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우리 아기는 왜 이 책을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림책이라 공포물은 아니고, 나름의 해피엔딩이다. 더 어릴 때는 계몽사 복간 동화 [유령의 집]을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아빠가 으스스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틈만 나면 아빠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였다면 그 책을 싫어했을 것 같다. 으스스한 분위기가 싫어서(문득 생각해보니 부모님이 책을 읽어준 기억이 없다.). 영화 중에서도 공포물은 못 보는데(자극적인 잔상이 오래가는 편이다.), 대학원 교수님이 엄마가 무서우면 귀신을 못 본다고 그랬다.
아무튼, 아기한테 왜 좋은지 물어보니 [오싹오싹 팬티]보다 [오싹오싹 크레용]이 더 좋다고 말하는데 어떤 부분이 좋은지는 말을 못한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아기는 이 책의 속표지의 비밀도 발견했다. 앞의 속표지에서는 오싹오싹 팬티가 화난 표정이고, 뒤의 속표지에서는 행복한 표정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 책을 워낙 여러 번 읽어서 그런지 중간에 책이 끝나는 것 같은 부분에서도 뒷장에 더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하고, 팬티가 서랍장에 안 보여도 화장실에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한다. 다만, 재스퍼가 팬티를 중국으로 보내는 장면에서는 아직 국가 개념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미국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는 ‘다 큰 토끼라서‘이다. 아마 이 부분이 아기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다. 두 해 전부터인가 아기는 스스로를 언니라고 칭했다. 요즘은 ˝내가 다 크면 어떨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빨리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재스퍼는 처음에 오싹오싹 팬티를 무서워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팬티를 없애려고 하지만, 정작 오싹오싹 팬티가 없으니 그리워하고 다시 찾아온다. 다음날 속옷 가게에 가서 오싹오싹 팬티를 왕창 사온 후 자기 방에 만국기처럼 걸어놓은 장면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재스퍼도, 오싹오싹 팬티도 모두가 행복한 결말.
질문을 만들자면, 다 컸다고 생각하나요? 다 커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운 대상을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있나요? 내가 만약 재스퍼라면 오싹오싹 팬티를 다시 가져왔을까요? 정도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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