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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최은영, 문학동네)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단편소설집이었다. 이 소설들의 화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 혹은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는 작가(글쓴이)의 목소리가 실려 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첫 소설에, 지금 내 나이대라면 알 만한 용산 참사가 등장한다. 뉴스에서 스치듯이 봤던 사건이었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는 사건이다. 이 소설로 사건을 들추어 보았다.
(이 소설에서)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이 너무 극과 극이라, 당시 용산에 살았던 주인공은 담백한 글쓰기, 안전한 글쓰기를 선택한다.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생기는 사건, 사고에 점차 냉담해지는 사람들을 본다. 작가님은 우리나라의 소외된 사람들에 집중했고, 그 상황을 글쓰기와 연결지었다. 나는, 사건 사고에 무딘 사람들에 집중하게 된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너무 막 말하는 건 아닌지.
어제, 아파트 안에서 택배차에 깔려 죽은 아이가 있었다. 다들 아이 부모를 탓한다. 우리나라에 판사가 참 많다고 생각했다. 옳고 그름으로 그 사람들을 비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은 뭘까. 자신의 옳음을 강화하는 것 외에.
옳고 그름으로 대해야 하는 일과 공감으로 대해야 하는 일이 뒤바뀌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삶의 많은 부분이 정치와 연관 있어서 그런가.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무조건 그른 것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 10주년의 주된 모토는 ‘기억‘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맥을 같이 하는 글이 실려 있다.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말을.‘(33쪽)
하지만 내가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써도 결국 글만 쓰는 사람이 될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79~80쪽)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 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들쑤셔봤자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고.(150쪽)
작년 서이초 사건을 겪으면서, 학교의 불합리한 일에 더이상 입다물고 있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절대 좋은 게 좋은 게 될 리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중에도, 이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갈등이 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하신 말씀에 어긋나는 건 아닐까.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사람이 죽잖아요, 라고 조용히 소리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