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혁명 - 힘과 위력, 인간 행동의 숨은 결정자 데이비드 호킨스 시리즈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백영미 옮김 / 판미동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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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 사람을 알아보고 사물을 인지하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자신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고 학습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간다.나아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의 삶의 속성상 파벌과 연대의식,동료의식,동호감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그 속에는 인간의 본능적인 의식과 잠재능력,힘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그러한 까닭에 의식은 삶의 척도일 수가 있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여 삶의 질을 높히고 현재 겪고 있는 고통,괴로움,실패의 근원을 해소해 나갈 수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자문자답을 하고 그를 통해 내일의 밝고 행복한 삶의 수준을 이끌어 갈지를 생각하고 고민해 봐야하지 않을까 한다.

존 다이아몬드의 비선형 동역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의식을 근육 테스트를 통해 인간의 내재된 힘과 위력 등을 끌개의 힘을 이용하여 의식 진화와 인간 사회의 발달 자체를 최저치 20에서 최고치 1,000까지 보여 주고 있다.최저치인 수치심부터 최고치인 깨달음까지 보여주고 있는데 자신의 삶의 진실에 책임지는 것의 초기 효과는 낮은 에너지 수준을 200으로 올리고 이는 힘이 최초로 나타나는 임계적 수준이자 모든 높은 수준을 향한 디딤돌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존 다이아몬드 박사는 정신과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신체운동학을 이용하면서 근육테스트 기법을 환자들에게 널리 적용하고 유용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기쁨과 환희,위로와 위안,희망이 담긴 메시지와 자극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반대의 현상은 부정적이며 에너지 수준이 낮게 나온다는 점이다.극히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말일지는 몰라도 현실적으로 삶의 고통과 번민이 많은 사람들은 사랑과 평화,깨달음으로 가기 위해선 현실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골치 아픈 문제들을 너그럽고도 넓은 시각과 사고력으로 나아가는 훈련을 스스로 또는 주위의 관심과 애정에 의해 부정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완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에너지 수준을 제고할 수가 있고 자신은 물론 건강하고 밝은 사회 분위기 조성이 가능하리라 생각해 본다.

역사를 통해 보여지듯 인도의 간디와 독일의 히틀러가 힘과 위력의 대표적인 상징인물로 내세우고 있는데 간디는 인간의 내재적 존엄성 및 자유,통치,자결의 원리를 편드는데 전력을 기울였기에 진정한 힘을 과시할 수가 있었고 히틀러는 군사강국으로 그 위력은 어떤 매혹을 발산하고 선동적으로 흐르기에 가짜 애국심,위신,우세함을 가장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고 국민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감동,의지를 부여해 줄 수가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그외 처칠,고르바초프를 통해 진정한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으며,이는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개인의 힘부터 조직,사회,국가의 힘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흔히들 약자들은 '천민 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겉으로 보여지고 행해지는 국가 조직의 절대적 힘과 권력 앞에 나약하고 무력함을 위장하기 위해서라도 힘과 권력을 갖은 자들에게 휩쓸리게 되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고 결국은 스스로의 힘과 용기,자발성,사랑,평화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낮은 에너지 수준과 질 낮은 삶 앞에 늘 고통과 실패,괴로움으로 의미없게 살아갈지도 모른다.결국 껍데기뿐인 진실과 위력은 일시적이기에 무상함과 허무함마저 들게 되고 가엾는 연민마저 느끼게 한다.

