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련
미셸 뷔시 지음, 최성웅 옮김 / 달콤한책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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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를 동경하는 이유는 대중 예술문화가 발달하고 오래된 그들의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음악,회화,건축,철학,문학 등에 이르기까지 애정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아직 프랑스에 가본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느끼는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는 문화가 잘 보존되고 발달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다.개인적으로는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프랑스어의 비음과 연음은 매우 독특하면서 묘한 매력을 안겨 준다.

 

 

 

 얼마 전 《그림자 소녀》로 독자들의 좋은 호응을 얻었던 미셀 뷔시 작가는 인상파 화가 모네의 주요 작품인 수련(水蓮)을 모티브로 하여 사건과 수사를 중심에 놓고 부가적인 이야기를 삽입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성을 선보이고 있다.하나의 살인 사건이 계기가 되어 형사들에 의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지만 살인 사건의 진범을 추적하여 법의 심판대에 올려 놓으려는 형사들의 집요한 직업 근성은 희미한 대신 형사가 추억 만들기를 빙자하여 용의자의 부인에 사랑 전선에 적극적인 모습과 화가 모네가 살았던 시대의 음악,회화,문학 작품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뒤섞으면서 (작가는) 은연중에 프랑스의 대중문화를 널리 예찬하고자 하는 의도도 숨어 있다는 것을 감지하였다.

 

 파리 근교 지베르니라는 마을에는 세 명의 여자가 살고 있었다.팔십 노파는 심술쟁이로서 이 글 전체를 이끌어 가고 있고,삼십대 중반의 여자는 교사 신분이면서 예술에 관심이 많다.일명 거짓말쟁이이다.또 하나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열 한 살의 소녀로서 그림 그리기에 천부적 자질을 갖고 있으며 철저한 이기주의자로 통한다.그런데 센강과 압센강이 교차하는 곳인 지베르니 마을 냇가에 안과 의사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베느농 경찰서 소속 실비오와 로랑스가 이 사건의 진상을 찾기 위해 분주한 듯 단서,탐문,알리바이를 염두에 두고 수사에 나서게 된다.안과 의사 제롬 모르발의 몸에서 나온 모네의 <수련>그림이 인쇄된 엽서의 글귀를 단서로 교사인 스테파니,피해자의 정부(情婦) 등을 대상으로 사건의 용의자 물색에 나선다.

 

 한편 방앗간 꼭대기층에 기거하는 노파는 검은옷에 검은색으로 뒤덮인 <수련> 한 점을 소장하고 있다.그림은 빛이 닿지 않는 캄캄한 구석,사각(死角)지대에 걸려 있고,회색 물길을 따라 흐르는 짙은 점들은 어둠 속에 더욱 을씨년스러움을 자아내고 있다.애도의 꽃,절대 완성되지 말았어야 할 슬픈 애도의 꽃.이 애도의 꽃이라는 것이 앞으로 지베르니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전조라고 봐도 될 것이다.

 

 피해자 제롬 모르발을 죽인 범인을 찾으려 형사 둘은 한 조가 되어 탐문과 수색에 나서는데 고참 형사인 로랑스는 용의자 자크의 아내 스테파니에게 추파를 던지게 된다.처참하게 죽은 안과 의사의 부인은 남편의 죽음에 크게 절망,상심,동요는 거의 보이지를 않고 형사들의 수사도 지리멸렬하게 진전된다.설상가상으로 미국에서 건너 온 화가 제임스가 밀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과연 두 명의 살해자는 동일 인물일 것인가에 촉각을 세우게 된다.당초 형사 보좌관은 여러 명의 정부를 둘러싼 치정사건,그림에 미쳐 있었던 피해자와 관련한 밀매 사건,숨겨진 아이와 관련한 사건을 살인사건의 동기로 보면서 수사에 나섰던 것인데,로랑스 형사는 사랑의 추억을 만들려고 스테파니에게 치근대면서  그녀의 남편 자크는 보호본능,방어 차원에서 형사와 대치하기도 한다.안과 의사,미국인 화가를 죽인 진범은 잡히지를 않고 미제사건으로 끝나고 만다.게다가 교사 스테파니,천재 소녀 화가 파네트마저 모네의 마을에서 예상치 않게 죽고 만다.과연 이 사건의 진범은 누굴일까.

