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님의 "책 "

저랑 비슷한 분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외출할때 책 고르다 시간이 지연된다는 데는 백배공감... ^^ 특히 저는 시댁이 안산이라서 지하철타는 시간이 긴데, 시댁갈때는 항상 책 몇권씩 고르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해서 남편한테 혼나거든요(다 읽지도 않을책 무겁게 들고 간다고도 야단).. 그래서 저는 항상 핸드백도 제일 큰놈만 고른답니다. 책이 안들어가는 핸드백은 무용지물이죠.. ㅎㅎ 아프락사스님 항상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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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두려워하랴?

토니 마이어스의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앨피)를 읽었다. 분량도 많지 않지만, 좋아하는 철학자에 관한 책이어서 단숨에 읽었다, 는 아니고, 며칠 걸려 읽었다. 중간에 다른 일들이 항상 끼어들기 때문인데, 생각해보니 오고가는 전철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읽은 듯하다. 복사한 원서까지 무릎에 펴놓고...

일단 우리말 번역본은 아마도 좀더 편안하게 독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갖은 짓'(친근한 표현으로)을 다했다. 그냥 '슬라보예 지젝'으로 돼 있는 원서의 제목을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로 바꿔놓았을 때 이미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책의 소제목들도 대부분이 옷을 갈아입거나 분칠을 했다(가령, "The curse of Jacques: Limitations on the influence of Zizek"이란 절은 두 대목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혹은 생뚱맞은", "데리다와 라캉을 중재하려는 시도는 실패한다!"라 이름붙여졌다). 그리고 용어들도 가급적 이해하기 쉬운 걸로 바꾸었으며(가령 '누빔점'으로 번역되던 point de caption은 '소파 고정점'으로 바뀌었다) 원서에는 한 장도 들어가 있지 않은 인물사진/참고사진 등도 꽤 여러 장 집어넣었다(이런저런 이유로 책의 분량은 142쪽짜리 원서의 2배 가량이 되었다. 부록으로 원서에 없는 글 한편이 국역본에는 더 들어가 있더라도). 한마디로 편집자가 부릴 수 있는 수단은 다 부려본 게 아닌가라는 인상을 책을 읽으면서 받았다. 해서 한국어 독자들이 훨씬 더 친근감 있는 지젝을 만날 수 있는 멍석은 마련된 셈(*point de caption은 point de capiton의 오타이다. 이유가 없지는 않은 게 275쪽 '찾아보기'에 point de caption으로 잘못 타이핑돼 있고, 나는 그걸 받아적었던 것. 본문 134쪽에는 제대로 표기돼 있다) .

책이 나오기까지의 자초지종과는 무관한, 약간 도취적인 역자서문을 뒤로 하고 본문으로 들어가면, 한 입 크기로 잘 썰어놓은 지젝을 만나게 되는바, 우리말로 된 '가장 쉬운 지젝 입문서'란 선입견에 걸맞는 내용들이 펼쳐진다. 솔직히 두드러진 경력의 소유자로 보이지 않는 저자이지만 이 만한 '정리력'을 선보이는 게 영미학계의 '내공'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1급 학자들을 뒷받침하는 2급 학자층이 두터워야, 즉 미드필드가 두터워야 새로운 이론/업적이 나오든가 말든가, 골도 들어가든가 말든가 한다. 골대 앞에 한 명 세워놓고 골이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건 전근대적인 방식이자 요즘의 동네축구도 못되는 방식이다. 하긴 핑계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이들은 영어사용자들이고, 지젝이 영어로 쓴 책들을 읽은 것이기 때문("지젝은 유연하면서 쉽게 이해되는 문체로 글을 쓰는데"(229쪽) 같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 나쁜 한국 독자들도 있겠다). 애당초 지젝이 한국어로 책을 썼다면, '나'라도 이런 정리를 못하랴 싶다. 하지만, 핑계는 핑계로 내버려두기로 하자.  

어쨌든 이 슬로베니아 출신의 '괴물' 철학자는 영어권 학계/이론계에 등장한 지 불과 15년 정도만에 '우리 시대의 사상가' 명단에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등재시켰다. 그리고 일부 회의적인 시각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저자 마이어스의 주장대로 그의 파괴력/영향력은 갈수록 확고해질 가능성이 높다(마이어스의 마지막 문장. "한마디로, 지젝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Quite simply, Zizek will have been." 그러니까 그의 크기가 다 드러나고 제대로 평가받는 건 미래의 일이 될 거란 얘기). 적어도, 1989/1991년 이후 탈냉전 시대, 그리고 2001년 9.11 이후에 '가능한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그의 작업들은 그가 '우리 시대의 철학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는 걸 확증해준다. 마이어스의 책은 그런 '지젝 따라잡기'로서 (현재로선) 더없이 유익한 길잡이이다. 그리고, 그런 의의를 책 제목에 반영하자면,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보다 더 적절한 제목은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두려워하랴?"가 될 것이다(초심자라도 두번쯤 책을 통독하게 되면, '웬만한' 지젝을 읽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다시 참조해가면서).    

번역본의 뒷표지에도 박혀 있지만, 마이어스가 지젝의 사상을 요약하기 위해서, 그에게 영향을 준 세 사람(헤겔, 마르크스, 라캉)에 대한 설명 이후에 내세운 핵심 이슈는 다섯 가지이다. (1)주체란 무엇이며, 왜 그토록 중요한가? (2)탈근대성에서 끔찍한 것은 무엇인가? (3)현실과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4)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무엇인가? (5)왜 인종주의는 환상인가? 등. 이들 각 장마다 말미에 내용요약(Summary)까지 박스 처리돼 있는 책의 내용을 다시 요약한다는 건 동어반복이겠는지라(나중에 '읽기'를 시도한다면 모를까), 여기서는 국역본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몇 가지 오타와 미심쩍은 대목만을 지적해둔다. '이보다 더 쉬울 수 없는 지젝'이지만, 혹 옥의 티 때문에 독서의 재미가 반감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갖게 되기 때문에. 즉, 몇 가지 지적사항만 고려한다면, 책은 지젝 입문서로서 나무랄 데 없다는 걸 거듭 강조해둔다.

