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공하는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에는 저항하는 한편, 우리는 스스로 성공했고 따라서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의 노력과 재능에 대해 사회체제가 부여하는보상이 아무리 크든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에는 환호하는 일은 놀랍지않다. - P109

(빌 클린턴은 종종 공정성 담론 밑에 생산성 담론을 깔고 말하곤 했다. "우리는 단 한 사람도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 P111

지난 40년간 능력과 타당한 자격에 대한 담론은 공적 담론의 중심에자리 잡았다. 이런 능력주의로의 전환이 갖는 일부 측면은 그 부정적인성격을 드러내 준다. 이 측면이란 첫째, 책임을 특히 강조함으로써 복지국가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관련 리스크 부담을 정부와 기업에서개인으로 옮기려는 태도다. 둘째 측면은 더 야심적이다. 이는 ‘사회적상승에 대한 언어적 포장‘이라 불릴 만한 표현들에서 나타난다. 열심히일하고 규칙대로 행동하면 누구나 자기 재능과 희망이 허용하는 한 사회적 상승을 할 수 있으리라는 약속 말이다.  - P111

1980년대와 1990년대, 사회적 책임은 개인에게 주어져야 마땅하다는 담론은 복지국가 관련 논쟁에서 두드러졌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동안 복지국가를 둘러싼 논쟁은 연대와 관련되었다. 다시 말해우리 시민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멋지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더 강력한 연대를 주장했고 다른 쪽에서는 보다 제한적이기를바랐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복지국가 관련 논쟁의 중점은 연대보다는 불우한 사람들이 자신의 불우함에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느냐‘로돌아갔다. 한 쪽에서는 개인 책임을 더 강하게 주장했고, 다른 쪽에서는 그보다 덜 책임지는 게 마땅하다 여겼다. - P112

이제 책임이란 "우리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한다는 책임이자, 그렇게 못할 경우 겪게 될 고난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게되었다. 복지국가는 이제 책임을 면해줄 방파제로서 충분하지 않으며,전보다 더욱 개인에게 책임을 물리고 있다. 잘못된 행동이 아닌, 운이나쁜 탓에 곤경에 놓인 사람에게만 복지 수혜자격을 제한하는 조치가대표적인 ‘각자 능력대로 대접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 P116

그러나 계층에 상관없이 트럼프 지지자들은 비지지자들에 비해 이런 명제들에 더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진보파의 사회적 상승 담론에 짜증을 냈는데, 그것은 그들이 능력주의를 배격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기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쪽으로 귀결되리라 보고 있었기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이었다. 그들은 그런 담론의 원칙에는 공감했고 각자의 능력에 대한 혹독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도받아들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에 동조해야 한다고 보았다. - P125

그것이 사회적 상승 담론의 포인트였다. 성공의 길에 놓인 장애물을모두 제거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성공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인종이나 출신 계층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 재능과노력이 허락하는 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회가 정말로평등하다면 꼭대기에 선 사람은 그 성공과 관련된 보상을 누릴 자격이충분하다는 것. 이것이 능력주의의 약속이었다. 더 많은 평등의 약속이 아니라, 더 많고 더 공정한 사회적 이동 가능성의 약속 말이다. 이는소득 사다리의 단 사이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서로 먼저 사다리에 오르려 경쟁하는 과정에서만 공정함을 추구할 뿐이다. 이런 정치 기획에 별 감흥이 없는 까닭은 쉽게 이해할 수있다. 더구나 한때 정의와 공동선에 열중했던 정당들이 그런 이야기나늘어놓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 P145

오바마도 이런 식으로 겉보기에는 초당파적이며 능력주의적인 사고방식과 발언 방식에 기댔다. 인종, 민족, 성 평등과 관련된 쟁점들에서 오바마는 유창하게 진짜배기의 도덕적 주장을 폈다. 그러나 외교정책이나 경제정책으로 넘어가면 마치 본능인 것처럼 ‘스마트하냐 우둔하나의 비이념적 언어를 사용했다. - P158

‘최고의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다. - P165

의회를 고학력자 계층의 전유물로 만들면 정부가 더 효과적인 방향으로 가기 힘들다. 대표성만 더 낮아질 뿐이다. 이로써 노동계급은 주류 정당에서 배제되며 특히 중도좌파 정당에서 그렇게 된다. 그에 따라정치판은 학력에 따라 양극화된다. 오늘날 정치판을 가르는 가장 깊은균열 중 하나가 바로 대졸자와 비대졸자 사이의 균열이다. - P167

