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이 옳다](정혜신, 해냄)

이 책 제목은 많이 보았다. 딱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데 이번 달 독서모임 책이라서 읽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인가, 언뜻 이 부부가 같이 나온 뉴스(?)를 지나쳤는데, 그래서 나는 남편(이 책에서는 영감자라고 따로 책 표지에 나와있기까지 하다.)도 정신의학과 의사이거나 상담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물론 최근까지 심리기획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현재도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은이와 영감자가 둘 다 적혀 있으니 이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검색을 했는데, 음.. 나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뭐, 제3자의 입장에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영향과 사적인 부분은 따로 봐야 할까? 좀 혼란스럽다(대학원 수업 때 들은 건데, 가장 큰 스트레스 1위는 사별, 2위는 이혼이라고 했었다. 그러니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도 ‘당신이 옳다‘이지 않을까?).
처음 책을 펼치면 영감자 이명수 씨의 글이 나온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 거다.‘(9쪽)는 대목을 보고 이 책을 평가하지 말라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다른 사람에게 충조평판하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책 한 권 읽고 충조평판 안 하기가 쉽나. 쉬웠으면 벌써 했다. 상담 공부 7년 해도 여전히 하고 있는 충조평판인데. 교사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하고 있고. 뭐, 행동의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니 변명이라고 말하면 어쩔 수 없다.
지금도 나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가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글쓴이는 사실 정신과 의사보다는 상담가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상담 공부할 때도 둘의 차이를 배웠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정신과 의사도 경험한 적이 있고, 상담가도 경험한 적이 있다. 나는 둘 다 별로였는데, 오히려 대학원에서 만난 동기 언니가, 대학원 교수님들이 훨씬 공감을 잘해줬었다. 물론, 공감받지 못했던 공감을 받은 수업도 있었다. 감정이 차게 식었고, 수업이 끝난 이후로 너무 화가 났었다.
그렇다. 이 책은 공감에 대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공감을 조금 더 잘할 수 있을까, 살짝 기대도 했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 이명수 씨가 초반에서 극찬을 해서 기대를 했건만. 이 책이 기술적인 부분을 말하는 책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기술적인 부분이라면 차라리 지금 읽고 있는 [교사의 마음리더십]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옳다‘는 말은 (그릇된) 행동의 배후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글쓴이는 계속 ‘나‘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내 상처가 ‘나‘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나‘라는 말이다.‘(105쪽)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이 심리적 CPR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밑도 끝도 없이 이 질문, 던져도 괜찮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면서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위험부담을 안는 일이기도 하다.

공감은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깊은 감정도 함께 자극되는 일이다. 상대에게 공감하다가 예기치 않게 지난 시절의 내 상처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 이렇듯 상대에게 공감하는 도중에 내 존재의 한 조각이 자극받으면 상대에게 공감하는 일보다 내 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주목해야 한다.(120쪽)

역전이를 설명하는 것 같고, 그 상황에서는 자신의 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주목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기도 한다. 저자는 역전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 부분이 안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는 말에는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대학원에서 본 사람들은 타고난 공감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것이 공감이다, 저것이 공감이다, 라고 사례도 들고 비유적으로 설명하지만(개인적으로 왜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썼는지 모르겠다. 비유는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라고 본다면 비유를 통해 더 쉽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더 애매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공감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나와있지는 않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기술적인 책이 아니다. 공감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많고, 그 요소들을 인지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아닌 이상(그 요소들을 인지하면서 대화하면 대화에 에너지가 얼마나 많이 소모되는지 안 겪어본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공감은 힘들다. 책에서도 말한다. ‘타인을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공감까지 가는 길 굽이굽이마다 자신을 만나야 하는 숙제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245쪽)‘ 애초에 ‘나는 왜 공감하려고 하는가?‘
나에게 공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보다, 공감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 책이 이것은 공감이고, 저것은 공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니가 하는 건 공감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알고 있는데, 그걸 다시 각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사람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만 공감이 가능한데, 나는 사람 존재 자체에 관심이 있는 걸까, 그냥 내가 이해하기 위해서 묻고 있는 걸까? 나를 사랑하는지, 상대를 사랑하는지에 따라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지나쳐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제대로 공감해주지 않고 윽박지르기만 한 것 같아서. 마음 한 켠에는 늘 죄책감이 자리잡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