-32쪽에서 지젝의 동료이자 두번째 아내였던 '레나타 살레클(Renata Salecl)'의 올바른 표기는 언젠가 지적한 대로 '레나타 살레츨'이며 이미 도서출판b에서도 '살레츨'로 표기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지난 3월말에 지젝은 아르헨티나에서 세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30년 연하의 신부와(첫결혼을 일찍 한 그이기에 아마도 세번째 신부는 자신의 아들보다 나이가 더 어릴 듯하다). 마이어스가 요약해주고 있는 지적 경력에 따르면, 지젝은 1971년 그러니까 22살에, 철학과 사회학 학사를 취득하고, 1975년에 400쪽에 달하는 학위논문을 쓰고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그리고는 대학교수직을 얻을 뻔하지만, 그의 '강의'가 학생들을 물들게 할지 모른다는 당국자들의 우려 때문에 결국 얻지 못한다. 그는 동료였던 믈라덴 돌라르와 함께 이론정신분석학회를 창설하고(지젝이 회장, 돌라르가 부회장이었다. 둘이 시작한 학회였고), <제문제>란 잡지와 <아날렉타>란 시리즈도 낸다(마이어스에 따르면, 지젝은 자신의 책에 대한 악평이나, 있지도 않은 책에 대한 서평을 잡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젝은 1979년 류블랴나 대학의 사회학연구소의 연구원이 되는데, 당국의 염려/배려에 따라 그는 강의 부담이 전혀 없이 순수하게 연구만을 수행하게 된다(이 때문에 지젝은 방한강연시 자리를 옮길 생각이 없노라고 조크를 섞어 얘기했다. 굳이 의무적인 강의까지 해야 하는 미국 등지의 대학으로 유명세에 걸맞게 옮길 이유가 없다는 것). 그리고 1981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하이데거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슬로베니아를 방문했었던 라캉의 사위 자크-알랭 밀레르의 초청으로 친구인 돌라르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가서 밀레르의 세미나에 참석한다(그 세미나를 통해서 비로소 라캉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지젝은 고백한바 있다). 지젝은 세미나에 참석하는 한편, 밀레르의 정신분석도 받게 되는데, 이때 두 사람간에 트러블이 있었는지 1985년 밀레르의 지도로 지젝은 정신분석학 박사학위논문을 쓰게 되지만, 밀레르로부터는 논문의 출판을 거부당한다. '좌절'한 지젝은 슬로베니아로 돌아가며 정치활동에 뛰어든 그는 1990년에 슬로베니아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출간한 것이 1989년의 (영어권)데뷔작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다. 이후에 그가 현재까지 (영어로) 낸 책이 최소 26권 이상인바(나는 그 중 24-5권 정도를 갖고 있다), 올해도 최소 2권 이상이 나올 예정이다(얼마전에는 란 연구서가 출간되기도 했다).  

이러한 경력에서 마이어스는 두 가지 중요한 모멘트를 지적한다. 비주류/비제도권적 성향과 관련한 것인데, "이와 같은 비제도성으로 인해 적어도 두 번(한번은 석사논문과 관련해서, 다른 한번은 두번째 박사학위와 관련해서) 기성제도에 편입할 기회를 놓쳤지만, 지젝은 제도에 대한 이런 저항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했다... 지젝 이론의 놀라운 성공은 부분적으론 이른 시기에 겪은 실패와 그 실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체제와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할 수 있었던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37쪽) 이러한 교훈을 따르자면, 이론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요건은 '실패'이다. 그것도, 두 번. 지젝의 말을 비틀자면,  "이론가는 반드시 두번 실패해야 한다." 마이어스는 주체에 대한 지젝의 특이한 관점/이론이 이러한 자기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지적하는데, 그럴 법한 견해이다.

-58쪽. 라캉의 두 타자에 대해 설명하는 소단락에서 마지막 문장. "따라서 이런 타자성은 동일화 과정으로 내면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상징계의 타자성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다."(58쪽) 여기서 '상징계'는 '상상계'의 오타이다. 문맥상 '이런 타자성'이란 게 '상징계의 타자성'이므로 원서와 대조하지 않더라도 오타라는 걸 알 수 있다.

-112쪽. "왜냐하면 어머니의 초자아적 명령 아래에서 이 딸에게 남겨진 유일한 쾌락의 통로는 고통의 강도에 개입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에서 '고통의 강도'는 'a degree of pain'을 옮긴 것인데,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얼마간의 고통' 정도의 뜻이 아닐까 한다. 다른 대목들에서 읽기 편한 쪽으로 옮겨주고 있기 때문에 '고통의 강도'란 표현은 좀 낯설다. 113쪽 소단락에서 "이런 은폐야말로 법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긍정적 조건이기 때문이다"에서는 positive의 역어로 '긍정적'보다는 '실정적'이 낫지 않을까 싶다. 이건 오역을 지적한다기보다는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positive만 하더라도 우리말로는 적극적/긍정적/능동적/실정적 등으로 옮겨지는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르게 번역에서 애를 먹는 경우는 상응하는 우리말이 없을 때가 아니라 이처럼 너무 많을 때이다(주체/주어/주제로 번역되는 'subject'나 반성적/반사적/성찰적/재귀적으로 번역되는 reflexive도 마찬가지이다).

-115쪽에서, "이 예수상이 전하는 진짜 메시지는 실재 예수를 주창한 자들에게는 결코 오직 않을 그의 부활이 아니라, 실제 예수가 몸소 보여준 자기발전의 영적 편력이다." '오직 않을'은 물론 '오지 않을'의 오타이고, 시제상 예수의 부활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것이다(미래와 관련된 건 '부활'이 아니라 '재림'이다). 원문은 "Resurrection, which... never actually happened"이므로, "실제적으로는 일어난바 없는 부활" 정도의 뜻으로 옮겨져야겠다.

-119쪽. 오역이랄 건 없지만, 좀 모호한 대목: "지금까지 타자 속에서 찾으려 했던 것을 이제부터는 우리 자신 속에서 찾으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타자란 그 자체로는 그/그녀의 주체가 못 되는 상상적 사본, 사실상 그/그녀를 향한 메시지로 자기충족적인 자아(타아)의 측면이다." 뒷문장의 원문은 "[T]he Other is reduced to the other, an Imaginary counterpart who is not a subject in his/her own right, but in effect, an aspect of a self-sufficient ego (the other) with a message for him/her."(59쪽) 여기서는 대문자 타자Other와 소문자 타자other 간의 구별이 중요한데, 다른 대목들에서 Other를 '대타자'라고 옮겼으므로, 처음에 나오는 '타자' 역시 '대타자'라고 옮겨져야 한다. 그리고 소문자 타자라는 것, 이런 대타자의 상상적 대응물(counterpart)이다. 그런 한에서, 이 소문자 타자는 (대타자와 같은) 제 값의 주체가 아니며, 단지 자기-충족적인 자아의 측면에 불과하다. 대략 그런 정도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147쪽. 첫문장에 '좌파 이데올로기는 한물 갔다가도 얘기되는 오늘날"에서 '좌파'는 동사 leave의 과거분사형left를 명사로 잘못 옮긴 것이다('이데올로기 일반론'이 갑자기 '좌파 이데올로기론'으로 둔갑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편집상의 실수인데, "지젝은 두 죽음.."으로 시작되는 대목부터 149쪽 전체는 147쪽의 "상징적 죽음과 실재적 죽음"이라는 소단락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아마도 책을 급하게 내느라고 꼼꼼하게 교정을 보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재판을 찍는다면, 마땅히 교정되어야 할 것이다). 해서, "이데올로기에서 현실을 구분해내는 법"이란 장의 결론은 이렇다. "현대 정치의 문제는 그것이 비정치적이라는 것, 현존하는 자본주의 사회 체제를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한 첫 단계는 그 '자연성'이 이데올로기적 형성물임을 폭로하는 것이며, 그런 비판을 위한 첫걸음은 그것의 실행가능성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젝의 모델이 지향하는 목표이다."(147쪽)

