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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 걸’의 ‘하이, 하이, 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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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전화를 걸고 “모시모시” 부르면, “하이! 난방” 하는 꾀꼬리같이 고운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바쁠 때 걸어도, 하이 하이
한가한 때 걸어도, 하이 하이
낮에 걸어도, 하이 하이
밤에 걸어도, 하이 하이
욕하며 걸어도, 하이 하이
웃으며 걸어도, 하이 하이
귀한 사람이 걸어도, 하이 하이
천한 사람이 걸어도, 하이 하이
―“여교환수의 생활 이면”, <동아일보>, 1924년 6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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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전화교환수’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모시모시, 하이, 하이, 난방(여보세요, 네, 네, 몇 번이십니까)”를 외치기 시작한 것은 조선에 전화가 도입된 이후 한참이 지나서였다. 전화가 도입되던 초기에는 상투를 틀고 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전화교환수로 근무했다. 설마 그들이 꾀꼬리 같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하이, 하이’를 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화를 발명한 유럽의 전화 회사들도 초기에는 남성을 전화교환수로 고용했다. 하지만 남자 전화교환수들의 불성실한 업무 태도와 비속하고 거친 말투 때문에 종종 고객과의 마찰이 일어나자 전화교환수 자리는 여성으로 대체되었다.

19세기 후반 들어 전화를 도입한 조선의 통신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초창기 전화교환수는 모두 남성이었다. 물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아직은 요원했던 사회·문화적 환경도 여자 전화교환수의 등장을 늦추는 계기가 됐다. 1920년대에 들어 전화기의 보급이 증가하자 여자 전화교환수가 등장했으며, 여성들 사이에서 전화교환수는 새로운 직업으로 각광받았다. 그렇다고 1920년 전에 여자 전화교환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있기는 했지만 일본인이었다. 1920년 경성우편국에서 드디어 여자 전화교환수를 공식적으로 채용함으로써 식민지 조선 여성의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다. 그 시작은 ‘창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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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우편국에서 전화교환수로 조선 여자를 채용한다고 한다. 학식은 보통학교 졸업 정도면 족하겠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일어이다. (……) 교환수가 되어 실무에 종사하는 조선 여자가 세 사람이 있으니 세 사람이 다 함께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생인데, 매우 성적이 양호하다. 이제부터는 [여자전화교환수를-필자] 많이 채용할 것이다. 연령은 15∼6세에서 23∼4세가 제일 좋으며, 성적만 좋으면 4개월마다 상당한 승급도 있을 것이며, 기회를 봐서 여자 판임관도 내겠다고 한다. 지금 있는 세 여자 도무지 야근을 싫어하는 듯한데, 그것은 자기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세상 형편을 알지 못하는 가정의 부모들이 어린 여자를 밤중에 내놓은 것을 위태롭게 여겨서 반대하는 듯하다. 경성우편국에서는 야근하는 교환수에게는 통장을 배부하여 가정과 연락을 취하여 우편국에서 가는 시간과 집에 도착하는 시간을 일일이 기입한 후 시간이 조금만 차이가 나도 엄중한 취조를 함으로 아무 염려할 점이 없을 것이다.
―“환영받는 조선인 전화교환수, 젊은 여자의 새 직업”, <동아일보>, 1920년 4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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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에서 여성에게 최하급 관료이기는 하지만 잘만 하면 판임관까지 시켜준다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더구나 경성우편국에서는 당시 조선의 ‘전통’을 염려하여 철저하게 귀댁의 자녀를 ‘보호’할 것이니, 가정에서는 아무런 걱정 말고 회사에 보내라는 것이다. 경성우편국의 이러한 정책은 ‘제국의 본국’인 일본의 시스템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일본의 부모들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딸들이 전화교환수로 취직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를 파악한 일본 정부는 여자 전화교환수들의 근무지 환경을 개선하여 철저하게 남성과 차단시킴으로써 오히려 부모들로부터 ‘안전한’ 직장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후로 일본 가정에서는 전화교환수라는 직업이야말로 여성들에게는 아주 ‘안전한’ 직업이라고 믿게 되었다. 1930년대에 이르면 여자 전화교환수는 전국적으로 수천 명에 이르렀는데, 중앙전화국과 광화문분국 그리고 용산분국에 근무하는 여자 전화교환수만 400여 명이었다.
