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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평점 :
[82년생 김지영](조남주, 민음사)-전자책
이번 달 성서교육회 독서모임 책이다.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술술 넘어가는 책이다. 하지만 독서모임 책이 아니었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이다. 페미니즘이 강하게 드러나는 책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기로 한다.
지난 달에는 이 책을 영화화한 [82년생 김지영]을 추석 특선 영화로 봤다. 영화로 봤을 때는 김지영 씨 남편인 정대현 씨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에서도 너무 소극적이었다. 그만큼 가정보다 일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말이겠지.
나는 83년생이다. 82년생 김지영 씨와는 우리나라 나이로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더 공감이 잘 되겠다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나는 이 책 내용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나 역시 남아선호사상과 남녀차별이 흔한 세대를 살았다. 그럼에도 감흥이 없었던 건, 남동생이 있지만 누나의 권위가 유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원가족에서 친가 쪽은 고모의 자녀들을 제외하면 내가 첫째인데, 그래서인지 할아버지가 나를 엄청 예뻐하셨다. 할아버지가 나를 엄청 예뻐하셨다는 것을 안 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나더러 동생이 나한테 대들면 쌔려주라고(?!) 하셨다. 엄격했던 엄마마저도 동생이 나한테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든든한 벽이 되어 주기도 했다(그래서 남동생은 나한테 ˝야!˝라거나 이름만 부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엄격했던 엄마 덕이다.). 아빠는 딸바보셨기 때문에(ㅋㅋㅋㅋㅋ) 책에 나오는 것처럼 아들만 예뻐하진 않아서 공감이 덜 되기도 했다. 이런 가정 환경이었으니 남아선호사상, 남녀차별은 사실 다른 세상 얘기였다. 학교에서 남자가 앞 번호인 것도 별로 불만 가진 적이 없었는데, 급식 먹을 때뿐 아니라(물론 나는 국민학교 때 급식을 고작 3개월 정도만 먹어서 누가 먼저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평가받을 때도 앞 번호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특별히 앞 번호가 더 혜택이 많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거기다 나는 소위 ‘경단녀‘가 될 가능성이 극히 낮고, 여성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직업군이라 사실상 대부분의 힘든 일을 남자 선생님이 하고 있는 직업 환경이다. 신랑마저도 프리랜서라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더 동떨어진 이야기였을 것이다. 나는 결혼도 늦게 했고, 김지영 씨 같은 시댁 분위기도 아니다. 그렇다고 82년생 김지영이 없었던 이야기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을 뿐.
개인적으로, 여성들이 받는 온갖 불합리함이 ‘여성혐오‘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책의 주장-정확하게는 여성학자 김고연주 님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여성이기에 불합리한 점도 있었지만, 여성이기에 얻는 혜택도 있었다(물론 그 혜택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의견도 존중한다.). 남성들과 같은 선에서 동등하게 대우받고 싶은 여성들도 있지만, 여자라는 연약함을 이용해서 남성 뒤에 숨으려고 하는 여성들도 있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남성들과 같은 선에서 동등하게 대우도 받고 싶고, 여성의 연약함을 어필하고도 싶은 것 같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들 하는데, 그래, 그 말은 맞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단, 그 일에서는 비슷한 능력치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육군 특전사 부대인 707에서는 남자가 받는 훈련을 여자가 똑같이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여경은 남경과 다른 채용 조건으로 선발된다. 경찰이 되어 하는 일은 똑같은데 왜 선발 기준은 다른 걸까?
내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여성혐오‘로 바라보기보다는 힘, 권력의 남용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남자가 그 힘을 여자에게 나누지 않으려 하고, 여자는 그 힘을 가지려는 데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남자의 상사가 여자일 때도(힘이 있을 때도), 여자의 상사가 남자일 때와 비슷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기업은 개인보다 강하고, 기업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선택한다. 여성을 혐오해서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 갑의 자리에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식 사고방식을 취했던 것 뿐이라는 말이다(물론 이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추측컨대,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힘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다고 (힘을 뺏기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이상 이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힘을 가지기는 쉬워도, 나눠주기는 어렵다.
(페미니스트 지인님들,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논쟁하려는 마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