 없어요. 집이 이렇게 커야 한다면, 하나님은 굉장히 크신가 봐요. .."

"안녕히 계세요, 하나님. 안녕히 계세요."

이 글을 봤을 때 [내 영혼의 선생님]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 딥스는 거의 회복의 단계인 것이다.

생각난 또 한 권의 책은 [아버지, 이제는 사랑할 수 있어요]라는 책이다. 감정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책이었다. 읽은 책에서 딥스가 겪는 감정의 성장을 볼 수 있었다. 감정도 자라는 것. 그것은 확실하다.

나는 아이들의 감정을 찾아주고 싶다. 난 나의 감정을 너무 늦게 찾았다. 그렇지만 나의 감정을 나 스스로 발견하고 나타낼 수 있음이 행복했다. 딥스가 후에 느낀 감정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아이들이 가정 속에서 억압받은 감정을 학교에서는 나타내게 하고 싶다. 글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어떤 영역을 통해서든.

이 책을 통해 다시 상담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임용을 위해서 공부했던 상담 공부가 아니라 조금 더 깊이 있고 넓은 마음으로 상담 공부를 하고 싶다. 사람의 마음에 이렇게 관심이 가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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