-154쪽. "지젝은 이 공식(=라캉의 성차 공식)의 난폭한 수용에 언제나 경의를 표하지는 않는다." '난폭한 수용'은 'outraged reception'인데, 내가 보기에는 라캉의 성차공식에 대해 '불편해하는', 혹은 '다혈질적인 반응' 정도의 뜻이다. 지젝은 (라캉처럼) 그런 반응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는 것. 조금 내려가서, "이론이 뉘앙스가 풍부한 사유보다 독실한 신임을 얻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드는 이 시대에, 이런 전략은 확실히 참신한 우상파괴처럼 느껴진다." 원문은 "In an era where theory often spends more time establishing its pious credentials than actually articulating nuanced thought..."이다. 번역문은 '이론'과 '사유'를 비교의 대상으로 놓았는데, 이건 오류이다. 이론이 뭐하는 것보다 뭐하는 데 더 시간을 많이 보내는, 즉 더 전력하는 시대에, 란 뜻이어야 한다. nuanced thought란 '뉘앙스가 풍부한 사유'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뉘앙스를 갖고 있어서) '다소 모호한 사유'란 뜻이다. articulate란 것은 그걸 분명하게/명료하게 한다는 뜻이고. 지젝은 그런 뉘앙스를 즐기지 않고 대놓고, 아주 공격적으로 말한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 것, 그게 지젝다운 면모이다.   

-159쪽. 이것도 편집상의 실수인데, "마르크스가 자유, 평등, 사유재산, 벤담의 <자유. 평등. 사유재산의 배타적 영역과 벤담>에 대해 논할 때"가 말이 되는가? 173쪽에서는 한 문장이 누락됐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이데올로기와 비슷하다." 다음에 "우리는 그것을 '성적 차이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we may even say that it is the ideology of sexual difference.)가 빠졌다. 마지막 문장의 '일치'는 '화해' 혹은 '조화' 정도의 뜻이다(남성과 여성의 '일치'가 불가능한 건 상식적인 차원에서도 당연하지 않은가?). 원문은 "[I]t is not possible to reconcile 'man' with 'woman'."

-224쪽. 이건 궁금한 점이다. 지젝 비판가들을 다루면서 마이어스가 "Theorists such as Teresa Ebert and Denise Gigante..."라고 한 대목을 번역본은 "좌파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테레사 에버트, 프린스턴 대학 영문학 박사과정에 있는 데니스 히간테 같은 좌파 이론가들은"이라고 옮겼다. 역자가 얼마나 '수고'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테레사 에버트'와 '데니스 히간테'의 뒷조사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Gigante'가 '히간테'로 표음된 것은 어떤 근거에서인지?(일부 인구어에서 g와 h 사이에 호환성이 있다는 건 알지만, 이 경우에도 그런 건지 궁금하고 Gigante란 이름만 갖고 이 사람의 출신 국적까지 파악되는 건지 신기하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린 글 "향락과 그것의 정치적 부침"은 역자에 따르면, "지젝의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하여 보내준 미발표 원고"(235쪽)인데, 대부분, 즉 241쪽에서 252쪽까지는 이미 작년에 당대비평 특별호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생각의나무)에 "아메리카 하위문화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또는 럼스펠드가 아부 그라이브에 관해 알고 있는 모르는 것"이란 제목으로 실렸던 것이다. 물론 다른 대목들도 아주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알베르트 슈만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환상의 돌림병>을 참조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유감스러운 건, 252쪽에서 Walter Benjamin을 '발터 베냐민'으로 표기한 것(이전에도 지적한바 있지만, '벤야민'이란 기존의 표기가 어떤 점에서 결격인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유식한 자들의 이런 '상징폭력'은 불쾌하다. 저서도 아니고 번역서인 경우엔 상식과 관행을 존중하면 된다).

원서의 Further Reading은 번역서에서 '지젝의 모든 것'이란 제목으로 갈무리돼 있다(이 책이 2003년에 나온지라 작년에 나온 <이라크> 등은 서지에서 빠져 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서 몇 가지 간추리면, 마이어스는 먼저 지젝의 책 중 단 한권만 읽는다면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권하겠다고. 그가 어려운 책으로 꼽는 것은 <부정성과 함께 머물기>(근간)이고, 초심자가 읽기에 가장 좋은 책은 <환상의 돌림병>이다(국역본은 물론 '만만찮다'). 최근에 나온 <까다로운 주체>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편"에 속하는 책이지만, "부분적으로는 무척 어렵"다. 그리고 <믿음에 대하여>는 "지젝의 다른 저작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그래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인데, 우리의 경우엔 유감스럽게도 가장 못 믿을 책이며 따라서 가장 안 팔린 책이다(나도 뜯어말린 책이지만). 현재까지 나와 있는 지젝 선집으로는 라이트Wright 부부가 편집한  <The Zizek Reader>(Blackwell, 1999)가 있다. 지젝의 원문을 '한번' 읽어보고픈 독자에게 한권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이 책을 꼽을 수 있겠다...

05. 05. 16.

P.S. 한 가지. 248쪽에서 언급되고 있는 영화 <이중처벌Double Jeopardy>의 국내 출시명은 <더불 크라임>(1999)이다. 토미 리 존스와 애슐리 저드가 나오는 영화. 애슐리 저드가 찍은 이 계통의 영화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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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한국을 바꾼 지식인

경향신문의 기획기사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을 그만 옮겨올 생각이었지만 내일자 조간에 실리는 내용은 그런 생각을 접어두게 한다. 무엇보다도 설문조사에 근거한 데이터이기에 '한국을 바꾼 지식인'이란 타이틀만큼이나 흥미를 끌고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저술들의 목록도 일별해 볼 만하다. 지난 2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군...

경향신문(07. 04. 30)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1-3. 한국을 바꾼 지식인

지식인들 사이에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 지식인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 세 사람이다.

경향신문이 최근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특집을 위해 각계 지식인 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복수응답) 조사 결과, 24명이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으로 백교수를 뽑았다. 이어 21명이 리전교수, 17명이 최교수, 10명이 강준만 전북대 교수를 꼽았다. 여기에 ‘대중적 글쓰기’로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깨는 도전적 작업을 해온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90년대 이후 등장한 지식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리영희(한양대 전 교수·77)는 지난해 9월 “지적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사상의 은사’로 기억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시대의 흐름을 이끈 70~80년대 학번들의 이념적·사상적 출발점”(강맑실 사계절 출판사 대표)이나 “한국사회에 보기 드문 보편주의, 국제주의자로 ‘지적 거인과 같은 존재’”(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왜 아직도 리영희인가.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는 “87년 민주화의 분수령 이후 한국사회는 새 변화를 추동할 세력을 창출하지 못했다”며 “이것이 리영희 선생의 주 활동기가 87년 이전인데도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으로 꼽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리영희는 1929년 평북 운산에서 지방 말단직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14살 때 혼자 서울의 공업학교로 유학했고, 굶주림에 시달렸다. “해방된 사회에서 동창생이 없다는 것은 나의 삶에 있어서 만사에 불편하였다”고 되뇌곤 했던 그는 평생 누구와 무리지어 세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강준만(전북대 교수)은 리영희 서재에 걸려 있는 백범의 휘호로 리영희의 꼿꼿함을 설명한다.

