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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직업도 생사필멸의 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처럼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니즈에 따라 태어나 성장하다 완숙기가 되면 생을 마감하면서 해당 직업은 아침 이슬과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난생 처음 들어보는 딜리팅(Deleting)은 개인이 갖고 있는 인터넷상의 정보와 흔적을 지우는 일이라고 한다.당사자는 딜리팅을 하는 딜리터에게 자신이 죽기 직전 신상 정보와 흔적을 말끔히 제거해 주는 대가로 거래를 하는 형식이다.그런데 한국사회에는 딜리터라는 직업의 유무는 확실치 않아 길게 얘기할 사항은 아니지만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에는 딜리터라는 직업이 화려하게 소개되고 있다.
딜리팅을 의뢰하는 부류는 어떠한 사람들일까.생전 언더그라운드에서 돈과 권력으로 세상을 떵떵 거리며 못된 짓을 일삼던 이들이 삶을 마치는 순간이 다가오면서 자신이 행적에 대해 깨끗하게 정리하여 피안의 세계까지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것들을 싸안고 가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깊게 깔려 있으리라.혹자에 따라서는 힘과 권력을 애꿎은 사람에게 휘들러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사죄의 마음도 포함되어 있으리라.이것은 딜리팅을 의뢰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없기에 어디까지나 개연성과 추측에 따른 것이다.
김중혁 작가의 일층,지하 일층을 읽으면서 작가의 문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우연한 기회로 다시 김중혁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도서의 제목이 묘하게 끌리게 되어 선택하기로 결정했다.도서의 제목 가운데 그림자가 주는 이미지는 비밀스럽고 의혹에 가득차 있고 돈과 물질을 중심에 놓고 암투가 벌어지는 것을 연상하게 한다.아니나 다를까,딜리팅을 미끼로 의뢰자와 (딜리팅)당사자간의 계약과 금전 거래가 자연스레 오고 갔던 것이다.사안의 경중 및 의뢰자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서는 수수료가 천차만별이다.죽는 마당에 돈에 미련을 두지 않는 의뢰자는 딜리터에게 상당한 금액을 약정하고 마음 편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피냄새로 가득 배인 악어빌딩에 딜리터인 주동치가 인터넷상의 신상 정보와 흔적을 지우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그는 전직 형사 출신으로서 단서가 될만한 꺼리가 포착되면 먹이를 물어 뜯는 맹수와 같이 집요하게 달라붙는 근성을 갖고 있다.(마음만 먹는다면) 딜리팅을 하다 보면 PC에 저장된 동영상 등을 복원시켜 상거래할 수도 있을 수도 있다.악어빌딩은 주상복합건물로 철물점,합기도장,PC방,오피스텔이 배치되어 있으며 딜리팅을 성공리에 끝낸 주동치는 대금(大金)을 거머쥐면서 딜리팅 사물실까지 차리게 되었던 것이다.이 일이 적법이든 합법이든 딜리팅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먹잇감을 찾아 오면서 의뢰자가 원하는데로 딜리팅 수행을 하는 것이다.그런데 의뢰자의 요구한 내용과 다를 경우 주동치는 이해 당사자를 구워 삼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한다.
딜리터 주동치는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맥을 엮어 나간다.전직 형사 선배,테니스 클럽 회원과의 만남,악어빌딩내에 상주하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을 이어 나간다.살인 사건,방화 사건,자살 사건이 뒤따르면서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도 한다.일명 직책은 사설탐정이지만 사건에 관련한 일들은 팔방미인이 되지 않고서는 이 바닥에서는 버텨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김중혁 작가는 글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성교를 나누는 난교(亂交)장면을 메마른 땅을 윤기나게 해 주었다.
구동치는 전직 형사로서 형사선배였던 김인천과 사건 업무에 대해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김인천 형사는 그만 자상(刺傷)을 크게 입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데 결국 바램대로 되지 않고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만다.가해자인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진다.구동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사설 탐정을 그만 두기로 한다.그 직후 한 남자로부터 "사진을 한 장 없애고 싶다"는 의뢰를 받고 노르웨이로 향한다.가족 사진 속의 아버지를 없애 달라는 것이었다.노르웨이에서 당사자를 만난 구동치는 남자로부터 사진을 건네받고 자신이 갖고 있던 사진과 함께 주머니에 넣은 뒤 피오르(fjord) 호수에 점퍼를 던진다.남자는 주동치에게 머플러를 벗어 구동치에게 둘러 주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전반적인 글의 흐름 그리고 마지막 의뢰건인 사진을 없애 달라는 의뢰인의 예상과 달리 휴머니즘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