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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꿈결 클래식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병진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2월
평점 :

대학시절 일본어를 도강(盜講)까지 하면서 일본어에 심취한 적이 있다.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기에 비체계적일 뿐만 아니라 과연 살아 있는 일본어인지에 대해 스스로 확인 받고 싶어 강심장으로 일본어과 강독과 회화를 몰래 듣게 되었다.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마음적으로 힘을 실어 준 일본어과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덕분에 회화 실력은 녹슬지 않게 살아 있는 일본어가 가능했던 것이다.일본어과 친구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기에 가끔 왕래도 하면서 소통을 하던 중,친구가 어려운 일본어 원문을 보고 있지 않는가.그래서 호기심에 끌려 도서의 제목을 보니 바로 나쓰메소세키의 『도련님』이었다.당시엔 일본어의 독해 심화,회화 실력 쌓기 정도였기에 일본어 원문까지 파고 들 여력은 없었기에 기회가 닿으면 읽어야지 차일피일 미루다 어느덧 한 세기가 흐르고 말았다.
일본의 문호(文豪)인 나쓰메 소세키(1867∼1916)가 사회 생활 초년기(중학교 수학 교사)를 중심으로 써내려 간 도련님(봇짱)은 글의 구성이 복잡하지 않아 읽기 쉬웠으며,십인십색을 선보이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은 내면 심리에 관심이 있는 내게 시선을 집중시켰다.태어나 성장했던 에도시대의 도읍지 도쿄를 떠나 시코쿠(四國)의 일부인 에히메 현 중학교 수학 교사로 발령을 받고,임지에서 학생,동료 및 선배 교사,교감,교장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고 투박하게 묘사하고 있다.도련님이 쓰여질 (1906년) 당시는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전하면서 일본의 위상이 높아만 가던 시대였다.러.일전쟁에서 승리를 맛본 일본은 식민지 진출의 토대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나게 되는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자라온 환경,성격,전생애 등을 고려할 때 '나'는 나쓰메 소세키 작가가 틀림없다.부모 덕 없이 자라고 형제와의 우애도 별로였던 나에게 유일하게 넓은 치마 폭으로 감싸 주었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기요(淸)라는 하녀이다.부모 모두 작고하면서 형으로부터 받은 6백엔이 나의 총자본금이 되고 말았다.이 돈으로 나는 물리 학교(이과 대학)에 입학하여 좋지 않은 성적이지만 교장의 교사직 추천에 의해 시코쿠 에미메 시 부근으로 부임하게 된다.정들었던 기요 하녀와는 기약도 없는 이별을 고하게 되는데 나의 마음도 그렇고 기요의 마음도 애잔하기만 하다.
이야기는 대도회지 도쿄를 떠나 시골과 같은 중학교 교사로 첫발을 내디디면서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터지고 만다.나는 당차고 무모에 가까운 성정을 갖고 있었던 참이라 시골 중학교 학생들,교사들,학교 책임자들에게 어떻게 비쳐질 것인가는 신경 쓰지 않는 무대포적인 기질이 다분하여 학생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사범 학생들과의 패싸움까지 일어나는 등 도련님에겐 타향 땅이 정이 들지 않는 모양이다.교사가 온천탕에서 헤엄을 치지를 않나,누군가 내 이불 속에 메뚜기 떼를 몰래 갖다 놓지를 않나 등이다.또한 교사들로부터는 감시의 대상이기도 했다.흥미로운 점은 교사 및 교감,교장의 별명을 만들어 그에 상응하게 접근을 하고 응수를 하기도 했다.아프리카 바늘두더지,빨간 셔츠,아첨꾼,끝물 호박,너구리가 도련님이 만든 별명이다.
도련님은 인간적으론 끝물 호박을 좋아하고 사무적이고 행동적인 면에선 아프리카 바늘두더지(수학 주임교사)를 좋아한다.도련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적극 호소하고 개선해 나가려는 동료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사시사철 빨간 셔츠의 교감은 곱상하면서 나긋나긋한 여성적인 목소리로 도련님에게 다가 오는데 알고 보니 이웃 현(縣)으로 전근 간 끝물 호박의 애인과 염문이 퍼지게 되면서 도련님은 이 스캔들을 상부에 보고하여 징계라도 먹일까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도련님은 대쪽같이 고지식하면서 욱하는 성질을 못참고 교장에게 사직서를 내고 고향 도쿄로 돌아가게 된다.죽은 줄만 알았던 기요 하녀는 도련님을 보자 이게 꿈이냐 생시냐 했을 정도로 눈시울을 훔쳤다.
세상 물정 모르고 의협심에 불탔던 도련님은 인격적으로 덜 성숙해 있던 터라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많았다.시골 중학교에서 불과 1년도 못 버티고 교사 사령장을 바닷물에 던지면서 도쿄로 돌아가게 했던 도련님은 20대 초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안목을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20세기 초 도련님을 집필하던 시기 나쓰메 소세키 작가가 체류했던 에히메 현의 문화,풍물,(인간의)심리 묘사도 꽤 관심있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