이는 전문가들이 대답해야 할 과학적 질문들이 아니다. 권력, 도덕,권위, 신뢰에 대한 질문들이다. 바로 민주시민을 위한, 민주시민이 할 수 있는 질문들인 것이다. - P182

마이클 영은 누군가의 사회적 지위가 우연한 이유로 정해짐을 성찰하는 것이 꽤 득이 된다고 보았다. 덕분에 승자와 패자 모두 자기 인생은 자업자득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현행 계급질서를 마냥옹호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는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역설적인 효과를 준다. 직업과 기회가 능력에 따라 배분되더라도 불평등은 줄어들지않는다. 불평등 구조를 능력에 따라 재구축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재구축은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가졌다는 생각을 굳힌다. 그리고이런 생각은 부자와 빈자 사이의 격차를 더 벌려놓는다. - P192

영은 이렇게 관찰한다(잊지 말아야 할 것이 그는 2033년에 살면서 ‘관찰‘하듯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 특유의 문제 중 하나는일부 능력주의 구성원들이 스스로의 중요성에 취한 나머지 그들이 다스리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잊은 것이다." 또 그는 신랄한 투로 덧붙였다. "일부 능력주의자들의 경우 얼마나 안하무인인지,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조롱하곤 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2016년 유세때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두고 "한심한 족속들"이라고 말했던 걸 떠올려보자) - P194

이처럼 문제를 더 깊이 살펴보려면 도덕, 그리고 정치 프로젝트로서능력주의에 대한 두 가지 반론을 검토해야 한다. 하나는 정의에 대한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공과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반론은 설령 능력주의가 완전히 실현되었다고 해도, 그리하여 각자의 직업과 보수가 노력과 재능에 완전히 비례한다고 해도 그게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두 번째 반론은 만약 능력주의가 공정하다 해도 과연 그것이 좋은 사회일지 의문을 제기하는데,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과 불안을 자아낼 것이며 패자에게는 분노를 자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태도든 정신적 번영에는 해로우며 공동선 개념에는 치명적일 것이다. - P196197

먼저,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 능력주의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단지 부자의 자식과 빈자의 자식이 장기적으로, 능력에 근거하여 서로 자
‘리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볼 뿐이다. 오르거나 떨어지거나 모두 그들의 노력과 재능의 소관이다. 그 누구도 편견이나 특권에 따라 억지로아래로 떨어지거나 위로 올려질 수 없어야 한다. 능력주의에서 중요한건 ‘모두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다리의 단과 단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는 그 자체로는 능력주의의 반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능력주의적 경쟁에서 비롯된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있는가?‘ 능력주의 옹호론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모두가 공평한 조건에서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에서도승자와 패자는 나온다. 문제는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경주를 시작하느나 그리고 훈련, 교육, 영양 등등에 똑같이 접할 수 있느냐다. 그렇다면경쟁의 승자는 보상받을 만하다. 누군가가 다른 이보다 빨리 달렸다고 부정의하다고 볼 수는 없다. - P199

능력주의의 이상이 재능의 우연성을 외면함으로써, 또한 노력의 중요성을 과장함으로써 도덕적 흠을 갖는다면 과연 다른 어떤 정의 개념이 대안일 수 있는지를 따져볼 때다. 그리고 그런 개념에서는 어떤 식으로 자유와 자격 문제에 접근하는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 P204

하이에크는 "모두가 똑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해야 하며 똑같은 성공 전망을 가져야 한다"는생각에 반대했다. 그런 원칙은 "국가가 특정 개인의 전망이 타인의 전망과 똑같아지도록 만들기 위해 모든 조건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게"한다. 그것은 하이에크가 보기에 어이없는, "자유와 정반대되는 계획"이다.
- P205206

그러나 하이에크는 그런 식의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더 날카롭다. 사람들이 버는 돈이 각자의 자격과 비례한다는 생각 자체가 틀려먹었다고 한다.
하이에크는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가 가진 재능이 우연히사회에서 높은 가치를 쳐주는 재능인 것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며도덕적 문제도 아니다. 단지 행운의 결과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 P207

롤스는 "차등의 원칙은 ‘자연적 재능의 분배 상태가 공동 자산이며,그 분배에서 비롯되는 편익은 무엇이든 공동체적으로 향유되어야 한다‘는 합의를 나타낸다.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유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가 누구든 가장 불우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한에서 그 행운의 몫을 향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는 반드시 "우연한 배분이 가장 불운한 사람들에게 이롭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10