“踏雪夜中去 / 不須胡亂行 / 今日我行跡 / 遂作後人程 (눈길을 걸을 때 /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 내가 걷는 발자국이 /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

중국전문가로서의 리영희는 외신부 기자생활을 하며 단련됐다. 합동통신·조선일보에서 해·복직을 거듭하면서도 굵직한 특종들을 남겼다. 특히 그는 베트남전쟁으로 상징되는 미국 대외정책의 추악함과 중국 사회주의의 인본주의적 모습을 서구 지식인들의 입을 빌려 소개하는 방식으로 반공주의에 맞섰다. 리영희는 기자직과 교수직에 있는 동안 다섯 차례 구속되고 모두 1012일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자신의 몫을 주장하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독재의 시대에 그의 글들은 “아무리 작게 잡아도 몽롱한 의식에 끼얹는 찬물 한 바가지”(강준만)였다.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그가 갖는 힘은 사회적 발언의 중단을 선언할 만큼 스스로 자신의 육체적, 지적 한계를 인정할 때까지 그가 의미있는 비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윤평중(한신대 교수)이 “비체계적인 인본적 사회주의가 한국사회를 ‘시장맹(盲)’ ‘북한맹(盲)’으로 만들었다”고 리영희를 본격 비판한 것은 불과 4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계간 ‘비평’을 통해서 였다. 그러나 윤평중은 이번 경향신문 설문에서 영향을 미친 지식인으로 리영희를 꼽았다. 그는 말했다.

“리영희 선생은 민주화운동 시기의 젊은 세대 전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시대적 패러다임을 형성했고 그 여파는 87년 체제 이후에도 지속됨으로써 현대사의 한 축을 형성했다. 보수진영이나 우파에서는 그 특유의 이론적 빈곤이나 도덕적 결함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에 대응할 만한 인물이 전혀 부재하다.”

리영희는 민주화 이후 자신의 책들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계속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 왜일까. 그 대답은 백낙청, 최장집 등 후배지식인들의 왕성한 지적, 실천적 활동이 요구되는 현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말해준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69)이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준 지식인 1위로 꼽힌 것은 40년 창비 역사와 함께 해온 그의 실천적 글쓰기 덕분이다. 차병직(법무법인 한결 변호사)은 “한반도 특유의 정치 상황에 대해 민족 문제를 고려하면서 지속적으로 분석해 왔으며 현재와 미래의 대안을 가장 적극적으로 모색한 지식인”이라고 했고, 박명림(연세대 교수)은 “언제나 시대정신에 맞는 화두를 잘 던지며, 그것을 대중들에게 맛깔나는 문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고 말했다.



백낙청은 55년 경기고 졸업과 동시에 미국으로 가 브라운대,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인제대 백병원을 세운 백인제·백붕제가 각각 그의 백부·친부이고, 현 인제대 이사장인 백낙환이 형이다. 스스로 ‘변칙적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말한 바 있는 백낙청은 28세 때인 66년 계간 ‘창작과 비평’을 창간하며 한국 사회의 분단현실을 실천적으로 극복하는 데 투신했다. 창비는 정간, 폐간, 판금 처분을 반복하면서도 “지난 40년간 비판적 연구자-문인-저술가 그룹을 한데 묶은 ‘비판지성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유지해오며”(조효제) 백낙청의 실천적 지성 활동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백낙청의 담론 주도력 뒤에는 “유일하게 시장에서 성공한 비판적 지식인 미디어인 창비”(류준필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있었던 것이다.

분단된 한반도의 통일에 문학이 기여해야 한다는 ‘민족문학론’을 펴온 백낙청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최근 그 이름에서 ‘민족’을 떼느냐 마느냐 문제로 논란을 벌일 때 민족의 삭제에 찬성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뿌리는 여전히 민족과 통일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가 최근 이명원(문학평론가)과의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02825).


“상당수의 진보적 학자들이 어떤 면에서는 보수 논객이나 학자보다 분단문제를 외면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 학자들은 마치 이 사회가 분단과는 기본적으로 특별한 관계가 없고, 분단이라는 것이 하나의 부수적인 사실로 있는 것처럼 전제를 깔고, 분단 안된 사회의 척도로 진보 보수를 따지는 경향이 많아요. 최장집 교수도 그런 예의 하나이고, 손호철 교수도 그런 경향이 강하고, 그런 분들이 많아요.”



일관되게 한 가지 주제에 대해 학문적, 실천적 역량을 쏟았다는 점에서 최장집(고려대 교수·63)은 백낙청에 비견된다. 최장집은 강릉의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고려대 재학 시절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한 4·19 세대다. 그는 고려대 정외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후 박정희 대통령의 공보비서실 행정관으로 1년여 일하기도 했으며 잡지 ‘세대’에서 기자생활을 거친 뒤 미국 유학을 떠났다.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만개했던 각종 변혁이론들이 91년 소련 붕괴로 몇 년 못가 시들해졌을 때 최장집은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1983년 40세 늦깎이 박사를 받고 돌아온 최장집은 한국산업사회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80년대 초 대학을 다녔던 이른바 ‘제3세대 학자군’을 이끌며 그람시류의 네오마르크시즘을 비롯한 비판이론을 소개했다. 김호기(연세대 교수)는 “서구의 눈을 빌려오되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왔던 흐름을 꿰뚫어보고 현실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최교수 정치학의 근간”이라고 말했다.

최장집은 외형적 자유화가 아닌 실질적 민주화를 중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국 민주주의 이론’(1993) 때부터 피력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으로 일하다 조선일보의 사상검증에 휘말려 1년 만에 학교로 돌아온 뒤로 그의 공부는 더욱 깊어졌다.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는 이 책 제목이 하나의 관용어로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학문적 천착보다는 사회적 활동으로 유명해진 학자도 아니고, 순수한 학문의 세계에 갇혀 있는 교수도 아닌, 이 둘을 아우르는 이론적 실천가라는 점에서 독특한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손제민·김종목·장관순기자)

◇ 리영희

1929년 12월 평북 운산 출신. ‘삭주 대관국민학교 개교 이래 몇 천재 중 하나’였다. 42년 경성공립공업학교에 진학하며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학비면제, 숙식·제복 국가부담’에 이끌려 한국해양대를 다녔다. 외신부 기자생활을 거쳐 72년부터 한양대 신방과 교수를 지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최근 저작 활동을 접었다.