 

 

 이 글의 화자인 팔십 노파는 모네가 서거하던 1926년에 태어나 그간 모네 마을인 지베르니에서 살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반추하고 있다.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검은 <수련>은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에서 애도의 전조를 알리기라도 하듯 연쇄적으로 몇 명의 사람이 죽어 나간다.게다가 사건의 진범이 누구냐에 신경을 쓰다가는 이 글을 읽는 재미가 반감될 것 같다.이와는 대조적으로 모네의 마을인 지베르니를 중심으로 센 강과 압센 강,모네의 정원은 볼거리로 가득하다.모네의 구옥은 잘 보존되어 있는데 고색창연한 맛이 일품이다.게다가 모네의 정원은 싱그러운 화초들로 가득차 있어 외지 및 외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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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마음습관 길들이기 - 나를 발견하는 심리학
수졔.진훙수 지음, 김경숙 옮김 / 유아이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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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던 시절,야근을 하고 있을 무렵 당직을 서던 한 장교가 사람의 마음 훔치기라는 대목으로 들어 주었던 얘기가 인상적이어 뇌리에 오래 남아 있다.장교는 독심술 비슷하게 학습하고 경험을 쌓았는지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되면 표정,말투,손짓,자세 등을 유심히 바라본다고 한다.그것을 통해 상대방의 스타일을 가늠하고 자신과 상대가 되어 관계를 맺어 갈 경우에는 일도 일이지만 상대의 스타일에 맞춰 대응해 나가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심리전을 쓴다고 했다.그 장교는 인상은 편안하게 보이지만 몇 분간 대화를 나누다 보니 눈빛이 형형하고 (뭔가를)통찰하는 인상에 내심 주눅이 들기도 했다.지금 생각하면 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인간관계의 미숙함에서 스스로를 아래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다만 군대라는 조직 공간이 지휘계통이고 지위,계급에 따른 수직적,관료적,획일적인 것이 지배적이었기에 일반 사회와 견주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전적으로 심리 싸움이라고는 할 수가 없지만 그후로 나와 너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심리 방면에 관한 도서,경험을 쌓아 가면서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상대에게 치이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바 이상으로 이뤄나갈 것인가를 늘 생각해 왔다.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한 채 내 생각과 감정대로 밀어 붙이기 식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생각이고 커다란 실책을 안겨 준다.자아인식에 대해 철저한 분석부터 일상적인 행동에 대한 분석에 이르기까지 깊게 인식하여 때와 장소,상황에 맞게 대응하려는 노력과 자세가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한다.내가 개인 및 다수에 어떻게 비쳐질까를 생각하고 대응하려는 마음의 준비와 노력,그리고 상대는 내게 어떻게 대응해 나올 것인가에 따라 적절하게 응대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사람은 언어적 요소와 비언어적 요소가 있는데 언어적 요소를 통해 개인의 진실성이 얼마나 담겨 있는가를 엿볼 수가 있을 것이고,비언어적 요소를 통해서는 개인의 성향,문화적 유전 성향,경제적 지위 등을 가늠할 수가 있을 것이다.그런데 인간의 심리기제가 오묘하여 심리적으로 쉽게 상대방을 누른다든지 도리어 상대방에게 물린다든지 하는 경우는 사회 초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고,일반적인 경우에는 밀고 당기는 기(氣) 싸움이 종종 벌어지면서 일과 일상에서 인간관계는 매끄러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자신의 체격,언행,습관과 기호,감정,신체언어 등이 있는데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지게 마련이다.격식을 차려야 할 경우에는 외모,복장,언행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고 격식을 떠날 경우에는 다반사와 같이 평온한 마음으로 대한다.특히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지식,경험,지혜를 가족을 비롯하여 지인들과 스스럼 없이 공유하고자 한다.돈과 물질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는 있지만 때로는 넓은 마음으로 때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나이 불문하고) 미소와 겸양으로 살아가는 것이 상선(上善)이라는 생각마저 한다.나아가 나와 아내는 20여 년을 함께 살다 보니 궂이 말과 행동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어떠한 생각과 감정을 품고 있는가를 살아아온 미운 정과 고운 정의 중간 지점을 선택하여 읽고 대응해 나간다.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또 하나는 말과 행동이 진중해진다는 점이고,뭔가를 새롭게 벌이려 하기 보다는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한 곳으로 모아 정리,수집해 나가려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중국인인 수졔,진흥수 두 저자에 의해 쓰여진 이 글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인간관계는 심리전의 연속이다 라는 것이다.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마음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처음 부딪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제대로 간파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그러한 의미에서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심리를 읽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관계증진은 우호적으로 변해갈 것이다.왜냐하면 인간관계라는 모티브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이라는 키워드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돈과 물질,SNS 시대에 인간관계를 어떻게 진전시켜 나갈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자아인식부터 상대방의 내.외부에 잠재되어 있는 심리 분석까지 할 줄 알아야 무한경쟁시대에서 생존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일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심리 유형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적용한다면 마음 다스리기,올바른 처세까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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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할런 코벤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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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릴러물은 예상치 못한 우연을 가장한 사건.사고가 롤러코스트를 타듯 짜릿한 높낮이를 반복하면서 생사의 기로를 맛보는 등 우여곡절이 오가기도 한다.결말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정해지지만 희극(喜劇)으로 결말이 나는 것을 좋아한다.6년이라는 작품도 그러하기를 (내심)바라면서 읽어 내려 갔다.그리고 대부분 원하던 바대로 글이 전개되어 흡족하기만 하다.