내 앞을 살다간 수많은 선현과 성인들의 진정한 힘의 바탕을 이해하고 자신의 낮은 에너지 수준을 보다 높은 방향으로 끌어 올려 지금보다는 밝고 행복하고 사랑으로 충만된 의식 진화가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지금 내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우며 실패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집단 의식'에 휩쓸리지 않고 부단한 영적 투쟁을 통해 잠재된 힘을 십분 발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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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굴욕
크리스 헤지스 지음, 김한영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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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다인종 다민족이 어우러지고 세계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미국이 안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은 갖가지 사회적 부조리와 불평등 요인은 여실히 드러나고 이러한 현상과 문제점들이 과연 미국만 그럴까하는 의문과 내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구석에도 미국과 유사한 문제점들이 버젓이 횡행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다만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실체가 전세계의 정치,경제,사고방식 등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의식있는 사람이라면 이를 모두 수용해서는 안되며 현명하게 취사선택을 하는 자세와 태도를 갖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지식,사랑,지혜,행복,미국이라는 5대 환상으로 서술된 이 글은 내가 읽어온 미국의 내면의 실체 중에서 객관적이고도 신뢰성 있는 도서가 아닐까 한다.그만큼 미국이 보여주는 표면과 안에서 기획되고 이끌어 가는 세력들의 생존법은 '표리부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하다.즉 있는대로의 사실,진실은 미국을 이끌어 가는 재계와 정계의 몇몇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일종의 입바른 말을 하고 눈에 거슬리는 세력은 아무리 능력과 경륜,명망이 있더라도 도태되고 왕따를 당한다고 한다.소수 세력이 다수 세력을 이끌어 가는게 어느 나라든 존재하고 있지만 소수의 힘은 막강하기도 하지만 이들 세력이 반영구적으로 장악하고 유지하려든다는 점이다.특히 기업을 이끄는 재계는 미국의 정치인들도 함부로 집적거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돈이라는 환상과 탐욕에 의해 그들과 정치와 사회,군사의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논해야 하고 때론 로비를 통해서라도 재력과 권력의 무한대를 추구해 왔던게 사실일 것이다.그들의 비리와 모순,치부가 밝혀진다면 그들의 생명력은 짧아질 것이고 운신의 방향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기에 그들이 쉬쉬하는 진실의 내막은 커튼을 치고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지식부터 미국까지의 환상이 돈과 물질에 의해 미국이 움직이고 있으며 빈부의 격차부터 교육을 받을 권리,진정한 사랑,행복 추구권,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상과 허상이 거의 모두가 도덕과 윤리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말 그대로 10퍼센트 내외의 소수가 미국의 경제권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의 발상과 정책에 의해 대다수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미국은 겉으론 GDP가 얼마이고 모두들 잘 사는 부강한 나라일거라라고 생각하지만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어 시급(時給)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극빈층의 경우에는 보험수가가 너무 비싸서 보험가입이 불가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험가입 허용조차도 안되는 실정이라고 한다.그러니 경제력이 없고 소외된 계층은 돌봄과 나눔의 혜택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부류는 꼼짝없이 누워 죽음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돈에 목이 마르고 헝그리 정신의 표상인 격투기 선수들의 경우는 목숨을 내놓고 링 위에서 치열한 한 판 승부를 건다고 한다.승리를 거듭하고 유명세를 달리게 되면 관중석의 환호와 환영을 받으며 그들 일확천금을 거머쥐게 되기에 운동 선수의 경우에는 필사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또한 교육계의 경우는 아무리 학식이 많고 연구를 많이 해도 교육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의 방향과 노선을 충실히 따라가야만 그나마 붙어 있을 수가 있으며,섹스의 천국이라 할 미국에선 미적지근하고 은근한 성행위보다는 적나라한 사디즘과 매조키즘과 같은 변태행위가 자극적이고 흥미를 끌기에 환영을 받는다고 한다.이 곳에선 표현하기가 거북한데 글을 읽다 보니 포르노 현장에 온 느낌마저 생생하게 든다.

21세기 초 미국의 금융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그들의 국고는 투기성 상업이익에 고갈되고 있다고 지적한다.노동자계급은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동한 파산하지 않고 버티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빌려 왔지만,이젠 새로운 대출은 커녕 지금까지 누적된 부채마저 갚을 능력과 전도가 캄캄한 실정이어 쇠퇴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약해지고 무기력해져 빈곤과 고통을 안고 있는 대다수의 미국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창조적 파괴는 족쇄 풀린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슘페퍼는 말하고 있다.이는 경제학자 다이아몬드가 말하는 <붕괴>에서 사회적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다섯 가지 요인을 들고 있는데,환경파괴에 대한 이해와 원인 예방의 실패,기후 변화,적대적인 이웃 나라의 약탈,우호적인 이웃 나라들의 교역 단절,이상 네 요인에 의해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사회 자체의 해결방식이라고 한다.


