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코 서점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4
슈카와 미나토 지음, 박영난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자 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동네 골목형 가게는 빛바랜 사진이 되고 말았다.불과 이십여 년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꽤 시간이 흘러 버린 것 같다.그것은 현란하게 눈에 띄고 규모가 큰 기업형 마트가 온 거리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기에 구멍가게식 형태는 마음먹고 찾아야 겨우 눈에 띌 정도이다.게다가 온라인 상거래는 소비자들의 소비관념마저 바꾸어 놓았는데,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도서를 비롯한 생필품,여가용품 등이 아닐까 한다.

 

 일본 소설을 읽다 보면 예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아날로그식 삶을 상기하게 한다.시대는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글 속에는 사람과 동물,정령이 함께 하면서 나약한 인간의 심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정령(精靈)과의 주술 통과의례가 암묵적으로 공기(空氣)중에 짙에 깔려져 있다는 것을 시종일관 감지할 수가 있다.서점과 관련한 이야기는 2,30년 전의 일반서점,중고서점이 몰려져 있던 지방도시의 서점거리를 연상케도 했다.그리고 각박하고 몰인정하게 자신만을 위해 사는 현대인과는 대조적으로 사람들의 언행도 배려와 온기가 그런대로 살아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도쿄 서민가(시타마치)를 배경으로 예스럽고 교묘한 분위기와 (살짝)소름과 공포,수수께끼와 같은 요소들이 잘 배합되어 있는 《사치코 서점》은 7편의 소설집으로 엮어져 있다.한 편 한 편의 이야기에는 말못할 사연과 삶의 가련함,비애 등이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케 한다.사연과 사건이 나면 으례 사치코 서점 주인과 근처 사찰 경내 석등 앞에 고양이들이 몸을 부비고 자기 몸을 핥거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일상의 다반사와 같다.때는 봄날 일본의 연한 보랏빛 수국이 흐드러지게 만개한 철길 주변의 공간배경이 연상된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5살 연상 히사코와 결혼한 '나'는 도쿄 도덴(都電) 서민가로 이사를 오면서 라면가게에서 살인사건이 터지고 희안하게도 꼼짝앉고 서서 라면가게를 응시하는 수상쩍은 남자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다양하지만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식으로 에피소드가 전개되어 나간다.마네킹마냥 라면가게를 응시하던 남자의 정체는 죽은 이의 수호신이었을까,석양의 붉은빛에 녹아들듯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외 유령 즉 저승사자를 연상케 하는 괴기한 도깨비 낙서 이야기,도쿄 변두리 오래된  상점가를 배경으로 등장인물의 책갈피와 관련한 로맨틱한 사연,육신은 죽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정령이 늘 살아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고양이와 개를 쓰다듬으면 치유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인생은 어느 순간 불확실해지거나,무서워지거나,자신이 쓰레기 같은 존재로 느껴지거나,하찮은 일에도 망설이고 고민하게 되는 '청춘의 미로'같은 이야기,죽은 줄로만 알았던 한 여자아이가 경내의 참배 길에 노인과 함께 하면서 여자아이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되뇌어 보게 한다.역시 사치코 서점의 주인 남자가 이야기의 막힌 부분을 잘 추리하여 뚫어 준다.슈가와 미나토 작가의 기묘하면서 1세대 이전의 예스러운 도쿄 서민가의 분위기를 잘 끄집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