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인문학 - 한국인의 역사, 문화, 정서와 함께해온 밥 이야기
정혜경 지음 / 따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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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 매일 먹는 한그릇의 밥 속에는 다양한 사연이 담겨 있을 것이다.쌀을 주식으로 삼는 한국인의 생래적 DNA는 오랜 세월 대를 이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쌀은 1만 5000년 전의 볍씨가 충북 소로리에 발견되었을 만큼 내리 밥을 사랑하고 먹어온 우리 민족이다.쌀은 영양과 칼로리도 밀에 견주하여 손색이 없다.게다가 발효 식품인 간장,된장,김치까지 만들어 낸 민족이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인가.쌀은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희망,한(恨)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그런데 근래엔 세계자유무역(FTA)에 의해 외국산 쌀이 무분별하게 수입되면서 한국 풍토에서 재배되는 쌀은 예전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한 쌀로 지은 밥은 과연 어떠한 대상이고 한국인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기회이리라.

 

 쌀은 두 가지의 관점으로 분류된다.하나는 경제.자원적인 측면이고 또 하나는 문화적인 접근으로 한식의 기본이자 핵심이다.경제.자원적인 측면은 일제강점기와 같이 착취적인 식민주의적 경향 및 쌀 시장의 전면 개방에 따른 쌀의 주식(主食)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이러한 경향과 맞물려 식단의 변화도 눈에 띄게 달라져 가고 있다.우유와 빵,샌드위치 등 서구식 먹거리가 한국인의 식탁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이번 도서가 전하려는 취지는 '인문학적 시각의 밥'에 대한 얘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내고 있다.특히 쌀은 한국인에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무형의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일종의 쌀은 한국인의 정령 이상은 아닐까.

 

 모유가 첫 번째 음식이었다면 그 다음은 쌀로 지은 밥을 입에 대었을 것이다.이가 자라나지 않은 아이에겐 미음을 만들어 먹였고,좀 더 성장하게 되면 다양한 밥을 먹으며 생활문화를 체득해 갈 것이다.나 역시 한국인으로서 쌀로 지은 밥 또는 쌀과 함께 보리,조,수수,콩 등을 섞은 잡곡밥을 먹으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쌀로 지은  밥(이하 밥)은 한국인에게 희노애락을 함께 해 온 운명의 만남일 것이다.쌀은 인도 아삼지방과 중국 윈난 지역은 쌀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데,한반도에서 가까운 중국에서 도래해 온 것은 아닐까 한다.밥에 얽힌 얘기는 몇 날 며칠은 얘기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한국인에게 특별한 밥은 살아 있을 때든 죽어서든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숙명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 도서는 총 5부로 구성되었다.쌀의 역사적 뿌리를 찾아 보는 역사 속의 밥과 쌀 이야기,밥의 문화사를 연대기별로 살핀 이야기,밥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쌀의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건강상의 효능이 어떠한지에 관한 이야기,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와 조리법을 순차적으로 수록했다.

 

 한국인에게 밥은 역사,문화,정서,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성과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선사시대,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근대에 이르기까지 밥이 한국인에게 안겨 준 의미와 가치를 비롯하여 밥 한 그릇에 담긴 정서적,문화사적 의미 등을 흥미진진하게 엿볼 수가 있었다.또한 쌀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이번 기회에 불식시킬 수가 있었다.나아가 궁극적으로 쌀로 만든 밥이 한국인의 성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역사와 문화적 관점에서 어떠한 사례들이 있었는지 제대로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쌀로 지은 밥은 개인이 다반사로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 커다란 행사에 빠짐없이 등장하곤 했다.제천의식,태어나고 죽는 과정에서 쌀은 꼭 등장한다.시대적으로는 쌀밥은 귀족의 몫이고 모래 섞인 밥은 평민의 몫이었던 고려 시대,농민이 농사지은 쌀은 양반만이 먹었다는 조선시대,그리고 개항 후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쌀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말았으며,해방 이후에는 춘궁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보릿고개'가 만연했다.그래서 한국인은 밥의 힘으로 산다는 '밥심'이라는 말이 힘을 얻어 갔다.누가 뭐라고 하든 밥 만큼은 배가 부를 정도로 먹어야 수저를 내려놓았던 모양이다.요즘 이렇게 먹는다면 미개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또한 시대별로 쌀에 얽힌 사정들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다.현대 문학가들의 작품 속에도 밥에 관한 얘기들이 등장한다.대표적인 것이 최명희 작가의 『혼불』,박경리 작가의 『토지』,홍명희 작가의 『임꺽정』,박완서 작가의 『미망』이다.근래 허영만 화백이 쓴 <식객>은 각 지방의 주요 음식을 소개하고 있어 음식과 식재료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넓게 보면 한국인의 의식구조 및 우리 전통문화를 인식하는 단초가 된다.그런데 쌀을 중심으로 한 밥 이야기가 한국인의 정서를 크게 대변하고 있지만,해방 이후 부족한 쌀을 대체 작물로 미국의 잉여농산물 가운데 밀가루를 들여오면서 분식(紛食)이 새치기를 한 셈이다.

 

 밥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별밥,보리밥,부빔밥,잡곡밥,제밥,중등밥,송이밥,팟밥,조밥,콩밥,감자밥,굴밥,별밥,약밥,골동밥,연어밥,무밥 등이 있다.나아가 북한의 요리책에 소개된 밥들은 다음과 같이 흰쌀밥,오곡밥,기장찰밥,밀밥,풋당콩밥,강냉이밥,섞음밥,밤밥,남새밥,두릅나물밥,도라지밥,홀잎밥 등이 있다.쌀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밥을 요리했던 주부들의 솜씨,지혜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밥과 관련한 속담도 놓칠 수가 없는 대목이다.'제 밥그릇은 제가 지고 다닌다','제 밥 먹고 컸는데 남의 말 들을 리가 없다','제 밥 먹고 상전 빨래한다','제 밥 먹은 개가 발꿈치 문다','제 집 찬밥이 남의 집 더운밥보다 낫다' 등이 있다.짧지만 강렬한 의미를 내포한 말들이다.

 

 쌀은 자라나는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좋다.칼슘과 철,인,칼륨,나트륨,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고,발암물질이나 비타민B1 등과 같은 다양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p279

 

 태어나 미음으로 시작하고 망자의 입에 쌀을 물리는 등 한국인에게 쌀은 더할 나위 없는 마음의 동반자이다.밥,국,김치 등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 한국인의 대표적 음식으로,한국인의 역사,문화,정서와 함께해 온 산물이고 운명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씻은 쌀을 물에 몇 시간 불려 돌솥에 앉혀 익힌 밥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입맛을 한층 돋구워준다.잘 익힌 밥과 국,김치,나물,생선 등과 함께 인체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간다.쌀과 밥,농부들의 마음을 이해해서인지 나는 밥알 만큼은 한 톨도 버리지 않을 정도로 밥그릇을 싹싹 비워낸다.불과 삼십 여 년 전 아버지,할아버지께서 모를 심고 물을 대고 농약을 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벼를 수확하던 시절은 잊혀지지 않는 내 마음의 추억이고 선물이다.근간 시간을 내어 오곡밥을 맛있게 지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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