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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 - 왕초 PD와 1만 2800km 중국 인문기행을 떠나다
윤태옥 글.사진 / 책과함께 / 2014년 11월
평점 :
# 혁명은 인민의 밥그릇에서 시작된다.-p83
고교 시절 합창대에 뽑혀서 방과 후 노래 연습을 하곤 했는데,주로 연습했던 노래는 <그리운 금강산>,<비목 碑木>,<보리밭> 등이었다.그 가운데 비목은 부를 때마다 전쟁의 상흔을 떠올리게 하면서 무상한 정치권력을 음미하곤 한다.또 하나 사회 선생님께서는 중국 현대사 대장정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들려 주었다.사회 수업이 주로 점심 식사 후 시작되고 식곤증이 있기에 졸음을 쫓기 위한 방편으로 들려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장정에 대한 얘기에 대해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탓인지 자꾸 꾸벅꾸벅 졸았다.중국 현대사의 거목 마오저둥,저우언라이,주더,덩샤오핑 등 굵직굵직한 인물과 그들을 호휘하는 홍군들 그리고 적군이라할 만한 국민당군과의 혈전에 대해 거침없이 늘어 놓으셨다.귀를 기울이고 경청하지 않은 점과 중국 역사 전반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내내 아쉬웠다.

대장정이란,중국 남부의 장시성江西省에 근거를 두고 있던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중앙정부와 중국 공산당이,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대의 포위 공격을 피해 홍군의 호위를 받으며 1만 2500킬로미터를 강행군하여 산시성陝西省 북부 옌안延安 인근으로 옮겨간 것을 말한다. -p5
쑨원에 의해 중화민국이 창립되고 삼민주의가 발의되는 등 청조의 무능력,부패를 일소하고자 했지만 황권을 노리던 위안스카이(袁世凱)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위안스카이는 야심찬 권력을 획책하려 하지만 그를 지지하던 세력에게까지 외면 당하고,제1차 세계대전의 주역이었던 영.러.일에 의해 그 또한 권좌에서 하야했다.그리고 신중국 만들기를 위해 일어난 것이 마오저둥과 장졔스와의 기나긴 대장정(368일간)이 이어졌다.마오저둥이 두 다리로 걷고 또 걷던 대장정은 국민당 장제스의 추격과 포위를 뚫고 1935년 10월에 끝이 났다.장제스가 추격을 지휘하던 대장정도 장쉐량에 의한 시안사변으로 끝이 났다.그후 일제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마오와 장은 충칭에서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장제스가 화평조약을 깨면서 다시 내전을 벌였으나 3년 만에 장제스의 패배로 끝나게 된다.드디어 1949년 10월 1일 신중국이 성립되면서 마오의 철권 정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최신식 무기로 무장했던 국민당과 인해전술로 저항했던 공산당은 힘겨운 전투를 감내해야 했다.강과 협곡(狹谷),설산과 고원,습지를 헤치면서 대장정 출발 당시는 8만 6천 여명이었지만 종국에는 7천 여명으로 푹 가라앉았다.문자 그대로 죽음의 행군이었다.대장정에 참가했던 현대 중국의 최고 지도자 및 국무원 총리,국가주석,국방장관이 대거 배출되기도 했다.1934년 10월에 시작하여 1936년 시안사변까지의 대장정은 말그대로 대하(大河)드라마가 아닐 수가 없다.나는 몇 년 전에 소설 대장정(1∼5권)/웨이웨이 저/보리를 읽으면서 대장정에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접할 수가 있었다.판화를 삽입하여 보다 대장정을 알기 쉽게 이해하고 현대 중국사의 근원(根源)을 알게 된 점이 의미가 있다.당시 대장정에 참가했던 주요 인물들의 후손들이 현대 중국 정치를 통제하고 있는 것도 정치권력의 속성이라는 것,대장정이 남긴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등을 고찰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이 글은 한 해의 절반은 중국에서 역사와 문화를 찾아 테마 여행을 하는 중국통 윤태옥 저자는 중국의 속살을 잘 소개하고 있다.그 가운데 내가 읽었던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가 있었다.발품을 팔면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역사,문화의 뒤안길을 샅샅이 안내.해설하고 있는 윤태옥 저자는 이번 대장정이라는 역사의 현장을 답사 동반자들과 함께 지역별로 나뉘어 답사 여행을 했다.인문학적 관점에서 대장정의 뒤안길을 답사한 저자는 장장 59일간 1만 2800킬로미터를 걷고 (차를)타면서 당시의 모습을 현대사와 매칭하여 들려주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대장정 초기엔 마오는 실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중국 공산당이 창당되었던 상하이와 신중국의 수도 베이징 이전의 옌안은 대장정의 상징적 요지이다.대장정이 갖는 큰 의미는 상하이 쿠데타로 1차 국공합작이 결렬(1927년)되고,시안사변 이후 1937년 2차 국공합작이 성립되는 순간까지의 내전에 있다.마오는 준이(遵儀) 회의에서 실권자로 부활하면서 중국 인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의지와 모습을 보여준 점이 대장정 성공의 원인이다.반면 국민당은 월등한 무기와 뛰어난 인재들로 포진되었지만 생각과 의견이 사분오열되면서 스스로 패배를 자초했고,더욱 경악할 만한 점은 1942년 허난성 대기근으로 3000만 여명이 죽어 나가게 되었는데,설상가상으로 농민들에게 가렴주구를 강요했다.

윤태옥 저자는 일명 길동무를 잘 만난 셈이다.한국에서 후원군으로 합류한 답사 동반자 및 중국 현지인들 및 주재원들까지 이 다큐멘터리 만들기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중국 공산당 탄생지(상하이)부터 봉건주의 집안에서 태어난 마오가 혁명을 이끌고 최고 정점의 권력을 쥐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역사적 현장,기념비,조각상 등을 통해 그 때 그 날이 연상되고도 남는다.온통 붉은 빛으로 치장하다시피 한 기념탑과 기념비는 공산당 및 홍군들이 대장정에서 보여 준 혁명적 열정과 에너지가 다시 한 번 붉게 타오르는 듯 하다.답사 과정에는 중국 소수민족의 전통적 생활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되고 있다.소박하고 평온한 모습이 그지없다.
나라의 반이 피바다에 빠져들고(半壁山河沉血海)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모래벌레처럼 흩어졌는가(幾多知友化沙蟲) -P117

특이하게 다가오는 점은 현 중국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의 친부가 대장정 당시 소비에트 행정부의 수장이었다.그는 시중쉰(习仲勋)으로 대장정의 근거지를 마련했던 장본인이다.마오는 군사 분야 최고 지도자 류즈단과 시중쉰이 닦아놓은 터전에서 뿌리를 내린 셈이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화대혁명 당시 시중쉰은 반당분자로 몰리면서 10여 년 수감생활을 해야 했고,덩샤오핑의 화려한 부활과 함께 시중쉰도 복권하게 된다.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의 후광을 톡톡이 받고 있는 것이다.아울러 이 글을 접하면서 크게 두 가지를 새삼 깨달았다.하나는 정치권력의 속성이고,또 하나는 대장정에서 마오가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을 삼을 수가 있다.정치하는 사람은 정치권력의 속성을 악용하는 셈법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나라가 지탱할 수 있는 힘은 힘없는 서민계층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