영리한 엘리트 계층을 생산하고 배출하는 교육기관들의 탓도 미국사회를 좀먹고 있다고 생각한다.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부터,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붕괴,보편 의료보험의 부재,중동에서 겪고 있는 제국주의 군대의 패주에 이르기까지 실패한 미국의 배경에는 하버드대를 비롯한 유수의 인재들이 다수를 위한 정책과 실행이 아닌 소수를 위한 정책과 실행이 빚어낸 결과이고 이들은 정직한 지적 탐구를 경멸하고,그것은 본질상 권위를 의심하고,지극히 독립적이며,때론 파괴적이기 때문으로 보여진다.즉,소심하고 겁먹고 혼란에 빠진 대중,볼거리와 오락만을 제공하는 선전과 미디어 시스템,초월적 가치를 전달하거나 개인적 양심의 능력을 육성하지 않는 교육제도가불편한 미국의 현주소일 것이다.

어느 나라나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과의 그럴 듯한 친밀감을 만들어내고 부와 명예에만 치중하고 눈이 멀다보니 진실로 유능하고 성실하며 정직할 필요가 없다고들 스스로 양심을 속이는 것이다.정치가들의 정치 연극이 대다수의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는 정치 도구들을 교묘하게 양산해 내고 있으며 돈과 물질,성적(性的)인 정복을 우위에 두고 기업을 이끄는 재력가와 손을 잡고 재력의 힘에 빌붙으며 정치의 생명과 명예를 유지하려 하려는 것이다.이래저래 힘없고 선량한 대다수 국민들만이 생채기를 입을 뿐이다.미국이 안고 있는 지식,사랑,지혜,행복,미국은 그저 커튼 속에 가려져 밀실에서 모의하고 기획되며,그럴 듯한 구호와 외침으로 대다수 국민들만 무지개 빛 환상을 쫓아가게 하는 꼴이다.사회가 이분법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한국도 미국과 비스무레한 점이 많다고 생각이 든다.말 그대로 소수의 권력과 금력에 의해 대다수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그래도 진실은 있는 법이고 희망을 버리지 않기에 대다수는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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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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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의 진가는 사후에 발하고 있고 그의 구상했지만 미처 펼쳐보지 못한 정책과 사안들이 지금의 파행적이고 답답한 불통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노무현을 더욱 추모하고 있는거 같다.또한 그가 퇴임하고 고향인 봉하마을에 기거하면서 자연친화적이고 실천적인 자연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현정권의 행태와 대조적이어서 그의 죽음은 살아있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빚게 하고 있다.이제 그는 불행하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운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뜻을 뛰어넘어 지금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질적으로 알찬 삶을 누리고 사회복지의 혜택을 받고,사회의 불평등 요인이 가시적으로 수그러들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상호의존적으로 살아간다.피를 나눈 혈육이든 사회에서 만난 지인이든 상생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인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꿈꿔본다.인간 노무현을 만나 일과 인생을 나누고 그가 대통령 재직시에는 최초의 민정수석과 퇴임직전 비서실장이라는 직함으로 노무현대통령과 함께 인생의 언저리를 걸었던 자연인 문재인의 '운명'은 그가 걸어온 삶과 변호사로 같은 길을 걸으며 한때는 민주항쟁의 선봉에 서서 뜻을 나누던 동지였으며 믿음과 애정이 각별하였기에 그는 노대통령의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임명받았던 것이리라.조용하고 크게 나서지 않았던 문재인저자가 입을 열고 그가 하고 싶었던 말과 노무현대통령과의 크고 작은 일들을 지나온 세월을 객관적으로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일과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고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었던 분이 홀연히 세상을 떠났을 때 남아있는 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케 한다.

