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만일 대학 학위가 좋은 직장과 사회적 평가의 전제조건이 된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부패시킨다. 이것이 능력주의의 어두운 이면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학위를 갖지 않은 이들의 사회적 기여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 교육을 적게 받은 이들이선출직 공무원으로 진입하는 문을 좁혀놓아 결국 포퓰리즘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그동안 미국 민주당이 가졌던 입장은 현재의 글로벌 경제질서 유지였다. 물가를 저렴하게 유지하려고 많은 일들을 저임금 국가로 아웃소싱했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저임금 노동자들이받는 타격을 줄이고 악화된 직업 전망을 개선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학위 상황을 개선하여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정책 기조를 잡아왔던 것이다. 고등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힐러리 클린턴까지 이어져온 이러한 정책 기조를 유지한 정치가들이 한가지 놓친 점은능력주의 중심 사회에 내재한 모욕insult의 감정이다.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김선욱) - P13

학력이 떨어지는 자들보다 ‘가장 뛰어나고 가장 똑똑한 자들‘이 정치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능력주의적 교만에 기초한 허구다. - P15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아니면 행운의 산물인가? 나의 노력은 나의 것이지만, 그런 노력은 패배자도 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재능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한 운이다.나의 노력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사회를 만난 것도 내가 시대를 잘만난 행운의 결과인 것이다. - P15

입시 문제에 사회가 목을 매는 현상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점점 불평등이 늘어난 데서 기원한다. - P34

공적 담론이 공허해지는 차원을 넘어서,
기술관료적 능력주의는 ‘사회적 인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뒤틀어놓았다. 그리하여 자격증이 있거나 전문직업인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의 명예는 높아지고, 대부분의 노동자는 그 사회적 지위와 명망이 추락하여그들의 사회적 기여 또한 과소평가되는 상황에 부딪친다. 기술관료적능력주의의 이러한 면은 분노와 양극화에 찌든 오늘날 우리의 정치 양상과 대부분 맞아 들어간다. - P59

시장 주도적 세계화는40년 동안 계속되며 정치 담론의 장을 공동화했고, 보통 시민들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포퓰리즘의 반격을 촉발했다. 그 반격이란 텅 비어버린 공론장에 무자비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민족주의를 채워 넣으려는 움직임이다.
민주정치가 다시 힘을 내도록 하려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보다 건실한 정치 담론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공통의 일상을 구성하는사회적 연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능력주의를 진지하게 재검토함으로써 가능하다. - P61

심지어 ‘우리 삶에서 주어진 결과‘라는 말조차 무한 책임론에 일정한한계를 도덕적으로 부과한다. ‘주어진 결과(몫, lot)‘라고 말할 때 그것은어떤 운명이나, 우연이나, 신의 섭리 등에 따라 정해져 주어진 것이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능력과 선택을 넘어서 행운 또는 은총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우리는 소득과 직업은 능력 문제가 아니라 신의 은총 문제라는 옛 논쟁을떠올린다. 그런 것들은 우리스스로 얻는 것들인가 받는 것들인가? - P67

하지만 세속적 행동을 구원의 증표로 여기는 관점에서 구원의 조건으로 여기는 관점으로 미끄러지는 일을 방지하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심리적으로, 신이 그의 영광을 높여줄 신실한 노력을 일체 외면한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나의선행으로 이미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 있음을 추정해도 된다고 권유받는다면, 나의 선행이 나의 구원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추론을 피하기 힘들다. 신학적으로 ‘행함을 통한 구원‘이라는 생각 능력주의적인 생각은 이미 배경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가톨릭에서는 예식 -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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