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언론도 여성의 직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과 그 직업에 대한 특집 기사가 종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1927년 3월호 〈별건곤〉에는 “여자직업안내―돈 없어서 외국 유학 못 가고 취직할 곳 몇이나 되는가”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다룬 직업은 여자 교원, 여의사, 부인(婦人) 기자, 유치원 보모, 간호사, 아나운서 등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전화교환수를 다뤘다.
〈동아일보〉는 “돈벌이하는 여자 직업 탐방기”라는 기획기사를 꾸렸는데, 그 첫 번째 직업이 여자 전화교환수였다. 〈동아일보〉는 1928년 2월 25일과 26일자 신문에 여자 교환수에 대한 심층 취재 기사를 실었다. 그 제목 또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기사 제목은 “‘하이 하이, 난방’이 입버릇 된 교환수 아가씨의 설움―앞에는 손님의 야비한 욕설, 뒤에는 교환 감독의 꾸지람, 그러고도 일급은 팔구십 전”.
〈동아일보〉는 8년이 지난 1936년 2월 20일자 신문에서도 여성의 직업에 관한 특집 기사를 실었는데, 여기에서도 전화교환수의 직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기사의 제목은 “얼굴보다 중요한 ‘키’, 산호가지 같은 ‘귀’, 이상야릇한 ‘적성시험’, 전화교환수의 자격”이었다.
이 기사들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5세에서 20세 이하의 미혼 여성으로 연령 제한이 정해져 있는 여자 교환수의 학력은 여자보통학교 졸업 정도면 됐다. 월급은 20원에서 많게는 50원 정도이니 학력과 나이에 비해 적은 월급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 기자가 중앙전화국 광화문분국의 전화교환수를 어렵사리 설득하여 취재한 여자 전화교환수의 고용 조건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전화교환수는 채용 시험을 보아야 했다. 시험 과목은 국어, 산술, 작문이었다. 여기서 ‘국어’는 당연히 ‘일본어’였다. 이 밖에도 기억력과 동작 예민성 등을 살펴보는 적성시험도 보았으며, 예민한 청각과 ‘어여쁜’ 목소리도 전화교환수가 되기 위한 중요한 자격 조건이었다. 월급은 견습생일 경우 19원 50전이었고, 정식 교환수로 진급하면 24원 정도였다. 근무 시간은 9시 30분에서 4시 30분이었으며, 사흘에 한 번씩 야근이 있고, 다음 날 9시 40분부터 휴식을 취하는 방식이었다. 평균 근무 시간으로 따지면 8시간에서 12시간 사이였다. 편의상 전화교환수의 월급이 24원 정도라고 했지만, 이는 한 달 내내 근무하면 받을 수 있는 총 합계였다. 전화교환수는 월급제가 아니라 일급제였다. 매일매일 돈을 받는 식이었다.

전화교환수의 자격 요건 중에서 재미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신장 제한이었다. 키가 너무 작으면 전화교환수 채용시험을 아예 볼 수가 없었다. 신장 4척 7촌 이상이 기준이었다. 4척 7촌이면 142.4cm이다. 이렇게 기준을 정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전화교환대의 높이 때문이었다.
전화교환수는 규칙상 45분 동안 일하고 15분간 휴식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통화량이 많은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통화량이 가장 많았다. 이 시간대에 여자 전화교환수 한 사람이 상대하는 교객은 210명 정도였다. 이들은 단지 전화회선만 꽂아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전화 연결을 바라는 고객을 직접 응대해야만 했으니, 한 시간에 210명 정도에게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모시 모시, 하이, 난방’을 지속적으로 말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고, 가끔을 실수도 하기 마련이었다.
또한 그네들의 일이란 철저하게 단순 반복 노동이었다. 특히 전화교환수의 근무지에는 그들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전화교환수 감독이었는데, 감독은 남성이었다. 전화교환수 감독은 전화교환수들이 한눈을 팔거나 딴짓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했다. 눈을 부라리고 있는 감독이 지배하는 조그만 방에 갇혀서 마치 녹음된 레코드에서 나오는 소리마냥 매일 똑같은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일까. 매일 매일 ‘모시 모시, 하이 하이, 난방 난방’을 외쳐야 했던 전화교환수들의 애환이 가끔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이야기로 저잣거리에 유통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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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의 기도
전화교환수이자 기독교를 신실하게 믿는 김혜숙 양은 밤에 잘 때마다 취침 전에 기도를 올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는 하느님입니까? 저는요 혜숙인데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것을 듣고 있던 그 오빠가
“습관은 할 수 없군!”