한국의 현대정치사는 독재와 인권 유린,지역차별,반민주의 세월로 점철되어 왔다.문재인씨 역시 대학 시절 유신반대 시위전력으로 '여봐라'하듯 사법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였지만 판사임용에 제외되고 노무현을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부산에서 노무현과 운명의 만남이 시작이 되고 노무현대통령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에는 운명마냥 그의 상주 역할을 하면서 그를 대신하는 사람이 되고 그를 기리고 회고하며 그가 못이룬 뜻과 이념을 차세대에선 꼭 이루어 천상에서 보고 있을 그에게 기쁨과 환희를 안겨주겠다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고 보여진다.정치는 소수의 힘에 의해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소수가 안고 있는 비현실적이고 장애가 되는 진실은 가려지게 마련인데,참여정권이 남긴 선명한 정책들은 힘과 물력을 갖은 소수보다는 소외된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노무현대통령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성장하고 어렵게 고시에 합격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검사,판사보다는 인권 변호사로서 충실하였고 5공의 부패문제에 대한 청문회에서 보여주었듯이 그는 가치가 있고 보람있는 일을 해 나왔던 자존심이 뚝심이 센 분으로 인식이 된다.죽음을 앞두고 가족이 수뢰혐의에 연루되고 그에게 다가오는 족쇄는 마치 궁지에 몰린 쥐의 존재와도 같았을 것이다.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듯 그에게 덮어 씌우려는 정치권력의 음모와 서슬퍼런 칼날 앞에 가족과 국가를 뒤로 하고 남아 있는 모든 이와의 인연을 끊고 의연하게 생을 마감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정권보다는 더 나은 정권이 들어서고 사회의 불협화음인 불평등 요인들이 제거되어 진실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와 세상을 간절히 바란다.그것만이 미래의 한국사회가 건강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며 이는 살아있는 뜻있는 세력들이 합심하여 과단성 있게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안타깝게 그는 갔지만 그를 만나고 함께 일하며 동행했던 저자가 내세우는 진보적이고 상생적인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에 함께 동참할 시기가 다가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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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조종자들 - 당신의 의사결정을 설계하는 위험한 집단
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현숙.이정태 옮김 / 알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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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인터넷,스마트 폰 등 웹을 통한 지적욕구 충족과 다양한 정보 수집,분석,물품 구매,단순 찾기 등은 매일 숨을 쉬고 식사를 하고 수면을 취하듯 거의 습관적으로 엄지 손가락과 열개의 손가락이 쉴 날이 없다.눈과 귀는 늘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단편 뉴스와 사유를 요하는 지식,지혜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들락날락하면서 최신 흐름과 정보전쟁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또한 IT강국으로 떠오른 한국의 정보국가의 위상으로 볼때 최신식 CC TV는 공중시설과 편의시설이 있는 곳이면 설치되어 있어 행동거지 하나라도 늦추어선 안되는 시대에 접어든지 오래다.그만큼 사회는 개인을 위해 점점 편리해져 가지만 공공기업과 국가조직에 의해 불특정 다수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대이기도 하다.'사회안전망'이라는 미명도 좋지만 때론 불쾌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사회안전망과 사회질서라는 차원을 넘어서 인권이 위협당할 수도 있고,개인적으론 주정차 문제로 몇 번 딱지를 떼인 적이 있는데 대로도 아닌 한참 후미진 골목길에 잠깐 세워 놓은 차를 주민이 구청에 신고하여 어처구니 없게도 벌금을 문 적이 있다.일종의 님비족들의 소행으로밖에 생각이 들지 않고 구청은 재정자립도라는 명제하에 '얼씨구나 좋다'하고 한 건 올렸다고 쾌재를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개인 의견 진술서를 제출하라고 하지만 이건 형식적인 요식행위이기에 전화상으로 자초지종을 말하고 따끔하게 담당자에게 훈계만 하고 잊어버리자고 끓어 올랐던 마음을 삭히고 말았던 적이 있다.

사람이 되었든 기계가 되었든 편리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이의가 없지만 개인의 사생활과 생각,아이디어들이 언제 어디서 어떠한 형식으로든 개인 정보가 새어 나가고 이로 말미암아 불쾌하게 걸려 오고 스팸,대출,모모 가입권유 등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꼴이 되고 만다.대부분 내가 주체가 되어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정하는 스타일이기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아예 무시하고 모르는 전화,문자는 처음부터 받지 않고 삭제해 버린다.'행여'라는 미련을 버리기 위해서이다.