◇ 백낙청
1938년 1월 대구 출신. 남들보다 2년 일찍 학교에 다녔다. 경기고 졸업 후 미국으로 가 브라운대에서 영문학 학사,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고 귀국했다. 66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뒤 72년 미국작가 DH 로렌스 연구로 뒤늦게 박사학위를 받았다.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 최장집

1943년 5월 강릉에서 태어나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한 후 청와대 공보비서실과 잡지사 ‘세대’에 잠시 몸 담았으며 이후 미국 시카고대에 유학했다. DJ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았다가 조선일보의 사상검증 때문에 물러났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경향신문(07. 04. 30)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90년대 강준만 등장

전통적 지식인이랄 수 있는 세 지식인의 틈새에서 90년대에 등장한 전북대 교수 강준만(51)의 약진은 변화된 지식인 지형의 일면을 보여준다. 10명의 응답자가 그를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으로 꼽았으며 그가 글을 쓰는 잡지 ‘인물과 사상’은 6명이 영향력 있는 저술로 꼽았다.



강준만은 ‘지역주의 비판’ ‘서울대 망국론’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등의 민감 이슈를 도발적인 문체로 제기한 ‘게릴라 지식인’이었다. 모든 ‘금기와 성역에 도전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인물과 사상’은 강준만 1인이 글을 쓰고 출판하는 독특한 체제도 관심을 끌었지만, 거침없이 실명을 거론하는 전방위적 비판으로 이른바 ‘강준만식 글쓰기’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박상훈(후마니타스 주간)은 “다작의 교양도서 작가로서의 현재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차치하고라도 민주화 이후 기성체제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날카로운 시각과 직설적 논쟁화법으로 비판해 ‘강준만식 글쓰기’ 양식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강교수가 남긴 사회문화적 영향은 매우 컸다”고 강조했다.

강준만은 “진의가 왜곡되기 쉽다”며 기자들의 전화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팩스 또는 e메일로만 외부와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사회적 개입은 책 쓰고 신문에 기고하는 것으로만 한정된다. 강준만은 언젠가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하는 등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만큼 스스로의 행동에 조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강준만의 칼날 화법은 어느 순간 많이 순화된 것이 사실이다. 1인 출판으로서의 인물과 사상은 지난 2005년 막을 내리고 지금은 다수 필자가 참여하는 잡지로 성격이 바뀌었다. 전상인(서울대 교수)은 “강준만으로 대표되는 게릴라 지식인들은 몇 년 못가서 초기의 기개와 전의를 크게 상실했는데 이는 기존 제도권 지식인 사회의 무응답과 외면에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보수 지식인으로는 송복(연세대 명예교수) 안병직(서울대 명예교수) 박세일(서울대 교수) 김대중(조선일보 고문) 복거일(소설가) 이문열(소설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자연과학자로는 임지순(서울대 교수)과 황우석(전 서울대 교수)이 거명됐으며 김대중(전 대통령), 기업인 황창규(삼성전자 사장)를 선택한 이도 있었다. 영향을 준 지식인을 국내·외 구분 없이 물었기 때문에 해외 지식인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카를 마르크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새뮤얼 헌팅턴, 에드워드 사이드 등이 꼽혔다.(손제민기자)

경향신문(07. 04. 30)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한국의 지성 ‘금서’가 키웠다

◇ 국내서적

지식인들이 뽑은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국·내외 저술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이른바 ‘금서목록’에 올랐던 책들이 주류였다. ‘해방전후사의 인식’(23명)과 ‘자본론’(18명), ‘전환시대의 논리’(15명)는 대표적인 금서였으며 ‘태백산맥’(10명)은 불과 2년 전까지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에 계류돼 있었다. 79년 10·26 사태를 열흘 앞두고 한길사에서 출간됐던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은 70~80년대 대학생들에게 한국현대사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준 교과서였다.

송건호·오익환·백기완·진덕규 등이 참여해 ▲해방의 민족사적 의미 ▲분단의 배경과 과정 ▲친일파 문제를 다뤘다. 대다수 응답자들이 “대학시절 지하 이념서클의 의식화 교재로서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현 시점에서 보면 이 책 내용은 상식적이다. 그러나 발간 당시는 상식이 불온하던 시절이었다.

김언호(한길사 사장)는 “애초 송건호 선생과 책을 기획할 때는 ‘한 5000권 나가려나’ 예상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까지 40여만권이 나간 초특급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책에 실린 생각들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였어요. 진덕규, 임종국 같은 필자들도 대부분 이데올로기와 관계 없는 분들이었죠. 그런 책인데도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1차적으로 독자들이, 즉 시대가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땐 정말 대단했어요. 10·26이 터져 책이 판금될 때까지 열흘 만에 4000권이 나갔으니…. 판금됐다고 그 책을 안 읽었겠어요. 판금시키면 오히려 복사본이 더 많이 나돌던 때였죠.”



해전사가 한국현대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제공해 줬다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1974)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깨우쳐 준 책이다. 이 책은 베트남 전쟁으로 드러난 미국 대외정책의 추악한 본질을 폭로하고, 중국사회주의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렸다. 냉전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았던 대학생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으로 하여금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줬으며 김세균(서울대 교수)이 “밤 새워 읽었고, 그 후에도 읽고 또 읽었던” 그 책이다.

이 책은 리영희(한양대 전 교수)의 ‘우상과 이성’(2명)과 함께 “사회과학도로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 준 고마운 책”(신광영 중앙대 교수)으로 기억되고 있다. 신광영은 “이 저술로 인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이 가능함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조정래(소설가)의 ‘태백산맥’에 대해 이광일(성공회대 교수)은 “지식인 사회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준 책은 태백산맥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봉(비봉출판사 대표)은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 냉전의 족쇄를 깨는 데 일조했다”고 평했다. 조효제(성공회대 교수)는 “소련에는 소비에트 체제에 대항한 우파-전통주의적 휴머니스트 반체제 작가로서 보편성을 획득한 솔제니친이 있다면, 한국에는 권위주의 체제에 대항한 좌파-민족주의적 휴머니스트 반체제 작가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한 조정래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복거일(소설가·미래문화포럼 대표)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태백산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최장집(고려대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는 2000년대에 나온 책으로는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임지현(한양대 교수)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3명), 임지현·권혁범·박노자·임은실 등이 함께 쓴 ‘우리 안의 파시즘’(2명)은 민족주의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문제 제기였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 해외서적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준 해외 저술로 가장 많은 지식인들이 꼽은 ‘자본론’(18명)은 1980년대 후반 과학적인 변혁이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 첫 한글 번역본이 나온 87~89년 이전에도 일본어 번역본 등의 형태로 은밀하게 유통됐지만 본격적으로 학생들 손에 쥐어진 것은 87년과 89년 강신준(동아대 교수)과 김수행(서울대 교수)이 잇달아 번역본을 내면서부터이다. 고병권(수유+너머 대표)은 “87년 이후 첫 10년간이 지식사회가 마르크스주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면, 그 후 10년간은 마르크스주의에 회의하거나 그것을 전환시키려 시도했던 과정이 아니었나 한다”고 말했다.

