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사는 거리 히라쓰카 여탐정 사건부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히가시가와 도쿠야 작가는 추리,트릭,반전 등으로 각인되었다.《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를 읽으면서부터 소재의 참신성과 교묘하게 짜내는 트릭과 반전 그리고 알송달쏭케 하는 미스터리는 소소한 재미와 흥미를 안겨 주고 있다.인상 깊은 점은 일본인의 의식 구조를 지배하는 신사(神社)의 정령 신화를 매개로 하여 사건에 얽힌 단서,탐문 등이 매우 '일본적이다'라는 것이다.

 

 히가시가와 도쿠야 작가는 이번에는 이십대 여성을 사설 탐정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가고 있다.특히 독특한 캐릭터를 설정해 사건에 대한 탐문과 추리를 해 나가는 점이 이 글의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가 있겠다.학창 시절 선배에게 대들고 후배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던 쇼노 엘자 탐정은 별명이 사자이고,미국 금융 위기로 취업전선에서 밀려 사자와 함께 탐정 일을 하게 된 가와시마 미카는 매우 이성적이고 차분한 스타일이다.고교시절 동창이라는 공통점만 빼고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그리고 쇼노 엘자에겐 남친 형사 미야마에가 있어 때로는 그의 조언과 힘을 빌리기도 한다.

 

 일본 간토지방 요코하마 근처의 소도시 히라쓰카(平塚)를 공간 배경으로 다섯 개의 사건을 풀어 나가고 있다.우미네코(海猫)빌딩 3층에 자리 잡은 '쇼노 엘자 탐정사무소'는 섬세하고 친절하다는 이미지를 벗어나 막무가네식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공 엘자의 탐정 태도가 압권이다. 신분,연령에 관계없이 반말(보통말)로 손님에게 대한다.자신은 그게 편하기에 고칠 의향이 없다는 것이다.한국 사회라면 멱살을 잡힌다든가 싸가지가 없다고 하면서 싸다구를 날릴 법한데 쇼노 탐정 사무소를 찾는 의뢰인 및 손님은 속으로는 불쾌하면서도 사건이 우선이다 보니 반말에 대한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약혼자의 행실이 불명하여 탐정을 의뢰하러 온 누마타씨는 그녀의 약혼남 스기우라씨의 평소 행실을 염탐해 주기를 바라는데  스기우라는 욕조에서 벌거벗은 채 견갑골에 칼이 박힌 채 죽고 말았다.밀회현장을 덮칠려고 했던 탐정들은 그만 어안이 벙벙하고 마는데,포인트는 범인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에 숄을 걸쳤다는 점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엘자와 미카의 추리력이 점점 실력을 더해 간다.쇼노 엘자 탐정은 특이한 패션 센스를 지녔다.데님(Denim) 핫팬트에 흰 티,빨간색 트랙 재킷을 걸치고,갈색 스웨이드 쇼트 부츠를 신은 발을 소파 팔걸이에 올려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식이다.

 

 두 번째는 사귀던 여성이 모습을 감추면서 역시 행방을 찾아 달라는 의뢰이다.피의뢰인 유나가 살해되고 의뢰인 야마와키마저 변사체로 발견되고 마는데...과연 범인은 누구였을까.무위도식을 일삼던 시의원의원 아들이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아 죽이고 그것이 발각될까봐 애인마저 죽이고 만 것이다.엘자와 미카는 바늘과 실마냥 호흡이 척척 맞는다.게다가 형사 미야마에까지 있어 탐정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본은 여름이 되면 고온다습하다.6,7월의 히라쓰카의 풍경과 축제도 볼 거리가 많다.히라쓰카는 일본에서 3대 칠석(타나바타) 축제로 알려져 있다.칠석제가 시작되면 연일 인파로 붐빈다고 한다.칠석 축제를 그린 『히라쓰카 칠석제의 범죄』는 여대생에 의한 대학 강사의 살해 사건을 두고 펼쳐진다.범인은 공범으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틈타 복장을 화장실에서 바꿔치기하고 축제 현장의 노점상들을 탐문한 결과 대학 강사를 살해한 여성이 누구인가를 밝혀내게 되었다.수사라는 것은 단 몇 십초라는 짧은 시간도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풀어지면 안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후반부로 넘어 가면서 히가시노 도쿠야 작가는 범상하지 않은 소재로 독자들의 시선을 돌리게 한다.무녀 즉 점쟁이를 소재로 한 『알리바이는 거울 속에』는 점성관에 거울은 일반인은 보이지 않고 점쟁이의 눈에는 자신과 사건 의뢰인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신비스러움과 묘한 마력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금융기관에서 근무하는 의뢰인이 언니가 점쟁이를 숭배할 정도로 푹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언니를 구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점쟁이를 찾아 가는데 이미 누군가에 의해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과연 알리바이가 거울 속에 있는 걸까.작가는 신비스러운 거울의 힘을 가게무샤(影武者:적을 속이기 위해 대장이나 주요 인물처럼 가장해 놓은 무사)에 빗대고 있다.거울이 기울어진 각도를 통해 반사가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 교묘하게 누가 사람을 죽였는가를 판단하는 잣대로 삼았다.

 

 해안가 주택지에 자리 잡은 하나미즈 하이츠 맨션을 한 남자 노파가 목졸라 변사체로 발견되는 『여탐정의 밀실과 우정』은 한마디로 씁쓸하기만 하다.아들이 없는 미망인이 노환으로 의사 조카가 왕진오면서 치료와 간병을 받게 되는데 어느 날 미망인 남편이 의자에 앉은 채 목졸려 죽게 된다.범인은 바로 친자식은 아니지만 조카로서 미망인에 대한 돌봄과 치료 등이 인정을 받게 되어 재산상속 우선 순위가 될 것을 예상하고 힘없는 고모,고모부를 수면제 및 술을 잔뜩 들게 한 후 의식이 몽롱한 시간(야밤)대를 설정하여 1층 남자와 7층에서 1층으로 두 노인네를 옮겨 질식사 시키고 다시 7층으로 두 노인네를 옮겨 밀실 살인 사건으로 치장(置裝)했던 것이다.이 편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인간은 속물근성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있었을 때가 한여름인 6∼8월이어서인지 이 글에 나오는 계절과 시기도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철을 연상케 했다.야성적인 감각이 주특기인 쇼노 엘자와 조신하면서 이성적인 자세로 사건 추리에 힘을 더하는 미카 그리고 형사 미야마에가 다섯 편을 묵직하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어 주었다.히가시가와 도쿠야 작가의 기발하고 허를 찌르는 스토리 전개력은 읽을 때마다 웃음과 탄성이 절로 나온다.다음 작품은 무엇을 들고 나올까.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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