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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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막상스 페르민/임선기, 난다)

✒️네에주(NEIGE)

책 제목은 원어로 ‘NEIGE‘이다. 책을 읽으면서 ‘네에주‘라는 인물이 등장했을 때 책 제목을 떠올렸다. 눈(雪)이라는 뜻이겠거니 추측했고, 책을 다 읽은 후 파파고에서 프랑스어로 Neige는 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하이쿠

하이쿠는 일본의 문학 장르이다. 3행 17음절로 이루어진 짧은 시. 한 음절도 더할 수 없다.(8쪽)

하이쿠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 미우라 아야코의 [길은 여기에]를 읽으면서였던 것 같다. 한글로 번역하면서 17음절인지 어떤지 잘 알 수 없어 하이쿠의 매력을 잘 못 느끼게 되는 것 같아 아쉬운 점이 있긴 하다. 이 책에도 여러 하이쿠가 나오는데, 아무래도 느낌을 알기가 어렵다.
프랑스 작가인데 일본 문학을 잘 아는 것이 신기했다. 일본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는 게 흥미롭다. 서양 사람들이 느끼는 동양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주인공
책의 주인공은 유코 아키타다. 승려나 군인이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시인‘이 되겠다고 했다.

˝시는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11쪽)

이 아버지는 시를 쓰는 것은 업으로 삼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13년 전에 중학교 친구이자 동료교사였던 친구가 한 말이 지금도 떠오른다. ˝음악은 애인으로 남겨둬.˝ 나는 학교보다 음악을 더 좋아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그 친구가 했던 말과 유코의 아버지가 했던 말은 같은 맥락 아닐까. 나는 학교를 선택했지만, 유코는 달랐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11쪽)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 멋진 말이다.

처음에 유코라는 이름을 보고 주인공이 여자인 줄 알았다. ‘-코‘라는 이름은 주로 여자에게 붙인다고 했으니까. 네이버 지식백과에도 ‘유코‘는 일본 여성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주인공 이름을 일부러 남성 이름을 여성에, 여성 이름을 남성으로 지은 사강을 떠올리게 된다. 페르민도 그것을 노리고 일부러 주인공 이름을 여성 이름으로 지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했을까? 눈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서? 시인이라는 직업과 잘 어울려서(아버지는 시인을 직업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으니까)? 아니면 이 시대에는 이런 이름이 남자 이름으로 손색이 없었나?


✒️하나에 꽂히다

이 사람은 하나에 꽂힌 사람이다. 하이쿠에, 그리고 눈(雪)에. 눈이 오는 겨울에만 시를 썼다. 하지만 시의 색깔이 흰색이었다. 눈만 알았기 때문이다.

˝왜 눈인가?˝
˝눈은 시이고 서예이고 회화이며 춤이고 음악이기 때문이죠.˝
(중략)
˝자네가 시를 아는 것은 알겠네. 그런데 다른 예술들도 아는가? 서예와 회와와 춤과 음악을 아는가?˝
(중략)
˝저는 시인입니다. 시를 짓지요. 제가 시의 예술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예술들까지 알아야 할까요?˝
˝알아야 하네.˝(37쪽)

이 대화가 왠지 하나만 알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우물 안 개구리‘다.
8년 전에, 지인과의 대화 중에 들은 말이다. ‘넓이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깊이가 생기고, 깊이를 바라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넓이가 생긴다.‘ 깊이를 바라면 넓이가 생기냐는 내 질문에, ‘그 깊이를 파고 들어간 사람들은 결국 다른 분야의 깊이와 만나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유코는 깊이는 알아도 넓이를 바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대화가 넓이를 바라게 되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8년 전 그 대화에서 나는 ‘다른 분야의 깊이와 만날 만큼 깊이 팠던 적은 없나 보다‘라고 말했다.


✒️배우려면 내가 가진 것을 내놓아야 한다

유코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인 소세키를 만난다. 색을 가르쳐 달라는 유코에게 소세키는 ˝내게 먼저 눈을 가르쳐주게나.˝(55쪽)라고 말한다. 배우려면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어려운 일

네에주는 줄타는 사람이었다. 마냥 줄이 좋아서 프랑스에서 일본까지 넘어온 여성 예술가.

그녀에게 가장 어려운 건 균형을 잡는 일도 공포를 누르는 일도 아니었다. 현기증으로 멈출 때마다 출렁이는 음악의 선을 걷는 일은 더욱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건 세상의 빛 속에서 나아갈 때 한송이 눈으로 변하지 않는 일이었다.(76쪽)

생각을 깨뜨린다. 범인이라면 누구나 ‘균형을 잡는 일‘이나 ‘공포를 누르는 일‘을 가장 어려워했을 거다. 한송이 눈으로 변하지 않는 일, 이것이 바로 요즘 말하는 ‘나다움‘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다움‘을 말하는 건, 그만큼 나다움이 어렵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송이 눈으로 변하면 나를 잃게 되겠지.


✒️다시, 하이쿠

이 책은 54개의 짧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마치 하이쿠 같다.

그것은 운명이었다.
한 걸음씩 내딛는 길.
생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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