87년 민주화 직후 서울대 교수 김수행을 통해 자본론 1~3권을 번역해낸 박기봉(비봉출판사 대표)은 “자본론은 지금도 해마다 1000여권씩 나가는 스테디셀러”라며 “다만 책의 결론에만 줄 치는 운동권식 독법보다는 그런 결론이 도출되는 논리를 따라가는 자본론 읽기가 더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81년 미국에서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6명)은 번역도 되기 전에 널리 읽히며 냉전체제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현대사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 중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하종문(한신대 교수)은 “우리를 옥죄어 온 냉전체제를 뒤집어보게 해 준 의미를 높이 살만하다”고 했다. 김원(서강대 연구교수)은 “냉전적 시각, 빈약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한국현대사 해석을 하던 한국학계에 ‘지적인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8명)은 98년 서울대 교수인 한상진·박찬욱에 의해 번역돼 한국 사회에 ‘실용주의’와 ‘중도론’뿐만 아니라 ‘사회적 민주주의’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됐다. 조효제(성공회대 교수)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얘기되며 대안적 진보이념을 갈구하던 시점에 소개돼 큰 영향을 미쳤다. 진보진영은 공개적으로는 기든스를 비판하면서, 자기 방에서는 몰래 정독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책이 소개된 90년대 후반을 거쳐 최근 와서 대안적 진보이념으로 사회국가, 사회투자 국가, 사회서비스 국가, 사회연대 국가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거의 모두 기든스식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일종의 ‘거명되지 않는 영향력, ‘스텔스기와 같은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조효제는 “푸코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저술은 권력과 담론에 관한 인식 전환의 계기를 줬다”면서 “한국에 소개된 시점이 한국적 문제의식의 지형에 맞지 않았음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역설적”이라고 지적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로마인 이야기’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 대중 서적들이다.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대중사회 수준에서는 일본과 미국의 소설, 성공학 번역서들이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전영평(대구대 교수)은 “지식인 집단보다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으로 파악한다면 해리포터가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일 것”이라고 말했다.(손제민·김종목·장관순기자)

07. 0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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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세계의 지성' 톱10

어제 TV 등 언론에서는 노언 촘스키가 영미의 시사지들이 인터넷 투표를 통해서 선정한 '세계의 지성' 중 '최고의 지성인'으로 뽑혔다고 보도했다. 약 2만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약 5000표를 획득, 2500표를 얻은 움베르토 에코를 더블 스코어로 따돌렸다고. 주로 영어권 네티즌이 참여한 것이므로 영미쪽 지식인들이 대거 선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프랑스쪽 지식인들은 톱10 안에 한 명도 들지 못했다). 어제 귀가길에 문화일보에서 이 '톱10'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대중문화'의 산물이기도 한 이런 투표 자체에 별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동시대 지식인들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가늠하는 데는 유익한 지표인 듯싶어서 소개하고 몇 자 덧붙인다(내가 흥미를 느낀 건 생물학자들의 부상이었다).

1위 노엄 촘스키(미국). 직업은 언어학자로 돼 있지만, 정치비평가, 문명비평가 정도로 더 잘 알려져야 마땅한 사람이고, 주로 하는 일은 '미국 비판'이다. 네오콘 잡지의 한 편집장은 촘스키와 하워드 진을 가리켜 '정신나간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대중이 보기엔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비판의 테마와 강도와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촘스키의 인지도가 높은 것은, 내가 보기에, 가장 쉽게 글을 쓰기 때문이다(그의 언어학 책이 쉽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가 프랑스의 현학적인 지식인들에 대해서 못마땅해 한 것은 당연한다(푸코 등을 읽다가 좌절한 사람들에게 촘스키는 희망이다). 대중들이 읽을 글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쓰라는 것. 그가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꼽힌 만큼 그의 '전략'은 유효해 보인다.   

 

 

 

 

촘스키의 책들은 국내에 '너무 많이' 소개돼 있다(국내엔 촘스키의 제자들도 여럿 된다). 수준 이하의 번역들도 많다고 하지만, '어렵지 않은' 책들이기 때문인 듯. 그의 전기로는 <촘스키, 끝없는 도전>(그린비, 1999)와 <촘스키>(시공사, 1999)가 같은 해에 나왔다(나는 전자를 읽고 후자를 사두었다). 바쁘신 분들은 <30분에 읽는 촘스키>(랜덤하우스중앙, 2004) 정도를 읽어주시면 되겠다. 책의 역자이자 전문번역가인 강주헌씨는 요즘 부쩍 촘스키에 빠져 있는 듯한데, 가장 최근에 나온 촘스키 책도 그가 번역한 <지식인의 책무>(황소걸음, 2005)이다. 물론 책은 제목에서부터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한마당, 1999)를 떠올리게 한다. 대중적 인지도에다 사회적 책무에 대한 강조에 있어서 촘스키는 우리 시대의, 미패권주의 시대의 '사르트르'이다(사르트르적 의미의 지식인이란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을 뜻한다).

2위 움베르토 에코(이탈리아). 직업은 문학비평가로 돼 있지만, 기본적으론 기호학자이고 게다가 소설가이다. 아마 러시아에서 이런 류의 투표를 했다면, 촘스키를 거뜬히 따돌렸을지도 모른다. 정치비평서들이 일부 '전문서'로 소개돼 있는 촘스키와는 달리 에코의 경우는 소설과 문학비평서, 중세미학연구서 등이 시리즈로 번역/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러시아보다 국내에 더 많은 '에코'가 나와 있다(그의 '조이스'론이 소개되지 않은 게 아쉽지만). 거의 '에코 천국'이라고 할 만큼.

 

 

 

 

국내의 에코 전문출판사로는 열린책들과 새물결을 들 수 있는데, <움베르토 에코 평전>(2004)는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에코 붐'을 만들어낸 건 물론 그의 첫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초판은 1986)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에코 자신이 쓴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열린책들)와 이윤기 선생의 번역을 교정해준 것으로 잘 알려진 강유원의 <장미의 이름 읽기>(미토, 2004)가 부수적인 참고문헌이 된다. 개정판도 갖고 있지만 내가 읽은 건 <장미의 이름> 초판이며, 작년에 러시아어본도 구해왔기 때문에 나중에 개정판으로 한번 더 읽어볼 생각인다(<푸코의 진자> <전날밤> <바우돌리노> 등의 다른 소설들은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언급만 하도록 한다). 모두가 알 만한 사실은 <장미의 이름>이 장 자크 아노에 의해서 영화화됐다는 것(숀 코너리와 크리스천 슬레이터 주연). 그리고 대부분이 모를 만한 사실은 <장미의 이름>이 다른 역자에 의해서도 번역됐었다는 것. <장미의 이름으로>(우신사, 1986). 프랑코 모레티의 표현을 빌면 번역 또한 '도살장'이어서 살아남는 번역은 몇 안된다. 

