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눈인가?" 시인이 물었다.
"눈은 시이고 서예이고 회화이며 춤이고 음악이기 때문이죠."
노인이 유코에게 다가와 열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다인가?"
"아닙니다. 눈은 그 이상입니다." - P37

"자네가 시를 아는 것은 알겠네. 그런데 그 다른 예술들도아는가? 서예와 회화와 춤과 음악을 아는가?"
유코는 답하지 못했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저는 시인입니다. 시를 짓지요. 제가 시의 예술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예술들까지 알아야 할까요?"
"알아야 하네.(중략)" - P37

유코를 구원한 것은 이미지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미지. 그것 역시 현실 저편에서 온 눈부신 것이었다. 그의 평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숭고한 이미지가 밤에 나타나그를 살렸다. - P42

"자네는 누구인가?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유코입니다. 눈의 시인입니다. 제 시들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절망적으로 흰색입니다. 선생님, 제게 색칠하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색을 가르쳐주십시오."
소세키 선생이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내게 먼저 눈을 가르쳐주게나." - P55

"색은 밖에 있지 않네. 색은 자신 속에 있네. 빛만이 밖에있네. 그래 무엇이 보이나?" 선생이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을 감으면 검기만 합니다.
선생님은 다르십니까?" - P56

"다르네." 소세키 선생이 대답했다. "내게는 아직도 개구리들의 푸른색과 하늘의 노란색이 보이네. 우리 중 누가 더장님인가?" - P57

무사 소세키를 구원한 것은 이미지었다. 그것 역시 현실저편에서 온 눈부신 것이었다. 머리 없는 사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온 것이 틀림없었다.  - P66

시작은 이러했다. 네에주는 어린 나이에 순회 서커스단에들어가게 된다. 사람들의 뜬눈을 꿈꾸게 할수 있다는 것에경탄했기 때문이다. - P71

그것은 운명이었다.
한 걸음씩 내딛는 길.
생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 P74

그녀에게 가장 어려운 건 균형을 잡는 일도 공포를 누르는 일도 아니었다. 현기증으로 멈출 때마다 출렁이는 음악의 선을 걷는 일은 더욱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건 세상의빛 속에서 나아갈 때 한송이 눈으로 변하지 않는 일이었다. - P76

소세키의 눈에 그녀는 한 편의 시였다. 한 폭의 그림이었고 서예였다. 춤이었고 음악이었다. 그녀는 네에주였다. 눈.예술의 모든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 P78

겨울이 왔다. 그리고 봄이 왔다. 아이는 빛의 황홀 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네에주는 행복했다. 한 손에는 소세키
의 사랑을 들고 있었다. 다른 한손에는 아이에게 주는 자신의 사랑을 들고 있었다. 그 깨지기 쉬운 평형봉은 행복의 선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 충분했다. - P80

물론 그림이 잃어버린 얼굴과 절대 예술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줄이었다. 네에주를 찾아주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그 예술을 선생은 훌륭하게 해냈다. - P88

가장 어두운 곳에서 선생은 흰빛을 그렸네. 순수함을 발견했네. 그리고 영혼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진정한 빛과 진정한 색들에영원히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으셨네. 선생은 사라진 여인의 얼굴에서 출발하여 절대적 예술에 이르셨네. 빛의 부재에서 출발하여 빛의 미세한 차이들을 그리시게 되었네. - P92

"그러네. 시인은, 진정한 시인은 줄타기 곡예사의 예술을지니고 있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의 줄을 한 단어 한단어 걸어가는 것일세. 시의 줄은 한 작품의 줄은, 한 이야기의 줄은 비단 종이에 누워 있지. 시를 쓴다는 건 한 걸음씩, 한 페이지씩, 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일세. 가장 어려운건 지상 위에 떠서, 언어의 줄 위에서, 필봉의 도움을 받으며 균형을 잡는 일이 아닐세. 가장 어려운 건 쉼표에서의 추락이나 마침표에서의 장애와 같이 순간적인 현기증을 주는것으로 중단되곤 하는 외길을 걷는 일이 아닐세. 시인에게가장 어려운 일은 시쓰기라는 줄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일일세. 삶의 매 순간을 꿈의 높이에서 사는 일, 상상의 줄에서 한순간도 내려오지 않는 일일세. 그런 언어의 곡예사가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세." - P100

인생의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었다. - P103

선생이 죽자 세상의 흰빛이 그를 덮었다.
그는 행복했다.
진심으로 - P110

종이 위에 단어들을 써가면서 그의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었다. 오로지 진정한 시만이 슬픔의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었다. 붓을 내려놓자 그의 심장은 다시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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