하이에크와 롤스 모두 정의의 기반으로서 능력이나 자격을 거부한다. 하이에크가 능력 차원에서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일을 부정한 것은‘재분배 요구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롤스가 능력이나 자격 차원에서 경제적 보상을 해주는 일을 부정한 것은 정반대의 정치적 입장.즉 ‘재분배 요구를 옹호하기 위해서였다. - P214

비록 롤스와 하이에크가 정치적으로 결이 다르더라도, 그들이 정의의 기반으로서 능력을 거부한 것은 두 가지 철학적인 고려에서 그들이함께함을 잘 보여준다. 하나는 다원적 사회에서 과연 어떤 미덕이나 인성의 성질이 보상받을 만한가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의 문제다. 하이에크는 "능력에 따라 보상한다는건, 실제로는 따질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보상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다른 이가 인식하고 동의하는 능력이 보다 높은 권력의 시각에서는능력이 아닐 수 있다." 능력을 인식할 때의 어려움은 더 심층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어떤 행동이 능력주의적이고 칭찬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데제 가치 외의 어떤 배분적 정의 기반이나 도덕적 능력 기준도 끝내 강압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위치가 도덕적 능력에 대한 관념에 기준하여 정해지는 사회는, 자유 사회의 정반대 사회다." - P214215

"사람은 자신의 정당한 몫을 받아야 한다.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하는 사람은 그 큰 기여에 비례하는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자격이 있다.그는 가령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잡스, 초베스트셀러 《해리 포터HarmyPotter> 시리즈의 작가인 조앤 롤링 등을 예로 든다. 그들이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걸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맨큐는 말한다.왜냐하면 그들의 고소득은 그들이 아이폰이나 매혹적인 모험 이야기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에 큰 기여를 한 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 P220

앞서 본 대로 하이에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닌생득적 능력에 따라 소득을 얻는다는 관념에 반대했다. 또한 그것은 수요와 공급의 우연성에 의존한다고도 했다. 내가 가진 재능이 희귀한지흔해빠졌는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시장에서 갖는 위치에 따라 나의 소득은 결정된다. 맨큐의 ‘정당한 자격‘ 이론은 그러한 우연성을 간과하고 있다. - P220

더 나아가 나이트는 이렇게 주장한다. "경제 시스템이 보상하는 욕구는 대체로 그 시스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 질서는 그 이전에 존재하는 수요를 단순히 충족시키지 않는다. "그 활동은 욕구 자체의 구성, 극적인 변형, 또는 순전한 창조에까지 미친다." - P223

경제 시스템은 소비자 수요를 만족시키는 효율성보다는 "그것이 창출하는 욕구로, (그리고) 대중에게서 그 욕구가 갖게 되는 성격 유형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욕구를 창출하는 일이 욕구를 충족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 P224225

정의에 대한 고려는능력과 미덕에 대한 고려보다 앞서야만 한다.이것이 롤스가 주장한 반능력주의론의 핵심이다. 정의로운 사회에서부유해지거나 명예로운 지위에 오른 사람은 그런 성공의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인정받는다. 그것이 그들의 탁월한 능력을 증명하기 때문이아니라, 오직 그런 혜택이 모든 이(그 사회의 가장 불우한 사람을 포함하는)에게 공정한 시스템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 P226

롤스는 경제적 보상에 능력주의적으로 접근하면 역시 옳음과 좋음의전도가 일어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자격에 보상하는 것을 첫번째 원칙으로 사회를 조직한다면, 도둑을 벌주기 위해 재산권 제도를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 P228

행운평등주의자는 개인의 선택 능력에 큰 도덕적 무게를 싣는다. 그들은 운수에 따른 결과를 보정하고자 하며 따라서 각 개인의 소득과 생애의 전망은 전적으로 그 자신의 선택에 달리게끔 하려 한다.
(중략)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자신의 어려운 처지가 스스로의 탓이 아님을 입증해야만 한다. 공적 부조의 자격 요건을 갖추려면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외부적 힘의 희생자란 걸 제시해야 하며,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야 한다. - P235

돈을 많이 버는데 성공하려면 생득적 지능은 큰 관건이 아니다. - P241

우리의 소비자 정체성과 생산자 정체성 사이를 조화시키는 일은 정치의 몫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올인하는 세계화 프로젝트는, 그리고소비자 복지 우선주의는 아웃소싱, 이민, 생산자 복지를 금전적 의미로만 풀이하는 방식이 가져오는 악영향에 눈을 감는다. 세계화를 주도하는 엘리트는 그것이 초래한 불평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일의 존엄성에 끼치는 악영향을 직시하지 못했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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