 

 

 

 

자신의 최초 전공이기도 했던 중세미학에 관한 책으론 <중세의 미와 예술>(열린책들, 1998), 기호학자로서 명망을 얻은 책으로 <기호학과 현대예술>(열린책들, 1998)이 국내엔 소개돼 있다(<기호학과 현대예술>은 불어본의 번역이고, 영어본 번역은 <기호학이론>(문학과지성사)이다. 이 국역본보다는 영어본이 훨씬 읽기 쉽다). 기호학자로서의 출세작 <기호학 이론>의 속편에 해당하는 <칸트와 오리너구리>(열린책들, 2005)에 대해서는 한번 소개한바 있으므로 생략하고, 대신에 추천할 만한 것은 에코가 공저한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인간사랑, 1994). 역자가 에코의 제자이다. 에코 기호학에 관한 국내 연구서로는 박상진 교수의 <에코 기호학 비판>(열린책들, 2003)이 유일하지 않나 싶고,  김성도 교수의 <하이퍼미디어 시대의 인문학>(생각의나무, 2003)에는 에코와의 대담이 실려 있다. 좀 특이한 책으론 에코의 축구광적인 면모를 기호학과 엮은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이제이북스, 2003)가 있다.

 

 

 

 

에코는 잡지에 기고하는 짤막한 에세이로도 유명한데, 국내엔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열린책들, 1995)으로 또 흥행몰이를 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열린책들, 1999)은 그 책의 개정증보판이다. 이후에도 물론 열린책들에서는 그의 에세이집들을 꾸준히 내고 있으나 내가 사거나 읽지 않았으므로 언급을 자제하겠다. 에코의 에세이들에 비교적 일찍부터 눈길을 준 출판사가 새물결이고,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1993)을 시작으로 댓 권을 연이어 출간했었다. 얼마전에 그 책들이 재출간됐다(일부는 독일어판의 번역이다). 이 정도면 에코는 촘스키 뺨치는 지성인이다.  

3위는 리처드 도킨스(영국).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일 듯하지만, 도킨스가 그래도 3위에 오를 줄은 미처 몰랐다. 영국에서의 대중적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 도킨스에 관해서는 여러 번 소개한 바 있지만, 이 자리에서 다시 간단하게 훑어보기로 한다.

 

 

 

 

국내에 제일 처음 소개된 도킨스의 책은 <이기적인 유전자>(두산동아, 1992)이고, 그의 책으로 내가 제일 처음 읽은 책이다. 물론 그때 도킨스란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막연하게 '이타적 행위'라는 게 모종의 심리적/도착적 만족감을 주는 '이기적 행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는데, 늘 그렇듯이 서점을 두리번 거리던 차에 <이기적인 유전자>란 책이 눈에 띄었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리고는 '유레카!'(우리식 버전으론 '심봤다!') 이후에 원서의 개정판을 옮긴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1993)이 출간됐고, 절친한 친구는 나의 권유에 따라 그 책을 읽고서 '유레카!'를 복창했다(그는 한동안 나만큼 도킨스를 욹어먹고 다녔다). 지금의 <이기적 유전자>(2002)는 보다 세련된 장정을 하고 있는바(표지의 진화과정을 보여준다), 이름하여 '고전100선'이요, 대학생/청소년 필독서이다.    

 

 

 

 

이후 도킨스의 주저라고 할 만한 책으론 <눈먼시계공>(민음사, 1994)과 10년만에 재간된 <눈먼 시계공>(사이언스북스, 2004)이 있다. 작년에 나온 <확장된 표현형>(을유문화사)은 내가 원서까지 사둔 책이지만 아직 읽지 않았으므로 감동을 적기는 어렵지만, 하여간에 다른 책들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최신간인 <악마의 사도>는 이전에 소개한바 있듯이 주로 칼럼모음집인데, '인간' 도킨스의 체취를 가장 강하게 내뿜는다. 도킨스 다이제스트를 원하는 독자라면 <도킨스와 이기적 유전자>(이제이북스, 2002)를 보셔도 좋겠다(다이제스트라 감질이 나겠지만).

 

 

 

 

세계석학 30인과의 대담집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가야넷, 2000)에는 촘스키와 에코는 물론 도킨스와의 대담도 실려 있다(지젝도 들어가 있다!). 내가 감히 사두지 못한 <사이언스북>(사이언스북스, 2002)에도 도킨스는 (당연히)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내 기억에 존 브로크맨이 편집한 <제3의 문화>(대영사, 1996)에서도 도킨스를 읽을 수 있다. 그의 호적수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와의 비교는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몸과마음, 2002)를 참조할 수 있다.

4위 바츨라프 하벨(체코). 이 리스트에 들어 있는 유일한 동유럽 지식인. 직업은 극작가이자 정치인으로 돼 있는데, 대통령을 역임한바 있으니 저명한 인사이지만 국내에는 별로 연고가 없는 듯하다.

 

 

 

 

뒤져보면 하벨의 책으론 <대통령의 꿈>(들꽃세상, 1992)이 처음 소개됐었고, '하벨 대통령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 사상'이란 부제의 <프라하의 여름>(고려원, 1994)과 드라마 <청중>(예니, 2000)이 소개돼 있는 정도. 동구권 희곡모음집인 <탱고 外>(현대미학사, 1994)에도 <도시 재개발 계획>이라는 하벨의 작품이 들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지역적 편향성 때문에 러시아/동구권 지식인들에 대한 소개/이해는 턱없이 부족한 편. 멋쩍은 김에 하벨의 나라 체코에 대한 안내서 두 권 정도만을 적어두기로 하자. 체코 문학 전공자인 김규진 교수의 <체코 문화>(한국외대출판부, 2000), 그리고 체코 여행 가이드북 <체코>(휘슬러, 2005).

5위 크리스토퍼 히친스(영국). 직업은 정치평론가라고 돼 있는데, 톱10의 지식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생소한 인물이다. 나의 견문이 짧은 것인가 하고 검색해 보았더니, 국내에 소개된 건 <키신저재판>(아침이슬, 2001) 달랑 한 권이다. 하면, 나의 '무식'을 탓할 수는 없는 것. 도서관에서 다른 책들을 검색해 보니까 <선교사의 입장: 마더 테레사의 이데올로기>(1995)란 책이 있고, 에드워드 사이드와 공저한 <희생자를 탓하기: 사이비 학문과 팔레스타인문제>(1988), 아담 바르토스란 이와 공저한 <국제 영토: UN, 1945-95>(1994)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 아마도 영국의 영향력 있는 정치평론가인 모양(우리의 경우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6위 폴 크루그먼(미국). 내가 이름을 아는 몇 안되는 현역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최근엔 反부시 진영의 대표적인 논객이며(뉴욕타임즈에 칼럼을 쓴다) 해마다 노벨경제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다고. 촘스키와 함께 MIT에 몸담고 있고, 1953년생이니까 나이도 비교적 젊다.