 

 남.녀 간의 사랑의 정석은 없는 것 같다.첫인상이 좋다고 결혼까지 이어지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있겠지만 살다 보니 크게 느끼는 것은 부부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양보하면서 신뢰관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부부 관계를 지속시키는 길이 아닐까 한다.할런 코벤 작가는 예상대로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독자들이 나름대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그 주인공이 남자 제이크,여자 나탈리이다.

 

 사랑이라고 믿었고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았던 제이크와 나탈리에겐 배신과도 같은 시간이 찾아 왔다.나탈리가 제이크와 결별을 선언하듯 토드라는 남자와 공식 결혼을 하면서 다시는 연락도 하지 말고 만날 생각도 하지 말라는 일침에 따라 제이크는 나탈리에 대해 단념하게 된다.결혼 전 나탈리는 화가였고 제이크는 대학교 정치학교 교수의 신분이었는데,나탈리가 토드와 결혼하고 나서 6년이 지난 즈음,제이크 대학 회보에 토드의 부고를 접하게 된다.제이크는 나탈리가 혼자가 되었으리라 생각하면서 토드 장례식에 참석하지만 나탈리는 토드의 부인이 아니었던 모양이라 제이크는 황당하기만 했다.마음 깊은 곳에 나탈리에 대한 그리움이 식지 않았던 제이크는 나탈리의 행방을 찾으러 몸과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제이크는 나탈리와 처음 만났던 창조적 재충전 휴양소 및 나탈리를 소개해 주었던 사람을 만났어도 그녀의 행방은 도무지 찾을 길이 없는 가운데,제이크는 괴한 조직과 맞닥뜨리면서 납치를 당하면서 궁지에 빠지기도 한다.괴한 조직도 나탈리의 행방을 찾고 있어 그녀에 대한 행방은 더욱 미궁으로 빠지고 만다.제이크는 나탈리의 여동생,어머니를 비롯하여 CIA와 FBI에서 근무했던 친구 인맥,인터넷 메일을 통해 수색을 시도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나탈리의 여동생 역시 언니와 토드를결혼식 이후로 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해외 여행,의료 봉사활동을 다닌다고 하는데 여동생이 말한 토드와 결혼식 때 보았던 토드는 동명이인이라는 말인가.제이크는 분명 토드와 나탈리의 결혼식을 두 눈으로 똑똑이 보고 확인했을텐데 6년이 지난 시점에서 토드의 부인이 나탈리가 아니라니 귀신이 곡(哭)할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

 

 나탈리는 찾는 과정과 작업은 지리멸렬하게 이어 가는 가운데 나탈리가 은행털이 사건과 관련되고 괴한 조직과도 연계가 있음이 밝혀진다.괴한 조직 사이에서 제이크와 나탈리는 6년 만의 극적인 해후를 하게 된다.나탈리는 그간 누구와 어디에서 살아왔던 것일까.나탈리의 남편 토드의 부고 소식으로 나탈리를 향한 그리움과 연모의 정이 꺼지지 않았던 제이크는 나탈리와의 만남은 짧기만 했다.제이크는 마치 잊기 어려운 첫사랑과도 같이 그녀와 새로운 삶을 설계하려고 했지만 현실은 공허한 거짓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그리움을 현실화 하는 것보다는 고이 간직하는 것이 때로는 삶에 활력을 더해 주는 처방약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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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꿈결 클래식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병진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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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시절 일본어를 도강(盜講)까지 하면서 일본어에 심취한 적이 있다.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기에 비체계적일 뿐만 아니라 과연 살아 있는 일본어인지에 대해 스스로 확인 받고 싶어 강심장으로 일본어과 강독과 회화를 몰래 듣게 되었다.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마음적으로 힘을 실어 준 일본어과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덕분에 회화 실력은 녹슬지 않게 살아 있는 일본어가 가능했던 것이다.일본어과 친구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기에 가끔 왕래도 하면서 소통을 하던 중,친구가 어려운 일본어 원문을 보고 있지 않는가.그래서 호기심에 끌려 도서의 제목을 보니 바로 나쓰메소세키의 『도련님』이었다.당시엔 일본어의 독해 심화,회화 실력 쌓기 정도였기에 일본어 원문까지 파고 들 여력은 없었기에 기회가 닿으면 읽어야지 차일피일 미루다 어느덧 한 세기가 흐르고 말았다.

