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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유치원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당근 유치원](안녕달, 창비)
-스포일러 주의
담임 선생님인 곰은 제일 크게, 원장 선생님 다람쥐는 제일 작게 그렸다. 이것도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이 큰 건 이해가 간다. 심지어 30대에도, 딱 40이신 부장님이 엄청 크고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 나는 그 부장님보다 두 살이나 더 먹었지만, 그 부장님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마흔이 되면 다 가질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말썽꾸러기 토끼는 다른 토끼와 달리 빨간색이다. 보기만 해도 흥분 잘하고 화 잘 낼 것 같다. 빨간 토끼는 선생님과 적응하는 과정에 있어서 선생님을 자기 식대로 해석한다.-그런데 이건 어른도 다 그렇지 않나. 한 가지 사실이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른 사실이 된다([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이 생각난다. 사실과 가치를 나누던 그 통찰력이 떠오른다.). 이 토끼는 선생님을 ‘목소리만 크고 힘만 세다‘고 해석했다.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선생님이 빨간 토끼 편을 들어주자, 금세 선생님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여기서는 [공감의 배신]이 떠오른다.). ‘우리 선생님은 예쁘다. 목소리도 크고 힘도 세다.‘로 바뀌었다. 힘만 센 것과 힘도 센 것은 참 다르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는데, 가고 싶어 한다. 선생님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한다.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음, 여기서 궁금한 게 생긴다. 토끼의 성별은 없다고 간주한 걸까. 아빠랑도, 엄마랑도, 할아버지랑도 결혼하겠다고 하는 걸 보면... 내가 너무 나갔나.
당근 유치원에 학생은 모두 토끼인데, 정작 선생님들은 토끼가 없다. 왜 그럴까.
학예회(당근 발표회) 준비를 마치고 늦은 시간 집으로 가는 동안 곰 선생님이 피식한다. 빨간 토끼가 선생님하고 결혼하겠다고 떼쓰던 모습이 생각나서 아닐까.
유치원, 어린이집 선생님들, 고생 많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