‘진상’ 손님의 욕설에 멍든 그녀들
어찌 보면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고 있는 여자 전화교환수라는 직업이 겉으로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여성을 하대하는 풍토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여자 전화교환수라는 직업은 그리 편한 일자리만은 아니었다. 특히 고객으로부터 ‘죽일 년, 살릴 년!’, ‘빠가’ 같은 언어폭력을 당할 때마다 그녀들의 마음은 멍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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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평이야 이루 어찌 말씀을 하겠습니까. 또 말씀을 하면, 보고 들으시는 어른은 꾸지람을 하시게요! 그러나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교환수는 종일 걸터앉아서 “난방! 하이” 하고만 있으니까 편하고 손쉬운 줄 아시겠지만, 참 바빠서 이루 손이 안 갑니다. 좀 늦으면, “이년아! 빠가, 조느냐 자느냐” 별 욕을 다 하시고, 또 공연히 일없이 수화기를 떼고 이야기를 좀 하자는 둥. 그러나 대구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어떤 때는 울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연약한 교환수의 사정을 아시는 어른은 알아주시지만 사정 모르고 꾸지람만 하시는 어른은 한번 실지로 와 보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전화번호 책 첫 장의 주의를 잘 읽어주셨으면 퍽 필요할까 합니다.
―光化門局 金○淑, “各界各級 白紙 한 겹 關係者間의 新年 訴願”, <별건곤>, 192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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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국에를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가보지 못한 사람은 남의 사정도 모르고 교환수가 조금만 늦게 나오던지 늦게 대주면 덮어놓고 죽일 년! 살릴 년! 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게 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꼭 교환대 앞에 앉아서 아무리 두 손을 번갯불같이 놀려도 미처 당해내는 수가 없어서 손님에게 욕을 먹고 또 조금만 딴 데를 보면 감독에게 나무람을 듣고 하여 어느 때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을 하고 싶게 억울하고 분한 적도 있답니다.
―“여자직업안내-돈 없어서 외국 유학 못가고 취직할 곳 몇이나 되는가”, <별건곤>, 192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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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교환수들이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사는 말은 ‘난방! 하이’다. 물론 일본말이다. 당시의 전화 가입자들 대부분이 일본인들이었고, 시대가 식민지 시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 종일 ‘몇 번이십니까. 네!’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터인데, 전화교환수들은 남성들의 언어폭력이나 성희롱을 감내해야만 했다. 혹시나 모를 ‘폭력’ 때문에 자신의 이름조차 온전히 밝히지 못했던 전화교환수 ‘김○숙’의 일상은 단지 그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여자 전화교환수들은 신여성이니 모던 걸이니 하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호출되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소수자이자 약자였다. 특히 뭇 남성들로부터의 성희롱과 맞서 싸우기엔 그들은 아직 어린 ‘소녀’였다. 물론 전화교환수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남성 고객들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는 말한다. 한 전화 가설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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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매는 것은 급할 때 급한 일에 쓰자고 매는 일인데, 요새 이 교환수들은 어찌 그리 불친절하고 전화를 걸면 곧 대주지도 않고, 어떤 때는 그저 ‘하나시주’[통화중]라고만 하는 것 같으니, 그래서야 전화를 할 수가 어디 있나요. 여보, 교환수 아가씨네! 새해부터는 좀 빨리빨리 나와 주고 제발 딴 곳으로 대어주어서 남의 모양 숭케 말고, 무슨 말을 하거든 생기 있게 좀 하오. 꼭 몇 끼 굶은 사람처럼 죽어가는 소리를 말고요! 화나는 판에 당신네 말소리까지 생기가 없으면 화가 더 나지 않아요? 꼭 좀 주의하시오. 그러한 점을.
―電話架設者 李昌烈, “各界各級 白紙 한 겹 關係者間의 新年 訴願”, <별건곤>, 192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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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서비스를 받는 고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창렬은 요즘 말로 ‘진상’ 손님일 따름이다. 그런데 이 ‘진상’ 손님이 전화 서비스의 모든 책임을 전화교환수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잘 알지 못해서일 것이고, 사회적으로 이 문제가 제대로 공론화되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화교환수는 겉으로는 최첨단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는 신여성의 직업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용 조건이나 노동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그렇다면 전화교환수들이 고객의 전화를 잘못 연결한다든가, 몇 끼 굶은 사람처럼 목소리에 생기가 없다든가, 전화를 빨리 빨리 연결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불친절’하고 ‘미숙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 조건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사라진 직업의 역사> 추석연휴 연재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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