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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막요 세트 - 전2권
동화 지음, 전정은 옮김 / 파란썸(파란미디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통화(桐華)작가는《보보경심步步警心》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일종의 시대극인 셈인데 청나라 강희제 시절 황제와 황태자,궁녀의 궁중 애정소설로 각인되고 있다.열 명이 넘는 황자들이 황제의 신임과 총애를 얻기 위해 피나는 노력과 궁녀를 차지하기 위해 애정다툼은 무릇 권력을 떠나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인간사라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작가 통화는 시대극을 위주로 하면서 중국 역사의 갈래 갈래를 잘 풀어 내고 있으며 인물들의 갈등과 고뇌,타협과 체념 등의 심리묘사도 공감이 크게 갔다.게다가 이야기가 대서사적인 극의 분위기를 띠고 있어 유구한 중국 역사,문화의 일부를 적출하여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또한 시대극에서 없어서는 안될 양념거리인 서정적인 묘사는 독자들의 이목을 심취하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원제가《대막요大漠謠》이지만 중국 안방극장에서는《풍중기연風中奇緣》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비 사막 바람 속의 기이한 인연 정도일까.기원전 123∼117년의 서한무제 시기를 다루고 있다.당시 서한무제는 몽골 부근의 흉노족과 싸움이 그칠 날이 없을 정도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서한의 국내정정(政情)도 불안하기 그지 없던 변화무쌍한 시기였다.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늑대와 함께 성장하던 주인공 금옥은 흉노정변으로 유망민(流亡民)이 되어 서한의 장안으로 도피하게 된다.도망하던 도중 알게 된 두 남자가 바로 유상(儒商) 맹서막과 한나라의 영웅 곽거병이다.맹서막과 곽거병은 우선 성격부터 판이하게 다른데 맹서막은 고상하고 기품이 넘치며 재력이 있지만 가문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여자에게 환심을 사지 못한 채 속으로 끙끙 앓는다.이에 비하면 곽거병은 흉노와의 전쟁에서 영웅답게 딱부러지게 금옥에게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전달한다.
한편 금옥은 맹서막의 주선에 의해 낙원방이라는 가무방에 적(籍)을 두면서 춤과 노래로 시름을 달랜다.금옥은 야생마와 같은 늑대와의 생활이 몸에 배이면서 몸은 여자이지만 마음은 심지가 곧은 감추어진 야성이 있다.게다가 서역에서 흘러 들어온 빈한한 출신의 이연(李硏)이라는 여자는 금옥보다 더 권력과 야망에 심취해 있는데 후일 이연은 황제의 후궁으로 들어가 고귀한 신분인 황비가 된다.그런데 이연이라는 인물이 기방에 들어오면서 맹서막과 곽거병에게 사랑을 빼앗기니 금옥은 누구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투척하지도 못한 채 또 다시 초원의 야생시절도 되돌아 가게 된다.
"난 예쁘고 연약한 꽃이 되진 않겠어요.아무도 깔보지 못하고 크고 높은 나무가 될래요." - 1권 P41
영리하고 도도한 금옥은 내심 맹서막의 사랑을 받고 싶은데 그는 지체 높은 가문을 이어가야 하는 책임감과 보수적인 기질에 책만 탐하다 보니 맹서막은 금옥에게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쉬이 전달을 못하고 금옥의 마음마저 수용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사랑으로 끝나고 만다.반면 곽거병은 진취적이고 활달한 면이 있어서인지 금옥에게 사랑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 간다.몸과 마음이 뜨겁게 달아 오르는 숨막히는 사랑도 젊은 시절의 특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서역 출신의 이연은 서한무제 유철의 총애를 받으면서 황비로 앉게 된다.일국의 황비가 된 몸이라 청아하고 교태가 어린 얼굴은 가냘프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이연이 궁중에 들어가 황비가 되었던 것도 금옥의 심정적 지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금옥은 자살한 양부(養父)를 생각하면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붓글씨로 유려하게 써 내려간다.
행복은 마음속에 까닭 없이 피는 꽃이다.아름답고 요염하며,은은하게 감도는 달콤한 향기가 스며들게 한다.사람의 기억이란 거짓과 같아서,언젠가는 나도 오늘의 행복을 잊어버릴지 모른다.(중략)행복이든 슬픔이든 다 내가 살아온 흔적일 것이다.그래도 나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겠다.-1권 P141
황실 사람들이 들썩거리면 태자,황자들,대장군과 신구 귀족들,조정의 중신들이 모두 모여 성대한 잔치가 되는 기이한 풍경을 이룬다.수많은 사연과 아름다운 전설을 남긴 이연도 복사꽃 지듯 운명을 달리하고,금옥의 남편 곽거병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맹서막은 곽거병과 금옥을 놓고 벌였던 자신의 잘못된 행실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금옥을 '언제 또 만날지 모르겠구려'라고 하면서 맹서막은 기이한 미소를 띤다.
정은 깊으나 인연이 얕으니 어찌하리.하지만...... 후회하지 않네...... 단지 그리워할 뿐...... - 2권 P599
이 글은 기원전 2세기 경의 서한 시기와 주변국 이를테면 흉노족,서역(중앙아시아 주변국) 등을 떠올리게 한다.흉노의 정변을 피해 서한으로 피신했던 금옥은 두 남자를 만나면서 밀고 당기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중국 전통 악기인 호적(胡笛)의 가락에 맞춰 변주하고 있는 것 같다.분위기는 그리 밝게 피어 오르지는 않지만 두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고비사막을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하고 있다.늑대와 같이 야성을 길렀던 금옥은 사랑의 관계에서도 뚝 부러지는 나무가지가 아닌 버들가지와 같이 낭창 낭창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또한 통화 작가는 제자백가의 사상까지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어 문맥의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