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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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feat. 스포일러, 긴글 주의

새해 처음 읽은 책이다(역시 시작은 소설부터. 작년 첫 책도 [끝없는 이야기]였다.). 작년이었나, 이대윤선생님이 읽은 걸 봤다. 주변의 책 좋아하시는 분들이 선택한 책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이 책은 일본 특유의 감성이 묻어난다. 또,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랑 비슷하다. 현재와 과거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에서는 그 지점이 나미야 잡화점이다. 이런 소재가 흔해서인지 예상하기 쉬운 책이기도 했다. 단, 결말은 개연성이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3장이 나미야 잡화점의 원래 주인 이야기이다. 3장을 중심으로 1, 2장과 4, 5장이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폐가나 다름 없는 나미야 잡화점으로 세 명의 좀도둑이 모여든다. 마음 약한 고헤이, 적극적이지만 정은 없는 아쓰야, 호기심이 많아 이것 저것 발견을 잘하는 쇼타가 그 도둑들이다. 그 도둑들에게 고민이 뚝 떨어진다. 과거의 고민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답장을 써주자고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소심한 고헤이다.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아마도 고헤이와 쇼타의 중간 그 어디쯤이었을 거 같다.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답장은 써주자고 하지 않았을까?
좀도둑이 받는 고민은 네 가지. 꿈과 현실 사이의 고민이다. 제일 처음 나오는 고민이 올림픽 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에 참가할까, 암에 걸린 남자친구 옆자리를 지킬까 갈등하는 사람의 고민이다. 상담 내용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사람은 훈련에 참가하는 것을 선택했다. 뒤에 나오는 상담 신청자(?)들도, 하나같이 꿈을 선택했다. 상담 내용이야 어떻든, 상담 신청자들은 자기 식대로 해석했다.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169쪽)

(상담학에서 상담을 하는 사람이 상담자, 상담을 받는 사람을 내담자라고 하기는 하지만-그리고 여기서 상담자는 내담자임이 틀림없다.- 넘어가기로 한다.) 인간주의 상담학의 관점이다. 상담자가 한 말에 내담자가 영향을 받기도 하겠지만, 결국 선택은 내담자의 영역 아닐까? 내담자가 선택하는 행동까지 상담자가 책임을 져야 할까? 아니, 책임지려고 해도 이미 발생한 일은 책임질 수 없다. 그리고 그 부담감 때문에 다카유키의 아버지는 나미야 잡화점을 접었다.

˝나로서는 매번 열심히 머리를 짜서 답장을 써왔다고 생각한다. 대충 써 보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어. 하지만 과연 그 답장이 상담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어. 어쩌면 내 충고대로 했다가 어처구니없이 불행해진 경우가 있을 게야.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참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194쪽)

상담자의 마음이 다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교사의 마음도. 교사의 말 한 마디로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잊는 것 같다.
과거의 내가 고민 상담을 했다면 언제 했을까? 대학교 진학할 무렵에? 임용 시험을 칠 무렵에? 아빠가 이전 교회를 떠나야 했을 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미래를 알고 있다면 선택이 달라졌을까? 과거의 나에게, 경제력을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과 타협했다. 지금까지도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이니 어쩌면 당연할 테지만, 한 번쯤은 꿈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현실을 꿈으로 만들며 스스로를 속였다. 그래서 그토록 자기 기만을 싫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디오 영상 속의 비틀스는 고스케의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옛날에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그들의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있고 연주도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 것처럼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바라보니 그때와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329-330쪽)

과거의 상처는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아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아무래도 주연과 관객의 차이는 꽤 크니까. 고스케는 비디오 영상이라는 (객관적) 과거를 마주했고, 나는 왜곡된 기억의 편린을 마주한다. 꿈과 현실 중 꿈으로 위장한 현실과 타협했다는 것도, 왜곡된 기억일 수 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서, 앞으로 하게 될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은, 세상의 풍파에 흐르는 대로 맡기겠다는 의미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싫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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