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 눈이 멀도록 좋아하는 것은 기본이고 광기(狂氣)서린 동물적 성적 행위에 가학과 피학이 오가는 기이한 남.녀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남자가 뿌린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교합하여 생명을 잉태하고 시간이 흘러 남자와 여자는 생을 마치며 세상에 나오기 이전의 무위(無爲)의 세계로 귀의한다.여자의 자궁 깊은 곳에 남자의 중심을 투입시키며 남자와 여자는 한순간 황홀감과 쾌락감을 동시에 느낀다.둘 모두 심정적,감정적 일체가 되면서 활화산과 같이 심장의 고동이 심장의 작렬고 변하게 된다.나는 남.녀 간 본능적이지만 기이한 형태의 성적 행위는 (일반인의 잣대로 보아) 오히려 정신 분열증과 같은 이상 행위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나는 아직까지 이렇게 누군가의 진을 쏙 빼앗아 가면서 탈진 상태까지 이르렀던 성관계는 없었던 만큼 이번 박범신 작가의 주름은 시종일관 색다른 남.녀 관계의 여정을 뒤쫒아 가면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음미하는 시간을 갖었다.

 

 운명적인 사랑은 결혼 이전이든 결혼 이후이든 관계없이 찾아 오기 마련인가 보다.어떤 사람은 불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운명의 대상을 만났다고 여기고 있다.여기 불륜이 아닌 운명의 사랑을 만나 죽음의 순간까지 서로에게 최상의 육체적,정신적 사랑을 쏟아 부었던 이들이 바로 김진영이라는 남자와 천예린이라는 여자이다.둘은 다른 환경,다른 직업 세계에 있었던 존재였다.김진영은 주류 회사 회계 업무를 관장하던 이사였고,천예린은 화가이면서 시인으로서 한군데를 지긋이 정착하지 못하는 히피족과 같이 방랑의 여정을 쉼없이 이어나가던 존재였다.회계 업무를 맡고 있던 김진영 이사는 IMF 한파에도 불구하고 자금을 급구(急求)하던 천예린 시인에게 자금을 빌려 주면서 공생관계를 시작해 나간다.천예린 시인은 세상 남자와의 관계를 달관이라도 한듯 김진영 이사에게 적극 대시한다.가벼운 스킨십부터 깊은 섹스의 절정에 이르기까지 한바탕 굶은 성적 행위를 해소키라도 하면 김진영 이사(이하 김진영씨,천예린 시인은 천예린씨)는 천예린씨에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빠지게 된다.'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듯 김진영씨는 가정사는 도외시하고 점점 천예린씨에게 사랑을 위해 미치고 미치기 위해 사랑의 심연 속을 유영한다.

 

 타락한 사람은 무당이 되고 쇠약해진 양은 말이 된다. -P33

 

 김진영씨는 회사 회계 일로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지만 마음은 심예린씨에게 가 있다.늘 마음이 콩밭에 있는 셈이다.채워지지 않은 운명의 사랑이 마치 비가 오고 안개가 끼어 있던 날의 그로테스크하게 회색빛으로 짙게 깔린 우울한 김진영씨의 마음에는 뭔가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너무 멀리 있어 잡을 수 없는 것을 동경하는 것과 같이 공허한 마음으로 가득차 있을 때,천예린씨는 김진영씨에게 빌린 자금을 갚지도 않은 채 물건너 바다 건너 이국땅을 전전하게 된다.시인이 시상(詩想)을 끌어 내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폭넓은 기행과 여정이 필요하지만,천예린씨가 동가숙서가식의 여정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을 접하면서 스스로 고행의 길을 찾아 나서는가 싶으면,유유히 생이라는 여정에서 멸망과 권태를 담담이 수용하기도 한다.천예린씨가 신출귀몰과 같이 유랑했던 곳들은 셀 수도 없다.아프리카 케냐를 비롯하여 모로코,스페인,오스만 제국,중앙 아시아,극동의 바이칼 호에 이르기까지 고행과 구도의 길을 연상케 한다.김진영씨가 극적으로 천예린씨와 해후하게 되면서 둘은 과거 돈문제는 내려 놓고,모든 것을 잊고 운명의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철저하게 보여 준다.둘은 중년의 나이이지만 섹스만큼은 휴화산이 활화산으로 바뀌어 식지 않은 분화(噴火)를 뿜어 낸다.칼로 시작한 사람은 칼로 망한다고 했듯 사랑으로 시작한 사람도 사랑으로 망하는 것일까.

 

 2000년대가 되어 둘은 이르쿠츠크 근처의 바이칼 호(湖)에서,가장 맑고 심연한 바이칼 호에서 거룩한 포도주 파티까지 연다.고독과 우울,고뇌와 번민을 모두 떨쳐 내기 위한 운명의 사랑극은 세상의 끝을 향해 정사의 행진을 연주해 나갔다.삶과 죽음의 경계상을 방불케 하는 김진영씨와 천예린씨가 펼치는 북극이 멀지 않은 바이칼 호에서의 정사극은 혼절과 충만감으로 가득했을 것이다.둘의 원시적이고 광기 서린 성적 행위는 식을 줄 모르게 진행되는 한편,천예린씨는 투석 치료를 받는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받아 들인다.천예린씨를 운명의 사랑으로 여긴 김진영씨는 그녀의 종기를 짜내고,핥고,빨고,약을 바르면서 회생을 기다렸지만 그 보람과 수고도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천예린씨를 앞서 보낸 김진영씨는 고이 그녀의 영혼을 달래 주고 최극동 캄차카 반도를 거쳐 다시 고향으로 돌아 왔다.김진영씨는 외간 여자와의 마지막 정사신을 불사르면서 복상사(腹上死)를 당한다.김진영씨는 천예린씨가 남긴 희미한 말들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자궁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순간적으로 했다.

 

 텅 빈...... 자유가 거기 있네.침묵의 방이...... -P418

 

 도대체 자궁은 얼마나 깊어.

 그 안에 생성의 알을 품는단 말인가. -P4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