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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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정보라, 다산책방)
-스포일러 주의

작년 여름에 이 작가님의 [저주토끼]를 집어들어 읽은 적이 있다. [저주토끼]는 여러 개의 단편이 묶여 있는 책이다. 당시 워낙 유명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도서관에서 읽었지만) 무서워서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장르를 잘 읽지 않다보니, 자극적이기도 하고 충격적이어서 더 이상 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퇴마록]을 읽을 때의 소름끼치고 서늘한 느낌을 느낄 것 같아서다. [저주토끼] 내용이 지금도 떠오른다. [저주토끼]가 부커상 최종 후보 도서로 선정된 건 인상적으로 느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까.

[저주토끼]의 기억을 잊고, 정보라라는 이름에 이끌려 책을 골랐다. 읽을수록 [저주토끼]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무서웠던 건 아니고, 신체를 하나하나 해부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다. ‘1부 기억: 해마체-2부 온도: 체성감각 영역-3부 정서: 변연계-4부 논리와 판단: 전두엽-5부 깨달음: 시상하부-6부 삶: 온몸으로‘로 이어지는 차례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뇌에서 고통을 인식하여 어떻게 온몸으로 전달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인간의 고통이 궁금했던 외계생명체가 종교를 창시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그 외계생명체가 여러 가정을 파탄내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걸 외계생명체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결국 선택의 몫은 각자에게 있었으므로. 판단력이 부족한 나이의 아이들에게까지 선택의 몫을 지우는 게 옳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통의 탐색에 매몰돼 결국 과거의 고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던 그 고통으로 돌아가 결국 다시 그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던져야 할 질문들을 모두 던지고 나면 같은 질문에 더 이상 머무르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302쪽)

작가는 고통을 얼마나 많이 탐색했던 걸까, 라는 생각 하나. 고통스러운 과거에 발목을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우울증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 경험이 떠올랐다. 내가 앞으로 발을 내딛게 된 건 던져야 할 질문을 다 던졌기 때문이려나.

아마도 작가는, 고통에 대한 답을 이렇게 내린 게 아닌가 싶었다.

-어째서 너의 삶에는 죽음밖에 없는 거야?
태는 대답하고 싶었다. 자신의 삶에 죽음만이 가득한 건 아니라고,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은 믿음-삶에 대한 믿음, 고통에 대한 믿음, 의미에 대한 믿음이라고,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고통이며 자신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게서 그 고통의 의미를 찾았다고.(315쪽)

MBTI의 세 번째 알파벳이 T인 사람들이 이렇게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신체가 없어도, 신체에 한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어도 고통을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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