이와는 다르게 웹서비스 대기업체들인 구글,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애플 등이 개인의 PC 사용 흔적을 원격 조종이라도 하듯 사용자의 흔적과 이동 경로,구매 및 가입상황 등을 면밀히 수집하고 분석하여 개인에게 관심과 흥미를 끌만한 정보 소스(물론 상행위이겠지만)를 제공하고 있으며,이는 정치적 취향,관심사,취미,성격 등과 관련되어 있어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맞춤 서비스,000을 위한 마법 상자 등이 눈에 띈다.한 번이 아닌 여러번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나는 이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며 때론 마법에 걸린거 같기도 하다.사람에 따라 개성,취향,기호,관심사가 다르겠지만 상기한 온라인 업체들이 개인의 정보,이용 상황을 토대로 편협한 정보 세계의 울타리에 갇히게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 엘리프레이저는 이러한 현상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하는데 개인에 따라선 이를 묵인하고 따르는 사람도 있지만 넓고 큰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수요층과 이용자들로부터는 거센 반발과 항의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필터 버블은 충분한 근거와 완벽한 자료가 아니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계층의 위화감과 불필요한 정치 세력을 키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웹 서비스는 오락,취미,섹스 등 신경을 자극하는 문제는 쉽게 반응을 하겠지만 정치,종교,철학 등의 문제는 과연 쉽게 반응을 할지 의문이고 이를 거절하는게 과연 온당할지도 생각해 볼만한 문제거리가 되기도 한다.특히 페이스북은 친구 찾기가 위주가 되지만 '좋아요'라는 먼저 왜 클릭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좋종 있다.그렇게 함으로써 웹 운영자들은 다수의 지지를 받고 홍보 및 마케팅 운영에 적극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결국 개인은 그때 그때의 생각과 감정,상황에 따라 변심,보류,관망,무관심 등이 다르기에 일률적으로 개인의 관심과 취향을 섣부르게 결정하고 들이대는 행위는 어쩌면 부도덕한 상행위가 될 수도 있으며 개인의 선택권을 매수해 버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이에 미국에서는 1973년 닉슨 행정부에서 '공정한 정보 사용 규칙'과 최근 연방통상위원회에서 '추적 금지리스트'를 제안했다고 하는데 이는 개인이 한 사이트에 자신을 추적하지 말도록 등록하면,모든 온라인 사이트의 추적을 한꺼번에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한국에서도 개인의 사생활 침해권 금지 조항이 있는 걸로 알지만 실제론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엄청난 데이터를 소유하고 핵심정보를 이용하여 알고리즘을 형성하는 주축 세력들은 잠재고객과 소비자,이용자를 겨냥하여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는 여론 바꾸기를 통해 진실에 가까이 있으면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밀고 가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진실을 만드는 것보다 휠씬 쉽다고 랜던은 말하고 있다.이는 선거철이 되면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 및 설문조사를 통한 여론 형성이 겉으론 그럴듯한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지만 이는 주체 세력에 의한 권력의 형성을 이끌어 내고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속임수를 체스판 위에서 체스를 굴리듯 불특정 다수의 생각과 아이디어,선택권을 강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귀가 얇다'라는 말이 있는데 수없이 밀려오는 정보와 지식을 누군가에게 어처구니없이 강요당하는 줄도 모르고 무엇이 검색어 1위이고 스트셀러이며 1면 머리기사가 최고인줄 알고 그에 부화뇌동하는 자세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누군가에게 강요당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감정과 아이디어,선택권을 조종당하지 않으려면 계획성 있는 생활습관과 부화뇌동하지 않는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어떤 업체든 대놓고는 강요는 않을테니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소신과 현명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과 자신의 개인 정보를 소중하게 다루고 주기적으로 비밀번호 등도 변경하여 누군가에게 내 정보를 이용한 사생활 침해에 걸려들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파워 북로거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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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 심리학 - 이해와 배려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지피지기 시리즈 9
사이토 이사무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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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늘 누군가와 얽히고 섥힌 가운데 삶을 영위해 간다.혼자서는 살 수가 없는 지극히 나약하고 고독한 존재이기에 필연이든 우연이든 누군가와 부딪히고 얽히는 가운데 삶을 꾸려 나간다.삶의 가운데엔 반드시 즐거운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고민과 우울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즉 대인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자신에게 유불리가 결정되어지고 삶의 질과 행복도는 달라질 것이다.

