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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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기이하지만 마음 한켠 쓸쓸함이 묻어나는 기담집을 접하게 되었다.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소름이 돋아나는 괴기스러운 이야기는 납량 시리즈로도 그만이다.지금과 같은 겨울철에는 이불 푹 둘러쓰고 기담에 눈과 귀를 기울이면서 공포와 전율감을 느낄때마다 따뜻한 기운으로 이를 중화시켜도 좋을 것이다.종래에는 무라카미 작가의 작품이 거의가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스토리가 위주였는데,이번 기담에는 어떠한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는지 그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기담집총 5편으로 되어 있다.1993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케임브리지에서 거주했던 무라카미 작가는 초청작가 자격으로 머무르고 있었다.장편소설을 쓰는 한편 그가 좋아하는 재즈클럽을 들락달락하면서 뭔가 마음 속에 와닿았던 신기하고 기이한 경험을 그리고 있다.작가가 말한대로 소소한지만 자신의 인생을 바꾼 신기한 일로서 누구든 살아가면서 '참 묘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그 연장선상에서 상상해 보는 것도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더욱 선명해지리라 생각한다.

 

 피아노 조율사이면서 게이라는 정체성을 갖은 남자가 서점 카페에서 우연히 연상의 여인을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여인과 만남과 대화를 거듭해 나간다.여인은 피아노 조율사를 마음으로 가까워지려 하지만 남자는 성 정체성에 의해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간다.그러는 가운데 여인이 유방암에 걸리면서 남자는 여인의 마음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우연히 만난 사람처럼 매우 간결한 사이로.우연의 여행자의 이야기이다.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에서 상어의 습격을 받고 죽은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러 사고현장으로 떠나면서 그곳에서 일본인 청년 서퍼를 만나면서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서 차차 벗어난다.그런데 사치는 귀국을 하지 않고 피아노를 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가는데 그만 체류기간이 지나 불법으로 몰려 강제귀국을 하게 된다.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피아노 치는 것 밖에는 없지만,혼자가 된 몸으로 더욱 재즈바에서 피아노로 생계를 이어나가고,우연인지 하와이에서 만났던 청년 서퍼를 다시 만난다.청년들은 여자와 잘 지내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주고 받다 다시 사치 아줌마와 상어에 대한 얘기,아들이 상어의 습격을 받고 익사했던 얘기,남편이 심장발작으로 심장마비사했던 음울한 과거 등이 사치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만든다.사치에게는 오로지 현재에만 충실해야 하는 당위성 밖에 없는 (약간)쓸쓸함이 배여 있는 하나레이 해변 이야기.

 

 무슨 일이 생기면 메모지에 간략하게나마 핵심 내용을 정리하는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는 스님으로서 술에 취해 전차에 치여 예순 여덟에 세상을 떠난 한 여자는 고층건물에 살고 있었다.24층에 시어머니,26층에 젊은 부부가 살았는데 남편은 건강을 챙기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바,어느 날 남편이 24층과 26층 사이에서 행방불명이 된다.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해야 마나 하는 상황에서 남편을 찾아 달라고 같은 동 아래층에 사는 사람에게 의뢰한다.어떻게 된 영문인지 남편은 도쿄를 떠나 동북방면인 센다이에서 발견되고 만다.쥐도 새도 모르게 아파트 맨션을 떠나 20여일 간 타지역으로 왜 떠나고 무엇을 했을까.과연 남편의 뇌리엔 지난 시간의 기억이 남아 있을까.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이야기

 

 쥰페이라는 젊은 남자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친구와 같이 가까운 사이가 아닌 단지 어렵게 느껴지는 엄한 아버지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단 아버지가 "남자에게는 일생에 의미있는 여자가 세 명이 있다"고 했다.소설을 쓰는 쥰페이는 기리에라는 여인을 만나 그녀의 마음을 사게 되고 그녀와의 관계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발견하고 소설을 탈고하고 여인을 기다리지만 그녀와 재회하지를 못한다.쥰페이는 의미있는 여자 둘을 잃고 마지막 한 명을 기다리는데 마음을 홀가분할 뿐이다.초조함,공포심도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 이야기

 

 자동차 매장에서 일하는 오자키 여성이 제약회사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하여 도쿄 시나가와구의 신축 맨션을 사들이면서 시작되는 시나가와(品川) 원숭이 이야기.오자키 여성은 시나가와 주민인 사카키 데츠코 여성과의 인생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학시절 기숙사대표로 있었던 오자키에게 마쓰나카라는 후배가 찾아왔다.학부생 가운데 가장 미모이면서 부유한 재력가인 집안이지만 조용하고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내향적인 인상인 학생인데 그녀는 질투의 감정에 대해 많은 상처를 입고 속앓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친척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자리를 뜬 마쓰나카는 어찌된 일인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질투의 감정이 그녀에게 작은 지옥을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을 것이다.생전 마쓰나카가 이름표만은 부재중에 원숭이에게 빼앗기는 일이 없기를 바랬는데 그만 원숭이에게 오자키와 마쓰나카의 이름표를 빼앗기고 사카키 남편이 이름표를 찾아 온 것이다.그래서 오자키는 자신의 이름표와 마쓰나카의 이름표를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시나가와 원숭이 이야기

 

 총 5편의 기담(奇譚)여행을 마치고 이제 나가야 할 때이다.무섭다,전율감을 느낀다라기 보다는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서 사람과 사물을 잃은 것에 대한 공허함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홀로서 세파를 견뎌 나가야 하는 현실이 어우러져 읽는 내내 착잡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이야기들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린다.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일상도 그리 밝지만은 않은 어둡고 음산하며 결핍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성격의 소유자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인간은 장미빛 인생이 아닌 결핍과 상처의 연속이다.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잘 포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확고하게 선택.결정을 잘하는 사람이 때로는 멋진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고지식하게 융통성 없는 라이프 스타일은 격변하는 시대에서는 부합하지 않은 것 같다.무라카미 작가의 기담을 접하면서 삶은 수수께끼에 둘러싸이고 산산조각난 퍼즐조각과 같다는 이미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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