 

 

 

 

그의 책으론 <경제학의 향연>(부키, 1997)이 유일하게 내가 갖고 있는 책이다. 그가 공저처럼 돼 있는 <복잡계 경제학2>(평범사, 1998)도 갖고 있었지만 지난번에 책정리를 하면서 <복잡계 경제학1>과 함께 쓰레기장으로 갔다. 아마도 그 책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 <자기 조직의 경제(Self-organizing Economy)>(부키, 2002)일 것이다. 제목만으로도 대충 내용을 짐작하게 하는데, '복잡계 경제학 개척자'로도 평가된다는 크루그먼은 이 책에서 "복잡계 경제학의 사고방식과 모델을 다"룬다고. "그는 '불안정으로부터의 질서(order from instability)'와 '불규칙한 성장으로부터의 질서(order from random growth)'라는 자기 조직화의 두 원리가 어떻게 도시의 형성과 기술 집중 및 경기 순환 등 제반의 경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자기조직계'에 대한 책들이 한동안 붐을 탄 적이 있는데,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카오스: 현대 과학의 대혁명>(동문사, 1993)이 발단이었다(물론 얀치의 <자기조직하는 우주> 같은 신과학 천문학서도 있었다). 이어서 <복잡성 과학이란 무엇인가>(까치, 1997) 등이 나왔고, <복잡계란 무엇인가>, <왜 복잡계 경제학인가> 같은 일본서들이 번역/소개됐다. '복잡계 경제학'에서 크루그먼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이름은 '수확체증의 법칙'을 주창했던 브라이언 아서인데, 크루그먼은 이를 더 발전시킨 공로가 있는 듯. 이 '자기조직화'는 문학/예술에서도 많이 나오는 테마이며, 들뢰즈를 읽다가도 종종 마주치는 용어이다. 그러니 나중에 좀더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하는 크루그먼의 나머지 책들이다. 

 

 

 

 

7위는 위르겐 하버마스(독일). 작년 10월에 데리다가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하버마스와 함께 이 명단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연로한 세계철학계의 원로이지만 하버마스는 언제나 '막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막내였으며(물론 그의 제자들이 2세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1세대 학자들의 파워와 명망에 미치지 못한다) 20세기 독일철학의 막내이다.

 

 

 

 

독일 관념론의 적자를 자처하는 독일의 '괴물' 철학자 비토리오 회슬레(<객관적 관념론과 그 근거짓기>(에코리브르)가 지난 여름에 출간됐었다. 회슬레는 방한강연을 가진바 있으며 그때의 인연으로 한국여성과 결혼했다)가 꼽은바, (거명 당시에 생존하고 있던) 20세기 최고의 독일 철학자는 바이스체커, 가다머, 칼-오토 아펠, 하버마스 4인이었다(거기서도 하버마스는 가장 '젊은' 철학자였다).

 

 

 

 

하버마스의 책들은 국내에 '충분히' 번역/소개돼 있다. 물론 질과는 무관하게. 예컨대,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린 <인식과 관심>(고려원, 1996)은 오역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책이며, 따라서 '대중들'은 읽을 수 없는 책이다. 프랑스의 난다긴다하는 철학자들을 '신보수주의' 철학자로 몰아세우며 그의 '거장적' 면모를 부각시킨 책이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문예출판사, 1994)이다(이 또한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들이 있다). 기억에 그의 교수자격취득논문인 <공론장의 구조변동>(나남, 2001)부터 <소통행위이론1>(의암, 1995, 이건 2권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대표적인 '부실'번역 사례이다)를 거쳐서 <사실성과 타당성>(나남, 2000)에 이르는 주저들은 대부분 국역본을 갖고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의사소통의 철학>(민음사)와 대담 <테러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하버마스에 대한 국내 연구만 해도 (상대적으로) 차고 넘친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8위 아마티아 센(인도). 경제학자. 인도 출신으로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센의 책들은 수상에 힘입어 바로 출간된 바 있다. <불평등의 재검토>(한울, 1999), <윤리학과 경제학>(한울, 1999)이 그것이다. '경제학의 테레사 수녀'라고도 불린다니까 그걸로도 그의 학문적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그런데도 케임브리지대의 교수이다!).

 


 

 

 

센의 신간은 <자유로서의 발전>(세종연구원, 2001)이며, 소개에 따르면 "아마티아 센은 이 책에서 개인을 단순히 분배된 혜택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로 보고 논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국가, 시장, 법 체계, 정당, 언론, 이익단체 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사회적 장치들이 개인의 실질적인 자유를 충족시키고 보장하는 데 얼마나 공헌하는가 하는 일관된 관점으로 중국과 인도, 유럽과 미국 등 세계의 다양한 나라들을 검토한다. 이 책은 개인의 자유 속에 정치 참여와 경제 발전 그리고 사회진보의 능력이 어떻게 놓여 있는가라는 물음에 지표를 제시하며, 발전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알려진 바이지만, <국부론>의 저자이자 동시에 <도덕감정론>의 저자인 아담 스미스는 도덕철학 교수였으며, 경제학의 두 축은 윤리학과 경제(공)학이다. 센은 거기서 잊혀지거나 간과되고 있는 윤리학의 전통을 경제학에서 다시 되살리고자 애쓰고 있는 것. 이를 테면 '아담 스미스 구하기'이다. 그리고 그게 '나라 구하기'이다, 경제기술자들아! 

9위는 역시나 도킨스의 경우처럼 나를 놀라게 했는데, 미국의 생물/지리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이다. 사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지만 다이아몬드가 대중적인 인기만큼이나 지식인으로서 대우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흥미롭다. 다이아몬드에 대해서는 여러 번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군말을 덧붙이지 않겠다. 요컨대, '다이아몬드의 모든 책'이며, 그의 최신간 <붕괴: 어떻게 한 나라가 망하는가>가 빠른 시일 안에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10위는 인도 출신의 소설가 살만 루시디. 문제작 <악마의 시>로 1989년 이란정부(호메이니)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더욱 유명해진 작가. 그런 연유로 노벨상을 타기는 힘들겠지만(이번에 터기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파묵이 논란 끝에 수상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지지만), 아마도 루시디는 노벨상 수상작가보다 더 유명한 작가일 것이다(루시디의 문학에 대해서는 언젠가 박노자가 한 칼럼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한바 있다). 그의 작품으론 <악마의 시>(문학세계사, 2001), <무어의 마지막 한숨>(문학세계사, 1996)가 번역돼 있고 <하룬과 이야기바다>(달리, 2005)도 올해 나왔다. 좀 오래된 번역으론 <한밤의 아이들>(하서출판사, 1989)과 <악마의 수치>(청림출판, 1989) 등이 있다.

 

 

 

 

05. 10. 18.

P.S. 이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7위,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가 19위에 올라 있다고. 울포위츠를 선정 리스트에 올린 시사'잡지'들의 양식이 좀 의심스럽긴 하다(하긴 '은행' 눈치도 봐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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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중 한국문학

◇ 한국문학(17권)

▲ 고전시가선집

 

 

 

 

▲ 연암산문선

 

 

 

 

▲ 구운몽(김만중)

 

 

 

 

▲ 춘향전

 

 

 

 

▲ 한중록

 

 

 

 

▲ 청구야담

 

 

 

 

▲ 무정(이광수)

 

 

 

 

▲ 삼대(염상섭)

 

 

 

 

 ▲ 천변풍경(박태원)

 

 

 

 

▲ 고향(이기영)

 

 

 

 

▲ 탁류(채만식)

 

 

 

 

▲ 인간문제(강경애)

 

 

 

 

▲ 정지용전집

 

 

 

 

▲ 백석시전집

 

 

 

 

▲ 카인의 후예(황순원)

 

 

 

 

▲ 토지(박경리)

 

 

 

▲ 광장(최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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