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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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세계 문학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중남미 문학은 많이 접하지를 못했다.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모두 20세기 남미를 빛낸 문학의 거장이다.그런데 20세기 중남미는 마약을 둘러싼 불안한 정정(政情)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면서 사회를 위협하는 광기는 남미의 대중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리고 말았다.그래서인지 중남미 문학의 그림자들도 밝은 영역보다는 음산하고 어두운 사회의 뒷모습을 잘 투영하고 있다.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의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지난 세기 콜롬비아 사회에 만연한 불안한 정정에 대한 주인공의 기억을 되살려 가는 소리없는 아우성이고 증언이라고 생각한다.주인공의 내면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동물원에서 하마가 도망치는 장면을 추적하는 비극적 분위기를 보면서 잠시 잊혀진 기억을 끄집어 내게 했던 단초였다.법학 교수이며 주인공인 안토니오는 자신보다 갑절의 연상인 파일럿 리카르도 라베르데와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을 끄집어 낸다.만남과 관계는 짧았지만 결과는 가슴을 후려치는 트라우마 이상이었다.그것은 리카르도 라베르데가 괴한에게 살해 당하고 주인공은 총탄의 상흔의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상황이다.

 

 개개인에게 좋지 않은 기억은 끄집어 내고 싶지 않다.잊으려 애를 쓰지만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이 뇌 신경의 그물망에 있다.안토니오 역시 마약 운반자였던 라베르데와의 아픈 기억을 씻으려 애를 썼겠지만 쉽게 잊히지 못하고 그의 삶을 깊은 나락으로 빠뜨리고 말았던 것이다.안토니오는 리베르데의 딸 마야를 만나게 되고,그녀가 건넨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리베르데의 부인 일레인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남편 리베르데를 만나러 비행기 속에서의 팽팽했던 긴장과 공포의 기내 분위기를 소음이라는 말로 콜롬비아 불안한 정정을 명료하게 대변하고 있다.

 

 간헐적인 비명소리 또는 비명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들린다.내가 포착할 수 없는 소음도 들리는데,그게 무슨 소음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사람  소리가 아닌 소음 또는 바로 그 사람이 내는 소음,소멸되는 생명들의 소음이지만 깨지는 물질의 소음이기도 하다.높은 곳에서 물건들이 떨어질 때 나는 소음,중단되었기 때문에 영원한 소음,결코 끝나지 않을 소음,그날 오후부터 내 머리에 계속해서 울리고 있으며 사라지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 소음,내 기억에 항상 남아 있는 소음,횃대에 걸린 수건처럼 내 기억에 걸려 있는 소음이다. p110∼111

 

 잊은 듯 기억에도 없는 듯한 것들이 어떠한 연유로 다시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개인의 삶과 역사는 심계 항진증과 같이 쉼없이 두근두근 거린다.20세기 마약과 관련하여 마약 카르텔을 형성하고 사회를 불안케 했던 콜롬비아는 주인공 안토니오에게 죽을 때까지 잊히지 어려운 외상후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다.또한 안토니에겐 사랑하는 아내 아우라와 딸 레티시아가 있고,리베르데의 딸 마야와의 만남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리베르데의 아픈 삶의 이력을 인지하게 되었던 셈이다.마약 운반자이며 파일럿이었던 리베르데는 본연의 직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걸어 갔던 것이 결국 그의 집안을 몰락하게 만들었던 것이다.결국 이번 작품은 어느 사회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평범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한 개인이 불안한 사회 구조 안에서 겪어야 했던 몸서리치는 기억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과 관련하여 시종일관 '세월호 침몰'을 연상하면서 읽어 갔다.희생 당한 개인 및 남은 자들의 깊고 쓰라린 아픔의 기억이 다시 몽실몽실 피어 오르고 있었다.한국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겪지는 않았어도 아픔과 상처는 모두 안고 있다.반면 정권 유지를 위한 일부 철면피로 일관하는 세력들은 불안하고 광기 서린 소음을 만들어 낸 자들에 지나지 않는다.콜롬비아 마약 거래의 카르텔과 광기,폭력과 세월호 침몰의 아픈 기억은 공통점이라면 정권을 휘두르는 자들에 맞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통절한 기억이 아우성으로 휘몰아치는 장면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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