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 권정생 소년소설, 개정판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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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참혹함에 보리고개 시절까지 겪어야 했던 인생 선배들의 삶의 애환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연명(延命)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기에 언감생심 학교 근처에 가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은 머슴살이, 식모, 바느질 삯 등으로 생계를 도모해야 했다. 빈곤한 가정에서 부모가 경제적 뒷받침을 못하니 어린 딸 자식은 식모로 떠나고, 친모는 새집 살림을 차리기도 했다. 그러한 가정, 사회의 모습이란 생기도 없도 초근목피도 앙상하게 뼈만 남아 있는 모습과 다름 없다.

 

 나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식모 생활을 하던 친척이 있었다. 한참 감수성이 강했던 사춘기 시절 남의 집에 들어가 온갖 궂은 일을 하고, 명절이 될 무렵에나 고향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를 일찍이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친척은 착한 심성을 지녀서인지 꿋꿋하게 남의 집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못난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친척이 식모살이 하던 집은 지금도 옛모습 그대로이다. 나로서는 친척을 누나라고 불렀는데 식모살이 하던 집 문 앞에서 그 누나를 부르면 바로 뛰쳐나올 것만 같다. 그 잔상이 엊그제만 같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권정생 작가의 작품은 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접했던 작품은 『강아지 똥』 이었다. 강아지 똥은 하찮은 소재처럼 다가오지만 읽고 나면 세상엔 쓸모 없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강아지 똥이 민들레 꽃의 자양분이 되어 주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하찮게 여기는 사물에도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는 권정생 작가의 글쓰기의 모티브가 매우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이번 《몽실 언니》는 한국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 가정의 애환과 이념으로 죽고 죽이는 처절한 상흔의 모습을 되짚어 내고 있다. 몽실이는 이 땅의 언니이고 누나이고 딸이고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원래 아버지를 버리고 딴데 시집 간 어머니를 따라 갔던 몽실이는 김씨라는 의붓 아버지에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쫓겨 난다. 김씨에게 이복 동생 둘을 둔다. 고모의 부추김에 의해 몽실은 김씨 집을 나오고 새어머니 북촌댁을 맞이한다. 북존댁이 낳은 딸이 난남이다. 난남이를 구걸을 해가면서 먹여 키운다. 그러한 가운데 마을과 사회는 한국 전쟁의 난리통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된다. 단지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게다가 몽실은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기도 한다. 어리디 어린 몽실은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긍정적으로 여기면서 극복해 나간다. 친부모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몽실은 어엿한 성년이 되어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된다. 어린 몽실이가 지근거리에서 만나고 부딪히고 겪었던 일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만다. 가엾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몽실이는 한국 전쟁 당시 한국 사회의 초상화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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