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아이 - 2021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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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이꽃님, 우리학교)

제목부터 매우 자극적이다. 문득, 표지의 두 소녀가 누군지 궁금하다. 누가 주연이고, 누가 서은일까. 혹은, 마지막에 등장한 제3의 인물인가.

다 읽는 데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뒷이야기가 너무 너무 궁금해서 도저히 중간에 끊고 내일 읽어야지, 할 수 없는 책이었다. 이런 책은 [백파선]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던 건, 이 책에 깔려 있는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내게 크게 와닿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법원에 간 적도 있고, 변호사를 선임했던 적도 있어서, 주연이가 겪는 일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내가 그 일을 겪으며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내 말을, 나를 안 믿어준다는 거였다. 상대방 말이 거짓인데,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너무 답답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경찰에서도 내가 가해자인 양 굴었고, 지방법원에서는 판사도 나를 안 믿어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황했다. 결심 공판에 안 갔던 건, 그 사람들이 나를 해할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한켠에는 판사가 나를 믿지 않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따라 살다 보면 결국 자신을 잃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한대요.˝(41쪽) 같은 말을 계속 듣다 보면, ˝너도 네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니?˝에 그런 것 같다고 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딱 그랬는데. 난 분명히 안 했는데, 상대방 측에서 계속 내가 했다고 하니까 진짜 내가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마치, 실험실에서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는 사람들 아홉만 있으면 실험대상자도 2가 아니라고 답한다는 실험처럼.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믿으면 그게 사실이 되는 거야. 팩트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65쪽)
진실이요? 백번 천번도 넘게 말했습니다. 전 아니라고요.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세상은 진실을 듣는 게 아니구나. 세상은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구나.(142쪽)

이게 너무 맞는 말 같아서 씁쓸했다. 사람들은 사실을 보지 않는다. 자기가 믿고 싶은 사실만 본다. 내가 항상 인용하는 최현우 마술사의 말을 또 인용한다. ˝보는 것을 믿는 것 같지만, 믿는 것을 본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 11:1). 사람들이 믿고 싶은 사실을 보도하는, 지금처럼 자극적인 내용만 보도하는 언론의 폐해도 너무 잘 보여줘서 체증이 좀 내려가는 것 같았다.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지.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을 내뱉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상처 입은 엄마는 찢어진 가슴을 하염없이 치면서 자신을 탓할 것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며 지내 온 착한 딸에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미안할 것이다.(83쪽)

댓글에서 많이 보는 글이다. 평소,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보고 생각 없이 넘겼는데, 무의식적으로 이 글에 동의했던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그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을 따라 똑같이 손가락질했던 건 아닐까. 가난하면 애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을, 제3자가 해도 괜찮은 걸까.

그래서 주연을 가해자로, 아직 판결이 나지도 않은 사건의 범인으로 정해 버렸던 걸까. 언제부터 변호사가 유무죄를 판단했지? 변호사는 믿어 주는 사람이 아니던가?(153쪽)

변호사나 판사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더 자신의 경험에 매몰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얼마 살지 않았지만, 지금껏 살아보니, 내가 겪은 경험으로 정신적 충격을 입으면, 그 충격의 여파로 각도가 휘어진 렌즈를 쓰게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억울함을 매우 크게 느끼는 것도, 법원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지릿한 것도, 다 같은 이유에서일 거다. 아무리 흐릿해지도록 닳고 닳을 때까지 말한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겪지 않은 때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다 판단한다. 기독교인으로, 판단은 하나님께만 맡기길 매순간 기도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 두 개의 반전도 너무 충격이었다. 그 아이는 거짓 증언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건지. 오히려 주연이가 순수하게 보일 정도로 등장인물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했다. 주연이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잘못과 실수를 아무에게도 수용받지 못한 주연이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겠다. 기억을 되찾더라도 증거는 안 될 텐데, 얼마나 답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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