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토끼 + 슈퍼 거북 세트 - 전2권 (리커버) 그림책이 참 좋아
유설화 지음 / 책읽는곰 / 202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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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토끼](유설화, 책읽는 곰) + [슈퍼 거북](유설화, 책 읽는 곰)
-크공 4기 3rd.
-재독

📌줌 모임 전 생각
📖[슈퍼 토끼]
🤔가장 빨리 달린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다가, 경기 한 방에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
‘내가 제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그 경기 한 번에 도시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치중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그 경기를 기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달리기의 ‘달‘자만 들어도 힘들어하고, 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결국 못 달리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의도하지 않게 달리기를 하면서, 달리기에서 1등하는 것보다 달리기 자체만으로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된다.

📖[슈퍼 거북]
🤔경기에서 이기고,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 빨리 달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연습한다. 얼마나 연습했으면 두 번째 경기에서 재빨라보다 빨리 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재빨라에게 지면서 잘 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라지고 행복해졌다.

빨랐던 사람이 느려지기 쉬울까, 느렸던 사람이 빨라지기 쉬울까.

개인적으로는 슈퍼 토끼보다 슈퍼 거북에게 더 마음이 갔다. 빨랐던 사람이 느려지는 것보다, 느렸던 사람이 빨라지는 게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슈퍼 토끼는 슈퍼 거북과 달리 다른 사람이 한 말에 상처를 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분에 못 이겨서 달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멘탈 관리를 했어야 했다.

📌줌 모임
📚슬픔의 수용 5단계
재빨라는 자신이 꾸물이한테 졌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 극단적으로까지 자신을 몰아갔다. 자기 수용이 없었다. 점점 자신의 생각이 부정적으로 확장되었고, 경기 한 번에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정도로 자기 관리, 멘탈 관리를 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재빨라의 모습은 내 모습과 너무 닮아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반주를 30년이나 했는데 틀리게 치면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때가 여전히 있다. 그리고 자기 관리를 잘하려고 노력한다. 전날 일찍 자거나, 연습을 충분히 하거나, 이런 자기 관리가 없으면 반주에서 틀리는 건 당연해지는 거다. 그리고 틀렸을 때는 빨리 멘탈 관리를 해야 한다. 아니면 연이어 틀리게 되니까. 30년 쳐도 자기 관리와 멘탈 관리는 꾸준히 해야 한다.

📚안 달리겠다고 마음 먹는 재빨라
늘 1등만 했는데 못할 것 같으면 하지 말자, 이제 와서 잘 달리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달리기의 ‘달‘자에도 반응하는 자신이 싫어서 안 달리겠다고 마음 먹은 것 아닐까.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안 달리기 위해 느리게 사는 방법을 체화할 힘으로 자신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데 썼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달리기 대회의 슈퍼 너구리
처음에는 진지했던 너구리의 표정이, 뒷장에서는 흐뭇한 미소로 바뀐다. 처음에는 ‘니가 안 뛰면 내가 잘 뛰어서 슈퍼 너구리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재빨라가 빨리 달리는 모습을 보고 슈퍼 토끼의 팬으로써 안심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슈퍼 토끼의 팬이었던 너구리가 재빨라에게 직접 응원의 말을 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구리 같은 재빨라 팬이 몇 명만 있었더라도 그렇게 멘탈이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경기 한 번에 사람들의 반응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는 것도 희화적이었다.

📚너구리가 들고 있었던 ‘느림보 거북‘ 팻말
너구리는 토끼가 이겼을 때도 ‘느림보 거북‘이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왜일까? ‘슈퍼 토끼‘라는 팻말을 들었어도 됐을 텐데.
너구리가 슈퍼 거북을 계속 따라다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다. 슈퍼 토끼의 팬이면 토끼를 따라다니면서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닐까? 왜 거북이를 따라다녔을까? 멘탈을 흔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삶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것: 성내기, 듣기, 말하기
다른 사람의 삶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저학년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주어진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주어진 시간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조급해진다. 특히 마지막 시간이 그렇다. 주어진 시간 내에 해결을 못해서 늦게 하교하면 민원이 들어올 것 같다는 부담감이 있다. 요즘은 그 다음날까지 시키거나, 30분 내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으면 다 하고 가라고 한다.
아이가 어린이집 가야 하는데 꾸물꾸물거리고 있으면 화가 날 때가 있다. 어린아이의 속도는 어른이 정하면 따라오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성향인지 아닌지 구분이 필요한 것 같다. 게으름인지 느린 속도인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모임에서는 말하지 않았는데,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것도 삶의 속도를 받아들이는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조금 더 인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생기는 게 싫어하는 것 같다. 민원이 들어와서 학부모와의 관계가 틀어질 것 같은 두려움, 늦게 챙겨서 어린이집 기사 집사님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에 대한 불편함, 여러 번 말을 해야 듣는 습관을 내가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다음 학년 선생님이 불편해하고 내가 비난받을 것 같다는 두려움. 적다 보니까 깨달은 게, 내가 비난받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큰 것 같다. 이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학교의 불편한 상황이나, 공정하지 못하게 대하는 것 같은 사람의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속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음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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