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유배지 답사기 - 조선의 귀양터를 찾아서
박진욱 지음 / 알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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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부패한다." - 액튼 -

 

 새삼스레 권력의 양면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권력을 쥔 사람의 정치 철학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권력은 부패할 수도 있고 정의의 화신이 될 수도 있다.야망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쥐게 되면 악이 될 소지가 많고,욕심이 없는 사람이 가지면 그 반대의 양상을 띠게 마련이다.『대학』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먼저 몸을 닦고 천하를 다스리라 했고,『노자』는 몸을 닦아 그 덕이 진실해진 다음에 천하를 다스리면 그 덕이 두루 미친다고 했다(修之於身 其德乃眞,修之於天下 其德乃普).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쥔 사람들은 대개 권력에 굶주린 '야망'을 가진 자들이어서 평온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드물었다.권력을 잡기 전과 잡은 후의 모습이 '화장실에 가기 직전과 화장실을 나온 모습'과 매우 흡사하기만 하다.

 

 조선시대에 왕이었던 군주에게 미운 털이 보였던 정객들이 받는 형벌을 대략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그 가운데 유배형(유형)으로서 곤장을 맞고 유배형에 처해지기 마련인데 유배지는 절해고도로 가게 마련이다.식솔과 압송하는 관리가 따라 가고,유배지에서 먹고 자는 문제는 유배객의 몫이었다.유배객은 정권이 바뀐다든지 유배형의 기간을 다 채우게 되면 정계에 복귀하기도 했다.형벌의 경중에 따라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유배객도 있고 사약을 받아 목숨을 다하는 이도 있었다.조선시대의 유배객들은 대부분이 사색당파의 와중에서 빚어진 결과로서,주류 당파의 세력과 조종에 의해 유배살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진욱 저자와 함께 떠나는 《남해 유배지 답사기》 는 창랑한 물결,유서 깊은 유배 문화재,남해 주민들의 일상과 구수한 (남해)사투리가 정감 어리게 다가온다.저자는 《남해문견록》의 저자이면서 유배객이었던 류의양(柳義養 1718∼?)이 지은 남해 기행문을 토대로 13일 간 걷고,자전거를 타고 남해를 일주했던 결과를 여정을 따라 스케치 하고 있다.남해는 뭍인 하동과 현수교로 연결되고 섬의 모양은 어머니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은 형상이다.

 

 하동에서 남해로 넘어 가기 직전 노량 바다가 보이면서 이순신 장군이 최후를 맞이했던 역사적인 현장이면서 그를 기리는 충렬사가 남아 있다.유배지를 따라 가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팔만대장경은 남해에서 만들었다는 것이다.자작나무,산벚나무,후박나무 등이 경판의 목재가 되는 나무로서 거제도,하동 포구에서 떠내려 보낸 후 소금물에 쉽게 절일 수 있는 곳으로 남해의 관음포가 적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관음포는 왜구가 조선을 침략하다 떼죽음을 당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관음포를 매립하여 악몽의 역사를 지우려 했다고도 한다.

 

 모두(冒頭)에서도 말했듯이 유배객들은 군주의 미움을 산 나머지 유배형에 처해졌는데,내막을 알고 보면 사색당파 싸움에 기인한 것이 대부분이다.조선 선조 이조전랑 임명권을 둘러 싸고 동인 김효원과 서인 심의겸이 분열하면서 사색(四色)으로 분파되어 갔던 것이다.동인은 남인과 북인,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었다.게다가 시파와 벽파까지 생기면서 조선은 당파로 인한 분란이 끊이질 않으면서 나라마저 외세에 넘어 가는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당파 싸움의 전성기는 숙종 시기 경신,기사,갑술환국에 의한 정권 교체기에 주류 이데올로기에서 밀려난 붕당의 미운 털이 박힌 자들이 유배형의 고배를 맞이했던 것이다.붕당이 요즘 말로 하자면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는데 권력을 쥔 자와 권력에서 밀려난 자 간의 갈등과 대치,이합집산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일종의 감탄고토(甘呑苦吐)라고 할까.

 

 남해의 땅으로 유배형에 처해진 자들의 면면을 보면 기(旣) 익히 들었을 법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어떠한 이유로 남해로 떠밀려 왔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당파 싸움이 주 요인이고 유배객의 곧은 성정(性情)과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대쪽 같은 신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숙종 시기 유배객 류의양의 《남해문견록》과 박진욱 저자의 유배지 답사기는 데칼코마니와 같이 정확하게 포개지지는 않지만 흡사하게 흘러 가고 있다.남해의 땅은 개발화에서 한 발 물러난 듯한 천혜의 자연 환경과 유서 깊은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어 마음의 본향을 찾아 간 듯한 강렬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유배객이 낳은 남해 유배지의 역사,문화적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한편 고단하고 지친 심신을 달래 줄 여행지로서 남해는 전혀 손색이 없는 곳으로 각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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