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 - 아들러 심리학의 행복 에너지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현정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아버지와 자식 간 사이가 좋은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아들 입장에서 아버지는 친구와 같고 스승과 같기만 하다.먼듯 가까운 듯 부자(父子)사이가 좋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그렇다고 부자지간에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흔히 민주적이고 자상스러운 아버지를 멋진 아버지상으로 여기고 있는데,내 또래의 아버지들은 과연 얼마나 자식에게 애정과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을까.학창 시절의 나와 친구들,또래들의 아버지들이 태어난 시기가 대부분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으로 일제 강점기에 성장하였다.입에 풀칠할 수 있는 자체가 삶의 전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좀 깨우치고 재산이 많은 집안이 아닌 이상 국민학교 문턱도 밟아 보지 못한 어른들이 많았다.애정과 사랑 속에 아무 걱정없이 성장할 수 없었던 내 부모님 세대는 자식에게는 가난과 무학을 되물림하지 않으려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다.그리고 부모님 윗세대도 봉건주의,유교사상에 따른 사회적 교육과 인습이 대대로 이어져 왔기에 부모가 자식의 인생의 멘토가 되어 주고 자식은 든든한 큰 나무를 의지하여 존경과 친밀감의 대상으로 부모를 대하기가 무척 어려웠지 않았나 싶다.나도 이 부류에 속한다.

 

 블로그 활동,서평 남기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개인사가 조금씩 흘러 나오기 마련이다.미주알 고주알 내뱉을 수는 없지만 (개괄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다.왜냐하면 아버지 젊은 시절 술버릇이 보통 나쁜게 아니었다.일을 마치고 지인과 술을 마시고 얼큰히 취하게 되면 면사무소에서 외길로 된 비포장 도로를 따라 비쩍비쩍 노래 부르면 걸어 온다.할머니께서 마주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몇 번 마중을 나가게 되었다.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동네 초입까지 울려 퍼진다.동네 사람들은 겉으론 아버지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지만,아니 내가 보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귀가하여 곱게 주무시면 좋으련만 식구들을 괴롭히고 소리 고래고래 지르고 할머니는 자식이 무서워 친척집,고모집으로 피신하고...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다.아버지는 술이 깨면 선비와 같고 부처와 같았다.아버지가 술 드시고 귀가하는 날엔 방구석이 우린 감 냄새로 진동하고,티격태격하던 어머니는 몸과 마음이 상하고 할아버지는 아들 술 버릇을 나무라느라 지치고...나를 비롯한 자식들은 아버지를 말길 용기와 말주변이 서지를 않았다.아그 외 아버지를 평가하라고 한다면(제3자의 입장에서) 사람 사귀기 좋아하고 입담이 좋으셨던 장사꾼이셨다.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가업이 흥하고 재산이 늘어나 자식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기도 했다.

 

 아버지께서는 외지에서 장사를 통해 돈을 벌다 나이가 드시니 힘드셨던 모양이다.그리고 친척 소개로 아파트 경비직을 서다 초겨울 밤 순찰을 돌다 그만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뇌졸증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을 서 너번 옮겨 다니시다 11년 만에 작고하셨다.말년에는 당뇨 합병증으로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퇴원하여 4일 지난 직후 어머니 무릎을 베개 삼아 잠드신 듯 하다 돌아가셨다고 한다.아버지께서는 유난히 딸보다는 아들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었다.아버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내 자신이 가장 밉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좋은 부자지간을 형성하지 못해 내내 아쉽고 마음은 무겁기 짝이 없다.추석에 성묘하러 아버지를 뵈러갈 때엔 나 혼자 하고 싶은 말을 연습해 놓는다.그리고 묘 앞에 조촐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한 뒤 아버지께 말씀 드린다."아버지,지금은 술 끊으셨죠? 아버지께서 가족을 위해 몸이 닳도록 헌신하고 또 헌신하신 것 누가 모르겠어요,아버지께서 맏이인 저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도 잘 압니다.제가 삶의 길을 어렵게 밟아 왔는지 모르겠습니다.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니 부디 굽어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아버지 혼을 두드리고 넋을 기리며 하산한다.

 

 아들러 심리학 시리즈가 다양하게 선을 보이고 있다.이번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갖고 있는 원만하지 않은 관계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글 속에는 치매로 고생하시는 어버지와 심장질환으로 고생하는 아들(나) 사이의 대화,관계 회복을 위한 조언 등을 서술하고 있다.11년 간 병석에 누워 계셨던 아버지의 지난 모습이 파노라마와 같이 스쳐 지나간다.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의식이 있는 동안 나를 보면 늘 못마땅한 표정,무언의 불만으로 가득차 있었다.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고작 병원비 지원과 가끔 전화로 안부 인사를 묻는 수준이었다.세상 만사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고비와 난관이 너무 오래가다 보니 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내 인생은 내 인생인데도 아버지는 늘 자신의 생각과 뜻에 맞춰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따지고 보면 그 바람과 소원은 삶에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었다.결혼 이후 아내랑 함께 병문안을 갔을 때 나를 보더니 "뭐하러 왔냐? 네가 이렇게 되는 것을 보려고 내가 젊은 시절을 고생한 줄 아니? 당장 가 버려"라고 병석에서 한 쪽 팔로 나를 밀쳤을 때 내 마음은 상할 대로 상했지만 나는 돌부처가 된듯 고개 숙인채 가만히 서 있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아내가 아버지를 잘 설득하고 달래어서 조금이나마 분위기가 바뀌었던 때가 있다.

 

 간호를 하는 아들인 나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가 등장하는 이 글을 읽다 보니 느끼는 점은 동양권 특히 한.중.일 부모와 자식 간엔 대화와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일본인의 의식 구조가 어느 정도 배인 이 글 역시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나의 사이는 그리 밝지가 않다.아버지는 꽤 가부장적인 체질이 강하고 아들인 나는 아버지의 성격에 눌려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 대신 집안 일을 하고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면서 병 간호도 두루 하고 있다.마음 속에는 늘 아버지와의 잘못된 관계,응어리가 남아 있어 아버지께 이런 저런 불만을 털어 놓고 싶지만 아버지는 치매 환자이면서 이성적이지 못하기에 어떻게 하면 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고 벌어졌던 관계에서 좁혀진 관계로 만들 수 있을까를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한다.나는 아버지께 얻어 터지고 했던 적은 없는데 이 글 속의 아버지는 난폭한 분이었나 보다.이유가 어찌되었든 나는 아버지께 맞으면서 정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부자지간의 천륜이기도 하지만 병 간호만큼은 씻기도 관장하는 내밀한 부분은 간호사에게 맡기되 자신이 아버지와의 좋지 않은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에 대한 것을 간호사에게 전달하여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아들의 속마음을 읽고 조금씩 벌어졌던 균열을 봉합해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치매에 걸린 사람에겐 기억장애,의식장애가 있어 따지고 가르치고 흉폭하게 굴려고 하면 관계 회복은 커녕 집안이 풍지박산이 될 수도 있다.그래서 수시로 바뀌는 감정,호불호의 부정확함,망령에 가까운 언동 등을 잘 살피면서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를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뇌의 해마가 쭈그러져 생기는 치매 현상은 원인을 잘 살펴 대처해 나가야 함은 물론 간호를 하는 가족의 입장에서 치매에 걸린 분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이 불만인가를 살펴 간호사 및 주치의와 의사 소통을 하면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인간은 생로병사를 거치게 마련이다.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 길에서 죽음에 가까워진 환자에게 충고와 불만보다는 위로와 격려,관심과 애정이 관계회복을 위한 밑바탕이라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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