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역사 - 이기환 기자의 이야기 조선사 지식기행 7
이기환 지음 / 책문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 기록은 당대 집권자의 의도 및 국가 이데올로기,사회제도 및 시스템에 맞춘 정형화되고 획일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역사를 학습하는 차원에서는 대강(大剛)의 줄기도 매우 중요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료를 현대식 언어로 해석하여 독자들에게 다가온다면 역사는 딱딱하여 재미없다는 편견과 인식을 불식할 수가 있다.그래서인지 역사 장르가 작가 및 저자의 다양한 관점과 상상력,기지를 발휘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어 기존의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인식을 넘어 흥미와 학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가 있다는 점에서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이제 깊은 관심과 흥미를 안겨 주고 있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에다 주자학에 바탕을 둔 유교가 국가의 정체성을 두고 있다 보니 사회제도가 봉건적이고 폐쇄적이었다.역성혁명에 의해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 그리고 이성계의 실질적 참모였던 정도전이 쌍두마차가 되어 조선개국의 주역이었다.특히 삼봉 정도전은 신권정치를 실질적으로 펼치면서 각종 문물,제도 등을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제작한 총감독인 셈이다.조선 27대 왕권 가운데에는 성군도 있고 폭군도 있었다.명,청,왜군 등이 수시로 조선을 침략하면서 조선의 산하는 민둥산과 같은 형세로 변하고,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지게 되는데,이는 국정을 총괄 지휘하는 임금과 신료 간의 정책에 대한 엇박자가 심했던 것이 커다란 원인이다.특히 사색당파로 인해 국정의 혼란이 지속되는데 숙종대에 이르러 사색당파는 정점을 보인다.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생각한다.과거의 잘못된 인습,제도를 답습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더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기 위해 진보해 나가는 것이 천고의 진리이다.그러한 까닭에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면서 내일의 역사를 위한 소중한 교훈인 것이다.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개인의 삶,사회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학습을 통해 얻은 소회이다.사회에디터로 재직하면서 다년간 기자생활을 했던 이기환 저자는 조선 역사 속의 색다른 면을 소개하고 있는데 주제도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당시에는 불경스럽고 금기시되었던 왕과 신료 그리고 잡초와 같은 백성들의 삶의 내면은 웬만하면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 역사의 흔적을 조선과 중국 고대 문헌을 샅샅이 뒤져 가면서 조선과 중국의 당대 상황을 크로스 체크식으로 비교 해설하고 있는데 쉽게 이해가 가고 커다란 울림과 공감을 자아내게 한다.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인재(人災)는 《태종실록》에 나온다.경상도 조운선 34척이 침몰해 1,000여 명이 수장되었다는 내용이다.조운선의 침몰 이유는 선장의 무리한 운항과 화물과적 때문이었던 것이다.그런데 조운선 침몰의 책임을 태종 자신이 모두 떠 안았던 것이다.현대식으로 말하면 '쿨'하게 사과하고 사고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사기》와 《조선왕조실록》 등 다양한 문헌을 바탕으로 해석을 할 때마다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공명이 갔다고 하는 저자의 말이 딱 들어 맞는다.비록 권력과 권위가 하늘을 찌를 듯한 조선시대 임금들이었지만 국사를 위해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국사에 대한 안일한 대책과 무능력한 소신에 의해 임금이 몽진(蒙塵)을 갔다든지 인조와 같이 청에게 삼배고구두를 조아리는 장면에서는 부끄럽다 못해 책을 덮고 싶을 정도였다.당시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및 인식이 결여되다 보니 신화 및 비과학적 요소에 의해 국사의 향방이 정해지기도 했다.운석(隕石)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재변은 인사의 잘못이고 국가의 쇠잔과 혼란을 암시한다는 것이다.주지하다시피 조선은 명과의 오랜 조공관계에 있다 보니 영주와 농노와 같은 관계였다.임금을 정하는 것도 명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정례적으로 조공을 바쳐야 하는 등 정치,군사적인 면에서 열세에 있었다.게다가 후금(청)의 세가 발흥하면서 조선이 청에게 보인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외교관계는 조선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부이다.이를 두고 선군(광해군)의 등거리 외교가 좋았다 어떻다 하는데 국가의 지도자는 국가의 대계를 위해 긴 안목으로 참모 및 장관들과 심모원려를 거쳐 국력증강,국리민복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임금과 신하,대외관계,사대부 및 백성들의 삶 등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소개가 되고 있지만 정말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기만 하다.청렴강직할 줄 알았던 암행어사도 속물근성이 있었던 모양이다.지방의 비리를 척결해 준다는 명목하에 권력과 권위를 내세워 수뢰를 하고 성상납을 받기도 했다.또한 정조 임금은 백성들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명목으로 조선 백성들에게 담배를 보급화했던 인물이다.요즘 흡연을 둘러싸고 유무해 논란이 끊이지를 않는데 정조 임금 자신이 골초였다고 한다.파격적인 것은 개인의 안위만 생각하는 현대 관료들에 비추어 당시 대신 및 관료들은 임금의 잘잘못을 서슴없이 직언(사간원)을 하기도 했다.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끝까지 해야 속이 풀렸던 것 같다.나라를 개국한 임금에게만 시호로서 조(祖)를 칭하는데 종(宗)으로 했다가 조(祖)로 바꾼 사례도 꽤 눈에 띄었다.속칭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임금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겉으로는 국사를 위해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일신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속은 속물근성과 같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임금도 많았다.

 

 기이하여 파격적으로 다가오는 주제와 다양한 인물,다양한 사건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모두에서도 말했듯 현재는 과거의 역사와 끊임없는 대화이다.과거의 역사를 거울로 삼아 개인,사회,국가가 지금보다는 더 나은 면목를 보이려 노력과 의지를 게을리 않는 실천적인 자세와 현명한 마인드가 어느때 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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