―“笑話”, 〈삼천리〉, 193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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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 전화교환수는 자신의 직업은 신경을 잃어버린 기계처럼 목소리로만 일하는 이상한 직업이며, 자신은 단순한 기계일 뿐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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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삼십 원 내지 사십 원의 월급! 이것이 그들의 몸을 붙들어 매고 그리고 어여쁜 손가락도 입도 귀도 모두 뺏어버렸다. 아무리 보아도 움직이는 인형이다! 소리 나는 기계다! 인조인형(人造人形)은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였다.
―“여자직업 순례―어느 편이 기계인지 분간키 어려운 동작”, 〈중외일보〉, 1929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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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여자 전화교환수가 ‘모던’한 신여성의 직업임은 분명했다. 신여성이라 불리는 여성들의 직업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있었고, 그렇지 못한 직업이 있었다. 특히 예나 지금이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여성이 직업을 갖되,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교사’와 같은 직업을 선택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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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너무도 학대를 하고 냉대를 하는 것이 서러워 못살겠어요! 책보나 끼고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은 의례히 점잖고 훌륭하다 하여 다정하게 신성하게 대접하면서도 우리 같은 ‘벤또’나 끼고 밥벌이 하는 여자는 덮어놓고 푸대접 한답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에요. 심한 사람들은 놀리기까지도 하니 이럴 때에는 그만 가슴이 쓰리며 울고 싶어서 못 견디겠어요. 어쩌면 우리의 사회는 이같이도 이해와 동정이 없고 게다가 점잖지 못한가요?
―광화문분국 전화교환수 이막동, “교환수가 본 세상, 학대와 비애”, 〈동아일보〉, 1924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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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전화교환수 가운데 가정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1970년대 ‘여공’들이 집안의 경제는 물론 국가 경제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았듯이, 여자 전화교환수 역시 그랬다. 자신의 꿈을뒤로 하고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그네들에게 세상은 차가운 눈초리를 보내며 그들의 일과 삶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가끔씩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효녀 심청’과 같은 사건이 있었을 때나 그들의 고된 생활을 다독거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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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하는 모친을 위하여 단지(斷指)한 철원의 이소완(李小完, 22세) 양은 십오 세 때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가정에서 한문과 침선 방적을 배웠다. 대정 십일 년 삼월[1922년 3월]에 철원우편국 전화교환수로 일급 칠십 전에 채용되어 십일 간 견습을 하고, 즉시 사무를 담당했다. 이후 육개성상[6년]을 하루도 결근하지 않고 우편국 한 모퉁이 조그마한 방 속에서 추우나 더우나 군소리 한 마디 아니하고 밤중이나 새벽이나 교환대에 매달려 ‘히야까시’[희롱] 군의 시달리는 전화와 술주정꾼의 되채지 못한 성화며 성미 급한 자들의 야단야단과 부랑자들의 함부로 퍼대는 욕설을 들으면서도 조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열심히 근무하는 직업여성이었다. 웬만하면 자기 손으로 월급을 받으니 동무들과 같이 호사도 하련마는 지금까지도 구두를 신지 않고 집석이가 아니면 고무신을 신고 의복은 항상 광목에 흑색을 물들여 입을 뿐이었으며, 다달이 월급을 저축하여 동생들의 학비와 모친의 치료비를 대왔다 한다.
―“전화교환수로 일가를 부양”, 〈중외일보〉, 1927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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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미담을 원하고 권한다. 그러나 ‘미담’은 미담일 뿐, 그렇다고 이소완의 힘겨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대부분 미담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은 힘든 가정에서 태어나 온갖 간난신고를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과 ‘효’를 그 누구보다 앞서서 행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눈에는, 당시 사회의 눈에는 주인공의 ‘충’과 ‘효’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간난신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없는 그 환경과 보이지 않는 ‘억압’에 시선에 자꾸만 눈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