 

 일본의 문호(文豪)인 나쓰메 소세키(1867∼1916)가 사회 생활 초년기(중학교 수학 교사)를 중심으로 써내려 간 도련님(봇짱)은 글의 구성이 복잡하지 않아 읽기 쉬웠으며,십인십색을 선보이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은 내면 심리에 관심이 있는 내게 시선을 집중시켰다.태어나 성장했던 에도시대의 도읍지 도쿄를 떠나 시코쿠(四國)의 일부인 에히메 현 중학교 수학 교사로 발령을 받고,임지에서 학생,동료 및 선배 교사,교감,교장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고 투박하게 묘사하고 있다.도련님이 쓰여질 (1906년) 당시는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전하면서 일본의 위상이 높아만 가던 시대였다.러.일전쟁에서 승리를 맛본 일본은 식민지 진출의 토대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나게 되는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자라온 환경,성격,전생애 등을 고려할 때 '나'는 나쓰메 소세키 작가가 틀림없다.부모 덕 없이 자라고 형제와의 우애도 별로였던 나에게 유일하게 넓은 치마 폭으로 감싸 주었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기요(淸)라는 하녀이다.부모 모두 작고하면서 형으로부터 받은 6백엔이 나의 총자본금이 되고 말았다.이 돈으로 나는 물리 학교(이과 대학)에 입학하여 좋지 않은 성적이지만 교장의 교사직 추천에 의해 시코쿠 에미메 시 부근으로 부임하게 된다.정들었던 기요 하녀와는 기약도 없는 이별을 고하게 되는데 나의 마음도 그렇고 기요의 마음도 애잔하기만 하다.

 

 이야기는 대도회지 도쿄를 떠나 시골과 같은 중학교 교사로 첫발을 내디디면서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터지고 만다.나는 당차고 무모에 가까운 성정을 갖고 있었던 참이라 시골 중학교 학생들,교사들,학교 책임자들에게 어떻게 비쳐질 것인가는 신경 쓰지 않는 무대포적인 기질이 다분하여 학생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사범 학생들과의 패싸움까지 일어나는 등 도련님에겐 타향 땅이 정이 들지 않는 모양이다.교사가 온천탕에서 헤엄을 치지를 않나,누군가 내 이불 속에 메뚜기 떼를 몰래 갖다 놓지를 않나 등이다.또한 교사들로부터는 감시의 대상이기도 했다.흥미로운 점은 교사 및 교감,교장의 별명을 만들어 그에 상응하게 접근을 하고 응수를 하기도 했다.아프리카 바늘두더지,빨간 셔츠,아첨꾼,끝물 호박,너구리가 도련님이 만든 별명이다.

 

 도련님은 인간적으론 끝물 호박을 좋아하고 사무적이고 행동적인 면에선 아프리카 바늘두더지(수학 주임교사)를 좋아한다.도련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적극 호소하고 개선해 나가려는 동료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사시사철 빨간 셔츠의 교감은 곱상하면서 나긋나긋한 여성적인 목소리로 도련님에게 다가 오는데 알고 보니 이웃 현(縣)으로 전근 간 끝물 호박의 애인과 염문이 퍼지게 되면서 도련님은 이 스캔들을 상부에 보고하여 징계라도 먹일까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도련님은 대쪽같이 고지식하면서 욱하는 성질을 못참고 교장에게 사직서를 내고 고향 도쿄로 돌아가게 된다.죽은 줄만 알았던 기요 하녀는 도련님을 보자 이게 꿈이냐 생시냐 했을 정도로 눈시울을 훔쳤다.

 

 세상 물정 모르고 의협심에 불탔던 도련님은 인격적으로 덜 성숙해 있던 터라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많았다.시골 중학교에서 불과 1년도 못 버티고 교사 사령장을 바닷물에 던지면서 도쿄로 돌아가게 했던 도련님은 20대 초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안목을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20세기 초 도련님을 집필하던 시기 나쓰메 소세키 작가가 체류했던 에히메 현의 문화,풍물,(인간의)심리 묘사도 꽤 관심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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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기 창비세계문학 41
하야시 후미코 지음, 이애숙 옮김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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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후미코 작가는 처음 접하게 되는 셈인데,숙명적인 방랑 생활과 지옥 같은 허기는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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