사람은 늘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타인과 조화와 균형을 맞추려 힘쓰는데,겉과 속이 동일하게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기꺼이 동참하는 타입도 있지만 대개는 생계문제,상황과 입장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이를 독일 대인심리학의 권위자인 하스의 말을 빌리면 "남의 행동을 보고 자기 행동을 고쳐라"고 했듯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늘 타인을 의식하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를 신경쓰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반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선 거의 초월하여 무감각적으로 겉을 꾸미고 행동하는 유형은 아무래도 자신의 신념과 행동패턴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을거라 생각하는데 이는 사적 자기의식이 강한 부류라 할 수가 있다.대중화시대와 대인관계가 중요시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선 사적 자기의식이 강한 부류가 자칫 왕따가 되고 소외되는 경향이 있겠지만 사적 자기의식이 강한 사람이 때론 신념과 가치관이 강하기에 개성과 표현을 중시하는 요즘엔 공적 자기의식과 사적 자기의식이 공존해 나감으로써 사회는 두 가지 심리현상에 의해 존재하고 흘러가리라 생각한다.

여성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꾸미고 남성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남을 의식하고 대인 관계를 넓혀가지 않은가 싶다.물론 남성보다 여성이 치장하는 가짓수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외관의 미적 완성과 더불어 내적 완성도 겸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남성 역시 꾸미되 단촐하면서도 산뜻하며 격조 높은 외양이 보기 좋고 호감이 갈 수도 있겠지만 내적인 자기의식과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자기의식이 높을수록 타인을 의식하고 자신의 의식구조에 기초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쩌면 보편적이고 인간이 갖고 있는 속성일지도 모른다.다만 사회생활 가운데 가치관과 이념이 어떻게 변하고 실천해 갈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거의 대다수는 자기 중심의 사고와 의식에 의해 개인 및 다수를 상대하고 그것을 관철해 나가리라 생각한다.

특이하게 다가오는 점은 스완이 제창한 '자기확정이론'이다.자기평가가 높은 사람이 자기를 높게 평가해주지 않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일까?이다.그것은 상대방이 자기를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경우는 상대방을 더욱 칭찬을 많이 해서 필사적으로 상대방에게도 똑같은 좋은 평가를 끌어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과연 그럴까? 이는 자기평가가 지극히 낮은 사람보다는 비교적 높은 사람이 자기보다 자기평가가 높은 사람과 의식수준과 비슷하거나 더 높아지려는 일종의 경쟁심리에서 기인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IQ보다 EQ가 중요시되고 각광받는 시대에선 똑똑하고 목에 힘을 주는 사람은 의외로 고독하고 사람이 따르질 않을거다.자기표현을 적절히 하고 분위기를 잘 타며 다수를 이끌어 가는 대중적인 이미지의 소유자가 오히려 공적 자기의식도 강하고 다수에게 호감과 인기를 끄리라 생각한다.대중이 좋아하는 이미지와는 동떨어질 만큼 고리타분하고 사적 자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대인관계가 좋아질리 없고 따르는 지인도 하나 둘씩 멀어져 갈것이다.

자신의 단점을 숨기고 자신에게 없는 영광을 빌려서라도 자신의 실체를 진실마냥 포장하려는 인간의 그릇된 심리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해 왔다.다만 없는 사실을 있는 것마냥 허위조작하고 공기(公氣)를 혼탁하게 하는 행위는 그 과정이 어찌되었든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일종의 '선의의 거짓말'을 통해 문제발생의 소지를 최소화하고 책임있는 말과 행동이 보다 사회를 밝고 건전하게 이끄는 동인이 되리라 생각한다.남을 속이고 그릇된 행위로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행위는 삐뚤어진 인성에 지나지 않으며 욕망과 탐욕이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현재 자신의 위치와 입장이 남과 비교하여 낮고 인정을 못받을지라도 보다 나은 미래와 목표를 향해 꿈꾸며 한 발 한 발 성실하고도 진지한 자세로 매진해 나가는 생활습관과 행위야말로 '공든 탑이 무너지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더 좋은 삶의 방식을 향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지 중심의 심리현상이 아니겠는가?

*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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